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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힘들게 살아오고 있는 나의 삶 이야기...ㅠ.ㅠ

지니지니 |2003.10.26 11:26
조회 1,164 |추천 0

저는 스물 여서살이며 4살짜리 아이의 엄마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고 농사일도 하고 밭일도 하고 여느 시골아이들처럼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는 아버지께서 좋다고 하시는 여상을 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역시 첨엔 저도 성적도 안되면서 인문계가서 글짓는 걸 배우고 싶었습니다...

허나 솔직히 동생이 셋이나 있고 난 장녀였습니다...시골 가정의 사정들은 다들 어렵고 그럤으니까요..

여러모로 그냥 아버님 말씀을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돈도 없었고...ㅠ.ㅠ

그리고 가난하고 궁상맞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아버지의 간섭과 잔소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여상을 택했고 포항에서 여상을 다녔습니다....

그래도 학교는 여상치곤 좋은 학교였습니다...

 

제 고민은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도 저는 글짓는것에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그치만 어쩔수 없다는 현실이 더 슬펐고, 그냥 여기서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졸업하여 취업을 나가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중학교를 시골에서 다니다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습니다...

멀어서 처음 지각했을땐 선도부 언니들에게 앉았다 일어서기 100번의 벌을 받고 무서워서 50번을 미친듯이 해버리고 난후 3학년 언니들이 지각해서 왔을땐 체육선생님이 매로 두대만 때려서 보냈습니다...

그것도 난 억울했습니다...정말 3학년이라는 그것이 저렇게 좋은거구나 하고 막연히 3학년만 기다렸습니다...학교생활은 그야말로 힘들었습니다...저희 중학교에서 그학교를 입학한 아이는 10명도 채 되지않았습니다...한학년이 10개학급이라서 한반에 1명이 겨우 있을정도 였으니까요...난 적응이 힘들었습니다...일년내내 난 다른 중학교에서 온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점심때마다 혼자 도시락을 먹으며 보냈습니다...어떤날은 매점 구석에서 혼자 먹고 어떤날은 교실에서 혼자 먹고 그러고 나서는 그 많은 학생들 틈에서 난 혼자 인듯이 외톨이였습니다...제가 좀 많이 내성적이어서 먼저 말걸진 못해도 친해지면 정말 많이 친해지는 그런 성격입니다...아마도 그 성격 탓인지 제 행동 탓인지...좀처럼 친구는 사귀기가 어려웠습니다...다른 아이들을 보면 친구가 있는 게 부러웠습니다...

 

그 일년동안 나는 점심시간이 두려웠습니다...그래서 어떨땐 밥 먹기가 싫어서 그냥 엎드려 혼자 연습장이나 노트를 펴고 내 맘의 글들을 쓰면서 아픈맘을 달랬습니다...유일하게 나랑 이야기 하고 그랬던 사람은 우리반 실장과 부실장 그리고, 우리 담임선생님 이었습니다...전 저에게 동정어린 맘으로 제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은 그사람들까지도 그저 좋기만 했습니다...사람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선생님께선 저를 어여삐 여기셔서 전 마냥 선생님을 좋아했습니다...어린아이처럼 저에게 관심가져주는 선생님이 그냥 좋았습니다...나에게 관심이라도 가져주는 사람들이 그저 좋았던 걸까요??

힘든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이 되어서 친구가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내가 무섭게 보였답니다...맨날 혼자서 앉아있고 공부도 많이 잘하는줄 알았답니다....

말도 없구....무표정한 모습일때가 많았거든요....

우울함이 가슴가득 차있었으니까요..학교생활은 그냥 선생님 보는 낙으로 살았죠...

솔직히 제가 마음을 열지 못했던것이 그래서 지금껏 가슴아픈게 정말 힘듭니다...

 

그럭저럭 3학년을 보내고 취업을 나간곳이 정비공장 경리직...작고 허름한...

남자들이 많은 곳이라 욕도하고 거친말이 많이 오가는 곳이었죠..그게 싫어서 제가 그렇게 될까 두려워 관뒀습니다..그리곤 학교로 또 등교를 해야 했죠...실습기간이었거든요....그때는...

그래서 좀 다니다 또 소갤 받은곳이 자동차 운전면허학원 경리직...급여조건도 처음보단 좋았고 제복도 있었습니다...면접보고 붙었지만 가지않았습니다..졸업하기전까진 취업하겠지하구요...

결국 졸업하고도 7개월을 놀고 나서야 아버님의 권유로 파출소 일용직 일을 했죠...

1년 3개월인가 일했었죠...남자 화장실 청소도 손으로 직접닦고 뭐든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연락하고 지내던 남자가 있었죠...그사람을 만나러 수원에 갔습니다...

엄마아빠가 제주도로 여행가신 그틈을 타서요...근데 결국 걸리고 말았습니다...

 

출근을 해야는데 출근도 안하고 그냥 그사람이랑 있었던 거죠...

고지식하신 아버지께선 난리가 나셨죠...절 많이 믿어주셨거든요...

결국 일은 터지고야 말았죠...그오빠는 아빠의 전활 받았고 파출소 부근에서 그오빤 택시타고 와서 내리자마자 볼을 한때 맞았죠...몰래 숨어서 그광경을 본 난...정말 미안하고 어쩔줄 몰랐습니다...

저처럼 못난 사람을 좋아해주는 것도 고마웠지만....저렇게 맞으면서 까지 저와 꼭 살고싶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파 견딜수가 없었습니다..일찍 끝내버렸다면 그냥 저사람 저렇게 맞진 않았을텐데....그런생각이 들더군요...그래도 그순간은 정말 미안하고 얼굴을 들수가 없어서 보일러실에 숨어서 하루종일 있었습니다...결국 거기서 나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벌벌 떨어야 했죠...그러다 자주 갔던 가게에서 아빠와 엄마가 계시다는 얘기 듣고 무서움에 갔습니다...가자마자 난 맞았습니다...제가 잘한짓은 아니란거 알았지만 정말 그렇게라도 하면서 만나지 않으면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ㅠ.ㅠ 저희 아버지는 정말 엄격하셔서 남자사귀는걸 절대 안된다 하셨답니다...퇴근시간후엔 집으로 직행했구요...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전 자유란게 하나도 없었습니다...그렇게 집으로 가서 많이 혼났구요...

며칠동안을 집에 갇혀서 일도 못 나가구...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닐래 하시며 호통을 치셨죠...ㅠ.ㅠ

 

결국 파출소완 끝이 났고 그러고 나서도 감시는 계속되었죠..사촌동생이 감시하고 제 친동생들이 감시하는 눈초리들이 난 정말 곧 죽을 사형수처럼 세상이 힘들었습니다...

정말 그만큼 아프고 힘들긴 첨이었습니다...아무것도 먹고싶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한없이 쏟으면서도 그사람 생각이 났습니다...저도 모르게요...

전 그사람이 모텔에서 일하던것도 아빠한테 밑보일까 싶어서 관두라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일에 무슨 천하고 귀함이 있다고...저까지도 그사람 힘들게 한것같아 마음이 안좋았습니다...그치만 어쩔수 없었죠...제가 못난 탓에...

 

밖에 일자리 구하러 간다면서 다닌 며칠후 일자리가 났고 그뒤로도 오빠랑 연락을 했죠...  어느날 나가면서 짐을 대충싸놓고보니 가방이 네개나 되더군요...

두개는 방창문 아래 창고에 놔두고 제 방창문을 넘어 나가다 엄마한테 걸리뻔했는데 무사한듯 싶었죠

그날 오자마자 난리가 났죠...가방 네개를 갖고 들어와 아버진 다 찢고 태운다며 난리였죠...

엄만 그런 아버지를 말리느라 여념이 없었구요...그땐 아무 생각도 없었죠...

그날 그사람이 집근처에 택시를 타고 와있었죠...아빠차타고 들어오면서 모퉁이에서 봤거든요

아빤 그사람 포항에 와있다며 난리였구...아니라고 난 소리쳤어요...

그날 그냥 야단만 맞고 나서 방에 있었죠..엄마가 그사람 잊으라고햇어요...

그래도 울면서도 자꾸 나갈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죠...

 

며칠을 감시의 눈초리 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준비했죠...반항도 않고 그냥 가만히 수긍하는척하며 조금씩 준비를 했죠...부모님들의 곗날 저는 결국 택시를 불러두고 그시간에 맞춰 나갈려고하다 잠시 집에서 입던옷입고 아닌척하다가 다시 속옷갈아입는다고 거짓을 말하고는 옷입고 숨겨뒀던 구두를 신고 미친듯 창문을 넘어 스타킹도 찢긴채 무조건 뛰었죠...

택시가 있는 다리까지는 엄청 나가야 하는 시골이었거든요...동네어귀쯤에 있는 택시를 타고 통장을 찾아들고 은행먼저 갔죠..돈을 찾아서 터미널로 가서 내렸죠...맞은편에서 동생과 맞닥들였죠...

근데 제가 그때 평소 안입던 옷을 입고 파마한지 얼마 안되서 제동생이 절 바로 못봐서 못 알아봤던거죠.

그렇게 터미널 부근 자전거 주차장에 숨어서 몇시간을 버티고 불안속에서 꼭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죠... 발소리만 나고 누가 오기만 해도 날 잡으러 오나 싶어 무서워견딜수 없었죠...쪼그리고 앉아서 보이지 않게 숨으려 여기저기 옮겨다니고...져린다리를 가끔씩 풀며 견뎠죠..그러고 나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뒤 차타는 곳에 가서 시간을 물어보고 나서 표를 끊고 난뒤 차에 탔죠...차를 탄 그순간도 혹시나 잡으러 올까 싶어 무서웠죠...결국 휴게소를 가면서까지도 쫓아올까봐 무서워했죠..그상황에도 오빠에게 전화를 하며 무서움을 달랬죠...그러면서 수원까지 심야버스를 타고 가서 내렸죠...새벽 네 다섯시쯤...

오빠가 있는 충남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올수가 없다며 아침에 오겠다고 하길래 전 혼자 못있는다고 오라고 해서 몇시간을 전화부스 안에서 스타킹이 찢어진채 서있었죠......

 

그순간은 그나마 조금 안심이..오빨보고나선 안심이 됐구...오빠와함께 공주큰어머님 댁이라며 그곳을 갔죠...거기서 몇개월살다가 아버님 계신 오빠집에 가서 있다가 수원가서 살앗죠...

그땐 제나이가 23살 이었죠...만으론 21살이었구요...오빠랑 같이 취업원서 접수후 연락받고 잘됐다 하던 찰나에 아이가 생긴걸 우연찮게 알아버려서 일도 못가고 힘든 인생이 시작되었죠...

 

아이는 2000년 12월 내 생일 3일전 낳게되었죠...예정일도 되지못해 부종이 와서....

발이 붓고 그래서 찜질도 하구 그래도 안되서 말이죠...아무래도 당겨야 할것 같다고...

그래서 웃으며 병원을 갔죠...그날 죽도록 관장을 해서 준비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나서

저녁밥 겨우 병원서 얻어먹구...다음날 다시 관장하고 유도분만을 시도하는거라며 했죠...

애를 낳으려면 문이 어느정도 열려야 한다며 맨날 왔다가고 심장박동기 쿵쾅거리는 소리만 요란했고

갈수록 자꾸 허리가 아프고 옆에 있는 남편이 그렇게 미워서 미치겠더라구요....

 

어려운 상황에 제가 안아프고 낳고 싶다고 수술을 할순 없어서 고집스럽게 자연분만을 시도했는데

안되서 몇시간을 고생하며 의사선생님 언제 오냐고 울며불며 난리였죠..간호사는 더 힘들어야 엄마 되는거라고 하면서 호통을 치더군요..얄미웠죠...결국 전 마취실에서 마취를하고 무통분만을 해야 했죠....

마취선생님도 없어서 오는동안 내가 죽는줄 알고...울고난리도 아니였죠...마취하고나니 허리가 안아프더라구요...그리곤 그뒤로 기억이 없는데 눈을 떠보니 전 수술끝나고 얼마만에 깨어난건지 모르겠더군요...불빛이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 그러면서 보이더라구요...그리고 양손에 꽂혀진 링겔 바늘....그리고 아무생각없이 본 링겔 줄 속에 피가 묻어있더라구요...그냥 쓰던건가 했죠...배엔 복대가 있었는데 피가 잔뜩 있고 수술해서 그런가 했죠...정말 배가 땡기고 얼마나 아프던지...그런 저에게 간호사는 환자복 입혀주면서 멀쩡한 사람처럼 대충 막 입히는거 있죠..미워죽겠더군요...아픈사람을...ㅠ.ㅠ

 

그렇게 전 병실로 갔죠...그리고 나서 한 3일인가 지난후에 오빠한테 이야길 들었죠....

저 다신 애 가질수 없다고....자궁을 아예 떼어버렸다나요....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말하는게 나을것 같아서 하는거라고....

아이가 배속에 떠있었다나요..그래서 제가 더 많이 힘들었던거라구...제왕절개후 아이를 꺼내고나서

자궁수축이완이 안되고 출혈이 심해서 죽을뻔했다고.....제가 위험하다는 소리듣고 정신이 없었다고 하는 남편을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그러고나서 물어보니 첨 눈뜨고 링겔줄에 안에 묻었던게 수혈받은거라고...정말 한없이 울었어요...그날 밖엔 눈이 오고 있었죠....

병실 다른 산모들은 금새 가더라구요..부러웠죠...병원비도 80여만원이나 나오구...

정말 미안하고...그리고나서는 깨어나서 며칠뒤에야 아일 보러 겨우 내려갈수 있었죠...

소변도 보러 갈수 없었으니까요...링겔바늘을 하루에도 몇개씩 맞았거든요....온손등이며 다리등에는 바늘자국이 남았구요...피검사하려고 해도 혈관을 찾지못할정도로 붓기도 하구요...

 

그렇게 힘들게 아일 하나 낳았죠...내가 아직 어리고 준비안된 엄마라 그럴까요...

아일 제대로 키우고 싶은맘에 말보다 행동이 앞서서 혼낸적이 많아요...

너무 심하게 하는거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절 향해 비난해요...그 비난 받으면서도 전 또 힘들게 하루를 살아갑니다...아이를 한명키우다보면 욕심이 늘고 자기중심적이 되어가는듯해서....동생을 만들어주구 싶어도 방법도 없고...혼자 외로운 아이를 보면서 측은하면서도 관심이 지나쳐서 일까요....정말 가슴이 아픕니다...친정부모도 여동생도 남편도 모두 아이니까 ...너무 심하지 않냐...그럽니다...

 

사실 부모님은 제가 아일 못가지는걸 모릅니다..아시면 엄마나 아빠 모두 충격받으실테니...

다른사람은 다 압니다...남편이랑 시동생 시누이...제동생들...몇몇 친척들...

그렇게 전 우울증이 자꾸 심한듯 했습니다...

애낳고 시누이랑 같이 살았고, 그후엔 시동생이랑 같이 살았죠...

혼자 외톨이인듯했고, 나만 힘들게 살려고 하는거 같았습니다...

 

전 죄인입니다...아이를 낳아놓구선 자유를 많이 안 줍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아이에게 나쁜일이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무엇이든 생각을 마니 하고 혹시라도 다칠 염려있는것이면 안주고 그랬습니다...

제가 심한거 같다는거 저도 느낍니다...조금씩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애가 생긴후 남편은 아이만을 생각하는듯했습니다....전 언제나 아이의 뒷치닥꺼리만 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네살인 내 딸에게 더이상 저는 따스한 엄마의 품이 아닌거 같습니다...그아이가 느끼기에...

남편이 딸에게는 참 자상하고 관용을 베풉니다...전 그런 남편의 사랑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매일을 불안과 초조함 절망감속에서 허덕입니다...

 

제가 우울증으로 힘들면서 채팅이란걸 하게 되었거든요..

거기서 알게된 사람들에겐 저를 주부라는 제 위치를 속이고 전화도 하고 그냥 정말 심심풀이같은 느낌이었죠...오빠와 힘들면 그냥 제입장을 숨기고 사랑에 아픈사람인척 하며 동정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빠를 버린게 아니라 오빠가 이렇게 나와 이야기 해주며 지내길 원했던거 같습니다...

 

연애를 제대로 못한탓에 그런지...자꾸만 쓸데없는 그런행동을 하며 전화세나 증가시키는 죄인일 뿐이었습니다...지금도 몇주전까지도 그렇게 쓸데없는 곳에 시간이며 돈을 낭비했습니다...

휴대폰 요금이 엄청 나와버린것입니다...말을 해야 하나 걱정이 됩니다...

그사람들을 좋아한것도 아니었습니다...그냥 전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그런짓을 했습니다...대리만족을 느끼려했던거였나 봅니다...전 지금의 남편없인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일 못나가는 남편을 위해 저라도 일하고 싶지만 그놈의 신용불량자 라는 딱지때문에 아무데나 들어가지도 못하고...맨날 화만내고 난 화풀이만 하는 죄인일뿐이었습니다...아이에게나 남편에게나...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란거 압니다...제가 더이상 남은 믿음마저 져버리면 안된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낍니다...무엇이라도 미치게 해보고 싶습니다....가난한 저희집 상황마저 이런 저를 더 힘들게 합니다...가슴이 아파요

더이상 남편만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힘든거 알면서도 전 그런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진 못하고 더 힘들게 만들고만 있습니다...

 

남편이 조금만 섭섭한 이야길 해도 전 눈물만 흘립니다...겉으론 그사람에게 화내고 소리지르지만 정작 제마음엔 눈물도 없습니다...소리없이 가슴으로 울때가 참 많습니다....힘없이 잠든 남편을 보거나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는 그를보면서 전 벙어리가 됩니다...눈물이 비오듯 쏟아져 내립니다...

도움은 되지 못하고 이렇게 힘들게만 하는 나를 그래도 아내로 한아이의 엄마로 남겨둘까요...

무섭습니다..사실 일을 저지르고나면 전 언제나 무섭습니다.

 

전 남편없인 불안합니다...그리고 사랑받고 싶습니다...아플때도 그누구보다 오빠의 따뜻한 한마디가 듣고 싶습니다...저의 죄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채 일만 저지르고 나서는 바라는것만 많은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그런일 저지른 최초의 이유는 오빠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어 집에서만 머물러 아이와 싸우는 저를 위해 지금보다 조금만더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표현 해주면 참 좋겠습니다...

 

오빠를 미워하고 버리고 싶은게 아니란겁니다...제맘은...그냥 대리만족이었을뿐인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이렇게 오빨 경제적으로도 맘적으로도 힘들게 합니다...

어떨땐 이런내가 없어지면 좋겠단 생각도 합니다...

 

나만 없으면 내 딸도 다른 멋진 엄마가 잘해주면 나보단 나을테고....오빠도 지금 나보단 더 좋은여자와 행복한 가정꾸밀수 있을텐데....부모님에게도 언제나 죄스럽고....귀도 잘안들리고 예전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머리도 아프시고 그러셨는데 편도선도 안좋으시단말에도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의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더 좋아질꺼란 기대로 살지만....하루하루 지나면

갈수록 힘들어져 가는 내 집 상황이며...남편직장문제...지금까지 빚진 돈들...결혼을 나중에 했는데 그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넘어지셔서 허리까지 다치신 우리 아버님....한번도 제대로 모시지 못한게 너무나 죄스럽습니다...예전에 임신해서 수원살때 엄마아빠한테 연락못하고...밤마다 괴롭고 힘들어서 어느날은 시아버님께 전화해서 아빠라고 부르고 싶어 울었던 일....아이 백일이 다되어갈때쯤 아빠가 직접 찾아오셔서 엄마랑 저와 아이를 보고는 많이 우셨던일......못된 제 성격때문에 시동생이랑 시누이랑도 친하지 못한 제가 더이상 무엇을 보며 살겠습니까??

 

그래도 오빠 뿐입니다...아이때문에 싸우고 그래도 전 그사람뿐입니다...

못난 저때문에 모두가 힘이 듭니다...제가 일케되고 나서 여동생은 아빠의 기대가 커지셔서 힘들다고 합니다...남동생들은 모두 군대에 가있습니다...엄마아빠 할머니 계신 포항에 자주 가뵙지도 못하고....시아버님 계신 당진조차도 가지 못하는 지금의 내 처한 상황들이 정말 가슴시리도록 싫습니다...

전 남편과 시아버님 아이...친정가족들..모두 포기할수 없어요...

 

쓸데없는 짓을해서 맘을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지만...조금만 더 제게 관심을 표현해주고 따스한 말한마디라도 건네주면 참 좋겠습니다...때론 야단치고 화내는거보다 좋은말 한마디가 더 멋진 교육이란걸...멋진약이란걸 알게되었습니다...제가 그렇게 원하니까요...

아이에게도 멋진약을 주고 싶어요...오빠에게도 사랑을 듬뿍 줄래요...

 

표현도 자주 하고...그럴려면 얼마나 더 많이 아프고 힘들어하고 제맘에 상처를 주면서

견뎌야 할지...주위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임신못하는 제 자신도 싫고, 자꾸 제마음에 생채기를 내어 아프게 하려합니다...제 자신이...

혼자인 아이를 키우면서 더 힘든건 혼자인 저 아이가 세상을 살면서 기댈 형제하나 없단거...

아픈기억을 자꾸 끄집어내고...임신한사람들 보면 그렇게 밉고 죽이고 싶은맘도 든적이 있습니다...

그냥 질투가 나서 인지도 모릅니다...난 저렇게 될수 없다는거 그이유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제 소망은 왜 이리 이루어지지 않는지...세상도 원망스럽습니다....

절망적인 삶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막막합니다...

 

사촌동생들이 가출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친동생처럼 가슴이 아픕니다...

제발 그러지 말아줬으면...하구요...

저때문에 가슴아프게 걱정하는 남동생들을 보면서 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제가 오빠를 힘들게 하지 않는것이 저를 위해서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을텐데 ....

지금의 집도 언제 내줘야 할지도 모르구...

계속 이렇게 힘들다 보면...ㅠ.ㅠ

언제쯤 나의 아프고 힘들고 고된 삶은 끝날까요....

 

저의 지금까지 삶의 이야기 였습니다...

 

무지 길었죠...다 읽어주신님들 감사합니다....

보통인내심으론 읽지도 못할 길이의 이야기죠...

 

님들은 언제나 좋으신 일들만 일어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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