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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단테 2-1

Rhodanthe |2003.11.08 18:35
조회 94 |추천 0

        2 . 가을의 인연

 

 

 

                  - 1 -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의 초가을.

22살의 남자, 포토밭이 한 눈에 들어오는 스쿨버스 승강장에 담배를 뽑아물고 서 있다.

이른 아침의 서늘함 때문에 입고 온 짙은 카키색 남방이 못내 부담스러울만큼 오후의 햇살이 따갑다.

승강장 천막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가도 꽉 막힌 시야가 답답해 다시 햇볕으로 걸어나왔다.

이따금 강의를 마친 과 동기들과 후배들이 손짓을 하며 술집이며 PC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혼자 남겨긴....... 얼른 집으로 가야하는 나는 내내 어제 밤에 개인 버디홈 방명록에 남겨진 정체불명의 글에 신경이 쏠리고 있다.

이상하리만큼 별 의미가 없다 싶은 그 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런 글이 어디 한 두개랴. 그런가보다 하며 치부할 수도 있으련만 무슨 일인지 알수없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 글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헤이! 창재! 벌써 집에 가?"

과 동기자 고등학교 동창 친구녀석이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선 승강장을 지나며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일제히 내게로 꽃혀드는 수많은 시선들.

"어! 이제 집에가. 또 겜방 가냐?"

언제나 의례적으로 묻는 질문중에 하나다.

질문을 들은 친구녀석은 내게 다가온다.

"야! 오늘 스타(스타크래프트) 내기 하는데 같이 하자. 애들 다 모였어. 실내디자인과 애들도 왔는데....."

"아니다. 오늘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지. 미안하다. 오늘은 니네들끼리 하고 모레쯤에나 같이 하자"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어쩔수가 없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친구녀석은 담배를 한 개피 뽑아 물더니 이내 씨익 웃어보이면서 손을 흔들며 저만치 멀어져 간다.

희뿌연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뿌려놓으며.........

멀어져가는 친구의 모습을 유심히 보는 찰라에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친다.

뒤를 돌아보니 같은 과 친구다.

"벌써 집에가? 게임 안 하구?"

인천에서 유학온 수정이라는 친구다. 늘 나의 장난을 받아주는......

"집에 얼른 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

말 꼬리를 흐리기도 무섭게

"웬일이야? 와! 오늘 날씨 너무 좋다. 오늘 같은 날 김밥 싸들고 놀러가야되는데, 승질나. 근데 타이포

그래피(다자인의 한 종류) 과제 다 했어?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내게 불평섞인 말을 연신 늘어놓는 수정.

"타이프 사이즈와 레이아웃(디자인 용어에서 말하는 배치 혹은 구도)만 잡으면 돼. 어려운거 없을텐데...."

"야! 장난해? 그걸 알면 내가 왜 고민하냐? 그러지 말고 내꺼 좀 해줘 응?"

이번에도 부탁이다. 종종 있는 일이기에 또다시 난감해진다.

"그러면 내가 하다가 쳐박아 둔거 하나 줄까?"

"응 그거줘"

금새 일그러진 미간이 활짝 웃음으로 바뀐다.

"근데 요즘 그 언니랑 잘 되어가?"

웬일로 그 질문이 안 나오나 싶었다. 가장 난감한 질문.......

"글쎄. 잘 되는건지 모르겠어. 잘 안되면 마는거구"

답답한 심정을 지울 수 없다. 될대로 되라는 내 대답에 나보다 더 답답한 표정을 짓는 수정.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학교 뒷산만 멀뚱히 쳐다보며 가느다란 한 숨을 길게 내어뱉는다.

그 무렵, 스쿨버스는 큰 공터를 돌아 차머리를 승강장으로 향해 천천히 다가오자 흩어져 있던 학생들이

승강장 입구로 재빨리 몰려든다.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승강장.

그러나 일부 학생은 목적지가 다른 것을 보고 다시 발걸음을 돌리며 자기 갈 목적지행 버스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 짜증을 부려대고 있었다.

경산행 버스를 확인한 수정은 버스를 타기 위해 내게 손짓을 하고는 그냥 돌아서서 가버린다.

다시 혼자 남겨진........ 알수없는 쓸쓸함이 뒤통수를 후려친다.

 

-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솔직히...... 솔직히 말해 그와 나는 아무것도 아니길....... 어차피 스쳐지나갈 인연인걸. 나와 너무 틀려. 배경과 삶의 목적지가 너무나 다르다.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나을것을.....

우리는 왜 아직까지 만나고 있는 것일까? 헤어져야 할텐데,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인것을...... 그도 알겠지? 우리에게 정이라는 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의무적으로 만나는 것인가? 아니다. 적어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만남은 아니었기를 그러길 바란다. 비록 모든것이 틀릴지라도 감정만큼은 그 감정만큼은 진실할거라 나는 믿는다. 그런데 왜 이리도 불안하고 힘겨운 것인지 알수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어디까지일까? -

 

10분이 지난후에야 반야월역 방면 버스가 승강장에 들어왔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일렬로 줄을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나 역시 중간쯤에 위치한채 서서히 버스에 다가서고........

"어! 너 왜 벌써 가노?"

아! 성가신 인간 한 명이 나를 귀찮게 굴 모양이다. 하필이면 이 인간과 같은 버스를 타야하는 짜증스러움.

"그냥 집에 일찍 가고 싶어서"

"좀전에 겜방에 갔다오니깐 애들 스타크래프트 하던데? 같이 안하나?"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임에 틀림없다.

"나는 게임만 하는 인간이냐?"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냥 이렇게 조용히 가주길...... 생각이 많은 내게 그냥 지금처럼

나를 내버려두길 희망한다.

이내 버스에 올라타고 언제나 그렇듯 버스 뒷자리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말 많고 성가신 그 친구 옆에 와서 자리를 잡는다. 아마도 꽤나 피곤할 길이 될 것이 틀림없다.

"요즘도 그 누나랑 사귀나?"

참 물어 볼 말이 그리도 없는 것인지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들 같은 질문을 해댄다.

그냥 그저 그렇다고 대답을 얼버무러버렸다. 자세한 대답 조차 귀찮은......

창밖의 세상,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창밖으로 비치는 들녘은 영락없는 가을의 모습이 물씬 풍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대로 이따금씩 보이는 논의 벼이삭은 차마 익지 않은 연두빛 벌판이다.

머지않아 누런 물결이 일어댈 들판.

주먹이 간신히 들어갈만큼 창문을 열어두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며 이마를 가리고 있던

머리칼을 이리 저리 흩날리게 한다.

"무슨 생각하노?"

창밖의 풍경에 빠져들무렵 강한 악센트의 사투리가 오른쪽 귀 고막을 자극한다.

"그냥 먹고사는 생각....... 먹고 살기 힘드네"

참 친절한 대답이다.

역시 그는 대답이 없다. 무슨 일인지 여느날과 다르게 말이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창밖 풍경을 이리저리 살피는 동안 어느덯 대구와 경산의 경계선인 금호강을 건너고 있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반야월역이 나올것이고 버스는 지하철 승강장 입구에 나를 내려 놓을 것이다.

 

버스를 내려 지하철역 계단으로 내려 가고 있다. 매표소에 다가가자 라디오 방송 소리가 들려오고,

스쿨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려는 학생들이 조잘거리며 개찰구로 향해하고 있다.

지갑에 지하철 정액권을 꺼내려는 찰라에 뒷주머니에 꽂아둔 전화기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전화기를 빼 폴더를 열어 전화기를 귀에 가져간다.

"강의 끝났어요?"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다.

"응 끝나고 스쿨버스 내려서 지하철 갈아탈려구요"

냉담한 나의 목소리.......

"나한테 화났어요? 왜그렇게 차가워요?"

일순간 그녀도 덩달아 얼음장같은 말을 툭 던져 놓는다.

"아니. 머리가 좀 복잡해서...... 어디예요?"

"강의 끝나구 학원 갈려구 나왔어요. 여기 날씨 너무 좋다. 학원갈려니깐 너무 억울해"

나이답지 않게 어린애처럼 칭얼거린다. 언제나 그렇듯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말한다.

"날씨는 여기도 좋아요. 바람도 제법 시원하게 불고, 졸려요"

그래 솔직히 졸렸다. 매일같이 과제와 공부를 하다보면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수면을 취할 수 있었고,

새벽같이 일어나 2시간이나 걸리는 학교로 등교를 해야 했기에 수면 부족은 늘 있어 왔던 일이다.

심지어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은 날엔 일주일동안 단 한 숨도 집에서 잘 수 없는 날이 있곤 했다.

그런 날엔 어김없이 지하철이나 스쿨버스 안에서 부족한 잠을 청해야 했다. 그러다 가끔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지하철 차량기지까지 가서야 내리는 일이 종종 있곤 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강의 시간에

늦곤하여 교수님으로 부터 따가운 질책을 들어야만 했다. 뒤늦게 들어서는 강의실, 나를 보는 과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가급적 지하철에서의 잠은 피할려고 하나 피로함에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듯 잠에

빠져버리곤 했다.

"어제도 밤샜어요? 어제 일찍 잔다고 했잖아. 그래서 전화도 일찍 끊어줬더니 솔직히 말해. 밤에 뭐했어요?"

이번에 태도가 돌변하여 따지며 내게 달려드는 그녀.

"내가 하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푸념섞인 말을 늘어놓자,

"어제 밤에 올려놓은 글이 수북하던데.... 공부 안하고 밤새 글만 썼어요?"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

"아녜요. 예전에 써둔거 그냥 복사해서 올린거예요"

언제나 나를 신문하는 듯한 그녀, 가끔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만큼 매사에 집요함을 보이는 그녀였다. 그래서 가끔은 피곤하다 싶을때도 있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다시 혼자 남겨진 나.

 

오늘도 어김없이 CD Player를 꺼내 귀에 꽂는다.

첫 트랙인 Camel의 Stationary Traveller를 플레이 시키며 플랫폼 반대편을 주시한다.

몇 명의 사람들만 기다릴뿐 종착역이 몇 개 남지 않은 반대편 플랫폼은 거의 텅 비다 시피 했다.

지하철역 플랫폼 천정에 매달린 LED 전광판에서는 연신 광고만 찍어대고 있다. 이따금 친절한 시민이

되자는 표어가 나오기도 했다. 얼마후 전동차가 전 역을 출발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끝없어 보이는 검은 터널 속에서 노란 불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마도 정거장을 향해 서서히 속력을

줄여나가는 모양일게다.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들려오는 전동차의 소리.

 

-25살의 그녀. 어디를 봐도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명문학과, 늘씬한 키, 아무리 봐도 여성스런 자태와 수려와 외모..... 그것이 나를 주눅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틀림없다. 내게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존재. 멀고도 가까운 사람. 그런가 하면 차라리 남일 수 있는......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제 이쯤에서 조용히 정리하고 나로 돌아가고 싶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습관적으로 방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 전원부터 켠다. CPU체크를 하는 비프음이

짧막하게 들려오고 모니터 화면에는 메모리를 테스트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곧 Windows98 화면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부팅이 다 되기가 바쁘게 UNITEL에 접속을 시도한다.

접속이 되자 '유니텔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나를 반긴다. 여느때처럼 나의 홈에 들어가고 어제 남겨진 방명록 목록을 확인한다.

메르헨....... 그래. 그 사람이다. 누군지 모르는 생전 처음 보는 닉네임.

무의식적으로 그 글을 짧막하게 클릭한다.

 

「 안녕하세요?

    우연히 지나다 들르게 되었어요.

    벌써 가을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밤 공기도 제법 차갑구요.

    님 홈이 참 예쁘네요. 글을 참 잘 쓰세요.

    다음에 또 들려도 되죠? 히히~

    애인분과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귀시길 바랄께요.

    예쁜 사랑하세요.

    저는 메르헨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또 올께요. ^^ 」

 

세삼스러울 일도 아닌 지극히 평범 글.

근데 무슨 영문으로 저 글이 온 신경을 긁어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언제나 난생 처음 보는 아이디의 처음 보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글을 남겨놓곤 한다.

메르헨......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영화속의 주인공일까? 아니면 순정만화속의 주인공일까?

순간적인 생각에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띄워 네이버에 접속한다.

그리고 메르헨이라는 세 글자를 검색창에 또박 또박 써놓고 엔터를 강하게 때리며 화면에 나타날

검색 결과에 잔뜩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 메르헨 - 동화(童話) 또는 옛날이야기. 」

짧막한 한줄의 정보.

동화라...... 짧막한 한 줄의 내용을 읽자 김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럼 동화처럼 산다는 뜻일까? 아니면 동화속의 주인공이 되고픈 순수한 마음으로 산다는 의미일까?

온갖 상상이 머리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번엔 그 글의 주인공 아이디를 조회해 본다.

 

「 아이디 : kong-love

    이름    : 고원영

    나이    : 16세

    거주지 : 경기도

    성별    : 여자

    소개    : 비록 당신이 내게 머물지 않아도

                내 영혼은 당신곁을 맴돕니다.

                언제나 당신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그런 나이기를.......                            」

 

16살! 16살이라니.......

16살의 나이에 저런 소개라........

너무 순정만화를 많이 보았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게 아니라면 이미 사랑을 알아버린 나이일까 싶었다.

이 나이에 저런 꼬마의 사사로운 글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퍽이나 우스웠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담배를 뽑아물고 다시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소녈까? 궁금증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때 이미 창밖엔 별들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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