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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B.N.Q3

농구왕김타자 |2011.03.17 13:20
조회 965 |추천 7

무사히 대대장 신고를 마치고 주임원사와 이런저런 형식적인 면담까지 끝낸 영민은 마침내 B N Q 대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말로만 듣던 B N Q 4호실도 보게 되었다. 들은 얘기 때문인진 몰라도 근처엔 왠지 무시무시한 냉기까지 느껴지는 듯 했고 그냥 지나쳐 가는데도 괜히 소름이 끼쳤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러나 한가로이 4호실 따위나 감상하고 있을 여유가 영민에겐 없었다. BNQ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약복을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B N Q대기에 들어가야만 했었기에. 그런데 이 B N Q대기라는게 보통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다.

" 필승! "

" 얌마. 시끄러워. "

BNQ 대기에 들어가자 영민은 장하사의 말대로 B N Q 1호실 침상 맨 끝에 앉아있다가 고참들이 오갈 때마다 벌떡벌떡 일어나 목청껏 경례를 해댔었다. 그러나 곱게 그냥 그 경례를 받아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 필승! "

" 새꺄, 넌 임마 금방 해놓고 또 하고 지랄이야? "

" 필승! "

" 야, 너 한번만 더 소리 지르면 정말 죽는다. 이 새끼가 하지 말라니까......"

"......"

" 어 너 고참 보고도 경례 안해? "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 영민에겐 한 초 한 초가 일 년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반나절을 보내고 Q장을 따라 사병식당에서 딱딱한 식사를 마치고 올라온 영민은 담배 한 대 피울 여유도 없이 B N Q 최고 악질이라는 오창우 하사에게 시달리게 된다.
영민에겐 정말 악몽같은 하루였다. 순간순간 하사관으로 들어온걸 후회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오창우 하사도 사라지고 좀 조용해진 오후......

" 너 담배 피니? "

" 예! "

" 그래? 그럼 한 대 피자. "

" ...... "

" 괜찮아 임마 따라나와. "

그렇게 부드러운 인상으로 영민을 대하는 이는 Q장 바이스(vice)기수인 김대명 하사였다. 그렇게 영민이 고참들의 이름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물론 장하사가 건네준 B N Q 하사들 기수표를 봤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친절하게 36명의 고참 하사들 사진과 이름, 기수, 특기, 근무장 전화번호 등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직 다 외우진 못했지만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참순으로 틈틈이 외우고 있는 영민이었다.
아무튼 김대명 하사는 영민보단 훨씬 고참이었다.
영민은 그런 김하사를 따라서 복도 끝 사이드 계단 가의 흡연장소로 향했다. 그 곳에선 BNQ 뒤편의 푸른 산이 한눈에 잘 보였다.
김하사가 건네는 담배를 몇번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 피우는 영민. 김하사도 한 대 피운다. 둘은 잠시 말없이 각자 다른 곳을 응시하며 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던 중에 김대명 하사가 불쑥 입을 열었다.

" 야, BNQ 정말 엿같지? "

담배 연기가 목구멍에 콱 걸릴 것만 같은 영민.

" 예? "

" 고참들도 다 지랄같고, 괜히 하사관으로 왔다고 후회스럽지? "

난색을 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완강히 부인하는 영민.

" 아, 아닙니다. "

그러나 김하사는 이미 영민의 머리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시선을 돌려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 어쩌겠냐...... 좀만 참아라. 너 밑으로도 두 기수 정도만 깔리면 너도 좀 편해질거다. 지금이 제일 고생스러울 때다. 더군다가 사람까지 너무 많아. 나 때만 해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

김하사의 눈이 잠깐 회상에 젖어 있는 듯 했다. 그 틈을 타서 힘껏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는 영민.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뻥 뚫리는 듯 했다.

" 참, 너 잘 데는 있을라나 모르겠네. 지금 BNQ 자리가 만땅일텐데..... "

아닌게 아니라 영민도 사실 그 문제가 걱정 아닌 걱정으로 뇌리를 맴돌던 중이었다. BNQ 1,2,3호실 다 합해봐야 자리는 36개엿다. 지금 영민을 제외한 하사들의 수가 36명. 영민은 어디서 잔단 말인가. 그렇다고 병들 내무반에 끼여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임원사의 말로는 당분간만 윗 기수 고참자리에 끼여서 생활하고 있으면 자신이 곧 해결을 해주겠다고 했으나, 결국 최고 고참기수가 빠져나가야만 자리 문제는 해결되어질 게 틀림없었다. 즉 지금의 Q장기수가 영외 거주를 나가야만 BNQ에 영민의 자리가 생길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앞으로도 3개월은 더 기다려야만 했다.
잠시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김대명 하사가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 너 저기 4호실 얘기 아냐? "

움찔 놀라는 영민. 순간 긴장감이 몰려온다.

" 모릅니다. "

하고 딱 잡아뗀다.
그러자 김하사가 피식 웃는다.

" 그래? 그럼 너 저 안에 뭐 있는 줄도 모르냐? "

" 모르겠습니다. "

그러자 영민을 빤히 바라보는 김하사.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리는 눈빛이다. 영민의 심장 박동이 증가한다.

" 저기가 보급반 창고야. 장하사가 얘기 안해줘? 저 안에 여분의 매트리스며, 침구며, 그리고 군장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어. "

" 예...... 그렇습니까? "

김하사가 마지막 한 모금의 연기를 빨고는 예리한 눈빛으로 꽁초를 던진다. 꽁초는 정확히 철제 휴지통 속으로 쳐박혔다.

" 그리고 누군가가 한 명 살고 있지. "

다시금 흠칫 놀라는 영민. 말없이 영민의 표정을 살피는 김하사. 영민은 김하사의 다음 말이 두려워진다. 과연 또 무슨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질까......

그런데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김하사를 부른다.
" 김하사님. 전화 왔습니다. "

" 누군데? "

" 외부전화입니다. 여자 목소리였습니다. "

다가오는 이는 장하사와 같은 기수인 자그마한 키의 박기우 하사였다. 영민보다 한 기수 위다.

" 여자? 누구지? "

의아해하는 김대명 하사가 사이드를 빠져나가 1호실로 들어서자 느긋하게 박기우 하사가 영민의 곁으로 온다.
그때까지 불타고 있던 꽁초를 얼른 끄는 영민.

" 아냐, 계속 피워. "

하는 박기우 하사. 그의 표정엔 우월자의 어설픈 배려 같은 것이 역력히 비춰지고 있었다. 그러남 아무튼 담뱃불은 꺼진 후였다.

" 괜찮습니다. "

" 자식이...... 내 앞에선 긴장할 것 없다니까. "

하면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무는 박기우 하사. 폼이 여유만만하다 못해 한껏 거만스럽기까지 했다. 좀전에 김대명 하사 앞에서 보인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그에겐 영민이 유일한 쫄병이고 그 앞에서만은 왕인 것이엇다.

" 야, 뭐 어려운 거 없냐? "

담배연기로 땡도너스를 하나 만들어 날리며 아주 근엄한 고참의 표정을 연출해 보이는 박기우 하사. 그러나 그가 아직 쫄병티를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게 영민의 눈에도 다 보였다. 박기우 하사의 담배피는 폼은 영락없는 쫄병하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절대로 해서는 안되었다. 짐짓 어려운 척, 긴장한 척 대해주는 영민.

" 예, 없습니다. "

그러자 피식 웃는 박기우 하사. 역시 웃음마저도 좀 전의 김대명 하사와는 무언가 크게 다르다.

" 자식...... 쫄지마 임마. 나나, 장하사 앞에선 쫄 것 없다니까. 우리 동기들 잘 알지? 걔들은 다 너한테 잘해줄거야. 그러니 뭐 고민 거리가 있음 우리한테 젤로 먼저 얘길 하라구. "

" 예. 알겠습니다. "

"그래. 음........ "

다시금 위엄 깃든 표정으로 돌아가 담배를 뻐끔거리는 박기우 하사. 그 순간 돌연 누군가의 나지막하지만 정말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대로 된 고참의 목소리였다.

" 야! 기우! "

동시에 몸을 움찔 떠는 영민과 박기우 하사. 놀라서 담배를 급히 끄고는 황급히 돌아서는 박기우 하사. 그곳엔 전빈영 하사가 2호실 문을 반쯤 열고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하사의 말에 의하면 귀신 보는 능력이 있다는 그 사람!

" 예! 전하사님. "

금새 다람쥐처럼 쪼르르 뛰어가는 박기우 하사. 좀 전의 그 거만스런 표정은 씻은 듯이 찾아볼 수 없다.

" 가서 고기산적하고 만두 좀 사와라 "

하면서 돈을 건네는 전빈영 하사. 목소리가 왠지 동굴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금 울리는 듯 했다. 영민의 착각인가.

" 예에. 음료수는 안 드십니까? "

" 것도 사와야지 새꺄! 음료수도 없이 산적 먹다가 목구멍 탁 틀어막혀 죽으란 말이가? "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전빈영 하사. 좀 멀리 있던 영민까지 그 소리에 움찔거렸다. 내뱉는 몇 마디의 말투에서 단번에 상당한 다혈질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예? 예.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

급히 BX(영내 매점)로 뛰어가는 박기우 하사.
박기우 하사까지 사라지고 나자, 영민도 더 이상 사이드에 가만히 서 있기가 뭣해서 다시 1호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영민은 묘한 한기를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영민의 뇌리를 스치는 순간, 영민의 시선이 2호실로 향했다. 유령같은 몰골을 한 전빈영 하사가 아직까지 문을 닫지 않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문이 반쯤은 닫혀있어 마치 전빈영 하사의 얼굴이 반쪽 뿐인 갓 같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섬뜩함을 느낀느 영민. 다시 한번 찬 기운이 영민을 감싸고 영민은 잠시 얼어붙은 듯 미동도 없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전빈영 하사를 마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전빈영 하사가 조용히 입을 연다.

" 얌마. 넌 경례할 줄도 모르냐? "

아차, 싶었다. 그제서야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성박력으로 경례를 하는 영민.

" 필승! "

" 집어치워 새꺄! "

다시 차가운 시선으로 영민을 꿰뚫어 보는 전빈영 하사. 눈앞이 캄캄해지는 영민. 냉기는 사라지고 이제 진땀이 났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상대에게서 내려질 무서운 처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반쯤 열린 2호실 문틈으로 영민을 빤히 바라보던 전빈영 하사가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한다.

" 너네 삼촌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 "

" 예? "

" ...... "

" 예.. 마흔 둘이십니다! "

정확히 맞는지도 잘 몰랐다. 느닷없이 삼촌의 나이를 물으니 잘 떠오르지도 않았으나 얼른 대충 말해버리는 영민이었다. 그런다고 상대가 따지고 들 리는 없었기에......
그러자 다시 영민을 찬찬히 바라보는 전빈영 하사. 그러다가 또다시 불쑥 이상한 소리를 한다.

" 너 삼촌이랑 되게 친했었구나? "

" 예?... 예. 그랬습니다. "

이번엔 정말 놀라는 영민. 도대체 이런 질문들을 해대는 이유를 영민으로서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빈영 하사의 다음 말에 영민은 정신이 아찔해지고 만다.

" 돌아가셨구나...... 너네 삼촌. "

" 예? "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는 영민. 원래 전빈영 하사같은 고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라지만 지금의 영민은 말문이 막히다 못해 숨통까지 막힐 것 같았다.

삼촌이 돌아가셨다니?
삼촌이 죽었단 말인가?
불과 며칠 전, 자신이 이 곳으로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삼촌에게 전화해서 그 사실을 알렸었다. 그 때까지 멀쩡했던 삼촌이었다.
그런데 이 전빈영이라는 작자가 내뱉는 이 소리들은 무어란 말인가......

" 금방까지 너 뒤에 서 계셨어. "

" ..........! "

급히 뒤돌아보는 영민! 그 곳엔 B N Q 1호실의 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반팔 전투복 아래로 드러난 영민의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조금 전 영민의 주위를 감쌌던 찬 기운! 영민은 분명 그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빈영 하사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공포와 전율이 몰려온다. 하지만 놀라는 영민을 두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리는 전빈영 하사. 석고상처럼 굳은 채로 꼼짝 않고 굳게 닫히는 2호실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영민.
그리고 이내 무의식적으로 시선은 4호실로 향한다.
B N Q 4호실로......

그로부터 나흘 후 주임원사가 영민을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삼촌의 부고를 알렸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영민은 오히려 담담했다. 주임원사는 영민이 너무 충격을 크게 먹어서 그런게 아닌가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영민의 진짜 걱정은 앞으로 전빈영 하사를 어떻게 대하나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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