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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 선생님을 아시나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사람.

지현아 |2011.12.20 08:48
조회 216 |추천 3

네이트 판만 열심히 들여다 보고 언젠간 꼭 써야지라고 상상만 해봤던 여자임.

 

내가 이렇게 나의 무지함을 자랑하는 글을 쓸꺼라곤 생각도 못했음ㅜㅜ

 

여러분은 우당 이회영 선생님을 알고 있음??

 

이지아 조부에 대한 기사 보다가 거기 베플에 "우당 이회영" 선생님 이야기가

 

나와서 네이버 검색했는데..... 아..... 나 무지한 여자였음ㅜㅜ

 

베플에대한 리플로 "아 우당 이회영 선생님 모르면 대한민국 사람도 아니고

 

답도 없다'는 식의 말이 있었는데... 난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었었음.

 

진짜 찾아보고 너무 창피하고 내가 너무 부끄러웠음.

 

나는 내가 쫌 배워서 좀 아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난.... 답이 없는 여자였음.

 

거두절미하고 정말 간단하게 정리된 선생님 가족에 대한 캡쳐정리본이 있어서

 

글과 함께 올림. 나 이거 읽으면서 눈물났음.

 

나도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싶었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arience?Redirect=Log&logNo=20139154000)

 

네이버 캐스트에 따르면;

 

일본 영사관과 일본군 수송선 폭파, 청산리 전투 주역 배출한 불꽃 같은 삶

 

우당이 명문(名門)을 팽개치고 형제․가족들과 함께 온몸을 바쳐 독립투쟁 활동을 전개한 시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3.1운동까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시기이며, 둘째는 중국에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그 이념과 노선에 따라 일제에 대한 테러 등 격렬한 운동을 전개한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선생이 해온 일들을 꼽아 보면 이렇게 된다.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한 민중계몽 운동(1898년), 을사오적(乙巳五賊)에 대한 규탄(1905년), 안창호(安昌浩) 전덕기(全德基) 양기탁(梁起鐸) 이동녕(李東寧) 신채호(申采浩) 노백린(盧伯麟) 등과 함께 설립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 활동(1906년), 중국 동삼성(일제는 만주라고 불렀음)에 이상설 이동녕 등을 특파해 교포 자녀교육을 하게 한 서전서숙(瑞甸書塾) 개설(1907년), 서울 상동(尙洞)교회의 상동 청년학원 개설(1908년), 농업 생산과 교육을 위한 교민자치단체 경학사(耕學社) 조직(1911년), 청산리 전투의 주역들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 설립(1912년), 재(在) 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조직(1924년), 항일구국연맹 조직(1931년) 등 하나하나 모두 놓칠 수 없는 투쟁을 거칠게 전개했다.

 

선생이 중국인 동지들과 함께 구축한 항일구국연맹은 생애 막바지에 사른 혁명의 불꽃이다. 상하이 북역 사건, 아모이 일본 영사관 폭파 사건, 천진항 일본 군수 물자 수송선 폭파 사건, 천진 일본 영사관 폭파 사건 등 잔인한 일본 제국주의의 근간을 흔들기 위한 의거는 사명감 속에 계속 실행됐다. 이 같은 꺼지지 않는 독립 투쟁의 기운 속에 이듬해 이봉창(李奉昌)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가 실현된 것이다.

 

나이 65세에 만주 일본군 사령관 처단 계획 추진하다 체포돼 순국


그러나 1932년 11월. 당시 중앙일보(中央日報) 사회면에 실린 3단짜리 기사가 피압박 한국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배에서 나리자 경찰에 잡혀서 취조 중
류치장 창살에 목매 죽은 리상한 로인’

이 같은 기사의 실체는 즉각 확인되지는 않았다. 일경(日警)이 사실을 은폐하고, “그 노인이 이회영(李會榮) 선생”이라는 당시 소문을 극구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후 선생의 죽음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선생이 “유치장 안에서 빨랫줄로 목을 매 자결했다”는 일경의 발표는 거짓말이었다는 점이다.

선생은 다롄(大連) 항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65세 노인의 신체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몸서리쳐지는 고문을 받고 순국한 것이었다. 일제는 서둘러 화장까지 하였다. 일(日) 군국주의의 서곡인 이른바 만주사변(滿洲事變)이 일어난 지 1년만의 일이다. 1932년 초 선생은 중국 국민당을 찾아가 교섭하여, 자금과 무기 지원을 약속 받았으며, 11월에는 만주의 독립운동 지하조직을 굳건히 하고 만주 주재 일본군 사령관을 처단하는 작전을 추진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다롄(大連)으로 옮겨가려고 하던 차였다. 고통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별 하나를 잃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

 

선생을 기리는 우당기념관이 1990년 세워졌고, 2001년에는 서울 종로구 신교동으로 옮겨졌다. 그의 묘소는 국립현충원에 모셔졌으며, 2000년 중국 정부는 우당 선생에게 항일혁명열사 증서를 수여하였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 인물과 역사

(시간 되시는 분들은 네이버 캐스트를 좀 더 읽어보셔도 좋겠음)

주소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871

 

 

 

네이버 인물 사전에 따르면 일본 수상결찰에 그냥 운 나쁘게 잡힌것 처럼 표현

 

되어있지만 밀고로 잡힌 것이라고 함. 나는 진짜 그래도 나름 좀 이것 저것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음.

 

하지만 평생 모를 수 도 있었던 정말 대한민국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신

 

분들을 이렇게 오늘이라도 알 수 있게 되어서 기쁨. 

 

이십 여년을 모르고 살았지만 앞으로 적어도 60년 이상을 알고 감사하며

 

살아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10대 친구들이 그리고 20대의

 

대한민국을 원망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생각을 바꿔 조금 더 감사하며

 

행복해졌으면 좋겠음. 티벳은 여전히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아랍인들은

 

국가의 이미지 때문에 해외에 나가도 눈총을 받고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을 받으며 살아감.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여권으로 편하게 외국도

 

다니고 적어도 국가 안에서 불시에 폭탄이나 총 맞을 걱정 혹은 외국인에게

 

국가 없는 설움을 당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처음부터 누리고 살아서 잘 모르는 것 같음.

 

오늘을 계기로 조금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음. 앞만보면 불행하지만

 

뒤를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게 얼마나 큰 것인지 감사 할 수 있음.

 

남의 생일(크리스마스) 다가온다고 너무 들뜨지 말고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좀 더 희망차게 한 해를 마무리 했음 좋겠음!!!

 

우리는 남의 생일을 기념할게 아니라 광복절때 더 들떠야 하는거 아닌가??;

 

 

 

 

 

 

참고)  이지아 기사에 달린 베플

김순옥님 : 김구 선생님께서 친일파 숙청 제 1호로 명부에 적어놓은 인물이 이지아의 조부 김순흥.
그런 조부를 덕망높은 집의 재력가라며 자랑하듯이 떠벌이는 기사를 내다니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본인의 가문이 부자인걸 알리고 싶었나요?
다른어떤것 보다 친일파를 미화하려 했다는 죄는 용서받기 힘들것 같습니다.
수많은 독립투사분들이 땅을 치며 우실 일인거 같네요,
제발 이지아씨는 자숙하시고, 티비에 얼굴 내밀지 않으셨으면해요,
하는 일마다 자기 무덤파는 꼴이라, 보는 제가 다 민망합니다.
정식으로 독립투사분들의 영혼과 국민들에게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님 : 서태지랑 이혼 소송하면서 서태지한테 위자료 받아내려고 한다는 이야기 들리니깐
나도 원래 잘사는 집안에서 돈 걱정없이 살았다는 걸 얘기하고팠던 것 + 집안좋은 연예인으로 이미지 상승 효과를 보고팠던 모양인데
정말 생각없이 언플한듯
친일파 중에서도 완전 친일파인 모양이던데.
덕망이 높다는 표현을 쓰다니...;

 

김혜민님 : 진심 이런 걸로 언플한 건 정말 토나옴.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어떻게 저런 얘길할 수 있는지..
분명히 기자가 잘 안알아보고 썼느니 어쩌니 얘기할테지만
이회영 선생님같은 진짜 우리나라를 위해 힘쓴 분들은 하늘에서 원통하실듯
조선 최고 부자 집안인 집안에서 6형제가 재산 다 처분하고 독립운동하는 데에 투자해서
끝까지 해방에 힘쓰다가 형제 중 이석영은 굶어 죽고 이회영은 고문사하고 거의 독립 운동중 병사 고문사 당할 때
이지아 조부는 일본 정부에 독립운동가 죽이는 데 쓰이는 돈들 기부하고
이지아는 그 돈으로 유복하게 미국에서 유학생활 즐기면서 자랐다는 소리인것.
분통이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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