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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이후......괴롭습니다

벗어나야지 |2008.06.06 04:10
조회 978 |추천 0

 

요즘도 많이 생각나네요.

전 20대 후반이고 2년 전에 1번 낙태한 경험이 있어요..

당시엔 죽고 싶었는데 이젠 그냥 지나간 일쯤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래도 그렇게 날 힘들게 한 남자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한...것 같기도 합니다.

잊어야 하는데.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억울함이나 섭섭함, 좋지 못한 기억 모두,

뱃속 생명이 피지도 못하고 지워진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넉두리나 하는 저도 일단 살아있고 건강하니까 이럴 수 있는거잖아요.

누군지 모르지만 제 안에 생겼다가 사라져버린 생명은

얼마나 얼마나, 서러울까요 

...

그 생각만 하면 슬퍼요.

 

미혼모의 집에 들어갈까 알아보기도 했었지만

결국 두렵더라구요.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잘나가는 직장,

안정된 생활 모두 버리고

그런 곳에서 숨어 있는 듯한 생활 하며...친구들, 사람들의 시선에 어떻게 대처하며

애를 낳고나선

그 후에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혼자 어떻게 키울까, 입양 보내버리면 얼마나 눈에 밟힐까..

바보같지만, 좋은 곳에 시집 잘 가서 당당히 인정 받고 사랑 받으며 축복 속에

임신한 제 친구와, 남자한테서 아무 도움 못받고 혼자 고민하는 제 처지가 너무 대조되더라구요.

 

 

정말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모두 버려야만 가능할 것 같았어요.

 

미혼모의 집에 들어가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오는건지...

 

결국 전 무책임하고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해버렸지요..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서

조심하다 보니까

최근에 다른 사람을 사귀고 1번 잘 기회가 있었지만

잘 안됐어요.

관계하려는데 머리 속에 아무 생각도 안나고 아무 느낌도 없고

그냥, 피곤하다...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이 사람을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아닌건가..

고민만 많아져서 헤어졌습니다.

 

요즘은 사귀면 관계 갖는게 당연하단 식으로 생각하고,

그게 사랑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결국...

낙태하게 될 때 알겠더라구요.

날 사랑해서 같이 잔게 아니란거.

같이 자면, 더 사랑하게 될거라는 믿음은

아직 그럴만한 사랑도 뭐도 아니란 것을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구요..

 

사랑했다면 결혼하자고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옆에서 위로해주거나

힘들다고 하면 받아주기라도 할텐데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도 잘 안되더라구요.

 

내가 무슨 발목 잡는 여자인양 그렇게..

술자리는 빠짐 없이 나가면서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순간엔

'바쁘다'..

 

 

그래놓고, 제가 더이상 사귀는 의미가 없어서

헤어지자고 말하니까

온갖 비난을 하더라구요.

이기적이라고.

 

누가 누구더러 이기적이라는건지 더이상 말이 안나와서

수술 전날 밤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술비 통원치료비 내가 내고

수술 후 죽 끓여 먹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하고

회사 다니면서 짬내서 병원 가고, 몸 챙기는거 정말 힘들었는데.

 

그 사람은 전화 몇 통 하는 것도 '위로했다, 지켜봐주는거다,' 생색내더군요.

 

정말 신경 쓰기 싫고 책임질 수 없다면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될 것을,

말은 거꾸로 참 그럴 듯하게 했었어요.

 

'난 널 책임질거다'

 

그 말 뜻은, 애기는 지워 마땅하지만, 여자친구인 너는 계속 만날거다, 라는 의미더군요.

 

그런 남자랑 계속 만나봤자 또 내가 원치 않는 임신해서 또 낙태하거나

나 혼자 삭힐 일만 쌓일 것 같아서

헤어진거고,

지금도 그 때 헤어져서 너무너무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이 글 볼일은 없겠지만,

본다면, 본다면......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네요.

 

낙태에 대해서 당연한 선택이란 식으로 나한테 막말했던거,

나 붙들고 지우자 지우자 설득하다가 결국엔 자기 인생 망치지 말라며 은근히 날 협박했던거,

나보고 이기적이라고 말도 안되는 비난까지 한거...

책임질 생각 추호도 없으면서 말만 그럴 듯하게 주장한거..

결국 그 말 하는 본인도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같더군요.

 

꼭 그 사람이 후회하는 날이 오길 바래요.

언젠가는.

 

훗날 결혼해서 아이를 못갖게 되거나, 뭐 그런 일이라도 생긴다면

조금은 느끼는 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이런 글 쓰면서도

지워진 생명에 대해 내가 당연히 치러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남자에 대한 미움도,

우울함도 모두다.

 

 

 

그냥 우울해서 써봤어요.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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