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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벽기도와 다단계 애터미

남편 |2026.06.04 19:46
조회 138 |추천 0
2023-10-10(화) 잠잘때 죽이고 싶었다 이사 후, 큰 공사는 업체를 통해 마무리했지만 마감이나 디테일한 작업은 내가 퇴근 후 직접 손을 보고 있었다. 이날도 0시 48분까지 주방 레이아웃을 검색하며 아내를 위해 더 나은 공간을 구상했다. 그 후 조용히 안방 화장실에서 씻고 나왔는데, 그 순간 아내가 잠에서 깼다. “나 때문에 잠이 깼겠구나”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아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몇 년 전부터, 당신이 잠잘 때 죽이고 싶었다." 감정이 과한 건지, 아니면 정말 마음에 담고 있던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주는 무게는 너무나도 컸다. 나는 그냥 씻고 나왔을 뿐인데, 돌아온 건 '죽이고 싶었다'는 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지쳐도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올 수 있구나 싶었다. 그 한 문장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내가 뭘 위해 애쓰고 있는 건지,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
2023-10-19(목) 아로마 디퓨저 사용 도테라 아로마 향이 집 안을 감싸기만 하면 내 코가 반응했다. 몇 번이고 아내에게 냄새가 싫다고 여러번 말했었다. 그리고 바르는건 괜찮고 디퓨저로 뿌리는 거는 안된다고 서로 합의했던 거였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그 향이 공기 중에 퍼져 있었다. 아내는 또다시 약속을 어겼다. 아내에게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말이 돌고 돌아 또 한 번의 마찰로 이어졌다. 이런 반복에 지친다. 어떤 약속이든, 결국은 본인의 필요와 감정만 우선인 태도. 그리고 나는 그 상황을 다시 설명하고 또 감내해야 한다. 디퓨저 하나에도 관계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건 단순한 향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존중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2023-10-22(일) 아내의 스트레스 패턴 오늘도 익숙한 흐름이었다. 아내는 집안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어느 순간 조용히 외출했다. 특별한 약속도, 준비도 없는 외출. 그건 늘 그래왔다. 아내 기준에서 육아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으면 잠깐이라도 도망치듯 집을 나선다. 10분, 길으면 30분. 그렇게 밖에 다녀온 아내는 거실에 앉아 찬송가를 튼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곧 노래방이 된 듯 열창이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반복. 밖에 나갔다가, 찬송가 듣고, 열창하고. 나로선 이해가 안 되진 않는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니까.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느껴지는 건, 뭔가 근본적인 게 해결되지 못한 채 계속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결국 가정 안에서,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럽고, 아내의 작은 표정 변화나 말투에도 민감해진다. 이 패턴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멈출 수는 있을까.
2023-10-22(일) 아내는 늘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다닌다. 이사 이후, 집 안 디테일 공사를 도맡아 하며 매일이 고단했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대신 퇴근 후 시간을 쪼개가며 벽 하나, 몰딩 하나 직접 손봤다. 그렇게 고치고, 붙이고, 다듬으면서 조금씩 집이 제 모습을 갖춰갔다. 오늘 아침 10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갔다. 나는 평소처럼 작업복을 입고 집 안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15시쯤 아내가 잠깐 집에 들렀다가, 16시 50분엔 처가로 향했다. 걸어서 고작 5분 거리, 그 정도는 아이들과 함께 다녀도 될 거리였다. 그러다 17시 6분, 전화 한 통이 왔다. "셋째가 소변 봤으니 집으로 데려가서 씻기고 옷 갈아입혀줘. 나 교회 다시 가야 돼." 목소리엔 급함도, 미안함도 없었다. 그리고 18시 12분, 아내는 다시 교회에서 돌아왔다. 처음엔 사정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일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은 자유롭게 다니며 챙기고, 정작 아이들 돌보는 일이나 귀찮은 일들은 늘 나나 주변 사람들에게 맡긴다. 처가 식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결혼을 했을까. 직접 키우지도 못하면서 왜 아이를 낳은 걸까. 가족이라면 함께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무엇보다, 그 책임에서 계속 빠져나가려는 모습에 지치고 외로워진다. 함께 만들어가야 할 가정이, 어느 순간 혼자 감당해야 할 짐처럼 느껴진다.
2023-10-23(월) 새벽기도 이날부터 아내는 일주일 중 월, 수, 목요일이면 새벽 5시경 새벽기도를 가기 시작했다. 밖은 아직 어둡고, 아이들은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누군가가 집을 나선다는 건 적잖은 결심이 필요했을 텐데,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다녀왔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내에게 새벽기도는 일종의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기도할 정도로 힘든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새벽에 기도하고 온 아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과 나를 향한 태도나 말투가 바뀌지 않는 걸 보면 그 기도가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기도는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그 기도가 따뜻한 온기로 스며들었으면 했다. 믿음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과도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2023-10-25(수) 금팔아서 대출 갚으려할때 당시 금값은 정점을 찍고 있었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대출금을 줄이려 마음먹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금을 안방에서 조용히 꺼내어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들 돌잔치 때 받았던 금은 아이들이 결혼할 때 줄 요량으로 따로 두고, 나머지 내가 모아온 금만 정리했다. 그때 아내가 방으로 들어와 뭐하냐고 물었다. "금 팔아서 대출 갚을 생각이야. 당신 것도 좀 팔아도 될까?" 그러자 아내는 “나는 착용하고 다닐 거니까 내 건 줘”라며 가져갔다. 나는 말없이 아내의 금을 모두 건넸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꾹꾹 눌러 담은 눈물을 머금고, 우리가 짊어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있었는데 아내는 그 순간조차 자신의 것을 챙겼다. 다음 날, 아내에게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죽을 때까지 차고 다닐 거야.” 차라리 조용히 자기 금만 가져갔다면 덜했을 텐데, 굳이 이런 메시지까지 보내서 내 마음에 못을 박는 짓을 해야 했을까. 내가 왜 그 자리에 앉아 금을 정리하고 있었는지, 왜 그것들을 내려놓고 있었는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그렇게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정을 위해 감내하는 희생은 누구 하나만이 짊어져서는 안 되는 무게다. 함께 짊어지고, 함께 덜어내야 비로소 그 짐이 덜 무겁게 느껴질 텐데… 그날따라 유난히, 혼자인 듯한 외로움이 깊었다.
2023-10-28(토) 아내의 폭언 아침 9시경, 셋째가 팬티에 대변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뛰어내리고 싶네”, “도망가고 싶네”라며 강한 짜증을 토했다. 그 말 속엔 현실에 대한 깊은 피로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10시경, 아이들이 라면을 달라고 하자 아내는 갑자기 감정을 폭발시켰다. “맨날 라면만 먹어서 아프지. 몸에 안 좋은 거 언제까지 먹나 보자. 엄마 죽으면 너희들 때문인 줄 알아. 너희는 결혼하지 마, 여기 가정 환경이 아주 드러워. 아동학대로 신고해. 너도 참, 살고 싶지 않겠다.” 그 말은 아이들뿐 아니라 내게도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혔다. 한때, 나는 아내에게 아이들의 라면 섭취를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내에게 “애들이 라면 너무 자주 먹는 거 아니야?” 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애들이 먹고 싶다잖아, 사”라며 단호했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고, 라면은 늘 떨어지지 않게 박스채로 쌓여있었다. 특히 '금쪽이' 출연이후 오은영박사님 말대로 가계를 아내에게 넘겼고 이후 아내는 생필품을 대량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후 라면 종류도 다양해져 아이들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와서 그 책임을 아이들과 나에게 폭언으로 쏟아붓는 모습은, 어쩌면 자기 내면의 불안과 후회를 감당하지 못한 결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엄마 죽으면 너희 때문인 줄 알아”라는 말은 아이들 마음에 남을 상처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부모로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어디까지 견뎌야 하는지 깊은 무력감과 함께 묵직한 책임감이 어깨 위에 내려앉는 걸 느꼈다.
2023-11월의 어느날 신축아파트로 이사가자 결혼 이후 우리는 몇 번의 이사를 거듭하며 전세집을 전전했다. 아이가 생기고, 짐이 늘고, 공간이 좁아질 때마다 새로운 집을 찾아 떠돌 듯 살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두 달 전, 아내가 원하던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신축 아파트는 가격 부담으로 선택지에서 제외되었고, 결국 처가와 같은 단지인 20년가량 된 구축 아파트를 매수하게 되었다. 이사 전에는 큰 공사를 전문 업체에 맡겨 기본 골격을 잡았고, 이사 이후부터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매일 퇴근 후 혼자서 시공을 이어갔고 마무리가 가까워졌을 때쯤엔 온몸이 피곤했지만 마음 만큼은 흐뭇했다. “이 집은 우리 가족이 앞으로 10년 이상 살아갈 공간이다.” “이번 한 번만 더 고생하면, 더는 집 문제로 힘든 일은 없을 거야.” 노동이 아니라 내 가족의 공간을 직접 가꾸는 일이고 아이들이 넓은 곳에서 놀고, 각자의 방에서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내 역할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시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던 11월의 저녁, 아내는 무심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우리도 신축 아파트로 이사가자.” 말 한마디에 담긴 가벼움은 내 노력의 무게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마치 지금의 집이 어딘가 모자라고, 더 나은 것을 찾아야만 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내가 이 집에 들인 시간과 노력, 비용과 수고는 아내의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지인이 새 집으로 이사 간다는 얘기를 들은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아내는 내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내에게 격려나 이해, 공감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기대를 품으면 오히려 내가 더 상처받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아내에게 바라는건 그저 아무 말 없이 있어주는 것,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조용한 배려조차 건너뛰었다. 내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마치 내가 쓸데없는 일에 혼자 애쓰고 있다는 듯한 말투와 태도로 되돌아왔다. 그 반응은 결국 내게 하나의 질문만을 남겼다. “내가 정말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를 이해해줄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이 서글프게 다가왔고, 이 집을 꾸미면서 다친 손끝에 남은 상처보다 마음속에 남은 흔적이 훨씬 더 깊고 아팠다. 지금 내가 꾸미고 있는 건 집이 아니라, 혼자만의 허상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2023-11-05(일) 아내의 폭력 오후 4시경, 셋째가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가 셋째의 머리를 손으로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아내의 손가락이 부었지만, 아이의 머리는 괜찮은지, 걱정이 됐다. 같은 날 저녁 8시 40분경, 둘째가 셋째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장면을 본 아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둘째를 안방으로 밀쳤다. 그 힘에 둘째는 날아가듯 바닥에 떨어졌고, 겁에 질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엔 아픔뿐 아니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날의 장면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작은 집 안에서, 감정과 폭력이 오가는 현실. 어른의 화가 아이에게 전해지고, 다시 그 아이가 다른 동생에게 분풀이하듯 행동하는 모습은 마치 감정의 폭력이 되물림되고 있는 듯했다. 가정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울타리여야 하는데 지금 우리 집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기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고,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다. 아내에게 화를 내는 것도, 방어하는 것도, 말리는 것도 모두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장면으로 남을까 두려워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내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시렸다.
2023-11-14(화) 아이들과 새벽기도 05:00경, 아내와 첫째가 새벽기도에 나갔다. 한참 자랄 나이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새벽부터 교회에 데려간 그 선택이 먼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새벽기도 가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한참 자라야 할 나이에 새벽부터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지금은 잠도 충분히 자고, 학교생활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 시기다. 하지만 아내는, 매주 화요일마다 '전도특공대'에 꼭 가야겠다고 했다. 그 말에는 이미 나와의 대화나 아이들의 상황은 고려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 같았다. 한 집에서 같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면서도 아내는 육아와 가정보다는, 자신의 신앙 활동과 감정 해소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애들을 돌볼 시기이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 둘 다 중심을 잡아야 할 때인데 아내는 그 중심을 계속해서 자신의 바람과 의지에만 두고 있는 것 같아 몹시 미웠다. 신앙보다도 아이의 잠이, 몸이, 일상이 더 중요하다는 내 말은 오늘도 공기처럼 흘러가 버렸다.
2023-11-19(일) 아내가 성가대 간 이후 나도 휴일에 외출 함 아침 10시경, 아내와 아이들은 평소처럼 교회에 갔다. 12시 40분쯤, 아내는 첫째와 둘째를 친정에 맡기고 셋째를 나에게 맡긴 채, 밝은 얼굴로 성가대에 가겠다고 말했다. 무언가에 들뜬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이를 나에게 맡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이 오래도록 눈앞에 남았다. 셋째가 원하는 대로 나는 셋째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아내가 성가대에 있다는 메시지를 카톡으로 확인한 뒤, 그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말들을 글로 적어 보냈다. “평소에도 이야기했지만, 학교나 학원에 아이들이 있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을 해. 하지만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시간(평일 저녁, 주말, 휴일)에는 애들 돌봐 줘. 자기는 그 시간마저도 당신은 하고 싶은 성가대를 가겠다고 아이들을 나나 친정에 맡기고 떠나는 모습이 싫어. 아이가 좋아서 셋이나 낳았다면 책임을 져야지. 아이를 돌봐야 할 시간에도 당신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못하게 되면 그 스트레스를 아이들과 나에게 화내고 폭언하고 폭행하며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 다시금 질려버려.  앞으로는 당신처럼 나도 아이들 돌볼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외출할 거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언젠가 후회할 걸 알지만…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보면 화가 나고, 아이들 앞에서 당신과 싸우는 모습 보여주기도 싫어서라도 그냥 외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 후에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이 양육은 분명 ‘우리 둘’의 책임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내에게 아이들은 마치 피하고 싶은 짐처럼 느껴지는 듯한 순간들이 많아,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씁쓸하게 일렁였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는 건 이해가지만 그럴거면 왜 아이를 낳았을까 하는 질문이 늘 마음속에 남았다. 책임을 나누지 않으려는 태도, 힘든 순간마다 짐을 떠넘기고 도망치듯 행동하는 모습은 결국 아이들에게도 상처로 남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수록 가슴은 더 무거워졌다. 나는 그저 우리 가정이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가길 바랄 뿐이었지만, 아내의 반복되는 모습에 나 또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2023-11-20(월)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 명은 없었을 거야 어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를 시작하려던 월요일. 그런데 아내가 내게, 믿기 어려운 말을 꺼냈다. “(내가) 교회를 안 다녔으면,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 명은 없었을 거야.” 그 말은 칼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어디서부터 이 관계가 이토록 망가졌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영혼이라도 깨끗해지고 싶어서 교회를 다닌다고 했다. 교회라는 신념이, 우리 사이의 마지막 얇은 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실마리마저 끊어졌다면, 정말 서로를 향해 감정의 끝을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순간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단 허탈했다. 그런 말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게 참담했다. 그 말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지금 아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또 얼마나 내게 쌓인 감정이 깊은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말을 내뱉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023-11-27(월) 아내의 폭행 저녁 7시 40분경, 평소와 다르지 않게 하루가 흘러가고 있던 시간. 셋째가 팬티에 똥을 쌌고, 그 일에 아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주먹으로 두 대를 때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 소화 안 돼. 토할 것 같아. 오독오독 씹어먹어도 분이 안 풀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토할 것 같다는 말보다, 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잔인했다. ‘오독오독 씹어먹는다’는 말은 더 이상 일상적인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폭주처럼 느껴졌다. 셋째는 아직 어리고, 대소변을 완벽히 조절하지 못할 수도 있는 나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때리고, 감정의 분출구로 삼는 모습은… 부모로서,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마음 아팠던 건, 아이가 왜 맞는지조차 모르는 듯 멍하니 서 있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 그날 밤, 내 마음도 조용히 부서졌다. 이 집의 공기가 무거웠고, 나는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했는지를 또다시 묻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두려워졌다. 앞으로 이 집에서 벌어질 일들이.
2023-11-28(화) 아이들과 새벽기도 – 누구를 위한 신앙인가 새벽 5시경, 아내는 둘째를 데리고 새벽기도에 나갔다. 며칠 전에도 첫째를 데려가더니, 이번엔 둘째였다. 나는 아내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당신이 새벽기도를 가는 건 괜찮아. 하지만 아이들은 한참 자라야 할 나이야. 지금은 수면이 가장 중요할 시기인데, 왜 자꾸 데리고 가는 거야.” 아이들이 성장기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건 몸과 마음에 모두 악영향을 끼친다. 믿음이야 좋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건강과 발달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아내는 이해하려는 태도보다는, ‘왜 내 믿음을 방해하느냐’는 식으로 반응하곤 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무거웠던 건, 아이들이 진짜로 원해서 새벽부터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좋아하는 걸 따라야 한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새벽기도에서 돌아온 둘째는 졸린 눈으로 아침을 맞았고,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믿음도, 성장도, 모두 지켜주고 싶은데 왜 이렇게 둘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어렵기만 한 걸까. 
2023-12-06(수) 아내의 폭행 20:20경, 셋째가 팬티에 실수로 똥을 쌌다. 아내는 화가 나서 셋째를 네 번이나 때렸다. 아이의 실수에 대한 폭력적인 반응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런 모습이 반복되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2023-12-11(월) 아내의 폭행과 폭언 셋째가 팬티에 실수로 똥을 쌌다. 아내는 화가 치밀어 셋째의 목을 조르며 폭행했고, "니 죽고 나 죽자, 날 정신병원에 넣어줘, 정말 살고 싶지 않다"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 순간, 참담하고 무서운 감정이 밀려왔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심각한 폭력과 절망의 말들이 마음 깊이 아팠다.
2023-12-12 다단계 애터미 회원증과 아내의 집착

 

 

 

 

 

 

 

 

 과거 아내가 도테라라는 다단계에 빠져 우리 관계가 어긋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사 후 새 교회에 다니면서 또다시 다단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알게 된 건 여기저기서 애터미 제품이 눈에 띄고, 아내의 애터미 회원증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아내는 애터미를 알게 된 경위를 새 교회에서 만났다고 말하며, 그 후 우리 집 생필품은 도테라에서 애터미로 바뀌었다. 아내는 유튜브로 애터미 관련 영상을 보고, 나에게도 카톡으로 관련 경로를 보냈다. 나는 다단계 자체를 싫어했고, 애터미 제품 또한 저렴하지 않다 생각했기에 꺼렸지만, 아내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영상을 보내왔다. 다단계라고 하면 보험도 다단계라며 합리화를 했고, 보험은 1단계로 끝나지만 다단계는 여러 단계로 나눠먹는 거라 말하면 짜증을 내며 말을 멈추고 무시했다. 보통 사람은 상대가 강하게 싫어하면 하지 않거나 숨어서 하는게 정상인데, 아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아내는 언제나 충동적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점점 마음은 무거워지고, 아내가 내 뜻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서운함과 답답함이 깊어졌다. 2023-12-12(화) 아이들과 새벽기도 04:40경, 아내와 첫째, 둘째가 새벽기도에 갔다가 05:50경 집에 돌아왔다. 나는 다시 한번 아내에게 말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당신이 새벽기도 가는 건 괜찮지만, 한참 클 나이에 아이들은 새벽기도에 데려가지 말아 줘.” 아이가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에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컸기에, 아내가 아이들을 새벽기도에 데려가는 모습이 걱정되고 안타까웠다. 내 마음은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가 더 소중하다는 간절한 바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2023-12-19(화) 아내의 폭행 21시 20분경, 퇴근 후 집에 들어섰다.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셋째가 팬티에 똥을 두 번 쌌다며, 그래서 크게 때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무거운 돌덩이가 가라앉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나는 속으로 수백 번 떠올렸던 말을 또다시 삼켰다. “당신이 계속 팬티에 똥쌌다고 때리니까 아이가 더 불안해서 그러는 거야.” 말하고 싶었지만, 그 한마디가 또다시 큰 싸움으로 번질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아이들이 보게 될까봐, 나는 오늘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2023-12-25(월) 새벽기도 09시 50분경, 아내는 아이들을 집에 홀로 둔 채 교회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우선하는 그 모습이 너무 미웠다. 나도 결국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왔다. 20시 30분경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아이들에게 내일 새벽기도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가 뜨겁게 치밀어 올랐다. 아이들을 돌보는 책임보다 자신의 일정이 먼저인 듯한 태도가, 또다시 내 마음을 후벼팠다. 그날 밤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아도 아이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서로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우리 가족의 현실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내 자리 한켠엔 늘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무너져가는 관계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
2023-12-26(화) 새벽기도 04:45경 아내가 새벽기도를 간다며 집을 나섰고, 05:45경 집에 돌아왔다. 전날 새벽기도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가슴 한켠이 무겁고, 아내와의 거리감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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