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ZZ TOP [디엔드] 파고다에서 만나다.
-서론-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내 젊은날의 추억을 이렇게 쓰고 싶진 않았었습니다.
그 동안 연예기획 쪽을 떠나 스포츠계에서 또 다른 삶의 희망과 도전을 꿈꾸며 글을 일기형태로 써 왔었는데 어느날 알게 모르게 내 글이 인터넷상에 퍼진것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런차에 지난 6월12일 방송국 작가로부터 인터뷰에 응하고 방송국을 나서며 "그래 그렇다면 직접 밝혀보자."사람이 신이 아닌이상 아홉을 잘했어도 한가지 일을 잘못하면 욕먹는세상인데 역발상이지만,그 한가지라도 잘한것에 초점을 맞춰보자.그리고 나도 이제 두아이의 아빠다.내 스물 아홉시절 혈기왕성할 때 그저 잘하라고 훈계한것이 마치 폭력을 휘두른것처럼 인터넷상에 유포된사실에 또한번 감짝 놀랐다.갑자기 신해철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안티들을 상대하는 수법이 대마왕다운 솜씨다. 나 또한 그런것이 전혀 두렵진 않습니다. 그저 잊고있었는데....오해는 풀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이곳 네이트의 톡톡에 사는이야기...,내 판을 한 판 벌려보는것입니다.
정통 록그룹 [부활] 제 1집 속지에 단 한명의 팬만 있다면 전국 어디서라도 라이브 컨서트를 강행할 것이라고 예명 (최강한)으로 썼었습니다.
허접한 제 글에 단 한명의 댓글(선플이든 악플이든)만 달린다면 그것조차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생각으로 그동안의 글을 일관성있게 옮겨보겟습니다.
위대한 만남,....그 운명적 만남의 떨림을 내글을 그대로 인용한 보그 잡지의 일부를 소개 한다.
(펌)
위대한 탄생
“1984년 7월로 기억되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흑백인쇄물의 아주 조악한 라이브 공연 포스터를 명동 입구에서 보게 됩니다. 뭔가 홀린 듯이 그 포스터를 바라보다 나는, 지금은 사라진 록의 메카 종로의 파고다극장 라이브 공연장에서 4인조 밴드의 연주를 듣습니다. 게리 무어의 그 유명한 ‘Parisienne Walkways’입니다. 그 곡을 완벽히 카피해낸 기타리스트가 그 녀석이었습니다.” 부활의 첫 매니저 백강기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스무 살의 김태원을 발견한 그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부활이라는 이름 대신 ‘디엔드(The End)’로 활동할때였다. 시나위의 신대철, 백두산의 김도균, 그리고 김태원. 3대 기타리스트의 전성 시절 밴드의 인기는 엄청났다. 촬영 현장의 메이크업아티스트 류현정 실장이 여기에 생생한 현장 증언을 덧붙였다. “팬이었어요. 고등학교 앞의 벽보를 보고 한국일보 7층 소극장 공연을 찾아간 적도 있죠. ‘희야’가 수록된 첫 번째 정규 음반엔 ‘국내 최초로 기타로 종소리를 연주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요. 노래 도입부의 종소리는 한동안 화제였어요. 얼마 후, 63빌딩 컨벤션 센터에서 콘서트가 열릴 땐 오빠부대가 동원될 정도였죠.” 왕년의 열혈 소녀 팬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멤버들의 얼굴은 색다르게 변신해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당시 이승철의 가 발 착용 여부(방위 시절엔 가발을 쓰고 공연했다)로 공연 연도를 확인하던 김태원은 선글라스 너머로 그때를 회상했다.“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마왕 신해철이 부활의 팬클럽 부회장으로 연습실을 오가던 때이기도 했다.
-이상 이 보그 잡지의 일부다-
그랬다.
4인조 [디엔드]와의 첫 만남은 강력했다.
텍싸스가 자랑하는 지구상에서 3인조 밴드로 가장 ㅇ강력한 사운드를 내뿜는 지지 톱!
디엔드의 사운드에서 그걸 느꼈다.장차 이나라의 중추적인 록 밴드가 되리라고 그 때 난 한 귀로 듣고 알아버렸다.
다만 의욕이 앞서서 나의 매니지먼트가 소홀했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그러나 난 디엔드 최초의 매니져였고 인간 김태원의 영원한 책사이다.
첫 만남의 순간에서 전율을 느꼈다.
#(만남)
태원이의연주를 첨으로 무대에서본순간 심장이얼어붙는 희열이였다.
좀 심하게 과장된 표현으로.. 전설의 지미헨드릭스가 살아돌아온줄알았다.
충격 그자체였다.
난 순간적으로 아! 시대를 잘못타고나왔구나... 하는 생각을했다.
가까운 일본에서만 활동해도 세계적인 플레이어가될수있을텐데 ..
한국에서는 알아주기힘들텐데.... 라고 생각하며..
[디엔드]팀의순서가끝나자 나도모르게....
그냥 아무생각없이 분장실 문을열고 들어갔읍니다
분장실엔 여러팀들의 연습으로 어수선했다.
'아 지금 끝난 t.n.t의리더가 누군가?'
한쪽 구석에서 안경을낀 친구가 고개를 돌렷다.
키타지판 맨위쪽에 담배가꽃혀있었다.
그것도멋있었다.
't.n.t가아니고 The End 입니다.누구시죠?'
'내이름은 알것없고(사실 이런 외곬수적인 아이들은 첨부터 기를꺽고들어갈 필요가있음을 예전부터 알고있었던터라^*^...)
연주너무훌륭구만 ..엽전들치고는.... 자네 이름이라도 알수있을까?'
'전 김태원이라 합니다'
담배연기 자욱한...
종로의 파고다라이브콘서트 대기실 막후에서에서 그렇게 조우했다.
#(언더그라운드뮤지션)
언더그라운드밴드!
소위 록커라는 이름하에 제도권 밖에서 그들만의 라이브콘써트로
자신들의 밴드이름을 굳이 외부에 알리려고하지도않고 묵묵히 그들만의 음악만을
추구하는 록밴드들...
처음 김태원을봤을땐 까만 얼굴의 안경낀모습이 마치... 키타의神 지미헨드릭스가 떠올랐다.
(록음악의이해를 돕기위해 짧게 기술하겠습니다)
27세의 아까운나이에 요절한...지미 헨드릭스!
( 록의 여제라불렸던..제니스죠플린도 거의비슷한시기에 세상을떠났죠..아마)
[야드버즈]출신의 에릭 클렙톤이 로이부케넌 이후최고의 키타리스트임엔 분명하나 엄밀히 록 키타리스트라면 기존의틀을깨고 나타난 왼손잡이 지미의출현은 미국서도 대단했다.
(**특히 야드버즈는 제프벡, 지미페이지라는 3대키타리스트를 모두배출한 그룹)
키타가 무대전면에 나선것이다.
자신이직접 싸우스포에맞는 키타로 개조하여...
성조기를 불태우며,키타와앰프볼룸을 최대치로 올려 하울링음까지도 계산한후 그것도 모자라 끝내 파괴해버리는등등...
(산울림이 데뷔했을때 '아니벌써'라는곡에서들려주었던 와와 디스토션 사운드가 그런 음을 증폭시키는 이펙트 임!)
또한 미합중국의 국가를 록키타로연주!
(지금 국내록그룹들뿐만아니라 각국의 록밴드들도 한번쯤 조국의 애국가를 멋들어지게 록키타로 연주하는것도 이런 영향을받은것임!)
당시 미국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추앙을받던.. (지금의40~50대초반)
헨드릭스!
손가락이 보이지않을정도의스피드한 휭가링과 현란한해머링 ,휘드백 주법, 마이크에 키타줄을갈아대는 귓청을 때리는 고음,그러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블루스한 애절한멜로디...
훗날 예기지만 거꾸로 태원이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형 난 오히려 형의 상식에 놀랐어요 전혀 록을 모를것같은 이미진데...'
나중에 웃고하는 얘기가 되었지만 서로 통했던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간적으로 반하게된건 그다음 화두였다.
다음팀이 시나위란 팀인데 자기네 팀보다 더잘치고 그분의 아버지를 능가하는 속주 주법의최고라는말...
'시나위?..누군데? ...'
'우리나라 록의 대부 신중현 씨의 장남 신대철이 이끄는 팀예요'
정말 대단했다 . 얘들이 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할정도다.
그때 내가알기로 약관 19세의 나이들였던걸로 기억한다.
환상이였다.
한국 록의 미래가 보이는듯했다.
분장실로 돌아와서 태원이에게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니가말한데로' 신대철'이란 그친구 대단하다'
신중현씨 아버지의 명성을 띄어넘을만큼 얼마나 연습했는지 알것같다.
그러나 김태원 너만큼은 아니다라고...''
들[디엔드]팀의순서가끝나자 나도모르게 그냥 분장실문을열고 들어갔읍니다.
담배연기가득찬 대기실에서...
한국형 천재적 뮤지션 록커들을 만나던 환희의 순간 이엿습니다.
-이하생략-
(이후 약 일년동안 앨범없는 무명그룹을 거쳐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첫앨범이 나옵니다.)
그때부터 다시 기억해 보겠습니다.
Rock will be never die!
'희야'비와당신의 이야기'
부활을 세상에 알린 1등 공신에 해당되는 곡이다.
희야는 김태원의 친구 양홍섭이 방위병으로 복무 중일때 데뷰 앨범 낸다는 소식을 듣고 곡을 들고왔다.내기억이 맞다면 그곡은 첫번째 A트랙 타이틀 커녕 아예 빛도 못볼 곡이였다.
그때 그상황을 잘 생각해가며 글을 기록해 놓아야할것같다.
첫번째 앨범제작하기전이니까...
84년말인가?85년 초인가?
그쯤인걸로 기억된다.
앨범에 수록될 곡들은 거의 완성됏다.
다만 한두곡 밑에 깔곡으로 여유곡들을 선정할때다.
수많은 악보중에서 희야는 그냥 스쳐 넘어가는 곡중에하나였다.
'야 잠깐만 태원아?조금전 그악보좀 나좀보자'
그렇게해서 묻혀가는 곡이 내손에서 걸러진거다.
뭐 별로 중요하진 않다.
내기억이 맞을수도,,,틀릴수도있다.
내기억이 그렇단거다.
그 악보를 보고 가사를 다시 음미하는데 편지의가사가 떠올랐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손...
너는 비록 싫다고 말해도 나는 너의마음알아
'야 태원아 홍섭이가 누구냐'
그러자 죽 사연이 나왔다.
현재 방위 복무중인친구인데 애인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일부러 싫다고 절교선언했지만 그걸알기에 친구인 홍섭이가 너무 가슴아파하고 이건 실화라고...
순간 무릎을 탁쳤다.
'야 일단 편곡해보고 합주해보자'
그땐 내말이 법이였다 적어도 1집 데뷰 앨범 만큼은...
하지만 첫 독집에 김태원의곡이 아니라는게 맘에걸렸다.
부활팀들도 희야가 곡이 나쁘진 않지만 타이틀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것이다
팀의주축인 태원이의 명곡 비와당신의이야기가 버티고 있기때문이다.
일단 레코팅이 끝날때까진 내 속내를 밝힐수없었다
(그래 믹스다운까지 완전히 레코딩을 끝내놓고보자.효과음향 까지 넣어보고 결정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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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20:15 공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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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부활1집의 총 레코딩 시간은 6프로 (오전,오후,심야)단 이틀 !
부활2집은 그 10배가넘는 60프로
부활3집은 100프로
부활4집은 약 200여 프로...(설마 기본이야?했는데..정말 음악성가지고는 안됨을 알게함)
그래도 후회는없다!
좌우당간에 엄청난 장족의발전이였죠..
1프로기준으로 3시간30분사용료가 녹음실비 30만원정도로기억되고,
엔지니어비가 15만원엿나?20만원였나?
그외 점심 저녁 식사비및 커피음료 담배등등..그룹멤버와스텝 ,
스텝이라봐야 친구들이지만...
(마치 란딩비보다 오며가며 차비및 그늘집 비용이 들어가는거와 비슷함)
^^
아!우리는 밴드라 세션비가 생략 됐지만 솔로가수 제작비에는 세션비와 편곡비포함 엄청듭니다.
1집의 속전속결을 지금 시도해보라하면 어림도 없을겁니다.
이래가지고는 완성도 운운할수가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뭘 이야기하려했던가?
아!
마지막 빗소리 음향효과에 (문제이자 화제의)기타에 의한 진혼의종소리가 최종 믹싱 작업 완료되는날!
'야!태원아 !희야로간다'
다소 놀란듯
'아니 형 너무 약하지 않을까?'
여기가 골프사이트니까 쉽게 비유하자면 아이언 선택의문제였다.
당시 주변상황을 잠시 기억 정리해보면...
불과 보름전에 우연챦은 갤럽조사가 신문에 났습니다
국내 여성의 끝이름자순위 조사도였습니다
1위 압도적 희야 였고요..
2위와 3위는 기억이안나지만 숙자와 경자로 기억됩니다.
또 한가지는 빗소리와함께시작되는 김태원의기타이펙트 종소리였습니다
이종소리를 세계최초로 개발한것처럼 과대 피알한것입니다.
누굴 팔았느냐
독일이 자랑하는[스콜피온스]의 리드기타 루돌프쎙커의동생 을 희생양?삼았습니다.
(마이클 쎙커도 실패한 기타에의한 종소리 김태원이 보여주다)
스콜피온스의 루돌프쎙커는 세상에서 기타를 제일 잘치는 사람은 자기 동생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어느세계어느곳에나 과잉 피알은 존재하나봅니다.ㅋㅋ
당연히 매니아들 사이에 부활의감정은 좋지않앗을겁니다.
하지만 나도 죽느냐 사느냐
그런것에 신경쓸 여유가없었죠
심지어 부활 멤버들까지도 에이 좀 너무한데요...라는 소릴 했습니다.
ㅋㅋ
마이클쎙커와함께 또한그룹이 제물됩니다.
[라우드네스]였죠
일본 메탈 그룹의 독보적인 존재죠
뭐 지난일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일반 한국 가요대중들에겐 오히려 굉장한 피알을 해준셈입니다.마이클인진 라우드네슨지 그걸 아는 팬층은 10%도 안되니까요.
신해철이 부활 팬클럽 회장출신 이라고 알려져있지만 내사무실을 찿아왔을때는 신해철과 이호석중에서 회장역을 자청한건 이호석 이아니였나 생각됩니다
하루는 내게와서 일본 라우드네스 팬클럽회장에게 편지를보냈다고..
'뭐라고 보냈냐'했더니
'지옥으로 보내겠다'
이러는게 아닙니까?
다만 제대로 도착했는지는 확인하진 않았지만요...
반일 감정까지도 내머리속에서 회전이 됐던것입니다.
또 길어졋습니다
'태원아 잘들어라 희야든 비와 당신이야기든 지금국내 가요계에 우리가 설수있는 가능성에 아무런 보장이없다 하지만 단 1%의 확률이 높은쪽이라면 희야다'
(훗날 위탄에서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은자가 강하다는것을 재 언급하더군요.ㅋㅋ)
'국내 소녀팬들에게 자신의노래인듯한 동정심이 일어야한다'
그랬습니다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1집이 끝이면 2집은 없다.
알겠냐?했더니....
아무런 말도 없더군요.
'단 2집부터는 타이틀곡은 니맘데로정해라'
1집이 힛트해서 성공한다면...
이렇게해서 첫머리곡이 결정됩니다.
결과는 나이스샸
칩인 버디!
(1집에관한 에피소드는 이번으로 끝낼까합니다.)
이렇게 어찌어찌하여...
시간적 경제적 무엇보다도 녹음작업과정의 복잡하고 어려움까지 세세히 열거하기엔 표현의역부족이라 펌글도 대신햇습니다.
이정도에서 끝을 내도 읽으신 분들을 약간 이해하시리라봅니다.
무슨 에피소드인가?하면요
비와당신의이야기란는 노래는
원래 친구의친구를 사랑한 내용으로
전반부는 지금의곡과는 아주 상반된곡이였습니다
그녀가 말없이 웃어보일때...
(이렇게 시작되는 가사로기억됨)
세상에서 제일 슬픈것은
친구의친구를 사랑하는것
(이런가사내용입니다)(실제 김태원의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바닷가에 친구와친구애인 그리고 태원이 셋이 모래사장을 걷고이야기하면서 태원이가 그녀를 살짝 살짝 훔쳐봅니다 그녀는 모르고있습니다.
태원이는 가슴아프고,,,
먼저 숙소로 돌아간다는 말과함께
뒤돌아오며 돌아다 보니 두사람의 발자국만 모래사장위에 나란히 찍혀있고...
그 발자욱에다 속으로만 속으로만...사랑한다고 외쳤다는 겁니다.
내게 직접이야기해준 사연입니다.
25년이 지났어도 생생하네요
후렴은 같았죠
사랑해 사랑해.... .... ....
울부짖는거였습니다
'야태원아 후렴은 내비두고 전반부를 조금 바꿔봐라 싸비는 좋다'
이랬더니
아이가~ 눈이오길 ~바라듯이..
완죤히 180도로 바꿔서 후렴 싸비에다 연결 시키는데 한마디로 뿅갔습니다
그때 이놈 대단하구나! 느꼈죠
이렇게해서 비와 친구의이야기에서
비와당신의이야기로 재탄생됩니다
심지어는 희야 ,비와당신의이야기와 함께...
' 인형의부활'이란곡까지도 타이틀로 가자고하더군요.
메트로놈 200이상의 속주곡입니다
음악적으로 뭔가를 보여주자 이거죠
ㅋㅋ
(내가 약먹었냐 짜샤)
곡이야 훌륭하죠
호두까기인형의클래씨컬 록을 선보였으니까요
인형의부활이란곡도 원제는' 인형의친구'입니다
가사 중간에
[이제는 ~너~에게도 친구가 있네 인~형아!]
그래서 원제목이 인형의친구 였는데
내가 바꿨죠
그룹이름이 부활인데...
인형의부활로...
아무도 토를 달지 안더군요.
1집에관한 추억은 여기까지....
그후 2집제작후 이승철은 솔로로독립
6년후 3집제작으로 화려한 부활을하지만
새로운 싱어가 요절함으로 4집제작을 끝으로 현역 매니져를 은퇴합니다.
(이 이야기도 다른 노트에 기록 됨-생략)
어차피 1집에서 4집까지 의이야기는 책4권이상의 분량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풀어내는냐는 글쓰는 재주가 조금씩 나아짐에따라 써내려가면 될것이고...
골프스토리에 신경을 쓸려면 이쯤에서 줄여야할것같고...
80년 군을제대하고 84년에 언더그라운드출신의 무명록그룹을 가요톹텐 1위까지 올려놓은이야기는 이제 나에겐 큰의미가 없다.
데뷰앨범만 내주었지...
가요계전상에 서는건 다 그들의 노력이 더했기 때문이다.
태원인 태원이데로 천재적 키타리스트로 열심히 정진했고...
승철인 승철이데로 라이브황제 소리를 들을때가지 목에 피터져라 연습했을것이다.
96년까지의 내인연은 그정도면 만족이다.
2003년 9월에 마지막으로 골스에 올린 글로 끝맺음하고싶다.
[펌글]...2003년9월/
K-ROCK story 중에서(골스에 오래전 올린글이다)
서론 ...생략
---
나의 메니지먼트의관리부족과 경험미숙 열악한 경제적 조건,
또하나의결정적 요인이였던 그룹의 헤게모니쟁탈전!그것응 곧바로 리더김태원에대한 싱어의도전이였고 나는 많은 고민끝에 키타리스트 김태원과 뜻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만일 싱어와 코드를 같이했더라면 경제적인 부는 이루었겠지만...전혀후회는없다.
좀더 화홥을 모색치않고 해체까지이르러야했던 나의완만하지못했던 부덕함에 그저 ㅁㅣ안할뿐이다.
그후 그룹의 꽃이라할수있는 리드보컬을찿아 7년간 공백속에 김재기 라는 싱어를 픽엎하여 '소나기'라는 황순원의원작소설을 음악화한다.
<어느단편소설속에 너~는 떠오르지....>이렇게시작되는 내가 개인적으로 무척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나는그원인이 활동을할수없었던 그룹자체에 있다고생각하고 모든걸 체념했다.(그당시녹음도중 교통사고로 리드싱어 김재기마저 운명한채 보컬의자리가 비어있을때임!)
반응은 전혀 다른곡에서 터져나왔다.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할수록이터진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화력이 집중됐다.
가요톱텐사상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2주정상에올랐고 그해 10대가수에까지 선정 꿈의무대 드림컨서트까지참가했을정도다.
그리고 나의마지막 앨범 '잡념에관하여'를 끝으로 쇼비지네스계를 완전히떠난다.
자의든 타의든...
그리고 지금은 전혀 엉뚱한곳 이른바 또하나의 언더세계인 언더그린의아이들과같이 훈련하고있다.
난 학창시절부터 탁구나 당구잘치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합숙훈련을시킨뒤 매치플레이를 자주시켜던기억이난다. 조련사의기질이있는가보다.
지금은 별것아니지만 언젠간 내 아들이 대자연의 그린에서 마음껏 태양을향해 쏘아올렸던 도전의샸을 구경할날이 있다고 굳게믿고있다.
아니 한사람은 이미 알고있다.
그가 김태원이다.
난 형을 알아요 .
그리고 믿고요.
#그동안 감사했읍니다.골스의모든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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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84년 디엔드를 만나고 86년 부할로개명 96년 잠정해체할때까지
연예기획자로서의 이력이다..
또다른 메탈그룹 블랙홀의 데뷰앨범 1집등 미러클을 끝으로..
(헉 이넘들도 벌써 20년 세월참 빠릅니다)
가요계를떠났지만
전문분야가 아님 사람으로서는 혜쳐나가기가 어려웠다
부동산 막노동 노점상(붕어빵 장사)등을 전전하다....
골프라는 그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역시 연예계진츨을 도와주었던 형님의권유?
라고할까?
최초의 협력자로 동참한다.
나중에는 극한 대립까지 까지만...
형만한 아우는 없다고 내게 골프의 모든 재량을 넘겨주신다.
그리고 이제야 나 자신의 마지막 삶을 부활시켜보려한다.
단 복마전같은 쇼 비지네스계는 절대 캄백하지 않는다.
김태원 너는 알지!
너만 알면된다.
이글의 초안은 나중 근거를 위해 쓰고싶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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