아직 다 쓰지는 못했어여
매일매일 올릴거니깐 일구 나서 이상한거 있음리필달아주세요
오늘 같은 명절 날이면 부모님이 생각난다..
아버지와 어머니 … 나에게 부모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함과 생소한 느낌..
올해 내 나이 24살이다. 나에겐 가족이 있다.
10살 차이 나는 신랑과 5살짜리 아들 그리고 올해 17개월짜리 딸이 있다.
내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날의 부모님의 모습..
남들처럼 부모님의 기억과 추억이 나에겐 그다지 좋지가 않다.
내가 3살 때 인가 … 어디서 살았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가 변을 본 것을 먹자 아버지한테 혼났던 기억이 난다 … 지금 생각해 보면…슬픈 미소만이 지어 질뿐이었다.
난 어려서부터 고모들 손에 의해 컸다. 고모 두 분이 나의 부모나 다름이 없다.
아버지가 같은 건물에 살면서도 난 고모들과 지내야 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어려서 헤어지셨다 …
내가 기억나는 부모님들의 모습 … . 여기 저기 어디를 가나 천대 받는 나
한번은 엄마를 따라 외가댁에 갔었다.
외가댁은 수원 농대 근처였다. 우리 외할머니는 남편 없이 5남매를 혼자서 키우신 분 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 … 큰 키에 우락부락한 모습…
그 날도 마찬 가지로 난 할머니가 부르기 전에 집에 들어 가질 못 했다.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할머니와 엄마의 애기만 듣고 있었다.
“ 미쳤다고 쟤를 왜 데리고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오는 거야?
니가 제 정신이야? 딸년이라고 하나 있는 게 그 모양으로 사는 거야?
너 엄마 미쳐서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엄마…그만 해여… 애 밖에서 기다리잖아,,,”
난 그런 외할머니가 무서웠다. 다른 손자손녀들한테는 한없이 좋은 할머니가 왜 나한테만…
그래도 난 방학 때면 항상 외가댁에 갔다. 그 당시 엄마가 연락이 안 됐었다.
엄마와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외가댁에 가야만 했다.
어른들이 부모 욕을 아무리 험하게 해도 난 견딜 수 있었다.
나에게 부모가 너무 그리웠기에….
어린 나이게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다 들으면서 컸다,
외가에 가면 아버지 욕…심지어 큰 외 삼촌은 어린 나를 향해
“ 니 애비는 죽일 놈이야 개놈도 그런 개놈이 없어”
“여보..그만 해여..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틀린 말 한거여? 저 가시나만 보면 그 놈 생각에 울화가 치밀어 울화가.”
그럴 때면 난 항상 고개를 떨구며 그만 할 때까지 아무 말없이 가만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큰 삼촌이 그럴 때면 항상 외숙모가 날 위로해 주셨다.
“수아야. 네가 이해해라 삼촌도 너 싫어서 그러는거 아니시니깐…
수아 네가 크면 다 이해 할 때가 올 거야..”
난 울었다..울 수 밖에 없었다..그런 큰 삼촌이 너무 싫었다.
‘우씨. 왜 우리 엄마 아빠 욕하는 거야? 내가 커서 다 복수 해줄 거야..’
우리 부모님 욕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미웠고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다 우리 부모님 욕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부모님과 같이 못 산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항상 날 힘들게 했다. 지금도 날 힘들게 한다.
지금 우리 엄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애를 낳고 키워 보니 너무나 사랑스럽고 떨어진다는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귀한 자식들 인데 … 나의 부모님은 이렇게 이뿐 자식들을 어떻게 안 보고 살수가 있을까 …
나에겐 엄마가 많다. 우리 아버지..여자가 많았다..엄마 마다 부르는 호칭이 다 틀렸다.
친 엄마는 수원 엄마 두 번째 엄마는 집 나간 엄마(엄마 중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분이다)
지금 현재 세 번째 엄마는 .예린 엄마라고 부른다.
내가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 우리 아버지는 이 여잘 너무나 사랑한다.
지금 아버지는 영등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아직까지도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남들이 보기에는 진짜 못쓸 인간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분이시다.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시고 저러고 계시지만 이번엔 나오시면 정말 잘 사실 거라는 확신이 선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나에게 항상 1년만 기다려라 3년만 기다려라
아빠랑 같이 살자 그때까지 할머니 말씀 고모들 말씀 잘 듣고 있어라
난 그 말을 잊을 수 없었디. 어린 나에게는 그 말 한마디가 살아가는 목적이었었기 때문 이다. 아버지는 올 때마다 나에게 용돈을 주고 가셨다.
난 그 돈을 쓰지 않고 저금통에 넣어놨다가 어버이 날이나 할머니생신 고모들 생신 때 뜯어서 선물을 샀다. 지금 생각 해보면 웃음만 나온다.
내 자식들도 조금 크면 저금통 뜯어서 어버이날과 내 생일 때 선물을 주겠지 하는 기대감
이게 부모 마음인데 우리 부모님 속을 아직까지 모르겠다.
난 아직도 부모님 나이와 생신을 정확히 모른다.
아버지 생신은 몇 일 전 면회를 다녀온 후 체크해 두었다..
어머니 생신을 모른다 나이와 띠만 알뿐..
2부는 내일 올려여 많이 사랑해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