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너구리가 퍼온이야기 [뭐라구요? 마지막이야기]

너구리 |2011.11.23 09:52
조회 12,178 |추천 38
웃대 게시판 하드론님이 작성하신 작품 입니다.
 
====================================================================================

"그만 얘기 하입시더."



"아저씨!!"



애써 외면하며 뒤돌아서려는 그의 어깨를 나도 모르게 잡아챘다.




"아저씨, 얘기해 봐요. 아저씬 뭔가 알고 있죠?"



"난 할 얘기 없슴더. 당신 원장한테나 물어보소"




남자는 급하게 담배를 끈 후 후다닥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아저씨! 아저씨!!"



나는 급하게 그를 불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그 치기공 직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업무가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


항상 제일 먼저 퇴근하는 생물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는지 일어나는 시간이 항상 일정했다.


1시간 쯤 지나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늦게 가려나 보군. 그러지 말라니까. 나 먼저 가네."



원장은 걸음을 학원문쪽으로 향했다.




"원장님. 왜 저에게 거짓말 하셨습니까?"



나의 뜬금없는 물음에 원장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입니까?"



원장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인가?"



"치기공 직원한테 들은 게 있습니다."



"뭐를?"



"여기가 그 교회 자리라면서요?"



원장은 잠시 나의 얼굴을 살폈다.



"이런.....마스크 쓰고 이빨이나 갈고 있을 일이지 쓰잘데없는 말을 했군."



원장은 옆의 상담용 의자를 끌어내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나?"



"어디까지 진실입니까? 알고 싶습니다."



"말해주면 나에게 무엇을 해줄텐가?"



"예?"



"김선생. 세상은 주고받는거야. 공짜라는게 없거든."



"제가 뭘 해주길 원하십니까?"



"학원을 떠나게. 조용히 말야."



"예? 학원을 그만 두라구요?"



"그래. 그러면 얘기해주지."



"좋아요. 그러죠. 저도 이 학원에 오래 근무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원장은 나의 대답을 듣더니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말한건 다 사실이야. 귀신 얘기와 교회 자리만 빼놓고."



"모두 다요? 여자가 죽은 것두요?"



"그래. 모두 다...."



"그런데 왜 귀신얘기와 교회 자리만 거짓말을 하신겁니까?"



"이 자리가 그 교회자리라고 하면 자네라면 근무를 계속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애초부터 그 귀신 얘기같은 거짓말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것 아닙니까?"


"그걸 말하고자 하는거야. 어차피 자네와 생물 선생은 이번 여름방학이 끝나면 나가야돼."



"뭐라구요?"



"난 여기에 교회를 차릴거거든."



"교회를 하신다구요? 목사 안수라도 받으셨어요?"



"물론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어. 돈도 좀 벌어놨고. 시작만 하면 되지.


정말 오랜 기다림이었어. 5년 동안 기다린 계획이니까. "



"목사를 하신다는 분이 담배나 피우고 그게 뭡니까?"



"담배? 후...이제 끊으면 되지 않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원장은 담배맛을 더 즐기는 것 같았다.



"치기공 사람들에게 입막음 하셨죠?"



"무슨 입막음?


그냥 모른 척 할 뿐이야.


웃긴게 뭔지 아나?


나도 처음엔 죽은 여자 얘기가 퍼지는게 두려웠거든?


그런데 독을 이용해서 병을 고친다고 해야 하나?


치기공 회사와 우린 적당히 타협점을 찾은거야.


그 사람들도 엄청 싼 값의 임대료를 내고 있거든.


건물주가 세를 올릴 만한 재계약 시점이 되면 여자 얘기와 귀신 소문을 퍼뜨렸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귀신얘기까지 첨가하면 금상첨화 아닌가?


건물주는 감히 세를 올릴 엄두도 못냈지.


두 달 뒤면 재계약 해야 하는 시점인데 자네에게 너무 일찍 소문을 퍼뜨린것 같군."




"정말 기가 막히게 장사를 하시네요."



나는 원장의 말에 혀를 찼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사업하는 사람에게 한 번의 술값 백만원은 아깝지 않지만 매달 나가는 고정비 백만원은 아까운 거라고.


치기공 회사는 그야말로 대박이었지.


걔들이야 오더 따서 제작만 해주는 사람들이니까 임대료만 싸면 됐거든.


그런데 학원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좀 있었지.


그러나 걱정할게 아니더라구.


우리 소규모 고액 학원이다 보니 다들 입소문으로 들어오게 돼.


학원생이 많지 않아도 되거든.


그리고 어차피 나의 계획은 교회를 차리는 거였어."




"대단하시군요. 말이 안나올 정도로.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싶었습니까?


정직하지도 않으신 분이 게다가 목사라니요?"



"정직하지 않다고? 천만에 나는 옆의 치기공 회사와 더불어 특이한 협상 방법을 펼쳤을 뿐이야."



"제가 건물주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라도 한다면 어쩌실겁니까?"



원장은 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하하.....건물주는 상관없어.

이곳에 계약하러 오는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들었느냐 안들었느냐의 문제니까.

이 건물을 다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다 하여도 몇 년간 약효가 지속되고 있을걸?

그리고 난 이곳에 있을거고..."



나는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가장 정의롭고 정직해야 될 직종에 종사하려 한다니...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습니다."



"그래? 맘대로 하게. 대신 월급은 남은 기간을 제하고 지급하겠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을 하나둘씩 챙겼다.



"천천히 챙겨. 내일해도 되지 않나? 우리가 원수지간도 아니고..."



원장은 담배불을 짓이기더니 꽁초를 휴지통에 던져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에어컨 꺼졌나 잘 확인하고 가게. 그리고 오늘 한 얘기는 되도록 비밀로 해주게.

해도 상관 없지만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원장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주섬주섬 이것 저것을 챙기고 있는데 학원문을 나서려던 원장이 뒤돌아 나에게 물었다.



"아..참. 김선생. 나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원장에게 보냈다.



"자네 진짜 여자 목소리 들었어? 뭐라구요라고 했다는..."



나는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



"거참.....모를 일이네. 우연의 일치인가?


학생들이 겪은 얘기는 진짠데 자네도 같은 말을 들었다니.....아무튼 나 먼저 가네."



원장은 뒤로 돌아 가볍게 오른손을 치켜들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의 책상 정리는 30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원장에게 답변을 들었음에도 영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원장이 떠나도 그 여자는 아직 여기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나는 서둘러 정리를 마무리짓고

학원문을 나섰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거다.








"니 학원 갔다 온 뒤로 며칠 동안 컨디션이 안 좋다."



민수의 말대로 녀석은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넌 오늘 술은 하지 말고 간단히 식사나 하고 가라"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뒤로 주말이 아닌 주중 초저녁에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해본 적이 없다.


한창 수업하고 있어야 할 저녁 8시 시간대에 술자리를 하고 있다니 아직도 잘 적응이 안된다.



"일자리는 알아보고 있냐?"



민수는 내가 걱정이 되는 듯 말을 건넸다.



"한 두 달만 쉬고 싶다."



"그래. 쉴 때 쉬는게 최고지.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라."



"여행도 귀찮다. 그냥 방에 처박혀 있을란다.가끔씩 니 보러 올게"



"니가 그 학원 다녀서 그나마 자주 만났는데 이젠 어떡하냐? 멀리 가겠네."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민수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너는 원장말을 믿냐?"



"뭐?"



"원장이 지금까지 한 말 말이야. 그 걸 믿냐구?"



"이젠 믿던 안믿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나는 이젠 원장의 모든 것이 관심밖 사안이었다.


그러나 민수는 의심스런 눈빛을 풀지 않았다.



"교회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그게 의심스러워.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교회를 차릴려고 하다니.."



"이젠 다 끝난 일이다."



민수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어했지만 나의 태도를 보고는 말을 거두는 것 같았다.





이젠 그 학원으로부터 모든 것이 멀어졌다고 생각이 들쯤,


민수와 나는 머리 벗겨진 그 치기공 직원을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학원을 그만 둔지 한달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민수를 만나러 갔다.


민수와 내가 그 술집에 들어섰을 때 그는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전과는 달리 나를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고...옛날 그 선상님 아닌교? 반갑습니더"



그는 합석한 나머지 두 사람을 무시한 채, 민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원장님한테 얘기 다 들었지예?"



"예"



"본의 아니게 선상님께 의심만 사게 만들어서 죄송함니더.

임대료 낮춘다고 별 짓을 다하지예?"



"아..아닙니다. 모두 같이 잘 살자고 하는건데요 뭘.."



"근데 원장님이 와 그라시는지 모르겠어예"



"뭘 말입니까?"



"교회 차린다고 그라지 않았능교? 그것 땜에 선상님도 나간거 아닝교?"



"아...예"



"처음에 그 학원이 들어왔을 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슴더.


거의 1년 가까이 비어 있었던 자린데예 소문도 모르고 들어오는가 싶어서 참말로 걱정이 많이 되었지예."



뭔가 이상하다. 원장이 말한 것과 순서가 맞지 않는다.


원장은 원래 치기공 자리가 비어 있었다고 했는데...


나와 민수는 옆자리의 의자를 끌어와 그 앞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그의 말을 더 끌어내기 위해 몇 잔의 술을 권했다.



"참말로 그 원장님 둘도 없는 선인이었지예.


그 교회 다니문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궂은 일 마다않고 자기가 앞장서서 다 했지예."




"예? 원장님이 그 교회에 다녔다구요?"




"원장님이 얘기 안했능가 보네예. 그 교회의 유명한 신도였는데예.


얼굴 잘 생겼겠다 머리 좋겠다 또 믿음 충만하겠다. 하이고 말도 마소.


여신도들이 난리가 아니었지예.


그 죽은아... 금마가 원장님을 젤 좋아했지예.


원래는 행실이 음청 안 좋은 가스나였다 아닝교.


술담배질은 기본이고, 남자관계가 억수로 복잡한 가스나였는디, 금마 부모가 그 교회에 끌고 온거 아닝교.


그런디 그 가스나가 원장님한테 홀딱 반해가꼬, 술담배도 끊고 아예 교회에 눌러 살다시피 했지예.



근디 그 목사라는 사람이 금식기돈가 뭔가 하믄서 예전의 죄를 씻어야 칸다믄서 애를 잡은거 아닝교.


그 일 있고나서 한 동안 안보이더마는 1년 뒤에 학원 한다믄서 나타났는디, 그 땐 참말로 놀랬지예.


우째 예전같지 않게 사람이 좀 무섭기도 하고...."



민수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그래서 원장님이 그간의 일을 모른 척 해달라고 했겠군요."



"그게 사람의 도리지예. 그동안 얼매나 힘들었겠능교?


근데 오구나서 원장님이 좀 이상해졌어예."



"뭐가요?"



"전에는 술담배같은거 안했는데 담배 태우는 것도 몇 번 봤고, 술에 취해 지나가는것도 봤다 아입니껴.


가끔씩 사람도 몰라보고....그거 못 느꼈어예?"



"술담배하는건 알았는데 사람 몰라보는 건 몰랐는데요."



"내만 오랫동안 봐와서 그런가? 원장님이 온 뒤로 이상한 일도 많았지예.


우리 회사에는 가끔씩 새벽 출근하는 근무자가 있는데, 금마가 말하기를


원장님이 학원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카데예.


그라고 여자 목소리도 들린다 카고...."




"여자요?"




"원장님 아직 총각 아닝교. 마누라가 있을리도 읍고......


글고 우리 건물에 어느날 시주받으러 온 스님이 있었는데예, 겁나 무서운 얘기를 하고 가는거 아닝교."



민수와 나는 다시 한번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무슨 얘기요?"



"그 학원에 주인이 둘이라능교. 뭔소리냐고 했더니마는.....

이 곳을 떠나지 않는 주인이 하나 있다카데이...

그 말이 뭔 뜻인지 알긋지예."



"주..죽은 그 여자 말입니까?"



그 직원은 술김에도 소름이 끼치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율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이고마..말도 마소. 그 뒤론 원장님 얼굴 보기도 무섭다 아입니껴."



그는 목이 타는지 술이 고픈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이제야 꼬였던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의 술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12시가 가까워지는 어두운 밤길을 민수와 나는 말없이 걷고 있었다.


목적지가 일치하지 않음에도 나는 일단 걷는 것이 지금 해야할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민수였다.



"자박령...."



"뭐?"



"자박령 말야...."



"지박령은 들어봤는데, 자박령은 뭐야?"



"지박령은 땅이나 건물에 붙어있는 귀신이고, 자박령은 사람에게 눌러앉은 귀신이야."



"그럼..원장이 자박령에 메어있단 말야? 그 여자?"



"잘 생각해봐.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술담배를 한다는 것......


그리고 새벽에 기도할 때......목소리는 두 개지만 정작..안에 있는 사람은 한 명이라고 생각하진 않냐?"



민수의 말에 나는 소름끼치는 전율에 휩싸였다.



"뭐야...빙의? 다중인격?"



"몰라...하여튼 다시는 그 원장을 만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나와 그 기괴한 원장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겠지만, 원장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잊지 못할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민수야...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게 있어."



"뭐?"



"학생도 들었다는 뭐라구요라는 그 목소리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


그건 원장도 궁금해 하던데........."




갑자기 민수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나의 물음에 민수는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스님도 모르는 또다른 주인이 있을 수도 있지."








-끝-

추천수38
반대수3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