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수능을마친밤..
어제밤은 정말 잠을이루기가 힘들었습니다.
책 한권을읽느라 밤을 지샌것도, 기도하느라 밤을 지샌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쉬움... 미안함.... 그것이었습니다.
어제는 수능시험있던날, 교우의 아이들들과 나의 아이가 시험을 치룬 날,
수능 전날밤에 아이를 일찍 재우려 했습니다. 아이방에 들러서 기도해주었습니다.
"담대하거라, 편하게 생각하거라, 해오던대로 하면 된단다...' 그렇게 말하고 아이의 방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이제와서... 웬, 아쉬움이 이리도 밀려오는걸까!.."
그 후에도 아들방에서는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밤 12시, 1시, 2시,.. 제가 새벽설교를 홈피에 올리고서도 그 소리는 계속 ... 그렇게 들려왔습니다. '아들을 편하게 재울 수있었음..' 하는 마음이 그렇게도 많이 들었습니다.
잠이라면 넘버완!인 녀석도 수능앞에서는 떨고 있었나 봅니다.
27년전, 대입시험을 치루던 추운 겨울아침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때의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오늘... 나는, 우리는 그 유산(!?)을 나의,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큰 짐으로 물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슬픔마저 밀려들었습니다.
아침에 새벽기도를 다녀왔습니다.
밤새 뒤척인 흔적이 영력했던 아들, 우린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빠, 오늘만 좀 태워주실 수 있나요?..."
평소에는, 힘들까봐 가끔씩 태워주겠다 했을 때, 언제나 '전 괜찮아요 새벽기도다녀오셔서 피곤하실 텐데요.. 오히려 불편해요' 하며 오히려 나를 배려(?)해주던, 그리고 재빠르게 가방을 걸쳐메고 집을 나서던 아들,
오늘은... 그만큼 떨렸었나 봅니다.
A4 용지에 <수험생>이란 글씨를 써서 차 앞뒤에 붙였습니다. '수험생'이란 세 글자를 쓰는동안 제맘속에서 그 어떤(?) '자랑스러움'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장원급제'라고 쓰는듯...
시험장소, '부광고'로 향했습니다. 아침시간인지라 무려 40분이나(!) 걸렸습니다.
백밀러로 힐끔 힐끔 아들을 훔쳐보았습니다. 불안해 하는듯..
문집사님 딸, 또다른 수험생 원경이와 전화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너 떨리지?... " , " 잘보자" 뚝! .... 요즘아이들은 그렇게 간단(?)합니다. 그렇게 서로 서로 위로를 나누었습니다.
학교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 평안을 주옵소서. 실수하지 않게 곁에서 붙드시며 배운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목사가 아닌, 한 아버지의 기도였습니다.
아들을 학교정문, 고사장으로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이 때, 웬걸요,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 했습니다...
1985년,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드리던 '그때, 그날 아침'이 생각났습니다. 눈물나게 기쁘고 감사했던... 그리고 19년이 지난 오늘... 또 다른 감사가 제 안에서 그토록 강렬하게 솟구쳤던 것입니다. <그저 자랑스러웠습니다!> 단 한가지, <수능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된 아들>이 자랑스러웠던 것입니다. '내 아이가 벌써 수능을?!' 그것은 그만큼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기도 했을 터이지만.. 지금은 그저., '자란 아들'이 보기에 좋았을 뿐입니다.
아들이 저만큼 고사장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자랑스런 마음 다음으로 또 다른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아쉬움!" 이었습니다.
아들이 언젠가 말했습니다. 혼잣말로 말했습니다.
"1,2학년때 좀만 더 잘했으면, 수시로 넣었을텐데.."
아이의 그 말이 왜 지금와서 이리도 귓전에 크게 들려오는지요...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아들아!..."
그랫습니다. 자란 아들을 보며,
<자랑스러움위에 아쉬움이 덧입혀졌고 또 그 위에 미안함이 덧칠해졌습니다!>
-지난 한 두해는 저에게 너무나(!) 많이 버거웠던 시절였습니다...-
돌아서는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미안함" 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또다른(!) 아버지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을 대입시험 치뤄봐야 비로소 부모심정이란 것을 안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돌아와서 하루종일 세 아이(원경,지혜,예찬)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수요설교준비를 했습니다.
저녁에 아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좀처럼 하지않던 일이었습니다.
시험을 치루고 나오는 수많은 아이들, 어떤 아이는 웃고, 또 어떤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담배를 연실 빨아대는 재수생 아이들...
다시한번 어떤 절망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 나라에 교육혁명은 언제나 오려나!> ...
30대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이땅을 따나려함에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하듯...
시험을 치룬 아들을 보았습니다.
"왜 오셨어요? 오늘 수요일 아니예요?" 목사의 아들 아니랄까봐서... 그만큼 깊이 심어져버린(!) 종교적 인사..(?)
시험 잘봤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제와서 어쩌란 말입니까!^^ 되물릴것도, 내일 다시 치를 것도 아닌데.. 그저 꼭 껴안았습니다. ..
돌아오는 차속에서 아들은 아무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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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느낌으로 알았습니다.
그 때, 제안의 아쉬움과 미안함은....
우리는 아무말없이 조용히 집으로 왔습니다. 아들은 오자마자 누워버렸습니다.
저는 수요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향했습니다.
평상시처럼 수요예배를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편두통이었어요!" 아,,,,
고3 들어와서 자주 찾아든 그 편두통, 그 불청객은 한 번 찾아오면,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하게 할만큼, 아들을 극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그놈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2교시 이후부터 아들은 그렇게.. 극심한 편두통과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아들은 3학년에 와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성적도 많이 올랐습니다. 자신감도 생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대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시험지, 읽혀지지않는 문제, .... 당황함....'
아, ....
그때부터 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놀랐을까...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투를 벌이듯 했겠지요.."
-그 때쯤에 저는 어떤 세력(!)과 너무도 힘겨운 싸움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아들은 필사적으로 답안지를 채워갔던 것입니다!
생각보다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상심하기도 했습니다.
저역시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 .... ...
그러나 그 힘든 가운데서도 끝까지 마친 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오늘밤은 아들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아빠, 걱정마세요. 뒤엣것만 빼면 나머지는 예상했던 대로예요!"
아들이 고맙습니다!
기도해주신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들이 끝까지 시험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의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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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덕집사님, 이상해 집사님, 저의 마음과 같으셨죠?
그동안 아이들이 안됐고, 더 잘해주지 못함이 아쉽고, 그래서 미안하고...
우린 그렇게 '부모맘 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원경아, 지혜야, 예찬아,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다. 스무해를 산 너흰 자랑스러운 자들이니라!
논술, 면접까지 힘차게! 임해주길 기도한다.
이 땅의 수험생과 부모들이여, 우린 그렇게 올해도 홍역(?)을 치룬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아이들에게 끝까지 은총을 베푸소서! 또한 위의 기록된 이들을 기억하셔서 복주소서!"
www.hymang.org 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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