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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지체 장애인 동생을 가진 삶 , 그리고 어머니#

대구 K군 |2011.12.04 23:06
조회 194,869 |추천 1,811

안녕하세요,
 
12월 3일 새벽에 오전에 오후에 한번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제가 다시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물론 톡톡이 되었으면 많은 네티즌들이 지체 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기대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결정적으로 다시 올리려는 이유는 SBS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마을 사람들이 지적 장애인을 성폭

행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고

 

그 외 많은 지체 장애인을 가진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고통 받는 모습을  보자니 너무 가슴이 아파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쉽게 삶을 포기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이 - 기준으로 라인이 끊어져있는데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니고 계속 이어지는 전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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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맨날 눈톡만 하다가 저도 자그마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위로를 받아 더 힘내어 살아볼려는
 
키 작은 21 男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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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같이 저에겐 지체 장애 동생이 있습니다.
 
참 가슴 아픈 과거가 자꾸만 떠올라 너무 괴로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어머니의 마지막 기억은 1998년도 입니다.
그 때 저의 동생은 4살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들이 너무 싫었나봅니다.
어릴적 어머니 고향인 김해에 머무르게 되었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아버지와의 관계로 도망친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어머니는 김해에 어느 시장에서 절 버리고 가셨습니다.두 번씩이나 말이죠..
 
그 때 동생은 외할머니와 항상 같이 있었으며 제가 버려진 날에는 저만 버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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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쯔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도망에 이어 이혼하셨으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술을 많이 드시고 저와 동생을 정말 많이 때렸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에는 속옷만 입게 해놓고 쫓아낸적도 있었습니다.
저와 동생은 그 거지꼴로 30분 거리의 고모집 문을 두들기며 또 전 행여나 기억 못하실까
'저 아빠OOO아들 K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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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아버지는 노동능력을 상실하셨습니다.대구 성서공단 2차쯤으로 기억합니다.정확히는 모르겠습

니다만 금복주 라는 굴뚝이 있었습니다.거기에서 근무하시다 척추 퇴행성으로 어떠한 일도 하지 못하

게 되었습니다.그 시절엔 어떠한 지원도 못받고 아버지는 알콜의존증이라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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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근로능력을 상실하시고 정부에서도 지원을 받기 전 그 공백기,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르겠으나
그 공백기는 방학이었습니다.전 괜찮았습니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어머니 증명사진 한두어장을 붙들고 있는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어눌한 말투로 배가 고프답니다.
아버지는 아직 남은 소주를 마시고 계셨습니다.전 옆집엘 갔습니다.

옆집 아주머니도 잘 아셨는지, 항상 배고플 때 오라해주셨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자녀분들이 부러웠습니다.어머니가 너무 그립고 보고싶었습니다.
동네 PC방이 1,500원 ~ 2,000원하던 시절 , 한창 사이버리아 라는 PC방이 많이 생겼던 시절..
대구 달서구 성당동 어느 골목 검정색 대문 ,아주머니 너무 감사하고 찾아뵈어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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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덧 초등학교 4학년 , 이번 운동회도 어김없이 홀로 교실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생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되고 운동회를 하게 되었을 때
분명 나처럼 엄마에 대한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텐데...라는 걱정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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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1학기 ,동생도 같은 초등학교에 왔습니다.
어느 등교길 ..동생은 동급의 친구들에게 많이 맞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혼내주고 우는 동생 손을 잡고 수돗가에가서 씻겨주고 교실로 보내었습니다.
 
5학년 2학기 , 우연찮게 이사를 가게되었고 전학을 갔습니다.

어느 초등학생들이 말합니다.
'우리반 병신 형이다'
..동생은 항상 맞고 들어왔습니다.저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어눌한 말투와 초점 흐린 눈빛과 불안정한 행동..전 그저 발달이 늦나 싶었습니다.
그런 동생을 모두 이해해주지 못했나 봅니다.이런 나날들이 자꾸만 반복되자 저는 동생에게 손짓을 하고 말았습니다.제발 강하게 자라거라 , 정말 독하게 자라거라 라고 .. 아직도 죄책감이 너무 듭니다.
 
-
 
어찌 잘 되었는지 영세민 아파트로 이사왔습니다.뿌듯했습니다.이제 정말 기초생활수급의 혜택을 받는

건가 하고 정말 행복했습니다.무엇보다 아파트였기에 그렇게 행복한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20평도 안되는 아파트였지만 이곳에서 새로 시작하리라 새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했습니다.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중 ,
 
동생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리고,카드 하나가 발급되었습니다. ' 정신 지체 3급 '
..사실 멍했습니다. 그랬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줄담배나 태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생의 한 마디 .. ' 형아야 엄마 보고싶다 ' , ' 엄마는 ? '
..그러게..우리 엄마는 대체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 
-
 
고등학교는 체고로 진학했습니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복싱을 해봤습니다.
다시 꿈을 만들었습니다.꼭 올림픽 선수가 되어 꼭 금메달을 목에 달고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 우리

가족 다시 행복하게 살으리......하지만 예기치 못한 어깨와 허리 부상으로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홀서빙과 원동기 면허를 취득하고 동네에서 배달을 하며 집 근처 공고에 복학했습니다.
공부란걸 한번 해보고 싶었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정말 구구단도 몰랐고 나눗셈도 불가능했고 영어 알파벳도 다 모르던 제가
비록 공고였지만 고1 때 전교 3등을 하게되었습니다.물론 저희과 78명 인원 중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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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녀석이 자꾸만 집을 나갑니다.헛소리를 많이 합니다.새벽마다 홀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리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인역에서 혼자 자고 있길레 찾았다 , 용산역에 혼자 앉아 있길레 찾았다 , 반월당 역에서 자고 있다,
....모든 경찰관분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그리고 전 무사히 있어준 동생에겐 감사하지 못했나봅니다.
정말 많이 때렸습니다.그러면 정신이 들어 나가지 않으리라는 생각만으로..

 

그러던중 동생이 학교에 가기가 싫다고 합니다. 타이르고 달래보았습니다. 입을 열었습니다.
'학교가면 애들이 거지라고 놀린다. 자꾸 병신이라고 여러명이 때린다.' ..그러고 우는 동생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동생은 말합니다 ..

'엄마가 너무 보고싶다 . 그 때가 좋다 다시 가자 형아야 다시 가자 '

.... 전 그 날밤 ..미친듯이 울며 아버지 몰래 남겨놨던 어머니 사진 한 장을 꺼내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이 사진 속의 여자가 정말 나의 어머니였던가..
 
-
그렇게 동생은 내당동 어느 신경정신과 전문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전 그렇게 고2가 되면서 더 미친듯이 공부를 시작했고 2학년 2학기엔 1등이라는 자리도 만끽했습니다.
하지만,아버지는 그런 동생이 불쌍했는지 집에 데리고 오길 여러 수차례를 치뤘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심해지는 동생의 이상증세와 자해흔적 등..
 
그러다 동생은 다시 검사를 받게되었고 새로운 꼬릿말이 붙었습니다. ' 지적 장애 2급' ..
그리고,고3이 되고 꼭 대학교에 가리라는 꿈을 키운채 고3 1학기 전교 2등을 거머쥐고 수시 준비를 하

며 결국은 꿈에 그리던 나 따위가 갈 수 없던 대학교에 가게되었습니다.
 
하지만,무엇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무엇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

전 동생을 버렸습니다.정말 이기적이게 나 혼자 잘 살아볼려고 대학교에 왔나봅니다..
존경하는 이지성 작가님의 꿈꾸는 다락방을 비롯해 많은 성공관련 도서를 접하며 꿈만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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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 원하던 대학 합격에 기뻐하며 있던 중 다시 동생이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또 데리고 왔나 봅니다.하지만..동생은 초점이 없는 눈빛과 눈에 띄게 보이는 척추후만

증과 거북목등과 복부미만을 비롯해 다 일그러져가는 피부..오랜 입원생활로 인한 근위축으로 조금만 걸어도 넘어지기 수십번 수백번.. 그리고 나타난 약물중독으로 인한 쇼크증세와 발작증세 ,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게 되었고 금주를 선언하셨던 아버지의 시작 된 음주..
 
동생은 .. 지체증세와 분열증 증세가 겹쳐져 있는 상태가 되었고 제가 찾아가봤을 땐 내가 누구인지
인지능력이 전혀 되지 않았고..대소변을 스스로 가리기 힘들었고..입가에 흐르는 침들과 충혈된 눈,
 
 
전 다시 생각했습니다.과연 이 길이 대체 누구를 위한 길인가를..
어찌보면 나같은 인생에 대학은 어울리지 않는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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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와 관련해 생계유지감면사유 등을 알아보던 중 동사무소에 가서 어머니의 흔적을

..10년이 지나서야 찾게되었습니다. 동사무소 직원이 밝은 얼굴로 어머니의 등본을 발급해주었고

일단 잽싸게 가방에 넣은 뒤 집에와서 보았습니다.너무나 기대에 벅차있었기에...

 

등본상에 있던 2004년 출생일이 되어있던 어느 여자아이..순간 '여동생이 있었었나...' 라고 확인하던 중
이혼 후 법정기간이 지나고 바로 재혼을 했는 기록을 보자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왜?
단지 , 그 사람이 재혼을 하였다해서? 아닙니다.
이제 흩어져있던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져갔습니다.
 
어릴적부터 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때린 이유도 알콜의존증에 빠지게 된 이유도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갔던 이유도 모두 다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가슴 아팠던건 아버지도 알고 계셨답니다.가진건 없었고 저와 동생은 꼭 키우고 싶었답니다.
...전 모두 아버지의 잘못으로 이혼을 하였고 저와 동생이 그렇게 폭행을 당했던걸로 기억했습니다.

처음부터 어머니의 숨겨놓은 남자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를 원망했던게 너무 죄송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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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답답하기만 하고 점점 세상이 원망스러워지며 동생에게는 죽을죄를 지은것만 같아 너무나 미안

하고 아직도 동생 생각만하면 눈물만이 흐르고 이제 곧 기말을 앞둔 대학을 포기하고 심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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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통장에 200만원 남짓 , 이제 곧 기말을 치루고 휴학을 내어 빠듯하게 일해서 조금이나마 보탬

이 되려하지만 불확실한 군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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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고자 올린 글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이 어려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살고 있구나 , 따뜻한 한 마디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구나 ,
라는걸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대구 달서구 성당동 검정색 대문집 아주머니
번지수도 기억하지만 행여나 현재 그 집에 피해가 갈까 올리지 못했지만
아마 지금 그 쪽에 거주하고 계시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워낙 후진 골목이었기에 ,
아주머니가 한 끼 한 끼 차려주신 밥이 아직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은 평생 간직하고 잊지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족에게 몹쓸짓을 해주신 어머니,
어찌보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살아가는것도 복에 겨운 삶이 아니겠습니까..

저와 동생이..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는지는 알기나 하나요,
아직까지도 동생은 어머니를 찾습니다.그리고 찢어질 듯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그 꼴에 저는 어머니를 찾겠다는 다짐으로 10대를 보내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빈자리가 있어 이렇게 성장했을 수 있기도 합니다.

 

한번이라도 보고싶습니다. 묻고싶습니다. 왜 그랬는지 , 왜 우리에게 이런 아픔을 주고 갔는지 ,
10년동안 우리 가족이 한번, 정말 딱 한번이라도 보고싶지 않았는지 묻고싶군요.
 
현재 아버지는 가난과 많은 약봉투로 지내고 있습니다.
동생은 아직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정신 지체 증세로 살아갑니다.
 

 -
 
세상에 있는 모든 장애인들 또 그들의 가족들
부모님들에게 상처받고 버림받은 분들
 
저도 여러분들과 같이 참 악착같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삶에 있어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떠한것이든 내가 정말 피땀흘린 노력은 날 배신하지 않더라 입니다.
이것을 몸으로 직접 느껴보니 안되는 일은 없었습니다.부족하지만 저 같은놈이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왔고 원하고 원하던 물리치료학과에 들어왔으니깐요.

자퇴 후 고1 8월달쯔음 까지 정말 열심히 일하고 모았습니다.월급 대부분 아버지 드리고 동생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사주며 남는 돈 최대한 절제하며 남겨놔서 대학생활비에 보태어 사용했구요.

 

물론 동생의 한 마디가 더욱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선물을 줄 때 마다 그러더군요.

'형아야 돈 없잖아'  . 그래서 더 악착 같았고 더 절제할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전 아직 사지멀쩡하고 아직은 희망이란게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겨내보려 합니다.
서서히 통장잔고는 바닥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행복한 삶일지도 모를 삶이기에 이겨낼겁니다.
 
-
 
불우하든 하지 않든
몸이 좋든 좋지 않든
가족이 있든 없든
장애가 있든 없든
 
여러분들 아직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은 여러분들로 인해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한계점과 위기점에 처해있으셔도 절대 포기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 또한 절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더욱 열심히 20대의 패기로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 저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분들께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새 삶을 살고자 세상에 알리는 20대 대구 대학생의 일생일대기
, K군 .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들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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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체장애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과적 영역 ,  주위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무시하지도 , 너무 도와주지도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그들 나름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똑같은 인간 입니다.
정상인에 비해 무엇 하나가 모자라거나 없을뿐이지 그들도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 입니다.
 
절대 그들을 만만하게 여기고 학대하고 폭행하지 마세요.
 
정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 화이팅 입니다!

 

 

/ 제가 모든 댓글에 답글을 달아드릴려 했으나 너무 많기에

송구스럽지만 1화 댓글의 답글은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장애인을 둔 가족으로써 많은 이야기와 아픔을 같이 나누고자 하시는 분이 꽤 있었습니다.
동생 명의로 만든 메일 주소 남기겠습니다. kim950828@naver.com 입니다.

그 외 잡다한 메일 다 무시합니다.전 개념없는 사람한텐 그리 따뜻한 사람이 아닙니다.

인증 요구하신 분들 찾아오세요. 뭐 어떻게든 인증 합니다,

추천수1,811
반대수22
베플힘내자|2011.12.07 01:35
당신 뭘해도 될 놈이야 존경한다
베플누나|2011.12.07 02:27
저도 일급지적장애를 가진동생의 누나 입니다.. 제발 폭력을 쓰지 마세요 친구들한테 받은상처..그리고 사랑하는형에게 마저 돌아온건 폭력이네요.. 제 동생도 아주 어렸을때 기억부터 세세하게 다 기억을 합니다 놀랄정도로요.. 인간대인간으로 대해주시면 안될까요 비록 힘든일을 많이 겪으셨지만 저건 에스오에스에 나올법만한 글이네요 진짜 글보고 눈물 나올 뻔 했습니다 이글의 요점이 뭔가 싶습니다 정작 형이라는 분은 사랑하는 동생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지금 동생의 상태가 어떠한지 궁금하네요.. 장애인복지쪽으로 알아보셔서 많은 혜택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은 물건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소중한 어느 부모님의 자식이자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장애인에대한 지식을 알려줌으로써 놀림감 대상이아닌 같은 청소년기를 맞는 친구로 인식을 바꿔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베플...|2011.12.07 01:49
제동생도 지체2급을 갖고있는 장애우입니다. 어렸을 때 철이없을땐 동생이부끄럽고 밉고 친구랑있을때 만나면 피하기까지했습니다...하지만 그때도 동생은 언니가 좋다고 저만보면 달려오고 안고 그랬습니다 요즘은 피곤하다하면 안마도해주고 사랑해란 말이 좋은지 사랑해~라자주합니다. 부모님께 감사합니다란한마디보다못하는 저보다 낫죠.. 동생과 같은학교에다니는 아이들은 동생을 놀리고 수근대고 하지만 저에겐 저보다 훨씬 나은점이많고 사랑스러운 제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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