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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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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서울에서 부산까지(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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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더하기 별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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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는 웃대 검은토끼님입니다.
시작!-----------
EP 1.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불길한 통보 (3)
우악스럽게 들려온 천둥소리에 사람들이 멀뚱멀뚱하게 서로 번갈아 보며 입을 다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우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엘리베이터의 오작동이 내일까지 지속된다. 라는 가정하에 파업한다고 주장하는 거지?”
“응. 그런데 전문가들도 결국 손 놨고, 빌딩을 싹 다 새로 짓지 않는 이상은
원인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건축가들이 되려 흥분한 상태야.”
그 말을 들었을 때, 4층 담당 인부들의 표정이 또렷하게 머릿속을 스친다.
그들은 공사를 중지해야 하니 당장에 보수가 끊긴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을 것이다.
비는 전보다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다. 이따금 천둥이 으르릉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4층은 전체적으로 조그만 속삭임이 오고 갈 뿐 대체로 조용하다.
그런데 그때, 한 4층 담당 인부가 참지 못하고 안전모를 거세게 집어던지며 불만을 토해냈다.
“대체 뭡니까? 원인 없는 오작동이 벌어지고 있다니요? 아니! 왜 4층 감독관님은 말이 없으십니까? 예?”
그는 씩씩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 쉰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침착을 되찾고 가보겠단 짤막한 말을 남긴 채 계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러자 나머지 4층 인부들도 술렁거리며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4층 현장엔 나와 권태 그리고 총 감독관만이 남았다.
우리는 어색한 정적 속에서 서로 번갈아 쳐다본다.
천둥이 쳤던 조금 전과 상황이 비슷하다. 감독관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어쩔 텐가?”
나는 권태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내려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권태가 수긍하듯 끄덕인다. 우리는 감독관에게 짤막한 위로를 건넨 뒤 계단을 내려간다.
옆에서 권태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서 밀린 작업들이나 끝내자.”
이번엔 내가 수긍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2층에 도착했다.
나는 2층 현장의 정문을 통과한 뒤 구석에 놓인 페인트통 쪽으로 걸어갔다.
권태는 마당에 섞어놓았던 시멘트 통을 가져온다고 말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페인트통 위에 놓인 드라이버를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통의 뚜껑을 단단히 붙잡는다.
이어서 통 뚜껑의 한 부분을 드라이버로 강하게 파고든다.
그러자 뚜껑에 작은 구멍이 뻥 소리를 내며 뚫린다.
그리고 그 구멍에 드라이버를 조금 넣고 원을 그리며 뚜껑을 찢어낸다.
제법 깔끔하게 뜯어졌다.
나는 통을 그대로 두고 정문으로 걸어가 우측 벽에 걸려 있는 페인트 브러시들 중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고 뒤로 돌아 다시 통 쪽으로 걸음을 떼려는데, 1층에서 권태가 계단을 뛰어 올라오며 나를 불렀다.
“현수야!”
브러시를 든 채 뒤를 돌아보니, 권태가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에 왼쪽 발을 올린 채로 말한다.
“오늘은 일 그만하고 돌아가자. 1층 현장에 사람 코빼기도 안 보여.
아무래도 이대로는 작업진행이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상사들이 모두 퇴근시켰나 봐.
난 4층 가서 작업감독님께 전달해 드리고 올 테니까 짐 정리하고 1층에 먼저 내려가 있어.”
권태가 이어서 계단을 빠르게 올라간다. 짜증이 치솟는다.
페인트는 뜯어서 공기에 장시간 드러낼 시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낭패다.
나는 일단 브러시를 다시 벽에 건 뒤,
페인트통 쪽으로 걸어가며 덮개로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텅 빈 2층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다른 층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는 벽돌 창고가 있는 3층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고요한 공사 현장에 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3층에 도착했다. 현장엔 예상했던 대로 아무도 없었다.
벽돌창고가 있어서 혹시 영우가 있을까 했는데 먼저 간 모양이다.
나는 3층 정문을 통해 현장으로 들어선다. 그러자 바로 왼쪽으로 시야가 쏠린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판자가 있다.
마음속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나는 장판을 들기 위해 왼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구르릉……”
그때, 천둥이 다시 한 번 번쩍이기 위해 으르렁거림을 시작했다.
나는 판자를 들고 3층 정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런데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들이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다. 권태와 감독관이다.
권태가 감독관과 얘기를 하다가 나를 힐끗 본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끊어진다.
녀석의 표정이 마치 경계심을 품은 개처럼 의아하다. 녀석이 물었다.
“뭐해? 아직도 안 내려갔었어?”
나는 2층에서의 자초지종을 말해준다.
그러자 권태가 한숨을 내뱉으며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나 싶더니 이내 입을 연다.
“뜯지 말지. 어차피 현장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쩔 수 없네. 나 먼저 가야겠다. 오늘 제법 바빠.”
“괜찮아. 먼저 가.”
나는 짤막한 대답을 한 뒤, 감독관 그리고 권태와 함께 계단을 내려간다.
두 사람의 대화가 나 때문에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진다.
이윽고 우리는 2층에 도착했고, 나는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며 그들과 헤어진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권태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넸다.
“조심해서 들어가.”
권태는 고개를 뒤로 살짝 돌린 뒤 입꼬리가 보이게 씩 웃는다. 권태다운 인사다.
이제는 ‘공사 현장’에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꽈 과 광!”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한다. 젠장 맞을 천둥소리다.
혼자 있으니 더욱 섬뜩하게 들린다. 나는 2층 현장으로 들어선다.
손에 들린 장판을 꽉 쥐고 열려 있는 페인트통 쪽으로 걸어간다. 이상하게 몸 주위에 계속 오한이 든다.
몸이 떨린다. 아까 4층에서의 역한 그 느낌과 비슷하다.
ㅡ 있어선 안 될 것이 있다.
내가 4층의 그 방에 있을 때 마음속에 떠올랐던 알 수 없는 생각,
그 생각이 지금 왜 다시 생각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페인트통 위에 장판을 올린다.
어느새 2층 현장에는 몽롱한 페인트 냄새가 잔뜩 퍼져 있다.
여기선 최대한 호흡을 작게 해야 한다.
페인트 향때문에 두통이 밀려오면 온종일 간다는 사실을 인부의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는 뒤로 돌아 현장 정문 쪽을 향해 걷는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집에 가야겠다.
“우당탕!”
막 2층 정문을 나가려던 찰나에 걸음을 순간적으로 멈춘다. 아니, 멈추어졌다.
위층에서 의문스러운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현장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인 없는 소리가 날 리는 없다.
그럼 방금 그 소리는 뭘까?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소리?
아니, 바람에 휩싸인 물건이 떨어진 소리일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현장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고, 적어도 인력으로 인한 소리는 아닐 거란 소리다.
“우당탕!”
그러나, 내 생각은 쉽게도 박살 나버렸다.
더 이상 헛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졌다. 바람이라도 연이어 같은 소리를 낼 수는 없으리라.
그건 우연의 확률이 정확히 맞아 떨어져야만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우연도 믿지 않는다.
이건 인력이다. 누군가 있다. 분명 누군가 있다.
“쨍그랑!”
이번엔 익숙한 소리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혹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다.
왠만한 바람이 유리를 박살내고 금속을 깨뜨린단 말인가?
머릿속에 확신이 서고 바람의 짓일 거란 희망이 부셔진다.
이 공사현장의 다른 층엔 나를 제외한 누군가가 있다.
어느새 내 머릿속엔 이 생각이 나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4층에서 느꼈던 소름이 다시 한 번 떠올라 나를 덮친다. 그때 들었던 그 끔찍한 소리도 들려오는 듯 하다.
두려운 상상이 머리 속 가득히 그려진다.
느껴지던 오한이 커진다. 나는 2층 현장을 빠져 나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그러면서 위층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친다.
“혹시 누구 있어요?”
그러나 내 목소리가 텅 빈 공사현장에 쓸쓸히 메아리 쳐 울릴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동시에 엄청난 고요가 공사장에 내리깔린다.
사람이라면 대답을 하란 말이다. 멋대로 망상이 떠오른다.
더는 안 된다. 견딜 수가 없다. 소리의 정체를 확인해야겠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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