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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역사소설「장군과 제왕」7.양광의 음모 (4)

조의선인 |2008.07.11 12:48
조회 209 |추천 0
연태조(淵太祚)는 자신의 저택에서 삼성기(三聖記)라는 서적을 펼쳐 보고 있었다. 처소 안에서 그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독서에 열중하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책에 씌인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영양태왕(嬰陽太王)이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오부(五部) 귀족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대대로(大對盧)라는 관직을 폐기하고 왕명으로 임명되는 막리지(莫離支)로 고구려의 국상(國相)직을 개편한 뒤 연태조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는 별로 기쁘지 않았으며 걱정과 한탄만 생길 뿐이었다.

안원태왕(安原太王) 재위기에 추군(雛群) 세력과 세군(細群) 세력 간의 권력 다툼에 의한 무력충돌(武力衝突) 이후 고구려의 왕권이 쇠퇴되고 고구려의 중앙정치는 욕살(褥薩)들의 입김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고구려는 서기 194년 진대법(賑貸法)이 실시된 이래 역대 태왕이 선정(善政)을 펼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 삼한 가운데 위민정책(爲民政策)이 가장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원태왕(陽原太王) 때부터 왕권이 미약해지고 욕살들의 중앙 정계 진출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면서 부정과 비리가 만연해졌다. 지방에서는 심하지는 않았지만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탐관오리가 생겨났으며 욕살들에게 재물을 바치면서 관직을 청탁하는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삼정(三政)이 문란해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대로였던 연태조의 아버지 연자유(淵子遊)는 점진적으로 타락해가는 고구려의 중앙정치를 누구보다 안타까워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태자 시절부터 기상이 남달랐고 총명했던 영양태왕과 뜻을 같이 하여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 시기의 전성기를 다시 재현하기 위해서는 중원 정벌을 실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사병과 노비들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욕살들은 전쟁을 반대했다. 고구려를 예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욕살들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했다. 그러나 영양태왕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게다가 태제로 책봉된 대성왕(大成王) 고건무(高建武)는 욕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앞으로 고구려의 앞날에 험난한 파도가 몰아치는 것은 분명했다.

연태조는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누구보다도 강인하셨던 자신의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일관(日官)의 예언 따위에 현혹되어 자신의 아들을 경계하고 그 생명마저 빼앗으려 하는 대사자(大使者) 고소심(高少心), 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 도병리(都丙利) 등을 어찌 상대하면 좋단 말인가? 아무리 연태조가 고구려 최고의 관직인 막리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고구려의 중앙정치를 혼자서 바로잡을 힘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조정에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도 부족했고 세력도 너무 허약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오부 귀족들과의 대결은 여간 힘든 게 아닌 고전이 될 것이다.

"막리지 어른, 반가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최무(崔茂)가 방 안으로 들어와서 연태조에게 말했다. 연태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반가운 손님이라니...?"

"대장군 을지문덕(乙支文德) 공이 막리지 어른을 만나러 왔습니다."

연태조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어서 안으로 뫼시게."

오랜만에 보는 을지문덕은 예전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지만 범상치 않은 기풍은 여전했다.

"이 사람아, 그동안 자네가 백두산으로 간 뒤로 소식이 끊겨 답답했네."

"연락을 자주 드리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갑자기 웬 존칭인가? 예전처럼 나를 대하게."

"이제 이 나라 고구려의 국상 자리에 오르셨으니 위계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소인이 막리지 어른을 대우해 드려야지요."

"우리는 친구가 아니던가? 우리끼리 있을 때는 말을 편히 하게."

그러나 을지문덕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떤 장소에서나 국가의 중요한 임무를 맡은 관리는 항상 위계질서를 소중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위와 아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대서야 어찌 관리라 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 역시 자네는 정도(正道)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일세."

연태조는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막리지 어른,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술상을 봐 드릴까요?"

"그렇게 하게. 오늘은 을지 공과 거나하게 취해 봐야겠어."

최무가 예를 취하고 밖으로 나가자 연태조가 다시 을지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도 자네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셨네. 이제 조정에 다시 출사해서 만일을 준비해야지."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나라와의 일전에서 적군을 아국의 경내로 들어오기 전에 격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수나라가 다시 도발해온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영토 안에서 적군을 불러 들여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때는 다른 전략을 수립해서 적침(敵侵)에 대비해야 할 걸세."

"내일 폐하를 만나뵙고 만약의 전장이 될 지도 모르는 아국의 지형을 답사하는데 지방 성주들의 협조를 당부하도록 조처해 달라는 부탁을 드릴까 합니다."

"그렇게 하게. 폐하께서는 이제 자네를 크게 신뢰하고 계시네. 자네 한사람만의 몸이 아니니 부디 건강에 유의하게."

"감사합니다."

을지문덕은 문득 젖은 눈빛으로 연태조를 바라보았다. 연태조는 문덕이 일전에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기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왜 아드님에 대한 일을 묻지 않으십니까?"

문덕의 질문에 연태조는 잠시 심장을 바늘에 찔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세상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개소문은 나에게는 더없이 귀한 아들이지만, 사세가 이리 되어 떨어져 지내게 되었으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허나 그 아이가 장차 우리 고구려를 지키는 강건한 영웅이 될 때까지 무사히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조의선문만한 곳이 없지."

"마음이 아프시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조의선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수련을 한다면 개소문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사님께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길러 주시고 교육을 하실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최무 집사가 술상을 가져왔다. 안주와 술병을 놓고 잔을 돌리며 그들은 그간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풀었다.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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