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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날개 -1 소제목 :배추밭에서....

김기주 |2011.04.14 21:22
조회 56 |추천 0

당신의 날개를 펼쳐 보여라.. 그것이 당신의 원천이고 당신의 힘이

되리라………

 

이 책은 나의 전부이다.. 이것이 내 삶이었고, 이것이 나의 원천이다.

나의 날개는 부러졌다. 하늘이 멀어진다. 나는 날개가 없어 날아 오르지 못한다. 나는 내 날개를 찾아 기나긴 과거여행을 떠난다..

 

 

 

1979년 5월 강원도 산골마을 저녁무렵… 한 아낙네의 신음소리가 

 배추밭에서 울려 퍼진다.  땡볕아래에서 하루 종일 무거운 배를 움켜지고 그 아낙네는 오늘도 품앗이를 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기어코 산통의 고통은 커져 갔고, 사람들이 몰려 왔다.

병원으로 갈 차량이 없었다.경운기로는 너무나도 늦었다.

결국 동네 산파를 불러 그곳에서 한 아이는  출생을 맞이 하게 되었다. 나의 어머님이 내게 들려준 나의 출생,..

처음부터 이렇게 나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것은 아닐까?

 

나의 친아버지 김풍일… 나의 어머님 이경희 이들의 생활은 정말 고통 그자체였을 것이다.

나의 친 부친은 항상 소주가 없이는 못살 정도로 밥대신 소주를 먹는

술꾼 이었다.. 술을 드시니 항상 난폭할 수밖에  없고, 밭일이라고는 신경을 안쓰고, 항상 동네사람들과 술마시는 것을 본업처럼 여기시는 분이었다.

어머님은 나를 업어서 일을 나가야 했고, 일을 나가면 동네사람들에게 갓난아기를 돌봐달라고 부탁 하기도 하였다. 나에게  누나가 있었고, 어머님이 나를 돌보지 못하면, 결국 누나가 나를 안고 학교까지 가서 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누나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나를 안고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아이들이 애엄마라고 놀려되는 바람에 그이후로 어머님은 누나에게 안기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는 혼자서도   잘놀았고, 내 별명이” 똘똘이” 라고 동네사람들이 우리 친 모친을 “ 똘똘이 엄마”라고 불러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똘똘이 두살 되던 어느 겨울날 이었다.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 지고, 집안의 살림살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술병이 깨져있고, 어머님의 울음소리가 한없이 끊이질 않는다..

결국 어머님은 나를 키우는 것이 힘겹고 매일 주정뱅이에 난폭군의 아버지와 힘들게 살수 없어서 누이만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난  아버지 손에 자라야 했는데. 아버지는 이미 우리 어머님과 재혼을 한 거였고, 어머님이 집을 나간후 아버지는 전 부인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메고 다녔고, 결국 전부인을 만나 또다시 그분과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대가족이 만들어 졌다.

누나둘 남동생 이렇게 남매가 생겼고, 또 새로운 어머니가 생겼다

큰누나는 나보다 네살이 많았고 작은 누나는 두살이 많았고 동생은 두살 아래였다.

이렇게 식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할매이신 할머니도 계셨다..

큰누나 이름은 김정아 , 작은 누나 이름은 김주아 동생이름은 김경모

새 어머님 이름은 박춘란 …

내가 이렇게 이름을 나열 하는 것은  만약 이들을 다시 한번 이글을 통해 만날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집은 방이 세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방은 바로 안방, 한방은 멀리 떨어지고 좁은 할머니방, 그리고 네명 모두가 자는 방 하나, 잘때 마다, 코고는 소리, 이빨가는 소리, 부비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자는 것도 싶지가 않았고, 방이 너무 좁아서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도 허락 할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도 잠을 잘 설치고 작은소리에도 민감하게 깨는 버릇도 그때 생긴 버릇인 것 같다.

작은누나는 늘 투정을 부렸고, 다른 방을 달라고 새어머니에게 졸라 되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시골이라 노는 것 조차 놀이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개울가에 나가서 고기를 잡거나 물을 담그며 노는 것이 전부이었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리50번지 …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주소이다.

그곳에는  뒤에 작은 언덕이 있고, 살구나무가 있었고, 자두나무도 있었다.

우리는 일손이 부족할때면 항상 밭일을 도우러 나가곤 했다. 새어머니 누나들 그리고, 동생까지 총 출동을 하면서 까지 밭일을 돕기도 하였다. 한번은 배추밭일을 도우러 한번은 무밭, 한번은 감자밭 이렇게 돌아가면서 일을 도왔다.

 가끔 나에게 새어머니는 도로가에 나가서 감자와 옥수수 수확한 것을 가져다가 팔라고 시키기도 하였다. 지나 가는 차들을 보면서 외친다 “ 감자 한박스에 2만원” 어린 나에게 동정심으로 사가는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생각대로 잘 팔리지 않았고, 지나가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 보는 것이 전부였다.

옆에 같이 나랑 감자를 팔던 옆집 아주머니는 잘 팔리던데 왜 나는 안팔리던지… 기어코 옆에 아주머니가 다가와 “예야 ! 내가 니꺼를 가져다가 좀 팔아 줄게, 꼬맹이가 더운데 나와서 팔면 얼마나 팔겠니?”

하시며 내가 팔고 있던 감자 박스를 아주머니가 있는쪽으로 가져다가

팔아 주었다. 너무나도 감사했는데, 그때 감사하다고 인사조차 못했던것 같다.

감자를 팔면 얼마의 용돈이 주곤했다. 그걸로 집에서 먼 길 아마도 한 세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좋아하는 과자를 사먹었다.

내가 강원도 태생인지 그런진 모르지만, 나는 감자를 많이 좋아한다..

감자떡, 감자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가끔 밥대신 감자를 먹는 경우도 있었다. 가마솥 큰 데다가 불을 지펴서 감자를 삶아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이었다. 식구들은 모두 밭일을 가고, 나도 같이 따라 가게 되었다. 우리는 밭에 비료를 뿌리는 일을 하였다.

여기 저기 비료를 흩어 뿌리고 같이 일손을 도우다가 나는 동생과 장난을 치게 되었고, 그러다가 비료 푸대가 있는 것을 모르고, 비료푸대를 넘어뜨렸다.   저 멀리서 새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 야 이자식아!~ 너 죽고싶어? “  그순간 내 머리에 무엇인가 정통으로 내리쳤다. 피가 나고, 나는 쓰러졌다. 돌맹이 였다.

새어머니는 분에 못이겨 나에게 돌맹이를 던진거였다. 상처를 겨우 치료 받았으나 그 상처는 지금 내 머리에 작은 땜방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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