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2011-09-21]
1970~80년대 급속성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건실한 편이다.
한국은 지난해 6.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 터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앞으로 성장 전망도 어둡지 않다. OECD에 따르면 중기(2010~201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3%로 칠레(4.8%)와 이스라엘(4.4%)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장기(2016~2026년) 성장률 전망치가 2.4%로 크게 낮아졌다고 하지만 9위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성장에 냉담해졌을까. 대다수 한국인들은 경쟁 과정에서의 '게임의 룰'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취에 대한 갈망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회'라고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엠브레인과 함께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인의 인생목표를 방해할 요소를 꼽으라'는 질문(복수응답)에 "노력해도 성공이 어려운 사회"라는 답변이 43.3%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금전 부족이라는 답변이 39.4%, 학연ㆍ지연 등 사회적인 차별이 36.5%로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반면 능력부족(22.1%), 시간부족(9.8%), 대인관계 미숙(9.4%) 등 내부적 요소로 보는 비중은 낮았다. 최인수 엠브레인 대표는 "특히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인식했다"고 말했다.
성공에 대한 인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금전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4.6%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인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56.9%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국민 83.5%는 인맥을 활용하면 목적을 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30.1%는 목적을 위해 학연ㆍ지연ㆍ혈연 관계를 활용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고, 응답자 13.6%는 목표를 위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적이 있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인식 저변에는 포획이론(capture theory)이 깔려 있다. 특정 이익단체가 전문성이나 안전을 핑계로 정부를 설득해 불필요한 규제 장치를 확보하고 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불공정 행위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 많다는 방증이다.
보이지 않는 규제는 곳곳에 있다. 작게는 자영업 창업에 대한 규제부터 크게는 영리의료법인, 로펌 설립까지 넓고 다양하다.
네일아트숍을 열려면 이와 무관한 이미용사자격증이 필수라든지, 국기원 공인 태권도 관장이 되려면 4단 이상, 사범자격증,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에선 로스쿨 졸업 후 동기들끼리 뜻을 모아 로펌을 설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5월 변호사법 개정으로 로펌 설립 요건이 '구성원 5명 중 10년 이상 경력자 1명'에서 '구성원 3명 중 5년 이상 경력자 1명'으로 완화되긴 했지만 진입 장벽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변호사들 반대가 심해 이마저도 간신히 얻은 성과"라며 "이런 불필요한 규정은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료법인 설립 또한 의사자격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규제를 철폐하면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생산성도 향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산업이다. 저비용 항공사 설립 직전만 해도 기존 항공사들은 안전을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하지만 2004년 저비용 항공사 도입으로 경쟁에 불이 붙었고 항공산업 생산성도 높아졌다. 능률협회에 따르면 2004년 8만4400원 꼴이던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김포~제주노선 운임은 지금껏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항공사가 창출하는 일자리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기획취재팀 이진우 차장·이지용·강계만·이상덕·최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