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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남자친구가 통일교 신자라는 글쓴이입니다.

미치겠음 |2012.01.30 23:21
조회 86,081 |추천 114
정말 좋은 충고 해주신 분들, 말려주신 분들, 걱정해주신 분들 감사해요.글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퇴근 후에 남자친구랑 만나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얘기하고 왔습니다.아직 확실하게 헤어진 건 아니니, 남자친구라고 해도 되겠죠.곧 헤어질거지만요.
얘기가 길어질 줄 알았는데, 막상 두시간 좀 안되게 얘기하고 대강 결론을 냈네요.
남자친구의 말은 이렇습니다.
원래 스무살 갓 넘은 정도? 20대 초반 즈음에 축복 상대자를 정한다고 합니다.그런데 자기 고3때 둘째형이 집안을 뒤집고 나가버렸고,그래서 대학다닐 때 상대방을 정하려고 부모님이 말씀하셨을 때 나름 반항아닌 반항을 했었다고 합니다.통일교 내에서 사람을 찾든지 아무튼 나이가 더 들고 나서 정하겠다.대신 바깥사람(?)이랑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 뜻을 따를테니 내버려둬라.만일 강요하면 나도 둘째형처럼 통일교랑 연 끊고 부모님과도 연 끊고 살겠다고.둘째형 일이 있은지 몇년 안된 터라 그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셨던 부모님이 남친 말을 들어주셨대요.
그리고도 매년 그런 말씀하시고 교회(?)나가면 계속 주변에서도 말하고 해서 모면하는 거 힘들었었다고.그래서 나름 도피랍시고 군대를 갔는데....남자친구는 군대 갔다가 심하게 다리를 다쳐서 반년도 안돼서 나왔거든요. (지금도 심하게는 아닌데 뛰거나 할 때는 살짝 다리를 저는 것이 티가 납니다) 다쳐서 나오고 나니깐 집에서는 더 심하게 난리였답니다. 종교적인 이유를 들면서 마치 벌 받았다는 식으로... 세상에 어느 집에서 자식이 다리를 절 정도로 다쳤는데 자식을 나무라고, 수술비가 아닌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칩니까.그 과정에서 남자친구가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었나봐요. 
하여튼 그러다가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고, 취업하자마자 절 만나서 어찌어찌 1년을 사귄거죠.처음에는 솔직히 죄책감도 심하고, 이러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대요.첫째로는 저를 속이고 있다는 거. 그니까, 결혼도 어차피 못할텐데 절 사귀는 건 이기적이고 저한테 못할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대요.두번째로는 부모님에게 죄송했대요. 뭐.... 부모인데, 당연하겠죠. 약속한 것도 있고.
근데 일년 남짓 사귀면서 저랑 꼭 결혼하고 싶고, 다른 사람이랑 축복 같은 거 받아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게다가 집에서는 축복인지 뭔지 받으라고 점점 심하게 압박하고.... 교회가는 날에는 부모님, 첫째형 내외, 셋째형 내외, 누나 내외가 다 모여앉아서 설득하고 압박했대요.너무 미칠 것 같아서 둘째형이랑 어렵게 연락해서 만났고, 제 얘기, 힘든 얘기를 다 했다고 해요. 
둘째형 왈, 너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 가족과 완전히 끊어지는 거다. 물론 나랑 니 형수는 있겠지만, 여태까지 살아온 니 삶, 주위사람들이랑 완전히 끝나는 거라고. 자기도 부모님 밉고 형수랑 결혼한 거 후회는 절대 안하지만, 가끔 미치도록 외롭고 가족들 보고 싶을 때 있다고. 그러니깐 니가 잘 판단해서 결정하라고. 어린애 아니니까.
틀린 말씀 하나도 없더라구요. 그리고 그런 말씀도 하셨대요. 절대 니 여자친구한테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묻지 말라고. 주변에 탈통일교인들 보면, 갈등 생기거나 힘들고 그럴 때, 결혼한 배우자가 부추겼다, 혹은 너 때문에, 이런 식으로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니까 아예 모든 걸 니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니가 전적으로 결정하라고.
참 대단하신 형님이죠. 이정도로 단호하고 똑부러지시니깐 그 집안에서 뛰쳐나올 수 있었겠죠.근데 문제는 제 남자친구는 이 형님처럼 강단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둘째형을 만나서 용기를 얻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서 저한테 털어놓은 것까진...그래요, 가엾고, 힘들었을 것이고, 안쓰럽고... 저한테 얘기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정말 마음만 따르자면 그래 다 좋다, 하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입장은 이렇습니다.널 사랑한다. 결혼하고 싶다. 도저히 축복은 받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평생 불행할거다.하지만 부모님도 가족도 사랑한다. 설득하고 싶다. 평생 둘째형처럼 저렇게 끊어져서 살고 싶지는 않다. 아이 낳으면 보여드리고도 싶다. 그리고 자신이 설득해서 잘 되면 가족들이랑 둘째형님네 집도 다시 이어질 수 있지 않느냐.내가 노력해보겠다. 쉬울거라고 생각 안한다. 일년만 날 믿고 기다려 달라.
일단은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말이죠.전 사실 그거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댓글로 해주신 말씀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들. 저 하다못해 그 설교 비슷한 동영상도 보고, 거기 잡지? 아무튼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그런것도 읽어보고...정말 이건 될 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게다가 남자친구 부모님 정도로 종교생활 하시는 분들은 그게 인생인데,그 사람들은 자식들 결혼시켜서 무슨 혈통 잇는게 인생의 최종목표라고 하는데...그게 설득이 되겠습니까? 설득이 될 분들이면 둘째아들을, 애까지 낳고 살고 있는데 그렇게 외면하겠어요?
일년 기다려서 될거라는 확신만 있다면, 기다리는 방향으로 고민해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안될 것 같아요. 나중에 더 상처받고 끝날 거 같아요.지금 이런 상황에서, 둘째형 상황 뻔히 보고 주위 뻔히 알고, 부모님 어떤지 아는 남자친구가,이 상황에서 설득을 하겠다 기다려달라 하는데...기다려서 안되면, 가족을 끊겠습니까?남자친구 성격에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제가 냉정하고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설득이 된다고 해서 그런 집안에 결혼해서 맘에 안들고 구박받는 며느리로 살 자신 없구요.설득이 안됐을 때 남자친구가 진짜 단호하게 가족들과의 연을 끊는다고 치죠.전 그럼 천륜을 끊어놓은 여자가 되는거잖아요. 평생 그 짐을 안고 어떻게 살아갑니까.
제가 그 사람을 그만큼 죽도록 미치도록 목숨걸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겠죠.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했고, 얘기 듣기 전까지만, 정말 이틀 전만 해도 좋아 죽겠던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걸 보면..... 제가 그 사람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정말 지난 24시간 동안, 머리에 찬물을 한바가지 씌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그냥, 하루이틀 더 생각해보고, 그 사람이 없이도 제가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실한 판단이 들면,헤어지려고 합니다. 
톡 님들 정말 감사하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추천수114
반대수7
베플글쓴이님|2012.01.31 00:13
글을 쭉 보면서 말을 논리정연하게 잘 정리하고 솔직한 마음표현과 정리까지 똑부러진 여자라고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내 짝이다 싶은 사람 놓기 어려우시겠죠 하지만 저또한 저건 불가능이 거의 9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올바른 생각하시는거 맞고요 비록 안타깝지만 막내이신지라 가족사랑을 더 많이 받은만큼 가족을 내치기 거의 불가능하겠죠? 둘째형님만큼만 되었어도 저또한 응원을 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솔직한 마음 .. 남친분께서 상처 안받게 잘 정리하시고 반드시 또다른 인연이 찾아올꺼라 믿어요^^ + 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마음 정리 안되신다면 역으로 생각해보세요 사랑받고 자란 내 남친, 가족을 포기하고 글쓴이님한테 갔을때 그 가족의 외로움 느낄때마다 어쩌면 후회할 남친 보고도 감당할 수 있으신지.. 글쓴이님 사랑 하나만 보고 결혼하기에는 남친분께서는 글쓴이님이 포기하시는 것만큼 같이 포기해야 할 자세가 안되어있는 것 같네요..
베플어휴|2012.01.31 01:15
웬만해서는 판에 댓글같은거 잘 안다는데... 여자분께서 결정을 잘 내리셨네요. 종교는 정말 쉽게 바뀌는게 아닙니다. 단지 "설득"을 해서 상황이 바뀌는게 아니라는 이야기에요. 그나마 여자분께서 똑부러지는 분이신 것 같으니 뭐라고 더 이상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이 결혼은 힘들것 같네요.. 정상적으로 세계에서 인정하는 종교들끼리도 같은 종교가 아니면 결혼이 힘든데, 통일교는 사실상 사이비와 다를바가 없는 집단이니까요.. 글쓴이님께 다른 더 좋은 인연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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