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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문

김명수 |2003.11.27 09:59
조회 393 |추천 0

작성자 : 이위재 조선일보 기자   한국의 명문 '한국의 명문'이란 책이 있습니다. 월간조선 별책부록을 단행본으로 다시 펴낸 것으로, 각계 각층 인사 100여명이 뽑은 '정말 잘 쓴 글'을 모아놓았습니다.

시, 소설, 수필, 연설문 등이 골고루 들어있고, 이어령 전 장관이 명문장론을 근사하게 설파했습니다. (긴 글은 일부 구절만)

명문이란 무엇입니까.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 소장은 “좋은 글이란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글 자체도 정확하고 분명해야 한다. 글의 장르나 대상 주제에 따라 문장 스타일은 달라질 수 있어도 기본은 마 찬가지일 것이다. 읽는 대상, 시대, 장소에 맞춰 적확한 힘과 어휘를 구사한 글이 좋은 글이며 글에 리듬이 있으면 더욱 좋다. 꾸준하게 좋은 글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쓸데없이 힘이 들어갈 땐 같은 분이라도 글이 떨 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는 “문장이 문법에 맞게 완벽하고 어휘 사용이 적확하고, 여기에 내용이 좋아야 하며 글쓴이의 혼(魂)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요약합니다. 미문이라고 해서 전부 명문이 될 수 없는 것이, 간혹 유려한 문장을 읽으면서도 어딘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글에 깊이가 없고 혼이 스며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 책의 논지입니다.

명문 추천을 받은 결과, 시인 조지훈 글이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서정주(9명), 종교가 함석헌, 독립운동가 김구, 시인 윤동주, 철학자 박종홍, 소설가 이효석, 시인 이상이 각각 6명. 수필가 피천득, 한국학 개척자 최남선이 5명으로 다음이었습니다.

단일 작품으로 보면, 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6명 추천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최남선 ‘기미독립선언서’ 5명, 조지훈 ‘지조론’, 김구 ‘나의 소원’, 김성우 ‘돌아가는 배’는 4명이 골랐습니다.

김성우 한국일보 논설고문이 1999년에 펴낸 책 ‘돌아가는 배’는 노재봉 전 총리가 “이 책 전체 문장이 전부 명문”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사극 작가이자 동해대 연극영화과 신봉승 교수는 “한국어로 이렇게 아름다운 최고의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감동적이었다”며 “글의 시작 처음부터 10페이지 정도까지는 너무 압권이어서 그 어느 부분을 발췌해도 모두 명문(名文)”이라고 격찬합니다.

“…..나는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항하리라. 젊은 시절 수천 개의 돛대를 세우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늙어 구 명보트에 구조되어 남몰래 닿더라도 귀향하리라. 어릴 때 황홀하게 바라보 던 만선의 귀선, 색색의 깃발을 날리며 꽹과리를 두들겨대던 그 칭칭이 소리 없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빈 배에 내 생애의 그림자를 달빛처럼 싣고 돌아가리라…..” (돌아가는 배)

교과서에 실린 민태원의 ‘청춘예찬’도 지지를 받는 글입니다. “…..청춘 !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있다 .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 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시인 신현림씨는 '죽음의 한 연구(박상륭)'를 펴고 아무 곳이나 읽을 때마다 이런 감정이 든다고 했다.
“껄쩍하니 술에 취한 듯, 계곡물처럼 콸콸 흐르는 듯 시적인 문체로, 뿌리 깊은 우리 언어의 육체를 보여주되 육체가 정신과 도저히 분리될 수 없이 옥박해 오니, 숨결로, 혼으로 나의 마음을 휘감아오니 오늘 내가 땅에 발을 처박고 한 그루 불두화로 피어나 생명으로 태어남을 감사하며 펑펑 울고 싶구나.”

작고한 소설가 최명희 ‘혼불’은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을 새긴’ 각고의 산물이어서, 그 어디를 펼치든 그윽하고 청아하고 유려하고 심장한 글월이 아닌 것이 없다. 특히 제3권 115~116쪽 대목은 비유와 상징으로 조탁한 문장에 동양사상의 바탕까 함축하고 있으니, 그 감동의 진폭을 어찌 가두랴(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평가입니다.

이문구 소설집 ‘관촌수필’도 손꼽히는 명문장입니다. “…..어지간히 반성을 하고 보니 나는 남들의 근거없는 짐작처럼 냉혹 잔인 난폭한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했고, 그런 짓을 두둔하거나 감싸준 적도 없음이 뚜렷했다. 그러나 대인 관계만은 다소 별쭝스러웠으니, 냇자갈처럼 야무지고 매끄러운 알로 깐 자와, 말 많고 잔주접 잘 떠는 되다 만 인간, 단작스럽고 근천맞은 좀팽이 따위에게 박절하게 대해 온 사실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단편 ‘공산토월(空山吐月)’ 중)”

서정주 시 ‘자화상(自畵像)’도 뺴놓을 수 없습니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 만 하드라 /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는 젊은 시인이 거둔 개가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의 얼굴을 한 시인 김수영 ‘눈’은 후배 시인 정호승이 가슴에 새긴 구절 “기침을 하자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 눈을 바라보며 /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 마음껏 뱉자”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한복’은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그것은 입성이 아니다 / 비로소 돌아오는 질기고 너그러운 / 숨결이 베틀질 한 씀씀한 생활 / 육신을 싸안아 육신을 / 벗게 하는 / 무명 바지 저고리에 옥색을 물들인 한복”이란 문장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형기 ‘낙화’도 교사들 추천을 많이 받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유부인’으로 유명한 소설가 정비석은 기행문 ‘산정무한’으로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년 사직을 망쳐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에게 베푸신 두터운 자혜가 천년 후에 따습다. 천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영남대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도 백미 중 하나다.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부분 “……만약에 감은사 답사기를 내 맘대로 쓰는 것을 편집자가 조건없이 허락해 준다면 나는 내 원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쓰고 싶다.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아! 감은사 ?”

추천자는 이 부분을 저자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를 천거하면서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모여서 돋아난 의좋은 초가 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 줄 때가 있다.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 이 되어가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다”는 도입부를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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