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244개국 중에서 유일한 성공이죠--당연히 박정희의 지도력없이는 불가능햇죠. 민주주의는 성악설에 근거합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불신에 기초하고 있죠.그래서 절대권력을 한사람에게 집중하지 아니하는 삼권분립을 채택하고 있는 거잖아요.근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하여 부정부패하지 않은 사람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밖에는 없어요.이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집권이 왕정이라 하든 독재라 하든 순수한 국민의 입장에선 진짜 자유민주주의 입니다..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떠드는 사람들의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어요. 박정희가 독재자라면 그 치하의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더욱 더 심한 가난으로 몰락해야하는데 정반대이거든요.그리고 그 당시에 아시아국가들 모두 독재국가였어요.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박정희식 혹은 우리식의 자유민주체제였죠. 요즘의 대통령들처럼 뽑기 전에는 온갖 미사여구와 장미빛 공약을 남발하고는 뽑고나면 속았다고분노하는 우리국민들의 모습을 함 되돌아보면 주인이라는 민에게 남겨진 것은 백수, 평생빛더미,중산층에서 서민으로 서민에서 빈민으로 삶은 얼마나 더 힘들어졌습니까? 온갖 사행성도박과 범죄로부터 시달리며 15000명이라는 광주사태의 8배나 많은 사람이 그것두 매년 자살로 소리없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박정희 시절에는 팽생빛더미에 올라서 사는 젊은이들 없었고 거리에 백수들도 없었구 15000명의 자살자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요 국민들이 온갖 범죄의 표적이 되어 고통속에 방치되지도 않았구요. 온갖 사채사슬에 구속되어 신체포기각서같은 것은 쓰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었죠. 그리고 북괴의 도발에 무방비로 우리국민을 방치하지도 않았지요. 정말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나가는 국가의 국민으로 미래로는 희망이 넘쳐났으며 현재로는 자신감이 넘쳐나던 시절이었죠. 단 민주화의 이름으로 친북활동하는 이적단체의 수상한 사람들을 좀 못살게 굴었죠.그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과 생산활동에 전념할 수가 있었고 그래서 우린 이렇게 발전할 수가 있었지요. 그런 것을 독재라고 할 수는 없지요. 민주화운운하며 박정희의 시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든 사람들이 틀렸음은 이후의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결과가 입증해주고 있죠. 이보다 더 자명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달린 차량도 없는데, 고속도로 만들어 무엇하냐며 반대시위에 나섰던 그 행위가 틀렸음은 이후의 역사가 입증해줍니다. 박정희는 취직할 공장이나 기업이 없었을 때 젊은이들을 기능교육을 시켜서 기능공국제대회에 출전시켰고 우리기능공들은 매회 우승을 했지요. 반대파들은 취직할 공장이 없는데 돈들여 기능공양성해서 뭐하냐는 반대논리는 매우 설득력은 있어보여 유언비어로서는 폭발력이 가지기 때문에 사회혼란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이 사회에 기여한 면은 거의 없어요.박정희는 국제사회에 우리나라에는 전세계를 우승을 휩쓰는 좋은 근로자들이 많이 있다고 홍보하여외국기업을 유치하고 그 기능공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답니다. 만일에 님이 박정희의 입장이 되어 함 생각해보세요. 상대방의 억지가 뻔히 보이고 국가를 발전시킬 길이분명히 보이는데도 민주주의라서 독재해서는 않되니 국가발전을 님은 외면하시렵니까?아마도 님은 민주주의의 제도의 틀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님의 뜻을 관철하려 노력해으리라 생각됩니다.그것은 나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생각이기도 했겠지요. 박정희가 집권할 시기에 문맹률이 무려 90% 가난은 세계 최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국민들은 몰랐어요.유교적인 가부장의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었죠. 도대체 서구적 민주주의를 할 사회제반조건이 성숙해있지 않았어요. 대통령을 그냥 왕처럼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우린 일제에 강제병합되면서 조선왕정이 중단되었을 뿐 왕정을 청산해야할 우리의 자내의 어떤 필요도 우리국민들은 느끼지 못하던 시절이었죠. 그러니 국민들의 의식은 왕정의 구조속이었고 세계의 근대화의 물결은 소수나마 맛본 집단은 대학과 군대밖에 없었답니다. 당연히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내건 정치집단은 대학과 군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이 있어다 하겠지요. 학생은 근대교육과 캠퍼스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만나니 의사소통을 하고 뜻을 모을 수가 있었고, 정치세력화할 수가 있었죠, 마찬가지로 군인들은 군부대라는 공간과 지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생각을 교류하고 뜻을 모을 수가 있으니 해방이후 학생세력이나 군세력의 집권은 우리역사내의 필연이었죠.419는 학생이 정권을 뒤집었고 516은 군인이 뒤집었지요. 근데 그 결과는 419는 국민에 무책임했고, 516은 국민에 책임을 다했어요. 419는 국민의 삶을 더 깊은 혼란속으로 집어넣고 말았지만 516은 근대화와 번영으로 이끌었습니다. 419도 학생들이 주도했고 국민들이 따랐으며, 516도 군이 선도했고 국민은 따랐지요. 군만이 한 것이 아니라 군이 국민과 함께한 혁명입니다.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516이 일어났을 때, " 올 것이 왔구만." 이라고 탄식햇다고 합니다. 오지 말아야할 것이 온 것이 아니라 와야할 것이 왔다는 말이 아닙니까? 조국근대화의 기수는 학생과 군대밖에 없었는데 학생은 무책임했으나 군은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되요.군부독재라고 매도들 하고 있으나 사실상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군이 주도한 겁니다. 문맹율 90% 가난의 속박과 유교적 인습의 속박 속에 갖혀있었던 우리국민의 능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었죠. 국민이 잘 사는 것이 민주주의이라고 생각해요. 박정희는 세계정치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유가의가부장적 지도자 내지 권위주의 지도자로 확인되었어요.해방후 우리국민은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무엇인지 사실상 몰랐고 깊은 유교적인 사회에서 살았죠.서구의 역사적인 토양에서 발전한 민주주의를 우리에게 바로 접목시키는 것은 제반여건에 모두 무리가 있었죠. 국민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한낱 구호에 불과해요. 당장 먹고사는 생존에 전생명력을 다 소진하는 상황에서 자유는 없지요. 자유가 없는데 어떻게 주인이 될 수가 있어요?바로 국가도 가난은 어쩔 수없다하는 오래된 믿음을 깨뜨리고 국가가 국민의 가난을 몰아내어 생존에만 매달려있던 국민들은 구원하여 자유를 주었지요. 그래서 더 큰집으로 이사갈 자유도 생겼고 더 적성에 맞는 직장을 옮길 자유도 생겼고, 빈민들만 득시걸 거리는 대한민국에 중산층을 도탑게 박정희가 만들었지요. 바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박정희가 만든 것인데 전 이점에서 박정희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어머니라고 생각해요.박정희가 나오고 나서야 우리국민은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니 생존보다는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었고 생각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학문과 예술이 꽃피고 정치적인 사고를 할 수가 있었죠. 왜 경제적인 발전을 성공시킨 것과 민주주의는 별개라구요? 당시의 우리나라의 실정으로는 경제적인 발전은 민주주의 그 이상입니다. 경제적인 발전으로 우리국민은 생존을 얻었고 자유와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시켰고 교육과 학문과 문화와 예술과 방탕과 타락 사치,,, 등등 번영의 그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경제적인 성공은 경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알파요 오메가를 다 낳게 되죠. 민주주의는 경제적인 성공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겁니다. 백수공화국의 나라를 백수없는 나라로 만들었고, 모두 빈민을 못벗어나던 국민을 재벌로 중산층으로 서민으로 환골탈퇴시켰고 노숙자 없는 세상을 만들었고 악질 고리대없는 세상 각종 사행성 도박없는 세상 만들었죠. 굶어죽는 사람 없었고 년 15000의 자살자도 없는 세상만들었죠.미래에 대한 장미빛 희망이 넘쳐나던 그 실절, 이거야말로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아닙니까? 전세계를 혁명한 원조한류 박정희 박정희가 한국을 발전시킨 성공은 당시의 244개국 중에서 유일하답니다. 국가주도의 개발경제를 당시의경제학자들은 비웃었답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요 경제학의 원류국 영국에서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겠나?'며 박정희의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비웃답니다. 공산주의도 국가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실패해서 그 인민들은 더 깊은 가난과 질곡속에 묻혀가고 있을 때 박정희가 이끌던 대한민국의 국가주도만이 유일하게 성공신화를 쓰면 한강의 기적을 세계만방에 너희들이 틀렸다고 크게 한방먹였죠.박정희의 성공은 경제학원론을 바꾸어놓았고 같은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을 도모했으나 실패한 공산권이 주목하게 되었죠. 대표적으로 중국의 등소평이 포철을 방문하여 경악했죠. 철강의 원료가 없어서 수입해서 쓰는 한국이 포철과 같은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데 자국내에 철광성이 거의 무한대이며 오래전부터 제철소를 가지고 있었던 중국에는 포철과 같은 성공이 없었지요. 그때로부터 중국의 한국배우기를 시작하여 중국의 대학에는 박정희학과까지 있을 정도로 한국으로부터 배워서 지금 눈부신 중국의 발전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죠. 러시아도 세계여러 국가들이 국가주도의 발전이 가능함을 한국을 통해서 알게되고 또 실재로 따라하기로 전세계의 경제지도를 박정희가 바꿔놓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월남의 도이모이, 인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오대양 육대주 박풍이 불지않는 곳은 없지요. 공자가 대인(大人)은 큰 것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먼저 대체(大體)를 선점하여 소인들이 따를 수없는 우위를 선점하는 자가 대인이라고 했어요. 가난의 질곡속을 헤메이는 전세계의 빈국들에게는 박정희는 희망이죠 빛이었죠. 박정희가 먼저 가난으로부터의 해방과 부국강병의 대체를 선점하였기에 전세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박정희 이전의 우리나라는 '가난은 나라도 어쩔 수없다.' 는 소체(小體)를 따르던 소인배국 , 즉 전근대의 후진국이었죠, 그런데 우리도 전세계도 비웃던 '국민의 가난은 나라가 구할 수 있다.' 는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전략이라는 대체(大體)를 이세상에서 처음으로 박정희가 선점하면서 전세계의 누구도 그를 넘볼 수가 없이 전세계는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박풍(朴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지도를 무섭게 바꾸고놓고 있습니다.중국은 박풍을 타고 하늘을 날고, 인도도 비상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박풍의 진원지인 우리나라는 박정희를 개발독재니 유신독재니 하는 폄하하는 민주화인사들이 집권하면서 선진국 문턱에서 성장을 멈추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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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내가 쓴글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제대로 알고 살기 바람네이버 지식에서 펀글임을 밝힘. 글쓴이는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