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아들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죠.
저는 어떤 사람들의 옳은 시각에 관하여서 통찰을 해보았는데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시각은, 어떤 ‘의무수행’이 있다면
그 일이 즐거울 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감사한 일!” 이라고 말하며
그 일이 고난스러울 땐, “우리에게 주어진 징계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형벌의 한가지”로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믿음!
그들에게 베푸신 놀라운 믿음!
나도 본받고 싶습니다.
사실 나는 그리 좋은 직장을 다니는건 아니지만,
지혜 있는자도 문벌좋은 자도 많지 아니하던 사도바오로의 교회 신자들에게
사도바오로는 “우리의 행위대로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택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
희안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어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인지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행하지 아니하면, 죽은 믿음이라는 성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요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침으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을진대
하나님께 택함받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신 백성된 당신들과 나.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입을 것이 아니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는 은혜 안에서
‘감사로서 기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린다면 얼마나 좋을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성경이 있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교리는
어떻게 보면,
‘권위’ ‘마땅히 바라봐야할 선’에 대한
“촛점”을 온전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이 영원한 나의 아버지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방향인데
‘예수님이 구원자가 아닐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가장 옳고 영원하십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인정하는 것보다 더 나은 더 앞서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위치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무슬림처럼요.
하지만 다시금 이런 논리 안에 있는 ‘흐트러짐’을 인지하셨듯이. 방금. 지금.
“예수님이 구원자가 아닐수도”라는 말 자체 안에 들어있는 ‘패악함’에 관련한 것입니다.
그것은 ‘악’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자가 아닐수도’라는 이 정신 안에, ‘이미 어떤 올곧은 마땅히 바라봐야할 선’이 결여된
정신이 있다는 겁니다.
왜그럴까요?
왜 그럴까요?
한번 직접 시험을 해보세요.
하나님께서도 사도 바오로의 성경에 “무엇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시험하라”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도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맘 속에 새겨 듣고 깊이 간직하는 옳은 교훈입니다.
->이 논리 안에서 ‘예수님’ 어떤 사람, ‘말씀’ 어떤 옳은 판단, ‘간직’ 어떤 우리의 동의
를 표현하게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받아들인다면 말이죠.
그러므로 이 논리 자체 안에서 ‘예수님 믿습니다, 순종합니다’ 라는 언어가 갖고 있는
이 순종의 길, 이 순종의 방향성과 그 선의 온전함을 보십시오!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언어이며 믿음입니까!
그리고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축복하기로 하나님께 택함받은 민족일진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름 받은 선민이라면
우리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들을 유대인의 하나님으로부터의 규례와 법도를 따라서
사랑하고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가장 좋은 영을 받는 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이 참 좋은 옳은 일일 것입니다.
이제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어떤 다른 인격이 아닌
이스라엘서 나신 구세주요, 참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갖고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시라는 믿음을 갖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가장 옳은 가장 옳은 어떤 “선”과 연결된 의인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실일 경우, 40년전에 예언되었고 22년전에 예언되었던 주님의 뜻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처럼, 이뤄지는 ‘참 하나님 예수’의 존재를 아는 것은 영생의 은혜를
입는 영생의 은총을 입는, 고결하고 존귀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봤는데
이아손님이 갖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정신은
이 게시판 사람들 -나 포함-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십니다.
제가 생각해볼 때 미국의 영향을 비롯한 ‘의’에 대한 ‘열정적 의지’가 담긴
선이 이아손님을 통하여서 늘 전파되는 것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