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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전쟁의 대지존 광개토호태왕』6. 마니산의 천제 ⑶

개마기사단 |2011.12.10 23:19
조회 57 |추천 0

 

목힐강부가 지휘하는 백제 수군은 혈구도를 따라 북상하여 석모도와 달을참을 동시에 공격했다. 이곳에는 각기 초계와 연락 임무를 담당하는 3백여명의 고구려 군사만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순식간에 백제 수군에게 함락당하고 말았다.

 

혈구도 서쪽 바다까지 백제 수군에 의해 장악되자 관미성을 지키는 고구려군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전령으로부터 관미성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진무의 군대가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목힐강부는 함대를 둘로 나누어 한 함대는 사위인 귀실수곤(鬼實秀困)에게 맡겨 달을참에 주둔하면서 고구려 군사들의 남하를 저지하도록 하고, 나머지 함대는 자신이 이끌고 관미성 공격을 돕기 위해 나아갔다.

 

달을참으로 돌아온 귀실수곤은 감회가 남달랐다. 고구려 수군에게 당한 패배는 무장으로서의 경력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백제 수군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그로서는 참기 힘든 세월을 견뎌내야만 했다.

 

귀실수곤은 당성에 틀어박혀 치욕을 만회할 날만을 기다리다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임지였던 달을참과 석모도를 탈환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싸움 한번 안하고 얻어진 결과였으므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귀실수곤이 당했던 치욕을 생각한다면 달을참의 수복은 단지 고구려에 대한 복수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관미성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고구려의 수군이 다시 남하할 테니, 그때 한 척의 베도 남지 않을 정도로 대파할 요량이었다. 그래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귀실수곤은 북쪽을 응시하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관미성의 봉화가 오르고 며칠이 지났음에도 고구려 함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관미성은 진무와 목힐강부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힘겹게 버티어내고 있었지만 적은 군사로 오래 지키기는 어려웠다.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고구려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석연치 않았다.

 

귀실수곤은 볼음도를 지나 용매도에 이르는 먼 바다에까지 초계선을 보내는 등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내미홀에 도착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을지선휴(乙支先烋)는 동음홀, 천태, 장방을 따라 올라온 봉화를 확인하는 즉시, 상관인 우나굴(于那屈)에게 전령을 보내고 내미홀을 떠났다. 봉화가 오르면 우나굴의 군령 없이도 출항할 수 있다는 전권을 위임받은 상태였으므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바람은 서서히 남동풍에서 북동풍으로 바뀌고 있었다. 함선은 돛을 비스듬이 세워 최대한 바람을 이용하면서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얼마 전에 용매도를 지났으니 이대로 달린다면 내일 새벽이면 혈구도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배의 이물에 서서 뱃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을지선휴의 얼굴은 자못 고민에 빠져 있었다. 동음홀에서 전해온 첩보에 따르면 백제 수군은 달을참과 석모도를 탈환했다고 했다. 혈구도로 무작정 내닫다가는 백제 수군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도 있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군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계책이 필요했다.

 

을지선휴는 우나굴이 일찍이 자신의 부하 장수들 가운데 가장 지략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던 인물이었다.

 

마음을 정한 을지선휴는 조타수를 향해 외쳤다.

 

“우도로 방향을 돌려라!”

 

혈구도로 향하던 2백여척의 고구려 군선은 일제히 우도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진무의 군막에 자리한 사두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성주인 해진압만 없애면 지리멸렬하여 항복할 줄 알았던 관미성의 고구려군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거센 저항으로 백제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자 사두순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사두순이 일이 잘못되어간다고 느끼지 시작한 것은 참성단에서 해진압의 목을 벨 때부터였다. 해진압은 사두순이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사두순은 해진압의 목을 베고 나서 새로운 근심에 빠져들었다. 고구려군 장수들이 모두 해진압처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면 백제군이 고구려군을 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두순은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무를 돕기 위해 마니산을 떠나 관미성으로 내려왔을 때,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백제군의 공격에도 관미성의 고구려군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다. 그들은 수에서의 열세를 성곽의 견고함과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악착같은 근성으로 극복해냈다.

 

진무는 사두순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이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고구려군의 반격을 받게 될 것이오.”

 

사두순이 말했다.

 

“어차피 고구려와의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앞서 관미성을 수복해야만 도성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북변의 고구려군이 움직이기 전에 관미성을 하루라도 빨리 함락시켜야 합니다.”

 

“관미성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문제가 아니겠소?”

 

“우리 수군이 달을참과 석모도를 장악하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하니 그들과 협력하여 수륙 양면에서 공격하는 게 좋겠습니다. 먼저 수군이 함선을 이용해서 관미성으로 접근, 석포로 공격하고 그 틈을 타서 육군이 동쪽을 치는 척하면서 성벽 중 가장 취약한 남쪽 부분에 집중적으로 병력을 투입한다면 관미성의 군사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진무는 일단 군사를 물린 후 휴식을 취하며 수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목힐강부가 이끄는 수군이 도착하자 백제군의 본격적인 공세가 개시되었다. 목힐강부는 고구려군과의 해전에 대비하여 개량한 석포를 선보였다. 파괴력과 사정거리가 훨씬 좋아진 석포에서 발사된 바위는 관미성으로 날아가 성벽을 부수거나 성벽 위의 고구려 군사들을 덮쳤다.

 

관미성의 고구려 군사들도 석포와 각궁을 이용해 반격을 시도해 보았지만 사정거리가 짧아 백제군의 함선을 맞힐 수 없었다.

 

백제군 함선에서의 석포 공격은 관미성의 고구려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고구려 군사 가운데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성벽 여기저기가 허물어져 성을 방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동쪽 성벽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진무는 수군의 공격으로 관미성의 군사들이 동요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엄선된 정예군을 관미성 남쪽 성벽으로 투입했다.

 

고여준은 백제 군사들의 일부가 남쪽 성벽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진무의 의도를 간파했다. 즉시 군사들에게 목책을 만들게 하여 석포로 무너져 내린 남쪽 성벽을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성벽의 틈으로 달려드는 많은 백제군을 당적할 수는 없었다. 목책은 백제군의 불화살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불타 버렸다.

 

고여준은 외성을 포기하고 내성으로 후퇴하기로 결심했다. 관미성은 홑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지만 고구려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고구려성의 양식을 도입해 성을 겹으로 둘러쌓아 방비를 강화했었다.

 

고여준의 명령을 받은 고구려 군사들은 달려드는 백제 군사들을 저지하면서 천천히 내성으로 물러났다. 내성은 흙과 돌을 섞어 다져 쌓아 올렸기 때문에 매우 단단할 뿐 아니라 경사면을 이용해 축대를 만들어 더욱 가팔랐다.

 

외성의 무너진 성벽을 타고 넘은 백제 군사들은 한달음에 내성 아래까지 달려갔다. 고구려 군사들은 내성만은 내줄 수 없다는 각오로 저항했다.

 

관미성에서의 공성전은 사흘 밤낮을 이어졌다. 진무는 당장이라도 성을 함락시킬 기세로 총공격을 펼쳤다. 관미성에 뼈를 묻기로 결심한 고여준을 비롯한 고구려 군사들은 온몸으로 백제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관미성 주변에 시체가 쌓여갔지만 백제 군사들은 공격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

 

대대적인 공성전이 나흘째로 접어들던 날 이른 새벽이었다. 갑자기 백제군의 진영이 술렁거리더니 공격을 멈추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기진맥진한 관미성의 고구려군은 영문을 몰라 백제군이 후퇴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남쪽 해안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해안에 정박하고 있던 백제의 함선들 사이에서 일어난 불길은 차츰 위세를 떨치며 주변으로 번져갔다. 온전한 배들은 불길을 피해 사분오열 흩어졌다. 마치 광폭한 돌개바람이 배들을 산산이 흩어 놓는 듯했다.

 

파수병의 보고를 받고 남쪽 성벽으로 달려온 고여준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바다 저편에서 고구려의 군선들이 여명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지원군을 본 관미성의 군사들은 다시 기운이 샘솟는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들의 손을 잡아준 것이었다.

 

백제의 함선들을 격침시키며 나타난 배들은 을지선휴가 거느린 고구려의 함선들이었다. 이들은 바다에서 불쏙 나타나서 목힐강부를 놀라게 만들었다.

 

목힐강부는 사위인 귀실수곤을 보내어 북방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남쪽 바다에서 고구려 수군이 나타났으므로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해전에 있어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목힐강부와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용맹하고 경험 많은 백제의 수군은 처음으로 막강한 상대를 만나자 전의를 상실했다. 그들은 응전 한번 재대로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로써 전쟁의 주도권은 고구려군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해가 중천에 오르자 깨어지고 불에 탄 배의 잔해가 바다 위를 이리저리 떠다니는 모습이 드러났다. 고구려 군사들의 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목힐강부는 매소홀로 퇴각했다. 따르는 함선은 채 오십척도 되지 않았다.

 

목힐강부는 매소홀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패배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패배라고는 전혀 몰랐던 그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고구려 수군의 움직임에 대해 철저히 경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을지선휴는 함대를 이끌고 달을참에 주둔한 백제 수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먼 바다로 항해를 거듭했다. 거센 파도와 싸우며 우도를 경유하여 덕적도까지 남하한 후 그곳에서 자월도와 옹유도를 거쳐 장봉도를 지난 후, 어둠을 틈타 혈구도 앞바다에 나타날 수 있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가까운 뱃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온 이유는 백제군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의 생사를 뒤바꾸어 놓았던 혈구도에서의 해상전투는 을지선휴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을지선휴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의 임무는 해상전투가 아니라 관미성을 백제군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이었다.

 

을지선휴는 진무의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관미성 남쪽 해안에 상륙한 을지선휴의 군대는 성을 포위하고 있는 백제군을 향해 나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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