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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목에 꽃이 피다....

찬바람 |2003.12.18 05:07
조회 1,396 |추천 0

행운목 영어로는 Lucky Tree
아프리카나 동남 아시아 더운 열대 지방에서 자라 추위에 민감하고
뿌리가 없는데도 신기하게 길게 늘어진 잎사귀를 멋들어지게 틔우는
나무 같지 않은 나무... 그 나무 한 그루가 우리 집 거실 베란다 화분에
살고 있다.

 

녀석이 언제부터 우리 집에 살게 됐는지는
밖에서 혼자 살다 들어온 난 모른다.
내가 인천 집에 들어와 살기 전부터 아마 있었던 듯

그 서있는 폼이 제법 무게가 실려있다.

 

 

쭈욱 그 너른 베란다 한 켠을 차지한 체 아버지의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마시고 어머니의 푸념을 듣고 그도 모자라 내 초췌한 얼굴을 보며
한해 두해 보낸 탓인지 185센 치인 내 키를
더는 넘지 못하고 내 목 언저리에서  성장이 멈춰 버렸다.

 

 

날이 추워져 베란다에 있는 녀석이 안쓰러워 질 무렵 아침
평소처럼 늦은 잠에 빠져 있던 내 예민한 귀는 거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더 자야 되는데 하며 짜증 섞인 눈빛으로 방문을 열고 나오니
어머님이 가위를 찾느라 야단이시다.

" 엄마~ 잠 다 깼잖아요 뭐 찾는 중인데요? "
" 응 ! 가위~ "
" 가위는 왜요? "
" 글쎄 행운 목에 꽃이 폈다... 이상하게 나 다리 다치면 꽃이 피더라 "
"엥? 행운 목에 꽃이요? 어디 봐요~ " " 어~! 정말이네~! 와~ 신기하다"
" 나 둬 잘라야 돼 .. 저거 꽃피면 안 좋데 "
" 누가 그래요? 행운 목에 꽃 피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
" 아 엄마 사촌 언니가 행운 목에 꽃 폈다고 그런 다음 돌아 가셨잖아 "
  잘라야 돼 꽃 피는 거 안 좋데 행운 목은 그냥 나무로만 있어 야지 꽃이 피면 안 좋데..."

10년이나 20년 많게는 50년에 한 번 핀다는  행운 목의 꽃이
한순간에 목이 잘릴 판이다.
가뜩이나 꽃피기 며칠 전 차에서 내리시다 다리를 다치신 뒤라 거의 99% ...

 

 

살리고 싶었다.
지금 까지 살면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꽃인데....
거기다 행운 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의 꽃인데...

일단은 내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행운 목을 변호했다.

그 걸로도 안 될 것 같아 현재 하고 있는 내 작업을 연관짓는
고도의 심리전을 구사하니 음... 어머니의 흔들림이 조금씩 느껴온다.
" 나 지금까지 살면서 집에다 손벌린 거 하나 없잖아요 ... 엄마
내가 알아서 내 앞가림하고 있잖아요.. 느낌이 좋단 말 에요
꽃도 피고 하는 거 보니 무언가 잘될 것 같아요 엄마... 그냥 놔둬요 예? "
음....반응이 확실히 온다.

 

 

작업인지 모시긴지 한다며 허구한날 밤을 홀라당 세고 들어와
도대체가 돈은 버는 일인지.. 빨랑 장가가서 애 낳고 남들처럼 살다보면
왜 못살겠냐고 돈도 모이고....
허우대는 멀쩡한 놈이 장가는 안가고 아직까지 벌어 논 돈도 없이
그놈의 기타나 뚱땅거린다며 내심 투덜대시지만 한편으론
뒷받침도 못해 주는데 잘 될 것 같은 징조란 못난 아들 말에 
" 올해까진 놔두고 새해 연초에 자를 거야~" 하며 가위를 도로 서랍에 두신다.

그렇게 행운 목의 꽃은 살았다.

 

생긴 모양은 화려하지도 꽃처럼도 생기지 않았다.
꼭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피마자 열매 같기도 하고 숱 적은 파슬리 잎을
락스 물에 하얗게 탈색한 것 같기도 한 이쁘지는 않지만 탐스러운 꽃...
향이 있나 코를 대 봤지만 향이 없다.
행운 목에 꽃이 피면 그 은은한 향기가 사방을 진동한다던데....
아직 몽우리 져서 그런가? 하면서 며칠이 흘렀다.

 

 

비가 온 어제 작업실 망년회가 있었다.
말 그대로 올 한해 안 좋았던 일들을 다 버리자는 의미와 이제 본격적인
녹음을 준비할 나를 위해 음양으로 도움 줬던 선후배들을 모시고
식사와 가벼운 음주가 이어진....

 

서울에서 와준 친구들을 늦은 새벽 바래다 줘야 하기에
마시고 싶은 술을 꾹 참고 버티고 앉아 있으려니 힘들기도 했지만
멀리서 별 볼일 없는 나를, 우리 작업실 식구들을 위해

먼길을 와준 사람들의 따듯함에 모처럼 환하게 웃어 본 날이었다.

 

그렇게 비 오는 새벽 성산대교를 한강대교를 넘어 돌아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경인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 현관문을 여니
아~! 거실에 향기가 가득 하다.
화장실 방향제 냄샌가? 하고 코를 킁킁 대보니
화장실 방향제 냄새는 아니다. 그럼?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3분의1즘 열린 커튼 사이로
행운 목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열린 창도....

 

머리가 맑아 졌다.
어떻게 저런 냄새가 날수 있지?
꿀 냄새 같기도 하고 라일락 같기도 하고 여름날 잘 여문 포도밭을
지나는 느낌이랄까... 이모든 것을 혼합해놓은 것 같은 내음이
거실에 베란다에 방안에 가득 이다.

베란다 창을 열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 너...이렇게 좋은 냄새를 만들려고 그렇게 오래 숨어 지냈구나....."
" 이제 마음껏 펼쳐 보렴~~ "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일년 넘게 제대로 잠을 못 이뤘는데....
어제 난 너무 달콤한 잠을 잤다.
정말 좋은 징조일까?

기다림이란 긴 시간이 녀석의 보잘것없는 외모에 옷을 입혔다.
세상에 없는 향기로운 옷을.......

날선 칼처럼 매섭게 추운 이 새벽

나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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