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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전쟁의 대지존 광개토호태왕』6. 마니산의 천제 ⑷

개마기사단 |2011.12.10 23:33
조회 132 |추천 0

 

수군의 패배로 기가 꺾여 있던 진무의 군대는 사기가 오른 고구려 군사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백제 군사들은 사흘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벌어진 공성전으로 인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진무가 사두순에게 대책을 물었다.

 

“난데없이 고구려 수군이 쳐들어왔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사두순은 풀이 죽어 있었다.

 

“저들은 이미 승기를 잡았습니다. 승산 없는 싸움이니 응전하는 척하다가 재빨리 군사를 거느리고 후퇴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두순의 말이 옳았다. 진무는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지난날의 패배를 만회하고 관미성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결국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진무는 당장이라도 칼을 들고 뛰어나가 고구려 군사들과 싸우다가 죽고 싶었다. 하지만 장수로서 한 순간의 기분만 가지고 싸울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많은 병사가 있었다.

 

“장군, 어서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사두순은 재촉하기는 했지만 가슴이 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불구(不具)라고 멸시하던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야 했기에 혀를 배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지금 목숨을 버린다면 자신은 영원히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진무는 퇴각을 결정했다. 고구려군의 추격에 대비하여 후위를 튼튼히 한 뒤, 관미성의 포위를 풀고 서북쪽의 불은까지 후퇴했다. 이곳에서 동자홀로부터 건너오는 지원군과 합류하여 다시 한번 반격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진무의 군대가 후퇴하는 동안 을지선휴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백제군 본대가 진을 치고 있던 관미성 동쪽으로 나아갔다.

 

고구려군이 도착했을 때는 백제군은 이미 도망친 후였다. 을지선휴는 관미성 밖에 진을 펼쳐 혹시 있을지 모를 백제군의 반격에 대비했다. 을지선휴가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은 고여준은 성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왔다.

 

고여준은 을지선휴를 보자 감격의 눈물을 애써 참으며 군례를 올렸다.

 

“몸도 성치 않은데 이리 움직여도 되겠소?”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고여준은 몸을 구부리기조차 힘들어보였다. 을지선휴는 황급히 고여준을 일으켜 편히 앉도록 했다.

 

“그대의 투혼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 성이 아직까지 온전할 수 있었겠소?”

 

“그게 어찌 소장의 공덕이겠습니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히 싸워 준 장수들과 병사들의 공로입니다.”

 

“해진압 장군이 죽었다니 너무나도 안타깝구려.”

 

해진압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여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올라 오열을 삼키며 말했다.

 

“소장이 좀 더 완강히 말리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어찌 그대의 잘못이겠소? 하늘이 정하신 운명이지요.”

 

을지선휴는 고여준을 처소로 돌려보낸 후 군의(軍醫)를 보내 치료하게 했다.

 

불은에 도착한 진무는 고구려군의 추격이 없자 일단 마음을 놓고 진영을 만들었다. 관미성을 떠날 때 도성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전령을 보내둔 터라 고구려군의 움직임을 살피며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진무가 보낸 전령의 보고를 받은 아신왕은 신임 병관좌평(兵官佐平) 찬여고(贊余考)에게 명령해 미추홀, 고사야차홀, 당성 등에 흩어져 있던 군사를 규합하여 혈구도를 구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뜻대로 될 수가 없었다.

 

찬여고가 아신왕의 명령을 받아 출진하려고 할 때 북방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우나굴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패하를 넘어 남쪽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신왕은 찬여고에게 명령해 혈구도로 갈 병력을 돌려 북방을 구원하도록 하는 한편, 진무에게 전령을 보내 도성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아신왕은 영토를 회복하고 고구려에게 복수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세에 놓이는 처지가 되었다. 고구려군이 아신왕을 이처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은 광개토호태왕의 선견지명과 치밀한 계략 때문이었다.

 

태왕은 거란 정벌차 고구려로 돌아가기 전 우나굴을 불러 은밀히 지시한 적이 있었다.

 

“백제는 마음에서 우러나 우리에게 굴복한 것이 아니오. 그렇기에 조만간 힘을 회복하면 다시 공격해 올 것이오. 백제군이 움직인다면 제일 목표는 관미성이 될 것이오. 짐이 해진압에게 관미성을 맡기기는 했으나 걱정이 없지는 않소. 해진압이 용감하고 충직한 무장이기는 하지만 너무 고지식하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상대가 간계를 쓴다면 쉽게 속아 넘어갈 것이오. 그래서 짐은 어리지만 남달리 꾀가 많고 임기응변에 능한 고여준을 그의 곁에 붙여 두기로 하였소. 관미성이 아무리 철옹성이라 할지라도 이곳 사정에 밝은 백제군이 쳐들어온다면 막기 어려울 수밖에 없소. 그러니 우 장군은 한홀에 주둔하면서 세작을 통해 백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내미홀의 수군을 항시 대기시켜 백제의 관미성 침공에 대비토록 하시오. 만약 백제군이 관미성을 친다면 즉시 전령을 보내 수군을 출동시켜 구원하면 될 것이오. 만약 백제의 도성에서 재차 지원군을 보낸다면 우 장군이 직접 군사를 몰아 패하를 건너 공격하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백제왕은 놀라서 관미성에 보냈던 군사를 즉시 물리게 될 것이오.”

 

광개토호태왕의 예상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백제군이 관미성 공격을 멈추고 후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우나굴은 태왕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군사를 물려 패하를 다시 건너 돌아갔다. 먼길을 힘들게 달려온 찬여고는 허탈한 심정으로 강 건너로 사라지는 고구려 군사들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했다.

 

혈구도에 주둔하고 있던 진무 역시 왕명에 따라 바다를 건너 동자홀로 퇴각하자, 관미성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서해의 물결도 잠잠해졌다. 이때가 서력 393년이었다.

 

고구려 조정에서는 백제를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사자(大使者) 아불파연(阿佛破然)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섰다.

 

“이번 일은 백제가 우리와 화평할 뜻이 없음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독초는 줄기뿐만 아니라 그 뿌리도 뽑아야 합니다. 당장 백제의 고성을 공격하여 백제왕의 목을 벤 후 종묘사직을 멸하여 선대왕의 원수를 갚아야 할 것입니다.”

 

아불파연은 평소 백제와 강화를 맺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형 모두루도 아불파연과 뜻을 같이했다.

 

“앞으로 우리가 북방으로 진출하는 데 있어 백제는 항상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광개토호태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대대로(大對盧) 고문한(高文漢)에게 물었다.

 

“국상(國相)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비록 백제의 비열한 행동은 응징받아 마땅하나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지금 화북에서는 연나라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북방에 있는 거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으니 대비가 필요합니다. 이미 백제는 우리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 금방 힘을 회복하기는 어려울테니 당장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백제 문제는 뒤로 미루고 서방을 먼저 제압하셔야 할 것입니다.”

 

고문한은 고구려가 처한 상황을 침착하고 냉정하게 정리했다.

 

태왕은 시립해 있던 신하들을 돌아보았다.

 

“국상의 말씀이 옳소!”

 

대신들은 불만이 있었지만 태왕이 결정을 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광개토호태왕의 권위였다. 신하들은 태왕의 판단을 믿었기에 그의 말에 절대복종했다.

 

태왕은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을 뇌리에서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태왕이 그토록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던 재야의 선비 하무지(河茂祉)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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