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빠져 나와 약 30분간 국도를 걸쳐
나는 조금 더 큰 도시로 향했다. 차라리 서울이나 다른 곳
으로 도망칠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나는 평생 도망자
신세를 면하지 못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를 이렇게 만든 녀석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차는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다. 앞뒷 유리 모두 부셔
진 상태였고 앞 오른쪽 범버가 반쯤 쳐지고 본네트도 심하
게 찌그려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뒷트렁크에도 총에 맞은 듯한
자국이 2개나 있었다. 그래도 비가 계속 세차게 온 것이 다
행이었다. 맑은 날 시야가 좋은 상태에서 이런 상태의 차를
계속 몰고 다녔다면 누구든지 이상하게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 도시에서 약간 배회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라디
오를 켰다. 지금까지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로 계속 차를
몰고 있었다.
라디오를 켜자 비 오는날에 알맞은 칙칙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라디오 주파수를 여기저기 돌렸다. 마침 뉴스
가 나오는 방송국이 있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1분뉴스
인 모양이었다.
딱딱한 목소리의 남자 앵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을 확인하
고 나는 라디오를 조작하던 오른손을 핸들로 가져왔다. 그
리고 그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정확하게 나의 이름을 내보내고 있었다. 가명도 아니
고.. 경찰은 완전히 나를 용의자가 아닌 범인으로 보고 있
는 모양이었다. 더이상 이 차는 타지 못할 것 같았다. 차
를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차를 버리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나는 눈에 보이
는 10층짜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를 지하주
차장으로 몰았다. 지하주차장은 모두 2층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지하 2층으로 내려와 최대한 입구에서 깊숙이 들어갔
다. 그리고 제일 구석 자리에 차를 주차했다. 주변을 살펴
보았지만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방범카메라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이내 결심을 하고 권총과
현미가 떨어트린 핸드폰을 집어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
고 잠시 고민하다가 번호판을 떼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렇
게 하면 혹시 경비원들이 발견한다해도 그냥 폐차를 이곳에
버렸으리라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할것 같지는 않았다.
앞 번호판은 떼기가 쉬었지만 뒷번호판은 꽤나 어려웠다.
나는 힘들게 봉인을 부셔 번호판을 떼어내 들고 지하주차장
을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맞을 만큼
맞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단지 권총을 젖지 않게 하기 위
해 약간 신경을 썼다. 가지고 나온 번호판은 적당한 장소에
쉽게 눈에 띄지 않게 버렸다.
아파트 단지를 나온 나는 일단 쉴곳을 찾기로 했다. 너무나
지친 상태였다. 길을 따라 한참 걷다가 여관을 발견했다.
지갑을 열어보았다. 윤미가 쥐어준 고작 몇 만원이 전부였다.
나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다란 시계
가 정면에 보였고 그 왼편에 사무실이 있었다. 그 사무실의
조그만 창으로 아주머니가 문소리를 듣고 얼굴을 빼꼼이 내
밀었다.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을 보고 약간 인상을 찌푸렸
지만 별 말이 없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방하나 주세요.."
"혼자유?"
"예.."
"자고 갈거지 하루에 만 8천원이유.. 선불이구.."
"아. 예.."
나는 2만원을 꺼내서 내밀었다.
"저기 식사를 좀 하고 싶은데.."
"방에 들어가면 식당 전화번호가 있을 거유.. 거기다 시켜
서 드슈.. 그리고 아침 10시까지는 나가야 돼유.."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열쇠를 내밀었다. 2층이었다. 무척이
나 딱딱한 아주머니였다. 하지만 전혀 뉴스같은 것을 볼거
같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안심이 되는 인상이었다. 혹시나
TV에 내 얼굴이 나온다면 곤란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 예.."
나는 키에 적힌 방으로 올라갔다.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깨끗했다. 비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싶었지
만 갈아 입을 옷이 있을리 만무했다. 나는 우선 화장실로
가서 비에 흠뻑 젖은 옷을 벗었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 개
운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서 옷들을 대충 빨기 시작했다.
옷이라고 해봤자 티셔츠와 헐렁한 면바지하나와 팬티한장뿐
이었다. 빨아서 힘껏 짰다.
그리고 방으로 나와 대충 바닥에 펼쳐서 널어 놓았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도 걸어 잠갔다.
벽장에 있는 이불을 꺼내서 바닥에 펴고 얇은 이불로 대강
몸을 둘렀다. 그러자 허기가 몰려왔다. 오늘 하루종일 거
의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었다.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
이었다. 나는 TV가 놓여져 있는 선반에 걸려 있는 음식점
안내 팜플렛의 전화번호를 보고 현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메
뉴를 보고 된장찌개를 시켰다. 아주머니는 금방 배달된다
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벽에 기대어 처량한 내 신세를 한탄했지만 이제 별로
슬픈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9시가 되어가
고 있었다. 나는 tv를 틀었다.
채널을 돌리자 막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노곤했던 몸이
다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볼륨을 높이고 다시 벽
에 기대어 조그만 15인치 티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남자 앵커는 예의 딱딱한 표정으로 전면을 응시했다. 그리
고 그의 오른쪽 머리 위 부분에 조그만 창이 하나 뜨면서
이란 붉은 단어가 나타났다.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화면이 바뀌면서 비에 머리가 젖은 조금은 굳은 얼굴의 남
자가 나타났다. 자막의 유승완기자로 처리되면서 남자가 입
을 열었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기자의 뒤에 있는 2층 집을 클로즈업 시
켰다. 그 집은 당연히 은식이네 집이었다. 경찰과 관계자
외 보도진들도 무척이나 많아 보였다.
앵커가 지가를 불러 무엇인가를 물어보려고 했다.
다시 화면은 스튜디오로 바뀌었다. 그리고 남자 앵커옆에
있던 여자 앵커로 화면이 바뀌면서 다시 여자 오른쪽 옆에
있는 창이 생기면서 새로운 글자가 나왔다.
지금 TV에서 지꺼려 대는 모든 것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라
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배가 무척이나 고프고 피곤해서 인
지는 몰라도 전혀 느낌이 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TV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었다. 듣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것이라도 알아내야 했다.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놀라서 마치 손으로 눌러놓은
스프링이 손에서 튀어 나가듯 몸서리치며 일어났다. 온 몸
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에요.."
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안심을 했다. 그제서야 내가 알
몸인 상태라는 것을 인식했다. 대충 바닥에 널어 놓았던 바
지를 입었다. 아직 마르지 않아서 축축한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눈을 찔끔 감고 입었다.
나는 잠겨 있는 문을 열었다. 양손으로 커다란 쟁반을 들고
있는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애써 고
개를 숙이고 쟁반을 받아 들었다. 왜이리 늦게 문을 여는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혹시나 이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알
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쟁반에는 스테인리스로 된 밥공기가 된장찌개가 들어 있을
약간 오래된 뚝배기와 3종류의 반찬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처음 잠깐을 빼고는 한번도 아주머니한테는 시선을 두
지 않았다. 쟁반을 받아들고 빨리 방으로 들어오면서 얼마
냐고 물었다.
"5000원."
나는 방에 쟁반을 가져다 놓고 지갑에서 천원짜리 5장을 꺼
내어 다시 밖으로 나와 건네 주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였
다.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릇은 먹고 요 앞에다 내다 두구려.."
"예.."
나는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방으로 들어왔다. 축축한 바
지를 벗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TV화면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여전히 앵커들은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를 신나게 내보내고
있었다. 간만에 터진 특종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며칠간은
신나게 내보낼 특종이 터진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더 범인이 경찰을 가지로 놀아
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여당 위원의 뇌물수수혐의가 터진
지 하루만에 이런 사건이 터졌으니 아주 좋은 먹이감이 되
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뚝배기의 뚜겅을 얼었다. 너무나 자극적인 된장국 냄
새가 코를 찔렀다. 텅빈 위를 자극해 위액을 뿜어내게 만
들고 입안에 침이 고이게 만들었다.
나는 밥공기에서 한 수저 크게 밥을 퍼서 입안에 집어 넣고
된장국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여전히 눈과 귀는
TV화면과 한창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여자 앵
커의 목소리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음식 앞에서 TV에서 나
오는 이야기는 전혀 나와 상관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수저를 든지 채 2분도 되지 않아 거
의 바닥까지 비워버렸다. 이제야 조금 생기가 돌아 오는 기
분이었다. 인간이란 우스운 동물이라는 것이 다시 실감되었다.
식욕을 채운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다니.. 하지만 그 기분
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치 배가 고파 죽을것 같은 기분이었
는데 시장기가 가시자 이제서야 TV에서 나오는 뉴스들이 나
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나는 쟁반 채 방 구
석에 밀어 넣은 뒤 다시 TV에 집중했다.
그리고 쪼그리고 계속적으로 바뀌는 뉴스의 화면과 앵커들
의 딱딱한 목소리들이 나의 뇌속에 조금씩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조금씩 나는 이 뉴스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이 실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순간 온 몸에 소
름끼치는 물체가 닿은 것처럼 몸소리가 쳐졌다. 공포가 밀
려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적대시하고 있는 기분이
었다.
남자 앵커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뒤에는 단상이 하나 있었고 앞에는 기자들이 앉아 있었다.
무척이나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분위기가 화면건너까지 풍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