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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하신 아버지...

끄적끄적 |2011.09.01 14:00
조회 142 |추천 0

가슴 깊은 고민인데

주변인들에겐 아직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익명으로 글을 올리네요.

 

 

저는 5가족구성원중 올해 30살 막내아들이고, 위로는 양친 누나 둘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비이상적으로 농경, 산업화, 정보 사회라는 3가지 패러다임이 응축되어 있는 20세기 그 한가운데

태어나신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린나이부터 시작하여 오랫동안 경제적 짐에서 벗어 날수 없는

1950년대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과 저의 부모님 세대들이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그 이후로 학업을 중단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장녀, 아버지는 차남이었으며

어머니는 집안 농사일과 살림을 거들었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후 부산으로 내려와서

그때부터 자립을 시작하였습니다.

듣기로는 초등학교 졸업후 모은돈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큰집에

농사지을 논도 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두분은 맞선에서 서로 처음 보고

두번째 만남의 장소가 지금의 외갓집에서 혼례식 날이었습니다.

그 후로 두분이 부산에서 아무것도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느 약국의 차 1대가 들어가는 공간에서 자그만 옷집을 시작했다고 들었으며

옷집 내부 다락방에 1미터 되는 낮은 공간속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그후로 과일 노점 장사를 하다가 초등학교때 그만두고

어머니는 신발공장, 아버지는 수산센터에서 새벽일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파출부 등 몇번 직업을 바꿨는데

아무래도 나가서 버는 돈이 한계가 있다보니 가사와 살림에 올인하시며 알뜰살림에 힘을 쓰셨습니다.

아버지는 수산센터에서 일을 하셨는데

겨울에는 벌이가 괜찮았으나, 여름에는 일이 없어

막노동으로 경제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네.

지지리 못살았습니다.

두분은 열심히 산다고 사셨지만

가진것 없이 3명의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셨기에

참 없이 살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실히 일을 하시면서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저희 형제들도 큰 문제 안일으키고, 나쁜짓 안저지르며 바르게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도 전액은 아니지만

형제들 전부 아르바이트 하며 열공하며 장학금 받으며 졸업했구요.

없는 살림에 5인가족구성이 크게 성공하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다들 문제 일으키는것 없이 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꾸 강조하는건,

부산에서도 좀 안좋은 동네에서 살았고, 어릴적 부모들이 없는 시간에서

아무래도 나쁜것 많이 보고 자라는 그런 환경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동네 태생들을 보면 범죄 안저지르고

바르게 성장해서 자기 밥벌이 하면 잘 컸다고 생각합니다.

 

 

큰누나는 물리치료사인데 지금은 임신을 해서 쉬고 있습니다. 태아의 미래에 행복만 있길 바랍니다.

작은누나는 20대때 무진장 열심히 일하고 알뜰히 모아서 결혼밑천도 제법 모아뒀습니다.

얼른 좋은 남자 만나서 알콩달콩 살길 바랍니다.

저는 이제 사회생활 시작했습니다.

뭐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늦게 시작했습니다.

20대 중후반에 잠깐 전공과 무관한 사진계쪽으로 젊음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잠시 접고 전공으로 돌아왔지만 사진을 완전히 놓은건 아니고 차분히 확고히 꿈을 실천해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공을 곁다리로 하는건 아니구요. 사진 이전에 저의 꿈이고

현재도 이 업종에 만족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와 집안 얘기를 주절주절 하는 이유는

어렵게 살았지만 두분의 부모님 덕분에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몇년전 사진쪽으로 스카웃 되었었는데 반대하는 부모님을 이기고

사진일을 하기로 하였는데 그쪽에서 일년가까운 시간을 지지부진 끄는바람에

일도 못하고 허송세월 보내버렸습니다.

사진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한번 저줬으니 이번에는 저도 져주면서

부모님과 저의 교집합이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29의 저는 취업으로 여기저기 찔러보고 떨어지고를 여느 취업준비자들과 같이 겪고 있었습니다.

나이도 많고 여러모로 집에서 눈치도 슬슬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오래했었지만 공부할려면 알바 접고 짧고 강하게 취업준비 하기로 하면서

60넘은 아버지 막노동 나가는것을 지켜 봐야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부모님과 밥먹을때 고개를 들지 않고 밥만 먹게 되었고,

혼자 먹는 밥이 차라리 마음 편했지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얼른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일이터졌습니다.

평소 어머니는 아버지가 늦게 귀가하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전화로 빨리 들어오라고 독촉합니다.

저는 그럴때마다 어머니가 너무 속박하시는게 아닌가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인들과 한번씩 술한잔 할 수도 있는거잖아요.

그때까지 아버지는 배운것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왔고

술도 안하시고 남들과 싸우지도 않으시는 점잖은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막노동 알바를 해봐서 아는데

현장에서는 욕을 정말 많이 사용합니다.

아버지도 평생 그런곳에서 일을 해왔는데

집에서 당신의 의지를 가지고 욕을 한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잠꼬대 할때는 욕을 엄청 많이 하십니다.

그럴땐, 아~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 언행도 조심하시는구나...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밤늦게 까지 안들어오시던 그날,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집앞에 잠깐 나오라고 할말있다고 전화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낌새가 이상했는지 들어와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통화내용으로 대충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의아해 했는데

이내 아버지가 저한테 전화해서 어머니를 집앞에 모셔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말하니 한사코 안나가실려고 하길래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니

아버지가 그제서야 집에 들어 오셨습니다.

 

집에 들어 온뒤 어머니가 무슨일인데 나오라고했는지 추긍하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으셨습니다.

저는 제 방에서 대화내용을 들으며

나이도 나이인지라 혹시 아버지가 무슨 안좋은 병에 걸리신건가 하고

심장이 두근두근뛰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가 도박을 하신거였고,

그래서 막노동 하면서 벌은 돈을 다 날렸다고 하신거였습니다.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략 300만원 정도 였는데

아니 가로 늦게 무슨 짓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그런 낌새도 못느껴봤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그동안의 비사가 하나둘씩 터져 나오는것이었습니다.

일단 굵직하게

제가 중3때 안그래도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우리집이었는데

가게가 휘청일 빚이라는 것이 덜커덩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그 일로 한동안 아버지랑 안좋으셨구요.

고등학교때 잠결에 아버지랑 어머니가 우리는 단지 같이 사는거지 이혼한거랑 마찬가지다 라고 하였습니다.

중3때 생긴 큰 빚이 원인이었던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갔었죠.

 

 

그런데 저는 그 빚이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서서 그렇게 된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노름빚이였습니다.

빚이 있어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지만

저희형제들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빚 보증을 잘못서서 아버지가 희생당한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가난이 무서운건 딴거 없습니다.

막연하게 하고싶지만 못한다는 상황들이

수많은 행동에서 은연중에 습관이 되어 버린다는것입니다.

하고싶지만 여건이 안되서 시도조차 못하는 많은 것들로 인해

좌절감을 맛보지 않기 위해

아예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줄게 되는것...

그것이 가난이 주는 끔찍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보증이라는 제도에 희생된 아버지가 가여웠습니다.

빚을 갚지 않고 도망친 있지도 않은 대상을

저는 반평생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도박을 한 건수가 그때뿐이 아니었습니다.

더 어릴때도,

그리고 제가 군대에 가 있었을때도, 아버지는 그렇게 한번씩 노름에 빠졌습니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면

좌불안석이 되고 잠도 못주무시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아버지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아버지라는 지위를 마음속에서 잃지 않기를 바라셨기에 그동안

혼자 끙끙 알아오시며 저희에게 비밀로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저도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젊었을때 도박을 하였다고 하셨는데

그때문에 할머니가 많이 힘들어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가 부산으로 내려와서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으로 알고 있었고,

할머니 성격이 많이 괴팍한데 그때부터 그러지 않았나 할 정도였거든요.

더구나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내거나 하지는 않는데

한 집안의 어른으로서 가계의 미래를 설계한다던지, 집안 어른으로서

자식 손자들이 그리고 며느리들이 무었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관심없고 그저

자기 몸만 편하고 즐거우면 만사 편한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도 도박을 제외한 할아버지를 성격부분에서 많이 닮으셔서

그런부분에 대해 사실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무책임하고 그로 인해 할머니 큰엄마가 큰집에서 고생하고

우리집에서는 아버지가 경제생활 이외적으로 너무나 무관심하여

거의 어머니가 가정의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해왔고 사회생활적으로, 인성적으로

형제들은 어머니로 부터 배웠지요.

물론 아버지가 정말 힘들게 고생하시면서 돈을 번다는것은 알지만

그런 꾸준함 말고는 일상생활에서는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배우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 꾸준함이 정말 정말 크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애증은 있지만 나는 아버지를 어떤부분에서 분명 존경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당시 어머니는 당분간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될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푹숙이고 반성하는 아버지가 안스러웠습니다.

아버지를 제 방에 모시고와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좀 실망했다.

엄마는 그동안 알고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자격을 위해 우리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참아왔다.

이제 더 이상 하지말라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스스로에 크게 실망하는 모습에 이미 벌을 받고 계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앞으로 그러지 마시라고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각서를 받았습니다.

차후에 다시 도박을 할 경우 부자 지간을 끊겠다 라는 내용의 각서였습니다.

 

각서 그 자체에 의미가 없었습니다.

단지 아버지가 도박을 그만둘 수 있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극을 주고 싶었습니다.

도박을 하면서 가정에 실망을 줬지만

그래도 지금껐 이날까지 꾸준히 일을 하며 우리를 키워 준

그 사랑은 거짓이 아닐 것이었기에

각서 내용에 제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이 각서는 아버지 아들 목숨이니 꼭 지켜 달라고,

도박 하는 순간 아들은 죽는거라고...

그렇게 자극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그날을 보내고 한동안 어머니는 아버지와 냉전이었습니다.

아버지 밥을 가끔 제가 챙겨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전처럼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편하지않았습니다.

저 역시 실망감이 너무 컸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것이 아버지의 노름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그 상황 자체에 분노가 마음속에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어머니에겐 안스러움과 감사함이 커졌습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며 아버지와 지냈습니다.

별로 대화없는 경상도 부자지간인데

아버지 의기소침할까 괜히 한번 더 말도 걸고 그랬습니다.

사실 그 시점 아버지와의 대화는 제로였습니다.

취업스트레스도 있었고, 취업못하는데 아버지 새벽에 일나가는 모습 보면

너무 미안함이 커서 말조차 못걸정도였거든요.

 

 

그 당시 저의 작은 소망은

취업합격 발표 후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아버지 저 취업했어요. 이제 바통 터치 합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을 수 없이 꿈 꾸었습니다.

당신 앞에 떴떴하고 당당하고 싶었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대기업이고, 신입 초봉도 3600정도 되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없이 그려왔던 순간을 실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 그려왔던 순간의 아버지와

지금 순간의 아버지의 무게감은 조금 틀렸습니다.

물론 당당히 말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취업을 하고 평생 부산 살던 제가 타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배우고 이곳에서 적응하고 지낼때쯤...

취업한지 3개월쯤 지났고,

아버지가 그 일로 부터 5개월쯤 지났을때,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듣게된 아버지의 노름얘기....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노름했냐고.

진짜냐고...

이 약속이 내목숨이라고 말한거 기억나냐고...

 

아버지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좀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믿었던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네. 아버지 선량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남에게 화도 잘 안내고, 꾸준히 일을 하며 살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했던 도박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했는지...

남들이 여윳돈 가지고 도박하는것과 달리

아버지가 도박에서 걸었던 돈들은

우리 가족의 미래였습니다.

가족의 미래를 그렇게 쉽게 쉽게 노름에 써버리고,

그렇게 무수한 노름에 빠져 절제 못한다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에게 각서를 받은 저는

수없이 각인시켰습니다.

이 각서는 아버지 아들 목숨이라고...

 

 

물론 도박했다고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위에 도박이 있다는것 그리고 그것을 절제하지 못한다는것...

가장은 가족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도박, 폭력, 무관심, 이 모든것....

 

 

아버지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신것은 알지만

그렇게 고생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은 대부분 아버지 스스로 만들었다고 생각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긴하지만

만약 이일로 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한다면

저는 절대 말릴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오랜시간동안 마음고생 다하면서 우리 가족이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항해사 역할을 함과 동시에 할머니도 성심성의 다해 그 괴팍한 성격을 맞춰 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지금 이혼하게 된다면

정말 답없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미래 경제를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능력도 이제는 없습니다.

막노동으로 살아왔는데 몇년 더 하겠습니까. 환갑이 지났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아버지 어머니 관계는 다시 호전된것 같습니다.

그동안 만성이 되었는지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에 큰 실망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 할머니 생신때 가족친지 모였을때 아버지 피해 다녔습니다.

얼굴 마주치고 몇마디 주고 받다보면

저도 억눌린것들이 터져버릴것같았습니다.

이번 휴가때 역시 부산내려갔을때 최대한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도박 사건 이전의 아버지는 저에게 애증의 대상입니다.

일부분 닮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장으로 그 책임을

묵묵히 소나무처럼 바위처럼 지탱해온 사랑하는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에게 아버지는 혼돈의 대상입니다.

지금은 사랑하는지 증오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믿어온 아버지에 대한 가치관이나 정의는

대상을 잃어 마음속 깊이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걸까요.

앞으로 또 얼마나 노름으로 속을 썩일까요.

할아버지는 치매 걸리신상태에서 매일매일 노름 돈 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런걸 생각하면 그냥 이렇게 말도 안하고 지내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는 지금 이렇게 남남처럼 지낼려고 하는 조짐이

더 커질까 전전긍긍입니다.

 

이번 추석때 또 가족들이 모이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들 목숨이라고 그렇게 다짐 받아놓은 그 약속을 어긴 아버지에게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족 친지들에게 마음터놓고 묻고 싶어도,

사람이라는게 인식이 한번 박혀버리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고 좋은 일도 아니기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도 못하고

답답하던차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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