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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퍼온이야기 [수상한 오피스텔 - 3]

너구리 |2011.11.25 09:05
조회 10,778 |추천 40

웃대 게시판 하드론 님이 작성하신 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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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거기 오피스텔 화장실이 조금 좁아요.

문을 닫아야만 변기에 앉을 수 있는 구조잖아요.

그 날은 밤도 아니고 아침이었어요.

저는 큰 일을 볼려고 문을 닫고 일을 봤죠.

신문을 펼쳐들고 앉아 있는데........

그런 소리 알아요?"



남자의 물음에 우리는 치켜든 눈썹으로 대답했다.



"맨발로 장판지 위를 걸을 때 나는 저벅거리는 소리....."


남자의 말을 듣자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와....정말 소름이 돋더라구요.

누군가가 제 거실방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저벅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예요.

현관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는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

저는 순간 화장실 수납장에 있는 유리로 된 로션병을 오른손으로 감아 쥐었어요.

그리고 천천히 변기에서 일어나 조용히 화장실문 손잡이를 돌렸죠.

휴대폰이라도 들고 들어왔으면 경찰에 신고라도 했을텐데....휴대폰이 거실방에 있는지라 미칠 것 같았죠.

화장실 문을 거의 반 이상 열었는데도 그 저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예요."


남자는 다시 갈증이 몰려오는지 비어버린 캔을 연거푸 마시는 시늉을 냈다.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캔커피를 그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후........."


남자는 긴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놈의 저벅거리는 소리...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얼어붙는 기분이예요.

그런데 그 소리가 복층 계단으로 향하는 거예요.

현관이나 화장실문에서는 계단쪽이 보이지 않잖아요.

단지 그 복층 다락방이 머리위에 있다는 뿐이지....

다락방은 바닥은 카페트 재질이라 걷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죠.

저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바로 옆의 현관문을 열고 추리닝 차림으로 냅다 튀었죠.

그리고 경비실로 갔습니다.

아저씨를 한참을 설득해서 복도의 CCTV를 봤죠.

한시간 전 것부터 거의 16배속 재생으로 돌리는데, 제가 있는 호실에는 아무도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츄리닝 차림으로 달려나오는 제 모습만 찍혀 있었구요.

저는 아저씨를 다시 설득해서 제 방으로 동행했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남자는 준혁이 건네 준 캔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전방을 잠시동안 주시하더니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물었다.


"그 쪽은 뭘 본거죠?"


그의 물음에 준혁이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창밖이요. 또렸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어둠속에서 창밖에 사람이 보였어요.

처음엔 창밖에 나타난 귀신같은 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방안이 비친거였어요."


"헐...누구였죠? 남자인가요? 아니면....여자? 혹시..어린애? "


그도 놀라운지 눈썹을 치켜들며 준혁에게 물었다.


"아뇨.. 모르겠어요. 그냥 검은 형체가 천장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흔들리는거예요."


"목매단 것처럼요?"


"모르겠어요. 그냥 상반신 중간부터 발끝까지만 보였어요.

그런데 그 뒤로 집을 나가신거예요?"


준혁의 물음에 남자는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아뇨...집에서 전세금을 마련할때까지는 거기서 당분간 살았어야 했어요.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대신 틈만 나면 연구실 동료들과 친해진 학부생들을 집에 불러서 같이 잤어요.

나이 먹고 그러는게 우습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일이 일어났죠.

입주한 지 두 달을 좀 넘겼을 때였어요.

그 쪽과 거의 비슷한 일이예요."


남자는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날은 연구실에서 밤샘을 하고, 대낮에 집에 들어와서 잠에 골아떨어졌죠.

그리고 잠에서 깬 건 저녁 6시쯤이었어요.

그런데 일어나보니 이상한거예요.

베개가 흥건게 젖어 있는 것 있죠.

땀은 아니고 제가 엄청난 양의 침을 흘리고 잔거예요.

저는 원래 바로 누워서 자기 때문에 침을 흘리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베개의 3분의 1이상이 젖어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침을 흘린거예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내가 내 자신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냥 누군가가 나와 같이 잠든 것 같다는 묘한 기분.......

그런데 결정적인 일은 그 날 밤에 일어났어요.

밤 9시가 조금 넘어갔을 때였어요.

피곤기가 가시지 않아서 저는 리포트 작성 대신에 영화 한 편을 다운받아 보려고 했죠.

그 때 불을끄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는 영화를 볼 때 습관적으로 불을 끄거든요.

한 참을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데 왼쪽 창가쪽이 자꾸 신경이 쓰이는거예요.

다 들 아시죠?

밖이 어두우면 실내가 비친다는거......

저는 무심코 창을 쳐다봤죠."


갑자기 남자는 준혁이 건낸 캔커피를 찌그러뜨릴 듯 움켜쥐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복층 다락방에 30센티 높이의 안전턱이 있잖아요.

거기에 웬 아이가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겁니다. 내 뒤에서....."


남자의 얘기를 듣자 나는 내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의 혼미한 정신을 일깨우려는 듯 5월의 상큼한 바람이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모니터 빛 밖에 없는데도 밖이 칠흑같이 어두워서인지 그 아이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보였어요."


"그래서 조금 전에 어린아이냐고 물어보셨군요?"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진짜로 놀란 적 있어요?

뭐가 진짜로 놀라는 건지는 모르지만, 전 그 때 진짜로 놀랬어요.

목구멍에 손수건 한뭉치를 틀어막은 듯 전혀 숨을 쉴수가 없었고,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어요.

비명 지른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예요.

정말 온 몸의 그 어떤 근육도 움직이지 못해요.

그리고 뻣뻣하게 굳은 몸이 갑자기 풀어지죠.

기절하는거예요.

기절해 봤어요?

전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절해봤어요.

갑자기 전방의 화면이 쫘악 멀어지더니 TV화면 꺼지듯이 밖에서 안쪽으로 모아지듯 시야가 좁아지면서

사라져요."


남자는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캔커피를 쥔 두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공포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실제로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 달의 입주기간이 20여일이나 남았는데도 방세를 모두 지불하고 이사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악몽같은 기억이었죠.

그 후로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리면 돌아다녔어요.

그러지 않으면 저 혼자 미칠 것 같았거든요.

당신들도 거기서 버틸 자신이 없으면 빨리 떠나는게 좋을 거예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서우면 그냥 불을 켜요.

그리고....어둠속에서 창이나 거울을 보지 말아요"



우리를 겁먹이려는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충고하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겁기만 했다.


"너 어떡할래?"


준혁이 나에게 물었다.


"미치겠네. 1년 계약해놓고 입주한 지 하룻만에 방을 내놔야 하는거야?

중개수수료는 어떡하고? 다른 입주자가 당장 들어올까?"


"그러면 당분간 내가 같이 있어줄까?

나도 무섭긴 하지만 그 오피스텔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도 있고...."


어젯밤만 해도 미칠듯이 두들겨 패주고 싶은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준혁이가 구세주처럼 보였다.


"니 부모님한테 뭐라하고?"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지 뭐..."


"믿어줄까?"


"부모님은 나를 믿으신다. 걱정 말아라."


"괜히 나 때문에....고맙다. 준혁아..."


"친구 사이에 무슨 고맙기는......대신 오늘은 너 혼자 있어야겠다. 내일 짐 챙겨서 올게."


준혁은 걸음을 멈추고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씽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표정과 맞지 않는 재수없는 말을 내뱉았다.



"오늘 밤 잘 버텨봐라. 죽지 말고..."



그의 공포스런 장난이 오히려 나에게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래..."


"찬기운 조심하고......후우~~~"



준혁은 입을 모아 나에게 휘파람 부는 시늉을 하더니 앞서 걸어가 멀어져 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 참 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멀어지는 준혁의 모습 위로 서쪽하늘 멀리서 몰려오는 불길한 구름떼가 눈에 들어왔다.


"아....진짜 어떡하지?"



-계속-

추천수40
반대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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