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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아나키즘 운동의 이면지도자 우당 이회영 지사 전기』7아나키즘을 수용한 정통사대부 ⑵

대모달 |2011.06.25 11:48
조회 106 |추천 0

 

② 중국의 아나키스트들·크로포트킨 사상과의 만남

 

채원배(蔡元培)를 비롯해 이석증(李石曾)·오종휘(吳鍾暉) 등 중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지사를 비롯해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나 화암(華岩) 정현섭(鄭賢燮) 등 한국인 망명객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5년 우당의 권유로 북경에 온 단재는 숭문문(崇文門) 밖 보타암(普陀庵)에 거주하면서 북경대학교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며《조선사(朝鮮史)》집필을 구상했다. 또 북경의 권위 있는 신문인《중화보(中華報)》와《중화시보(中華時報)》에 글을 투고했다. 이 무렵 그는 북경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던 저명한 아나키스트인 이석증과 교유했다. 두 사람의 우의가 매우 깊었다고 한다.

 

이규창의 회고에 따르면, 단재는 류자명(柳子明)의 주선으로 이석증과 만나게 되었다. 단재는 그 인연으로 이석증의 후원을 받아 북경대학교 도서관에서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연구할 수 있었으며 생활난에 시달릴 때 관음사(觀音寺)의 중 노릇을 하면서 역사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석증·오종휘 등 중국인 아나키스트들과 재중한국인들의 만남과 교류는 이후 중일전쟁(中日戰爭) 시기를 비롯해 8·15광복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인들이 접하게 된 새로운 사조(思潮)는 바로 러시아의 혁명운동가이며 무정부사회주의(無政府社會主義) 사상을 창시한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의 사상이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相互扶助論)은 1920년대 초기에 북경에 머물던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에게 아나키즘 사상을 일깨워준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우당을 비롯해 대표적인 아나키즘 이론가인 단재와 류자명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는 1921년 1월《천고(天鼓)》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 1호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야만성을 비롯해 한·중반일연합전선(韓中反日聯合戰線)의 필요성과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필연적 패망 등의 의견을 답고 있다. 그리고 외교독립론(外交獨立論) 대신 총검(銃劒)과 폭탄(爆彈)을 통한 무력독립운동(武力獨立運動)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共産主義) 이념이 진실로 진리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무분별한 진출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공산주의에 부정적이었다.

 

이어 그는 2월에 발간된《천고》제2호에 남명(南溟)이라는 필명으로〈크로포트킨의 죽음에 대한 감상〉이란 글을 실었다. 그는 자신이 아직 크로포트킨과 아나키즘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문·중문 서적을 통해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글에서 단재는 크로포트킨이 “생물계의 상호부조의 뜻을 널리 밝혀서 다윈의 생존경쟁설과 싸웠다”며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레닌의 사상과 크로포트킨의 사상, 즉 볼셰비즘과 아나키즘이 서로 다른 것으로 인식하면서 볼셰비키당의 정치를 전제무단정치(專制武斷政治)로 표현하고 있다. 얼마 후 단재는 크로포트킨 사상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다. 그는 크로포트킨의〈청년에게 고하노라〉란 논문의 세례를 받자면서 세계 5대 사상가 가운데 석가·공자·그리스도·마르크스와 더불어 크로포트킨을 지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의 새로운 이론적 기초로 삼았다.

 

류자명은 1921년 4월 만주를 거쳐 북경에 도착했는데 이때에 우당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이미 아나키즘에 경도되어 있었다. 북경으로 오기 전 서울에서 일본의 저명한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가에[大衫榮]와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의 교수인 모리도 다츠오[森戶辰男]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은 터였다. 무엇보다 류자명을 아나키즘에 경도되게 만든 이론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이었다. 우당은 그가 아나키즘에 심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동지로 아끼고 동생처럼 돌봐줘 매우 친밀하게 지내게 되었다.

 

류자명은 크로포트킨의 생애와 사상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고백하면서 나아가 그는 크로포트킨의 대표적 이론인 ‘상호부조론(相互扶助論)’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대외침략정책을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그의 생애를 회고한《한 혁명가의 회억(回憶)》을 집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후술했다.

 

바로 이 무렵이 우당과 단재 그리고 류자명 등 한국인들이 북경에서 아나키즘을 접하게 되는 때이다. 이처럼 1920년대 초 당시 북경에 머물던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아나키스트들과의 교류와 에스페란토 교육,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통해 아나키즘 사상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 출처 ☞ 김명섭 저술『자유를 위해 투쟁한 아나키스트 이회영』역사공간 편찬(2008년 출판)

           ☞ 이덕일 저술『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웅진출판사 편찬 (2001년 출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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