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쓰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좀 돌아보고 앞으로 더 잘살기 위해서 입니다.
학창시절, 군 시절, 사회 생활
이렇게 올릴 예정입니다.
심심하면 봐주세요. '이렇게 살아온 사람도 있구만.' 하면서요.
86년 27살 남자입니다.
가볍게 반말로 갑니다. 기분나빠하지 마세요.
기억에 시간의 오류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니 해주세요. 정정해주시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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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4층짜리 빌라의 1층에서 살았지.
2층과 3층은 서로 연결되 있었는데 집주인이 사셨는데 아버지 친구분이셨어.
게다가 동갑의 여자애가 살아서 소꿉친구로 지냈지.
어릴 적에는 같이 목욕도 같이 하고 그랬어. 기억은 희미하지만 사진이 남아있더군(...)
지하에 사는 분, 1층의 우리집, 2, 3층의 주인집, 4층에 사시는 분, 이렇게 모여서 음식도 해먹고 여름이면 빙수도 만들어서 먹고는 했지.
아마 이 시절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웃사촌이라는 것을 경험한 때이기도 해. 어머니는 아직도 이분들이랑 자주 만나시고 계시지.
소꿉친구로 지내던 그 여자애는 초등학생이 되고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부터 난 남자들과 놀았고 그 애는 여자애들과 놀았으니 서로 점점 떨어졌지.
참고로 내가 다니기 시작할 때는 국민학교였는데 4, 5학년쯤 돼서 초등학교로 바뀌었지.
게다가 내가 집 근처에 동갑의 친구가 생겨서 등교도 따로 했으니 점점 더 멀어졌어.
그렇게 초등학교를 무난하게 다니던 중에 슬슬 PC방이나 컴퓨터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어.
그전까지는 오락실에 가서 많이 혼났는데 이젠 PC방에 가서 많이 혼났지. 집에 컴퓨터가 없었거든.
바람의 나라, 디아블로2, 포트리스, 레인보우 식스 등이 날 놓아주지 않았어.
중학교는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부안 중학교라는 곳을 다니게 되었어.
기억이 나는건 초6 시절 반장이 공부를 좀 잘했는데 가까운 부안중을 가고 싶어해서 1지망에 부안중을 넣었는데 재수가 없었는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혼자 가게된게 기억나네.
그 녀석... 울었던거 같은데 그건 좀 애매하네.
아무튼 그렇게 중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지.
내 천성이 좀 내성적이고 마찰을 싫어해서 무난무난하게 잘 지냈어. 당시에는 지금처럼 왕따나 이런 문제가 심각하지 않아서(물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선 그런게 없었어) 친한 친구들도 만들며 잘 지냈는데...
큰 사건이 생겼지. 내 인생의 엄청난 기억이지.
중1였나 2이었나는 잘 기억이 안나. 충격적인 기억라면서 학년도 기억 안나냐고 하면 할 말은 없어.
아무튼! 교실에서 자리를 바꾸는 이벤트가 있었어. 난 내심 두근거렸지.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거든. 이름도 기억나. 잊을 수가 없어.
난 그 애랑 같이 앉고 싶었어. 하지만 자리는 랜덤으로 정해지기 때문에(남, 여 같이 앉음) 그냥 속으로 ‘같이 앉으면 좋겠네’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이게 왠일이냐. 정말 짝꿍이 되었네. 신기하네.
그 애는 키도 크고 얼굴도 뭐, 내가 보기엔 이뻐보였어.
근데 나랑 짝꿍이 되기 전에는 나랑 말도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애였는데 같이 지내보니 활발하고 잘 웃고 좋은 녀석이더라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는 우리 뒤에 앉은 남녀 짝꿍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애가 갑자기 나를 껴안은거야. 오메 깜짝이야.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갔는지 기억은 잘 안나.
그 뒤부터 그 애는 공공연하게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더라고.
...실화입니다. 리얼입니다. 시트콤이나 학창 드라마가 아니에요.
문제는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레벨이 장난이 아니었어.
예를들면 중학교 점심식사시간에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급식이 도시락으로 나왔어.
밥이랑 반찬이랑 들어있는 두 개.
이걸 들고 친구들끼리 밖으로 나가서 휴게소? 음... 좀 아닌거같고. 아무튼 적당히 그늘이 있는 장소에 옹기종기 앉아서 식사를 했지.
거긴 명당이라 학생이 바글바글해서 늦게가면 자리가 없는 그런 곳이었는데 어느 날은 나랑 친구들이 점심을 먹고있는데 4층 창문이 열리면서 그 여자애가 얼굴을 내밀고 ‘한XX 사랑해~! 한XX 사랑해!’ 하고 외치는거야.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친구들은 놀라서 날 보고 날 모르는 사람들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그 여자애를 바라봤지.
난 내성적인 성격이라(지금은 좀 바뀌었네. 이유는 나중에) 놀라서 얼굴이 빨갛게 돼서 그 자리를 후딱 벗어났지.
그것뿐이 아니야.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면서 볼일은 점점 줄어들었는데 복도에서 만나면 또 사람들 많은 곳에서 다 들리도록 ‘한XX 사랑해~!’ 하고 외치면서 뛰어오는데...
물론 처음에 말했듯이 난 그 애를 좋아했어.
그런데 뭐랄까... 위에서 든 예처럼 보통이 넘는 일을 벌이는거야. 나, 내성적인 소심한 남자였어.
‘나도 좋아해’ 이 한마디도 못하고 피해만 다녔지. 바보같이.
그렇게 피해만 다니다보니 ‘사실은 저 애가 나를 놀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
그도 그럴만한게 어느새 나도 그걸 즐기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애가 ‘좋아해~!’하면서 뛰어오면 나도 뛰어서 도망치고는 했어. 바보맞아.
그런 내 모습을 보는게 재밌어서 더 그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난 방식을 바꾸기로 했어.
철저히 무시하기로. 다시 말하지만 분명 좋아했던 여자애였지만... 너무 쇼크가 커서 말이지.
그 여자애가 댓쉬해오던 말던 난 무시하고 지나가고 태연하게 반응했지.
그러다보니 점점 그런 일이 없어지더라고. 그 애도 지쳤는지 혹은 내 반응이 재미가 없어진건지.
그렇게 점점 잊어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
난 학원을 다니고 있었어. 중학교 바로 앞에 있는 학원이었지.
중3 시절 학원에서 밤까지 공부하고 수업이 끝났어. 아마 시험이 끝난 다음이었을거야.
학원 친구들이 여선생님한테 술 사달라고 외치더라고. 선생님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OK‘ 사인을 내시고는 학원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초등학교 길 건너면 우리 중학교)에 가서 소주랑 콜라를 합친 소콜(소주+콜라)를 만들어 주셨어.
아마 첫 음주였던걸로 기억해. 나 얌전하고 탈선안한 내성적 남자였으니까.
종이컵 한 컵을 들고 소콜을 마셨지.
근데 잘 기억이 안 나는게(술 마셔서 필름 끊긴게 아니라 세월이 너무 지났어) 거기에서 그 여자애를 만났어.
같은 학원은 아니고 밤인데다가 그 애도 좀 취했더라고 친구들끼리 마신거 같은데 잘 모르겠네.
아무튼 난 공원 의자 같은거에 앉아서 마시고 있는데 내 옆으로 와서 앉더라.
간만에 본거고 그 당시에는 더는 전과 같은 일을 하지도 않기에 관심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때 나는 그 애가 앉은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앉은 상태였지. 일부러 돌린게 아니고 원래 그렇게 앉아있었어.
즉, 그 애는 내 뒤에 앉은게 되지.
그렇게 앉은 그 애는 갑자기 자기 머리로 내 등을 콩콩 두들기면서 작은 목소리로 ‘한XX 너, 사랑한다고...’ 하고 몇 번이나 말하더라. 취해서.
분명한건 좋아한다고가 아니고 사랑한다고 한게 맞아. 조숙하네...
그때도 나는 무시로 일관했어. 미안하네. 설령 장난이라고 해도 그때쯤은 술기운을 빌어서 나도 말 좀 해볼걸.
그 밤 이후로는 그 애를 본 기억이 없네.
설령 봤다고 해도 스치듯이 지나갔겠지.
그렇게 내 중학교 시절의 충격적인 체험은 끝났어.
중3이 끝날 때쯤에는 나도 내 진로를 생각해야했지.
그런데 솔직히 어린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녀석은 별로 없지 않을까?
나도 그렇지 뭐.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을 가게 됐어. 정말 강남은 아니고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 중에서 좀 쎄다는 안양공고를 지원하게 됐지. 친한 친구가 그쪽으로 갔거든
그리고 무슨 깡인지 그중에서도 점수가 높아야 간다는 전자기계과를 선택했어.
당시 내 등수는 반에서 10~20 사이 정도였을거야.
근데 학교에서 면접도 보내? 가서 면접을 봤지. 뭐, 내용은 기억이 안나.
그리고 용케도 붙었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학교에서 교복을 나눠줬지.
등교 전에 와서 받아가라고 이런 내용이었을거야. 공동구매였을까?
나는 가서 나눠주는 교복을 받아서 집에 가져왔지.
그리고 등교 첫날 교복을 입고 아침 식사를 했어.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왜 조끼가 없냐고 물어보시는거야. 다른 학교는 있는데 왜 넌 없냐고.
난 모르겠다고, 원래 이렇게 나눠준거라고 말씀드렸지.
그런데 안 믿더라고.
밥 먹는 내내 계속 바보같이 그것도 안 가져오냐고 뭐라고 하시더라.
혹시나해서 덧붙여두지만 내 부모님은 두분 모두 좋은 분이셔. 어머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여의셨지만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친부모처럼 극진히 모시고(집에 가신다고 나가시는걸 정말 맨발로 뛰쳐나가서 더 쉬다 가시라고 하는 모습을 봤어) 아버지는 비록 벌이는 좋지 않은 일을 하지지만 항상 당당하고 집에서 안 좋은 모습한번 보인적 없는 분이야.
각설하고.
난 밥먹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지. 첫 고교등교 날, 내가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이렇게 추궁당한다는게 너무도 억울해서 밥먹다말고 식탁을 양 주먹으로 두드리며 그럼 학교가서 조끼가 없으면 나한테 뭐라고 할거냐고 외쳤어.
눈물도 그렁그렁했고 목소리도 떨렸지. 아직도 기억나. 그 분노가...
마녀사냥이라는 느낌이 딱 오더라고.
그런 내 외침을 들은 두 분은 아차 싶으셨는지 입을 다무셨어.
그때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 반항이었을거야. 난 사춘기도 조용히 지나갔거든.
그러고 학교를 가니 당연히 조끼는 없지. 원래 없는거야.
난 아직도 그때의 일이 상처로 남아서 얼마 전에도 어머니랑 대화하다가 그 일을 지나가듯이 말했어.
어머니는 엄청 미안해하시더라. 쩝... 그래도 난 잊지 않는다고 했지. 다음부턴 그러지 마시라고.
웃으면서 말한거긴 하지만 어머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건 저한테 큰 상처라 쉽게 잊혀지지가 않아요.
에잇~! 이야기가 딴데로 샌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입학하게되었지.
1학년은 잘 놀았고, 2학년 때는 버스타고 집에 가면서 내가 군대에 갈일은 없겠지. 하고 근거없는 망상이나 했지.
남녀공학이었지만 과가 전자기계과이다보니 여자사람이 없었어.
눈물 좀 닦고...
3학년이 될 때까지 내 성적은 10~20 사이였지. 중학교랑 변한게 없네.
그런데 그쯤에 우리 집이 이사를 가게 되었어. 4층 빌라의 1층에서 나와 길 건너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으로 갔지.
보충설명하자면 내가 살던 곳을 기준으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시골이었어.
논, 밭 있는 진짜 시골.
그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후리지아라고 하는 노란 꽃을 하우스에서 키워서 파셨어.
내가 할머니댁으로 들어가서 살게된 이유는 우리가 전세로 준 근처의 아파트로 드디어 우리가 입주하기로 해서 남은 시간동안 할아버지 댁에서 얹혀살기로 한거지.
그때가 아마 고3 2학기가 시작될 쯤이었던거 같아.
난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중간고사를 볼 때 밤 늦게까지 책에 줄그어가면서 공부했었지.
학원은 중학교 이후로는 안다녔으니까.
왜 공부했는지 그 계기가 잘 기억이 안나. 아마 한번 해볼까? 이거였을거 같네. 쓰읍...
그래서 나온 성적은 우리반 2등이었어.
다들 놀라더라. 선생이고 친구고 죄다.
베껴서 오른거면 어느정도 오르고 말텐데 이건 뭐 2등을 해버렸으니...
1등하던 녀석은 3년 내내 1등하던 반장이라 넘사벽이더라고.
시간이 흘러서 1차 수시에 대학에 원서를 넣기 시작했어. 난 안 넣었어. 돈도 없고 수시에 대한 개념도 부족했으니까.
그렇게 지내다 고등학교 3학년 취업을 나가게 된거야.
난 금정역에 있는 벤처타운에서 윈윈텔레콤이라는 곳에서 일을 했지. 돈은 적게 나오지만 난 돈벌어서 컴퓨터를 좀 바꾸고 싶었으니까.
중학교 때 산 스펙 그대로였거든(충격의 하드 5기가)
3개월을 다녔는데 야근 때마다 난 수능 공부해야해요~ 하면서 빠졌지.
물론 PC방 갔습니다.
그렇게 회사에서 3개월 일하며 컴퓨터도 바꾸고(부모님 돈으로 모니터를 샀지.) 2차 수시를 근처에 대림대학 메카트로닉스과에 집어넣었어. 딸랑 한 개.
일을 다닐 때 수시 합격소식을 통보받았지 기분 좋았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거 떨어졌으면 재수했을텐데. 참 운도 좋아.
그 덕에 수능은 잘 기억이 안나. 내가 봤을때가 뭔가 등급제로 바뀐 첫 시험이었던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네.
그렇게 대학에 가게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