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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여왕’ 연수영 」4고구려 수군의 승리 ⑷

개마기사단 |2011.10.01 19:41
조회 88 |추천 0

● 주필산전투(駐馝山戰鬪)

 

전황이 갈수록 급박해지자 대막리지(大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역전의 노장인 병마원수(兵馬元帥) 고정의(高正義)로 하여금 상비군 15만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안시성을 구원하는 한편 요동성과 백암성·개모성 등을 탈환하도록 했다.

 

대군을 이끌고 출전한 고정의는 북부욕살(北部褥薩) 고연수(高延壽)에게 좌군 군주(軍主)를, 남부욕살(南部褥薩) 고혜진(高惠眞)에게 우군 준구를 맡겨 각각 5만명씩 거느리게 하고 자신은 중군을 맡아 역시 5만명을 거느리고 요동벌로 진군했다.

 

이 15만명의 군사 가운데 2만명은 말갈(靺鞨)에서 달려온 지원군이었고, 3만명은 전에 요동성을 구하려고 연정토가 이끌고 갔던 국내성의 군사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 응원군은 비록 대군이었지만 처음부터 지휘계통이 일사분란하지 못하고 합동작전 훈련이 부족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당황(唐皇)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비사성에 있는 장량에게 전령을 보내 건안성을 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친히 대군을 지휘하여 안시성으로 향했다.

 

심양 아래에 있는 해성시를 빠져나와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강폭이 40~50미터 정도 되는 강이 나오는데, 이것이 해성강이다. 해성강 주변에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 높이 150~200미터쯤 되는 산들이 여럿 있다. 산봉우리를 여러 개 연결해서 능선을 따라 지어진 토성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안시성(安市城)이다.

 

안시성은 동서로 2.5리, 남북으로 1리 정도 되며 둘레가 6리 에도 못 미치는 성으로 북으로는 해성강, 서쪽으로는 팔리하를 해자로 한 높은 절벽으로 되어 있고, 동남쪽으로는 대양하, 초하 등 천연의 해자로 둘러싸인 자연적인 요새지이다. 성내에는 4개의 문이 있는데, 이중 서문이 정문이다.

 

태종의 어영군(御營軍)은 안시성 북쪽 사십리쯤 되는 곳에 영채를 세웠다. 그 때에 안시성을 구원하기 위해 고구려의 15만 대군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태종은 장수들과 함께 언덕 위로 올라갔다.

 

겉으로 보기에 15만 고구려군의 위용은 대단했다. 5만 정도의 기병이 선두에 섰으며 약 2만 정도의 말갈군이 그 뒤를 이었다. 계속해서 약 6만 정도로 추산되는 보병이 5백승 정도 되어 보이는 전투용 수레와 함께 행진하고 있었다. 그 행렬은 무려 사십여 리가 넘어 보였다. 수백 개의 깃발이 펄럭였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모두 평양에서 파견한 정예병인 것 같았다.

 

태종은 너무나 놀라고 겁이 나서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좌우에서 부축해 주어서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서둘러 영채로 돌아왔다.

 

막사로 돌아와서 척후병의 보고를 받았다.

 

“고구려군은 태대형 고정의가 인솔하는 정예병으로 말갈군을 포함한 기병이 7만, 보병이 8만입니다.”

 

태종이 옆에 있는 장손무기(長孫無忌)에게 물었다.

 

“고구려의 고정의는 어떤 인물이오?”

 

“고정의는 여러 전투에 참가한 백전노장으로 생각이 깊고 용병술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고연수와 고혜진처럼 욕살이 아니고 중앙정부의 장군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군사 장악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고정의가 병마원수로서 태대형의 관등에 있으며, 그 밑에 욕살이 있는 것이라면 욕살이 태대형의 지시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

 

“고구려의 욕살을 맡은 자들의 관등은 5위와 7위에 불과하지만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자기들이 직접 군사를 관할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대원수도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고연수와 고혜진은 유서 깊은 귀척 집안 출신으로 어려움 없이 욕살 지위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고정의가 비록 대원수라는 높은 지위에 있다하더라도 우습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한참 잠자코 듣고 있던 당 태종은 회심(回心)의 미소를 짓고 다시 물었다.

 

“그럼 두 욕살은 어떤 사람인가?”

 

“첩보에 따르면 성격이 괄괄하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용력(勇力)만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들을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리면 되겠군.”

 

“폐하께서 혹시 좋은 전략이 있으신지요?”

 

“짐이 보건대 고연수와 고혜진이 택할 방법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군사를 이끌고 오면 곧장 안시성으로 달려들어 성과 산 중간에 튼튼한 진지를 구축하여 성안의 군량을 먹으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방도다. 고구려의 두 욕살이 이 방도를 택한다면 우리로서는 골치 아프게 되는 셈이니 상책이라 할 수 있겠지. 둘째는 성을 구한다는 핑계로 성안의 군사와 백성을 데리고 우리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는 것이니 이것은 중책이라 할 수 있다. 셋째는 제놈의 지략과 재능을 헤아리지 않고 감히 우리와 맞서 싸우려고 달려드는 것이니 이것이 하책이라 할 수 있다. 그대들은 모두 두고 보라! 짐이 보건대 고구려의 두 욕살은 틀림없이 하책을 택할 것이니 어찌 짐에게 사로잡히지 않겠는가?”

 

장손무기가 태종을 살짝 띄우며 아첨했다.

 

“폐하의 신산(神算)은 감히 저희가 따르지 못하겠사옵니다!”

 

이때 고구려 지원군의 총대장 고정의와 북부욕살 고연수, 남부욕살 고혜진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다. 고정의는 총대장으로서 두 욕살을 불러 놓고 훈계(訓契)를 했다.

 

“당주 이세민은 수나라의 양제와 달리 전쟁을 잘 아는 자이다. 그러니 우리는 맞받아 싸우지 말고 적을 교란시키면서 시일을 끌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곧 요동의 매서운 추위가 올 것이다. 그러면 적병들은 식량이 떨어져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까지 참았다가 후퇴하는 적을 쫓아 요하를 건너 임유관까지 쳐들어갈 수 있다. 만약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면 만리장성을 넘어 장안까지도 공격할 수 있으니 두 욕살은 자중하기 바란다.”

 

그러나 피가 펄펄 끓는 두 욕살이 노장의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원수께서는 너무 겁이 많으십니다. 우리는 정예병만 15만 대군입니다. 저 당나라 오랑캐 놈들 따위는 단칼에 요절낼 수 있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우리는 우리 성읍에서 차출한 군사들만으로도 적을 치겠습니다.”

 

고연수가 고정의의 충고에 반항하자 고혜진도 맞장구를 친다.

 

“고연수 장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당군을 쳐부수라고 우리가 평양성에서 출발했지, 도적들을 보고 피해 다니라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고정의가 계속 만류를 했던 관계로 두 욕살은 말을 들은 척하고 자리를 떴다. 자리를 뜨면서 고연수가 고혜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수 말대로 할 것 없소. 우리는 나가서 벌판에 진을 칩시다. 그까짓 당나라 놈들 무서워서 산기슭에다 영채를 세우는 것은 겁 많은 늙은이나 할 짓이오.”

 

두 욕살의 대화내용을 들은 군졸 하나가 고정의에게 달려와 보고하자 고정의는 크게 놀랐다.

 

“두 젊은 장군이 적의 계략에 빠지기 쉬울텐데, 선봉장을 맡겨서는 아니 되겠다.”

 

그러나 이미 고연수와 고혜진, 두 장수는 자기 군사들을 이끌고 영채를 뽑고 앞으로 십 리 더 나아가서 평야지대에 영채를 세웠다.

 

고정의는 이 소식을 접하고 크게 탄식을 했다.

 

‘이 두 장수가 일을 망치는구나. 그렇다고 해서 나도 같이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고정의는 수하 장수들을 불러 절대로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라고 엄명하고 집안 단속을 철저히 했다. 고정의는 또 여차하면 출동할 수 있게 군사들에게 만만의 준비를 시켰다. 

 

태종은 고연수가 이끄는 고구려군의 선봉부대가 본진과 십리정도 차이를 두고 평야지대에 영채를 세웠다는 보고를 듣자 크게 기뻐했다. 이는 고구려군 수뇌들끼리 반목이 심하다는 증거였다. 태종은 즉시 돌궐족 출신의 장수 아사나두이(阿史那杜怡)에게 명령했다.

 

“장군은 돌궐족 기병 일천을 이끌고 고연수의 부대를 공격해라. 싸우다가 패하는 척하면서 안시성 동남쪽으로 유인만 하면 된다. 그 다음 일은 짐이 알아서 처리하겠다.”

 

아사나두이가 돌궐족 기병들을 거느리고 고구려군에게 싸움을 걸었다. 고연수는 즉시 말갈족 기병들을 출동시켰다. 말갈족 병사들은 말 위에서 갑옷도 입지 않고 창을 휘두르는 돌궐족 기병들을 향해 활을 쏘아댔다. 말갈족 병사들의 화살에 맞아 돌궐족 병사들이 여지없이 쓰러졌고, 아사나두이는 황급히 군사들을 후퇴시켰다. 가뜩이나 당군을 깔보고 있던 차에 서전에서 승리하자 고연수는 기고만장하여 안하무인이 되었다. 그는 자기 휘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안시성 근처까지 다가갔다. 고연수는 안시성에서 동남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산기슭에 다시 영채를 세웠다. 기회를 보아서 안시성의 군사들과 합류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고혜진이 이의를 제기했다.

 

“고정의 원수의 허락도 없이 본진보다 너무 앞서 온 것 아닙니까? 후면과 좌우가 모두 산인데 만약 당군이 공격해오면 퇴로는 저 강밖에 없지 않습니까?”

 

고연수가 크게 웃고 나서 말했다.

 

“당군은 오늘 참패를 당했소. 저들은 우리 군사들의 용맹을 보고 겁을 먹었을 것이오. 그러니 어찌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이오? 더군다나 고정의 원수 휘하의 대군이 삼십리밖에 있는데 어찌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이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술이나 마시고 잠이나 잡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안시성으로 진격해서 양만춘 장군과 합류합시다.”

 

고혜진도 고연수가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술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고구려군 선봉부대가 서전의 승리로 나태해지자 태종은 좋은 기회라 여기고 당군 장수들에게 숨가쁘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이세적(李世勣) 장군은 보병과 기병 1만 5천을 이끌고 산 서쪽 고개에 진을 치고 있다가 신호와 동시에 산 밑으로 내달아 고연수의 군사들을 척살하라! 우진달(牛進達) 장군은 궁수 1만명을 줄 터이니 고구려군 후면 협곡에 매복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나와서 화살을 날려라!”

 

이때 장손무기는 태종의 전술이 고연수의 선봉부대에만 국한되어 있어서 매우 불안해했다. 태종이 신이 나서 군사를 이끌고 북쪽 산으로 출병하자 따로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장손무기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아마도 고정의의 본진을 간과하고 계신 듯하오. 그러니 우리도 준비를 해야겠소이다. 참모인 양홍례(楊弘澧) 장군은 군사 십만을 끌고 동남쪽에 진을 치고 있다가 만약 고정의의 주력군이 고연수의 부대를 구원하러 오면 달려 나와 맞아 싸우시오. 유홍기(劉鴻基) 장군은 나와 같이 기병 일만과 보병 십만을 거느리고 서남쪽에 진치고 있다가 상황을 보아서 접응하도록 합시다. 고연수의 부대는 쉽게 깨질 것 같으나 고정의의 본군은 그리 만만치가 않을 것이오. 이번 전투가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오.”

 

이에 명을 받은 당장(唐將)들은 부산히 움직였다.

 

한편 고연수가 기병을 이끌고 너무 앞서 안시성 동남쪽 되는 산기슭에 영채를 세웠다는 보고를 받은 고정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즉시 부하 장수들을 불렀다.

 

“고연수 장군의 선봉부대가 영채를 세운 곳의 밑은 넓은 평야 지대인데 이곳에서 대전투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당나라의 장손무기는 우리 고구려의 주력군이 선봉부대를 구원하러 오리라 생각하고 틀림없이 길목에 군사를 배치했을 것이다. 이 주위는 평야지대라 매복도 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철기병과 함께 경기병을 출동시켜 당나라 군사들을 그대로 내쳐야 한다. 온사문(溫沙門) 장군은 날이 밝으면 철기병 1만과 경기병 3만을 이끌고 출격해서 당군들을 척살시키면서 이들의 대오를 무너트려라. 너무 깊숙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각궁을 휴대케 해서 어느 정도 적의 대오가 무너지면 거리를 두고 화살만 날리도록 하라. 말갈족 출신인 섭호수(葉豪秀) 장군은 말갈족 기병 일만을 이끌고 온사문 장군의 뒤를 바짝 쫓되 온사문 장군이 당군과 싸우게 되면 즉시 다른 길로 우회를 해서 산 쪽으로 올라가라. 가는 길에 조그만 다리가 나타날 것이다. 만약 다리가 파괴되었으면 무리하게 강을 건너려 하지 말고 군사를 되돌려 당군들을 척살시켜라. 만약 다리가 온전하다면 다리를 건너 고연수 장군의 선봉부대를 구출하도록 하라. 뇌음신(惱音信) 장군은 병차(兵車) 오백승을 휘몰아 벌판의 남쪽에 일렬로 배치를 하고 당나라의 진영으로 쇠뇌와 불화살을 날려라. 나는 경기병 삼천을 끌고 벌판 언덕에서 지휘를 하면서 형편을 보아 행동을 취하겠다. 명림운압(明臨云押) 장군은 보병과 궁노수 삼만을 이끌고 나를 따라오되, 상황을 보아서 접응하라.”

 

병차는 본래 말을 잘 타지 못하는 병사들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전차(戰車)라고도 불린다. 평지에서 전투에서는 유용하나, 산지가 많은 고구려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당군과의 전쟁에 대비해 비밀리에 만들도록 했던 것이다. 병차는 고구려에 흔한 수레를 약간 변형한 것으로 3인이 한 대에 탈 수 있었다. 한 사람은 말을 몰고, 두 사람은 좌우에서 활과 쇠뇌를 쏘게 되어 있다. 3사람과 화살이나 도끼 등의 장비를 싣는 수레인 만큼 중량이 무거워 말 두필이 병차 한대를 끌게 되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사병보다 더 쉽게 활을 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평지 전투에서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고정의의 지시를 받은 장수들은 각자 자기의 진영으로 돌아가 부관들에게 출동 준비를 하도록 하고 아침 일찍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 지시받은 대로 출동했다.

 

다음날, 고연수는 서쪽 산등성이에 당군이 매복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서둘러 부하들을 깨워 전투태세를 취하도록 했다. 

 

“산 서쪽에 당군이 매복하고 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닌 듯하니 우리가 먼저 공격한다!”

 

고연수는 아직 잠이 덜 깬 군사들을 거느리고 서쪽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당군이 북쪽 협곡에서 튀어나오자 고연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군사를 두 패로 쪼개어 맞붙어 싸우게 했다. 이때 북쪽 산 위에 있던 4천여명의 당나라 군사들이 전고(戰鼓)를 치며 달려나왔다. 고구려 군사들은 무수한 당군의 깃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서 당군의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면서 함성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수십만의 당군이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전의(戰意)를 상실했다. 당군을 맞아 싸울 생각은 도저히 못하고 무조건 도망치기에 바빴다. 산에서 내려오는 당군을 피해 고연수의 고구려군은 밑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산 아래에도 당군이 득시글거렸다.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 왕군악(王君愕)이 이끄는 당군이 퇴로를 막자 고구려군은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다. 왕군악이 독전(督戰)중에 어느 고구려 군사가 내지르는 장창에 찔리며 마하(馬下)에 떨어져 전사하자 당군 병사들은 당황하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고연수는 이제는 됐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어느 틈에 장손무기가 거느린 1만의 당나라 기병이 나타나 고구려군을 포위했다.

 

고구려군은 당군과 치고 받으면서 1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간신히 산기슭으로 다시 올라가 산을 등지고 진채를 세웠지만 장손무기의 군대에 의해 다시 포위되었다. 이때에 온사문 장군이 거느린 고구려 기병 4만명은 길목을 지키고 있는 양홍례 휘하의 10만 당군을 선제공격했다. 당군은 고구려 기병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전투가 개시된 지 한 시진도 못 되어서 온사문의 고구려군은 당군을 1만명 이상이나 척살하였다. 

 

당군은 대부분 농민 출신의 보병이었는데, 이에 반해 고구려군은 고도로 훈련된 일당백의 기병이었다. 또한 날렵하지만 강하고 질긴 갑주를 입고 있어서 당군의 칼과 화살이 별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계속 당군이 쓰러져 나갔지만 양홍례는 후퇴를 명할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물러나면 고구려 군사들은 곧장 산기슭으로 올라가서 고연수의 군대와 합류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산에 있는 태종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양홍례의 당군은 무수히 죽어나갔다. 이때 말갈족 장수 섭호수가 이끄는 1만명의 말갈기병은 이 치열한 싸움터를 우회해서 고연수가 있는 산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 서남쪽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장손무기가 즉시 기병 1만과 보병 10만을 고연수가 있는 산기슭으로 출동시켰다. 안시성 십여 리 밖 남쪽의 벌판에서는 때 아닌 기마 경주시합이라도 벌어진 것 같았다. 말갈기병들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산기슭과 가까운 데 있었던 장손무기의 기병들이 더 빨랐다. 장손무기의 기병들이 막 강을 건넌 후에야 비로소 말갈기병대가 강가에 도착했다. 당군이 화살의 유효거리를 넘어서자, 말갈기병대는 하는 수없이 강에서 물러서야만 했다. 이때 말갈족 장수 섭호수는 저 멀리서 대열에서 흩어져 갈팡질팡하는 당나라 보병의 모습이 보이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 놈들이라도 박살을 내리라 하고 기병대를 끌고 달려가서 그대로 당군을 쳐 죽이기 시작했다.

 

농민병 출신의 당나라 보병들이 재빠른 말갈기병을 어떻게 당하리요? 겁부터 먹은 당군들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나기 급급했다. 말갈 기병들은 말을 자유자재로 몰면서 당군들을 무조건 찌르고 베었다. 한 식경이나 지났을까 들판에는 말갈기병에게 죽은 당군의 시체가 까맣게 널렸다. 이때 죽은 당군은 3만이 훨씬 넘었다. 산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태종은 치를 떨었다.

 

태종은 주위에 말했다.

 

“앞으로 내 발에 걸리는 말갈놈들은 내 무조건 산채로 묻으리라.”

 

한편 양홍례의 당군은 계속 고구려군 기병들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손무기 휘하의 당나라 기마병들이 산기슭으로 쳐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후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그때 당군은 2만여명이 희생된 직후였다.

 

멀리서 전투광경을 바라보던 고정의는 북을 쳐서 온사문 휘하의 기병대를 뒤로 물려 쉬게 한 후 뇌음신이 이끄는 병차 부대를 출동시켰다. 두 마리의 준마가 끌고 달리는 고구려의 병차들은 평야에서 그 우월성을 유감없이 증명해 보였다. 병차에 탄 고구려의 궁노수들은 사정없이 궁시(弓矢)를 쏘았다. 벌 떼같이 달려드는 고구려의 병차들에게 당군은 속수무책으로 대오가 흐트러지면서 화살에 맞아 죽거나 수레바퀴에 치어 죽어갔다.

 

고정의가 광활한 벌판에서 벌어지는 신나는 전투광경을 즐기고 있는데, 옆에서 명림운압이 고정의를 일깨웠다.

 

“원수님, 우리가 너무 여기서 시간을 지체한 듯합니다. 빨리 고연수의 부대를 구해야 합니다. 저라도 보병대를 이끌고 출동할까요?”

 

고정의는 잔잔한 미소를 띠면서 명림운압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아군이 적군을 얼마나 죽인 것 같소?”

 

“온사문 장군의 군사들이 당군을 죽인 게 2만이고, 섭호수 휘하의 말갈족 기병이 약 3만, 그리고 뇌음신 장군의 병차 부대가 약 2만을 죽여 도합 7만 정도의 당군이 전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군의 피해는 얼마 정도 될 것 같소?”

 

“아군의 희생은 5천이 채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소. 고연수의 군사도 생각해야지요. 아마도 1만 정도는 죽었을 것이오. 우리는 이미 대승(大勝)을 거두었소.”

 

“아니, 지금이라도 진격해서 강을 건너면 고연수의 군대를 전부 살릴 수 있습니다.”

 

고정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먼 산만 바라보다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고연수의 부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야 낸들 없겠소, 하지만 지금 고연수의 군사들은 당나라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소. 비록 우리가 당군을 7만 명을 죽였다고 하나, 저들의 군대는 아직도 우리보다 두 배 이상이오. 고연수의 군사를 다 살리기란 어렵소. 지금 공격을 하다면 지형조건이 우리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아군의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오.”

 

“그러면 포기하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래야 할 것 같소이다. 더구나 고연수는 나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진격했소. 그러다 이세민의 계략에 빠졌소. 물론 우리는 숱한 희생을 치루면, 그를 구출해 낼 수도 있소. 그러나 구출한 다음이 문제요. 군법에 회부하면 참수를 시켜야 하나 그들은 남부와 북부의 귀척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또한 태왕의 총애를 받고 있소. 이들을 명령 불이행으로 처단한다면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니라 대막리지를 원망하게 될는지도 모르오. 그러니 나도 함부로 그들을 참수시킬 수는 없소.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끝까지 싸우다 죽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오. 그렇게 해야 우리 고구려군의 기강이 바로 서지를 않겠소?”

 

명림운압은 조용히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고연수는 언덕에서 혼전(混戰)이 일어나고 있는 대평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구려군이 당군을 엄청나게 도륙하는 것을 보고 고연수는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럼 그렇지. 우리 대원수께서 저 당군들을 신나게 물리치고 계시는군. 저 당군들만 도망치고 나면 이리로 와서 우리를 구해 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고연수는 용기가 되살아났다. 그러나 전투가 어느 정도 끝나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고구려 군사들은 물러갔다. 고연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강을 건너 와서 포위를 풀어 주어야 남은 군사를 끌고 고정의의 주력군과 다시 합류할 수 있는데 강을 건너지 않고 그대로 군사를 물리는 것을 보니 위험에 빠진 자기의 군대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당장 고혜진을 불렀다. 고혜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고혜진이 말문을 열었다.

 

“대원수께서 우리에게 몹시도 진노하고 계신 듯합니다. 쳐들어 오지를 않고 군사를 물리니 말 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 군사들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고연수가 말했다.

 

“대원수가 우리를 버린 듯하오.”

 

“마지막으로 모든 군사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는 있으나 배가 고파서 무슨 힘이나 있겠습니까?”

 

고연수는 한동안 고민한 후 말했다.

 

“지금 우리가 싸워봤자 당군 몇 명 죽이기도 어렵소. 아까운 우리 군사들만 죽을 것이오. 그럴 바에 차라리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소?”

 

고혜진은 벌판을 멀거니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소. 평양에 있는 일가친척과 처자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의 법이 엄한데 비겁하게 우리 한 목숨 살자고 나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다 장렬히 죽는 길을 택합시다.”

 

고혜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니 고연수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고연수는 군사를 점호했다. 처음 3만 명으로 시작한 선봉대가 이제는 겨우 절반 정도만 남아 있었다.

 

군사를 사열시킨 후 고연수는 일장연설을 했다.

 

“지금 우리는 당나라 장수 이세적과 장손무기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 지금부터 우리는 산 이래로 치고 나가 강을 건너 저 벌판으로 진격해 나아간다. 만약 강을 건널 수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이고 강을 못 건너면 죽는다. 생과 사는 모두 여러분에게 달렸다. 당군을 두려워할 것 없다. 걸리는 놈들은 그대로 칼과 창으로 그냥 찌르고 베어라!”

 

고연수는 먼저 일진의 군사들을 산기슭 아래로 내 보냈다. 막판에 몰린 고구려 군사들은 용감했다. 죽기 살기로 당군을 찌르고 베며 강가로 나아가니 당군들은 겁을 먹고 비켜났다. 군사들 약 반쯤 영채에서 나갔을까 이때 갑자기 포성이 들리더니 좌우 협곡에 매복하고 있었던 태종이 이끄는 군대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갑작스럽게 출현한 태종의 군사 때문에 고연수의 고구려군은 자연히 대오가 끊어졌다. 여기서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어느 편이 승자인지 우열을 가리기도 힘든 싸움이었지만 하루 종일 굶은 고구려군이 어찌 당군을 당해 낼 수 있으리요? 이때 고구려군은 당군을 약 6천 정도 죽였다. 고구려군은 약 1만 정도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결국 고연수와 고혜진은 군사 6천 8백 명과 함께 당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 안에는 말갈족 병사 3천 3백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이 안시성 외곽 동남쪽에 있는 무명산 주위에서 벌어진 싸움으로 그 유명한 주필산전투였다.

 

전황을 보고받은 태종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태종은 장손무기를 가만히 불렀다. 당시 장손무기가 사초(史草)를 담당하고 있었다. 태종이 가만히 속삭였다.

 

“요동성과 백암성까지는 좋은데 이번 주필산전투에서 우리 당군의 피해가 너무 큰 것 같다. 이래서 내가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 그러니 그대가 알아서 조치하도록 하라.”

 

장손무기는 눈치가 빠른 자이었다. 그래서 그는 종군사관(從軍史官)을 불러 사초에서 아예 고정의의 고구려군이 당군 7만을 죽인 전과를 기록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태종은 포로로 잡힌 고연수와 고혜진을 달래어 당군으로 편입시켰고, 말갈족 병사 3천3백 명은 모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을 시켜 버렸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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