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사는 싸늘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야 모르는 일이지. 그 거울을 제대로 본 사람은 그 중에서 단 한명 뿐이었고 이후 그 신임하사 녀석을 붙드는 과정에서 거울은 깨
져 버렸으니..."
"... "
" 아무튼 녀석은 붙잡혔고 곧바로 살인죄를 물어 영창에 쳐 넣어졌지. 그런데 얼마 있다가 다시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대. 진술 과정에
서 녀석은 정상이 아니었던 거야. 그 날 사건에 대해서 자꾸 헛소리만 지껄여 대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결국은 미친놈이
되어버린 것이지. 그 이후에 모두들 B.N.Q 4호실에 가길 꺼려했었고 결국 4호실은 쫄따구들 전용 방이 되어버린 것이야. "
영민이 숨을 죽이며 마른 침만 삼키고 있는데 장하사는 한층 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근데 말야..... 그 4호실의 악몽은 그걸로 끝난게 아니었어. "
" 예?그럼..... "
" 얼마 후에 그 4호실에서 또 한명이 죽어버린 거야! "
"......!"
" 그 죽은 녀석도 비교적 쫄병이었는데 아침 점호시간에도 참석을 안해서 Q장이 난리를 치며 가보았더니...... 그 녀석이 제자리에 반
듯하게 드러누운채로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선 죽어 있었더래. 앞서 죽은 두 명과는 달리 전혀 외상은 없었고 사인은 심장마비였지 "
실로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다. 정말 이 곳이, 사람이 세명이나 죽어나간 부대란 말인가? 그것도 불과 2년 전에......
영민은 갑자기 앞으로 2년간의 영내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갈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 믿어지지 않지? "
장하사는 또다시 영민의 마음을 꿰뚫는 듯한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아닙니다. "
" 그 이후에 B.N.Q 4호실은 곧장 폐쇄되었다가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결국 보급반 간이 창고로 활용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지속
되고 있지. 하지만 말야..... 아직도 끝난게 아니라는 거지. "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라는 영민.
아직 끝난게 아니라니........ ?
" 그렇게 놀랄 것은 없어. 아직도 밤이면 그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느니, 누군가가 그 안에서 문을 조금 열고 바깥을 노려보고
있다느니...... 뭐 그런 것들...... 불침번들을 통해서 그런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종종 맴돌고 있다 그 말이니까. "
" 아...... 그렇습니까? "
장하사는 빙긋 웃으며 한껏 고조되었던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러니까 니가 주의해야 할 세 가지가 뭐냐하면...... 넌 말야, 절대로 그 4호실 귀신 얘기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지 말고 병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솔깃해져서 함부로 입 밖으로 옮기고 다니지도 말아야 돼. 응? 이것이 첫번째고, 두번째로는 B.N.Q 최고참 하사 중에 전빈영 하사님이라고 있는데 그 사람이 뭐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그러던데 뭐 확실한건 아냐. 아무튼 넌 그 일에 대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어야 해. 전빈영 하사님 앞에서 귀신이 어쩌고 어쩌니 하는 소린 절대 금물이란 말야. 아예 그 사람과는 말도 안하는게 좋아. 하긴 넌 아직 쫄병이니까 감히 누구 앞에서 뭔 소리도 못하겠지만...... "
맞는 말이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말야...... 아니 뭐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말야...... 니 눈에 정말 귀신 같은 게 보이잖아? "
" 예? "
" 아니 그러니까, 그럴 리는 없을테니 놀랄 것 없어. 내 말은 혹시 자다가, 아니면 몸이 허약해져서 헛 것을 볼 수는 있는 법이니...... 만에 하나라도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더라도 절대, 떠벌리지마! 특히 주임원사나 너네 선임하사나 혹은 헌병 반장 앞에선 절대 그딴 얘기 하지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 "
장하사가 무슨 당부를 하려는지 감이 잡혔다. 영민은 신중하게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했다.
" 예...... "
그러나 장하사는 아직 자신의 뜻이 영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그러니까 괜히 헛것 하나 본 것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지 말란 말야. 혹시 그런 귀신 보게 되면 나한테마 얘기해. 알았지? 뭐 괜히 내가 이런 얘기한다고 겁먹지는 말구...... 응? 야,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
" 알겠습니다. "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영민은 장하사의 그 마지막 말이 자꾸 맘에 걸렸다. 그건......
장하사가 아차하는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 신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빨리 나가자. 대대장 신고 연습해야지. "
" 예. "
장하사는 전표를 끊어 식사비를 대신 내고는 영민을 데리고 나간다. 식당 안에는 어느새 아무도 없었다.
장하사를 따라 나서며 영민은 잠시 다른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잠깐 가출을 한 경험이 있었던 중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었다.
나쁜 친구들과의 어울림, 처음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던 옆 학교의 여학생, 바닥으로 추락하던 자신의 학업성적, 중간고사 부정행위와 그로 인한 무기정학, 이후 계속되던 선생님과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이어지던 무단 조퇴, 무단 결석, 엄마와의 잦은 마찰, 비애, 자살충동, 실연, 가출, 죽음, 귀신......
귀신?
영민은 거기까지 기억의 고리가 맞물려지자 슬쩍 그 고리를 풀어 버린다. 자신의 의식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귀신에 대한 기억.
그것만은 결코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