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을 더 보내달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임유관(臨楡關) 근처에 위치한 병참부대의 진지에서는 한왕(漢王) 양량(楊諒)이 보낸 전령이 도착해 진왕(晉王) 양광(楊廣)의 군막에 들어가 있었다. 화살이 모자라다는 전령의 말에 양광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전령이 바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우복야(右僕射) 양소(楊蘇)가 재촉하듯 물었다.
"소상히 말해 보거라. 가지고 간 화살들은 다 어쩌고 벌써 화살을 보총해 달라는 것이야?"
"예, 전하. 사흘 전에 영주로 들어가는 계곡을 통과하던 중 적의 매복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받은 공격인지라 전투 중에 화살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양광이 전령의 보고를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허허... 이런, 그곳은 아군의 관할 지역이 아니더냐?"
"예, 전하. 그렇기는 하지만 성과 성 사이가 워낙 길게 떨어져 있어서 적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잠입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계곡에서 아군의 전사자가 얼마나 나왔더냐?"
"다행히 선두에 있던 기병 기백명에 불과합니다."
양소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매복 공격에 전사자가 겨우 기백뿐이라...? 그런데 그 많던 화살은 다 동이 났다? 그렇다면 한왕 전하는 영주성으로 언제 가셨느냐?"
"다음 날 아침입니다."
"역시 그 계곡을 지났느냐?"
"아니옵니다. 다른 길로 우회했사옵니다."
양소가 심각한 표정으로 양광에게 말했다.
"전하, 뭔가 함정이 있사옵니다. 적의 배후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큰 병력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분명 소수의 인원이 잠입해 들어와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벌여 아군의 화살을 취한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요? 혹시 돌궐족(突厥族)이 국경을 넘었을 수도 있지 않소?"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돌궐은 지금 그런 형편도 아닐 뿐더러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돌궐이 대규모의 병력으로 국경을 넘는다면 아군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고구려의 유격군입니다."
양소의 설명을 듣고 양광이 혀를 찼다.
"그렇겠군. 허, 어떤 놈들인지 담도 크다. 감히 영주성의 배후를 치다니... 아니, 아우는 그렇게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도 그놈들 하나 잡지 못했단 말인가?"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저들은 고작 1만의 군사를 데리고 급하게 요하까지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뒤를 받쳐줄 병참선이 있을 리 없지요. 헌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살은 절박하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엄청난 모험을 할 리가 없지요."
양소가 잠시 말을 멈추고 양광을 주시했다. 양광은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입을 벌렸다.
"그렇군. 놈들은 영주성을 치겠다고 군사를 일으켰지만 애초에 영주성은 관심도 없었어. 요하나 요택에서 최종전을 벌이려고 할 게야."
"바로 보셨사옵니다. 어디 한군데 결정적 진을 치고 공격이나 방어를 하겠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고구려에 전략이 뛰어난 누군가가 있어서 뭔가 큰 갓을 노리는 듯 하옵니다."
"그렇다면 군사(軍師)로 따라간 좌복야는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전령은 지금 즉시 돌아가 한왕에게 전해라. 물론 화살은 보내 줄 것이다. 즉각 진공을 멈추고 적정을 살피라 하라. 뭔가 적의 흉계가 있다. 함정이 있다고 말이다. 알겠느냐? 속히 가라!"
"예, 전하!"
전령이 군례를 마치고 군막을 떠나자 양광은 양소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린아이를 전장에 내보내신 부황께서 더 문제가 크신 것 아니겠소? 이거 아무래도 아우가 혼 좀 날 것 같소이다. 너무 철이 없어서 말이오."
양광이 주력부대의 진격을 멈추라는 말을 전하며 전령을 돌려보내는 사이 이미 양량의 군대는 요하 강변에 도착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강 곳곳에는 이미 조의들이 기름을 먹인 섶단을 수없이 깔아놓아 불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수나라 군사들이 고구려군 본진으로 돌격할 만한 길목에는 목책을 세워 놓았으며, 적군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언덕에 발석기(發石器)를 설치하여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이같은 작전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는 양량은 강 건너 고구려군의 진영을 보면서 심호홉을 했다.
"요하 건너편에 고구려군이 진을 벌려 놓았군."
"전하, 저기 보시옵소서. 고구려왕의 깃발입니다."
왕세적이 손을 들어 고구려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량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렇군. 내 반드시 고구려왕을 사로잡아 장안으로 끌고 가서 부황 앞에 무릎을 꿇리고 말 것이다."
"전하, 무언가 이상합니다."
고경의 말에 양량은 눈썹을 찌푸렸다.
"또 뭐가 이상하다는 거요?"
"저 강 얼음 곳곳에 불 붙은 섶단을 보시옵소서. 분명 무슨 계략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 놈들은 강 얼음을 녹여 우리의 도하(渡河)을 막던지, 아니면 우리가 강을 건너는 동안 얼음을 깨뜨려 아군을 몰살할 계획을 세우는 듯 합니다. 강을 건너는 것을 잠시 보류하시고 적정을 살피시오소서."
"이런 한심한...! 저 두껍게 얼어붙은 강을 어떻게 녹이거나 깨뜨린단 말이오?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왕 총관은 뭘 하는가? 어서 군사들에게 강을 건너하고 해!"
"예, 전하!"
양량의 외침에 왕세적은 바로 답하고 군사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전군, 진격하라! 강을 건너 고구려군을 쓸어버려라!"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韋沖)을 선두로 수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얼어붙은 강으로 달려들었다. 무려 8만에 이르는 수나라의 대군은 강을 새까맣게 덮은 채 고구려군의 진영으로 몰려나갔다. 강 중간에는 여전히 불길이 치솟고 있었으며, 용수(庸秀)가 이끄는 조의군(皁衣軍)과 아소친(牙素親), 아예신(牙譽申) 부녀(父女)가 거느린 속말말갈족(粟末靺鞨族) 전사들이 첫번째 방어선인 목책에 몸을 의지하며 적군을 맞을 준비를 했다.
"폐하, 적이 사정권 안에 들어왔습니다. 공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삼군대장군(三軍大將軍)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영양태왕(嬰陽太王)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하라! 궁병은 적군을 맞아 활을 쏘아라!"
영양태왕이 지휘봉을 높이 쳐들며 외치자 장수들이 각자 위치로 이동하여 군사들을 독려했다.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있는 대로 화살을 다 퍼부어라!"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첫번째 방어선에 배치된 조의군과 말갈족 병사들이 먼저 가까이 다가오는 수나라 군사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물결처럼 밀려오던 수나라 군사들이 화살 세례를 받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들은 수적 우세를 믿고 비오듯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계속 달려들고 있었다.
"겁먹지 마라! 어떻게든 강을 건너야 한다. 계속 진격하라!"
위충이 크게 외치며 군사들을 몰아댔다. 수나라 군사들은 자군의 시체를 밟으며 계속 목책으로 달려나갔다.
"전하, 놈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전투 상황을 지켜보던 왕세적이 말하자 양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련하겠는가? 제 놈들의 국경이 무너지고 있는데 말일세.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단숨에 강을 건너야 한다. 계속 돌격하라고 해!"
"예, 전하! 계속 돌격하라!"
왕세적의 고함과 더불어 빠른 템포의 북소리가 진군을 재촉했다. 양량은 긴장된 모습으로 드넓은 전선을 바라보았다. 넓은 전선에 마치 바다와 같은 강폭에서는 양보 없는 접전이 계속 이어졌다. 곳곳의 엄폐물에 기댄 채 활을 쏘는 여말연합군(麗靺聯合軍)의 저항에 의해 이미 수군(隨軍)의 시체가 삽시간에 얼음 벌판을 뒤덮었다. 수나라 군사들이 주춤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위충이 장검(長劍)을 공중에 내지르며 외쳤다.
"좌우 기병대는 무얼 하느냐? 먼저 길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을 돌파하라! 목책을 무너뜨려라!"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김병호 著「고구려를 위하여」하서출판사編(1998년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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