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다 적었네요.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추억은 많이 떠올라서 좋았네요.
앞으로도 무사 평안하고...
여자친구 만들 수 있기를...
맨 아래에 카카오 톡 아이디 적혀있으니 심심한 여자분 문자하세요~
부담될테니 만나자고는 안합니다~ 그냥 말이나 주고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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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하고 바로 학교에 복학을 했지.
전역한 당일 군복을 입고 바로 학교에 가서 복학 신청을 했어.
그 때는 이미 학기가 시작하고 1주일 이상이 지났기에 아슬아슬하게 복학이 가능했지.
휴학을 하고 쉴 생각은 없었어. 1년 동안 놀거나 알바를 하는 것보단 얼른 졸업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거든.
딱히 돈에 쫒기거나 하진 않았어.
아버지는 용달차를 끌고 자영업을 하시고 어머니는 생산직 공장에 다니시지.
용달은 기름값이 뛰기 시작해서 거의 돈이 안 벌리기 때문에 아버지는 간신히 집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벌어오셨어.
전기세나 핸드폰 비 기타 등등.
주로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지.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시니까.
고등학교 시절에 취업을 나가보니 어머니가 하시던 고생이 더 실감나더라.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내가 이 앞으로 무언가에 쫒기듯 살아온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해.
나는 그렇게 복학했어.
1주일 이상이나 늦었기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내 전공과목 실습 실력은 정말 좋았거든.
자연스럽게 금방 친구들이 생기더라.
덕분에 학교생활이 심심하진 않았어.
난 필기는 그저 그랬지만 컴퓨터로 하는 3D 디자인이나 CAD/CAM 혹은 밀링, 선반 등 직접 하는 실습은 정말 빠르고 잘했어.
그래서 그나마 성적이 나왔지. 3.5 정도 간당간당 유지했어.
시간이 지나 졸업작품을 제작할 시즌이 되었지.
나와 친구 두 명이서 팀을 짜기로 하고 PLC라는 것으로 간단한 자동화 기구를 만들겠다고 교수님에게 말했어. 내가 그건 자신이 있었거든.
그러자 교수님이 우리에게 PLC는 매년 나오는 흔한 작품이니까 다른 교수님이 만드시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거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게 더 좋겠다 싶어서 그러겠노라고 했지.
그래서 소개받은 교수님은 독거노인분들이 사시는 집에 센서를 설치해서 밤 혹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를 제외하고 일정시간 집에 아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지정된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보내지는 작품을 설명해주셨지.
독거노인분들이 집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쓰러지셨을 때를 대비한다는 취지의 작품이었어.
실제로 집에 센서를 설치한 것은 아니고, 손잡이나 화장실 물 내리는 레버, 동작 감지 센서 몇 개를 사서 그걸로 간단히 제작을 했지.
한명은 그 구조물을 제작하고 한명은 물건을 사고, 나는 그 구조물에 연결되는 보드를 작성해서 제작하기로 했어.
나 PCB 보드 제작 정말 못하는데 그나마 내가 제일 잘하더라.
그래서 집에서 골을 싸고 구성도를 그려서 제작했지. 머리 좋은 분들이 보면 정말 간단한 보드인데 그래도 난 보드랑 안 친해서 힘들었어.
그래도 다행히 보드의 제작과 구조물의 제작은 성공했어.
그리고 핵심이 되는 프로그램은 교수님이 비주얼 스튜디오로 제작을 하시더라.
사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그램 쪽은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교수님이 프로그램 처음부터 만드시는걸 구경했거든.
재밌어보이더라. 이때 프로그램이 재밌을거 같다는 생각을 처음 가지게 되었지.
물론 핵심이 되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시스템은 따로 제작하셔서 합쳤고 내가 본 것은 뼈대가 되고 전시하는 날 보이기 위한 간단한 프로그램이었어.
교수님은 내가 옆에서 구경하니까 기특하신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면서 프로그램을 작성해주셨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자 보내는 프로그램과의 연동은 전시하는 날 오전에 메일로 보내주시겠다고 했어.
내가 옆에서 보기에는 코드 몇 줄만 더 넣으면 끝나는거 같은데 핸드폰 문자가 교수님 비용으로 나가는거라면서 조심하시더라.
그렇게 졸업작품 제작이 끝나고 전시하는 날이 되었지.
정신없이 전시하는 곳에 PC 설치 및 작품의 설치를 끝냈는데... 교수님과 연락이 안되는 거야.
전화도 안받으시지, 보내주신다는 메일은 도착하지 않았어.
환장하겠더라.
제일 중요한 문자 보내는 기능이 안 되면 어떡하냐.
구경하기 위한 손님들이 올 시간은 점점 다 되어가고 교수님이랑 연락은 안되기에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코드를 넣어봤어.
다행히 동작하더라.
그렇게 무사히 동작에 성공했고 나는 조교가 몰고 온 양복 입은 단체 손님들에게 우리 작품을 설명했지.
왜 하필 내가 지키고 서있을 때 오냐고.(조원이 순서 정해서 작품 앞에서 서있었지)
그렇게 전시회가 끝나고 우리 팀은 기적같이 대상을 수상했어.
뭐, 사실 교수님이 다 한거라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지.
상으로 노트북이 나왔는데 그건 학교가 기증받기로 정해져 있더군.
우리에겐 1인당 10만원의 수표가 주어졌어. 집에 가져다 자랑스럽게 바쳤지.
졸업 작품이 끝나고 교수님에게 알아보니 교수님은 수정 프로그램을 메일로 보내주셨다고 하더라.
문제는 그 메일이 학교 메일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나한테 도착을 안한게 문제지.
그래서 내가 프로그램 완성해서 전시했다고 하니까 좀 놀라시더라.
대학의 졸업은 별거 없었어.
물론 취업하기 위해서 성적 좋은 사람들은 학교 지원을 받아 빠르게 취업을 나갔지.
하지만 나는 취업을 안 한 채로 졸업하게 되었어.
그리고 졸업하고 바로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갔지.
마침 집근처에 직업전문학교가 있었고 개강하는 과중에 CAD를 배우는 곳이 있더라.
난 CAD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곳에 지원했고 면접을 봐서 합격했어.
5개월 가량 그곳에서 CAD를 비롯해 CATIA와 3D MAX를 배웠어.
난 CAD나 CATIA 실력이 제일 좋았지. 모르는 사람들 주말에 나와서 따로 많이 가르쳐드렸어.
어떤 아주머니는 내가 주말에 1대 1로 알려드리니까 고맙다고 5만원을 쥐어 주시는데...
난 점심 얻어먹고 갈려고 했는데 한사코 쥐어주셨지. 찝찝했어.
직업전문학교는 대부분이 형들이더라고. 아주머니도 몇 분 계셨지.
직업전문학교를 다니다 CAD 자격증 시험을 보러갔어.
하나의 기계가 포함하고 있는 5개의 부품 중 4개를 그리는 작업이었는데 나는 문제를 잘못 읽어서 5개를 다 그렸지. 바보같이.
시간에 딱 맞게 다 그리고 형들이랑 확인해보니 4개를 그리는 거더라.
제길...
형들은 4개도 다 못 그렸다고 하는데 난 5개 다 그렸다고 대단하다고 하더라.
난 그것보다는 하나 덜 그리면 감점이라는데 하나 더 그려도 감점이 되는지 걱정이 되었어.
직업전문학교에서 날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도 너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쓰읍...
결국은 합격했지.
40명가량 시험을 봤는데 합격한건 10명 내외였어. 어려운 시험이었지.
시험을 마치고 직업전문학교에서도 졸업작품을 준비하더라?
분단별로 2조씩 총 8조를 만들게 되었어.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조의 조장은 누구로 할건지 묻는데 당연히 모두 하기 싫지.
가위바위보로 정하더라.
그런데 우리 조가 정할 순번이 되어서 가위바위보를 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우리조는 내가 조장하래.
내가 선생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밥도 얻어먹고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참 허물없이 말씀해 주시더군.
실력도 내가 제일 좋았으니 어쩌면 당연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장은 발표를 해야한단 말이지.
그 하기 싫은 발표를.
결국은 내가 조장하게 되어 졸업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어.
작품은 3D MAX나 CATIA를 사용해서 제작하는데 나는 3D MAX는 잘하지 못했어.
별로 배울 생각이 없어서 수업시간에 놀았거든.
그래서 CATIA로 제작하기로 했지.
간단히 구상을 하고 제작을 하는데 대부분이 거의 못하는 분이야. 5개월 동안 뭐하신건지...
그래서 나랑 친한 형 둘이서 대부분의 제작을 했어. 랄까 내가 거의 다 했지.
그 형도 딱히 잘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냥 어느정도 할 줄 알고 협조성이 있었지.
난 리더쉽 자질은 없는게 확실해.
그렇게 제작한 작품을 동영상까지 만들어 선생님께 검사를 받고 발표날이 되었어.
젠장 다른 과정을 배우는 사람들도 다 와서 강의실 꽉 차게 앉아 있더라.
발표는 큰 문제없이 끝마쳤어.
평가는 어떤지 잘 모르겠어. 다들 기계적으로 박수를 쳤거든.
질의응답도 있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나.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조는 꽤 잘한 편에 속하긴 했어.
몇 조 빼곤 그저 그런 정도였거든.
그렇게 졸업작품도 마치고 이제 취직에 들어갔어.
이력서를 작성해서 내면 직업전문학교에서 취직자리를 알아봐주지.
혹시라도 직업전문학교에 다닐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기억해줘.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
내가 본 바로는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취직을 시키는 경우가 좀 있어.
나도 그런 케이스였지.
처음에는 부천에 있는 핸드폰 케이스 제작 업체를 소개해주더라.
부천... 좀 멀어. 1시간 이상 걸리지.
그래도 일단 가봤어.
폭우가 내리던 날 양복을 입고 우산을 쓰고 갔지. 그래도 다 젖었어.
면접을 보는데 사회 첫 면접이라 네, 네 거리기만 한거 같아.
연봉은 1600을 주기로 하더라.
그렇게 듣고 직업전문학교에 와서 말을 하니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거기 가지 말래.
원래 1800 주기로 해서 보낸건데 말이 틀리다고.
넌 원래 2000받아도 된다고 말하시는데 빈 말이라도 기분은 좋지.
그래서 부천은 안가기로 했어. 선생님이 전화로 안간다고 하셨지.
그리고 바로 다른 곳을 알아봐 주셨어. 거기도 개인적인 연락책으로 연락해서 날 넣어주셨지.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취업을 나가게 되었어. 개인적인 연락책을 사용하셨으니 취업이 빠르더라.
원래 다 그런진 모르겠지만.
두 번째로 간 회사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더라.
그날도 미친 듯이 폭우가 내렸지. 강이 범람했으니까 장난 아닌 양이 내렸어.
면접이라고 할 것도 없더라.
내가 양복 입고 가니까 7월 21일 날부터 나오래.
일하고 있는 사람이 그쯤에 그만두니까 그때 간단히 인수인계 받으라고 하더라고.
연봉은 1800이었고 1800/13이 내 월급이었지. 그리고 1년 지나 입사한 달에 1/13의 급여를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하지.
많은 중소기업이 이럴거야.
그 회사는 군부대에 감시장비를 제작하여 납품하는 회사였는데 CCTV 같은 것이 아닌 열영상 카메라를 수입해서 하우징을 만들어 팬틸트라는 장비 위에 올려서 PC와 프로그램 연동을 하여 감시하는 그런 장비였어.
복잡하지?
간단히 말하면 열영상 카메라는 천안함을 찍은 그 회색 영상을 찍는 카메라야. 열의 차이로 사물을 감지하기 때문에 낮이고 밤이고 모두 감시가 가능하지. 비 많이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무튼 억 단위의 금액의 카메라야.
그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팬틸트 즉, 카메라를 올려놓고 상하좌우로 이동하는 기구를 분해해서 CAD 도면화 하는 작업이었지.
팬틸트 제작업체에서 도면을 주지 않아서 그렇다더군. 도면을 받으려면 돈을 많이 줘야하니까 나보고 제작하라고 한거야.
난 성심성의껏 제작을 했지. 다행히 그 도면은 사장님 개인 소장용이 되었어.
실제로 그 도면보고 제작했다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난 온 힘을 쏟아 제작하긴 했는데 말이지.
그렇게 도면을 제작하다가 나는 기술지원부로 발령이 났지.
말이 좋아 부지 실상 과장 1명이 있는 곳이었어.
거기서 군에 납품하는 장비를 조립하고 설치, AS를 담당했지.
납 땝에 전선 연결, 볼트 조립 등의 일을 하고 운용 프로그램의 매뉴얼을 작성했지.
운용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나와 동갑인 녀석이 혼자 담당했는데 정말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녀석이었어.
허리가 안 좋아서 군을 면제 받았다고 하더라. 앉아서 오래하는 일도 많이 힘들어 했는데 디스크 체어라는 것을 쓰면서부터 좀 살만한가 보더라고.
아무튼 그녀석이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처음부터 제작한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개발해 온 것을 점점 보강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실력은 좋았어.
MFC를 사용한다고 하더라.
군 납품이라는 특수한 성질 때문에 군의 요구조건에 따라 프로그램이 계속 바뀌고 업데이트 되기 일쑤라 매뉴얼도 매번 새로 제작해야 했어.
이게 아주 죽을 맛이었지.
장비 조립이나 설치 등은 내 적성에 맞는거 같더라. 생각 외였어.
문제는 이 망할 놈의 AS 인데 이게 주말이고 밤이고 낮이고 툭 튀어 나오는거야.
우리 회사 장비가 초창기에 좀 불안한 감이 있었거든.
거기서 열심히 일하며 1년이 좀 지났을 적에 사장님께서 날 불러서 수고했다고 연봉을 올려주시더라.
그래서 2200 좀 못되는 돈을 받게 되었어.
한 달 월급이 150을 받고 있었는데 그중 세금을 빼면 130 정도 남지.
거기다 100만원을 적금을 붓고 남는 돈은 30.
당시에는 스마트 폰이 없었기에 핸드폰 비는 부담이 없었고 내가 옷을 많이 사 입는 편도 아니어서 오히려 통장에 돈이 조금씩 모였지.
그런 상태에서 월급이 오르니 20만원 가량이 더 들어오는거야. 기분 좋았지.
그 때쯤에 아이폰을 샀고 통신비가 조금씩 압박이 들어오더라. 신용카드도 만들어 놓으니 점점 쓰게 되더라고.
그래서 씀씀이가 좀 커지긴 했어도 큰 문제는 없었어.
그렇게 그 회사에서 2년 가량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
회사가 강원도 삼척에 있는 군부대의 일을 하게 된거야.
삼척... 차타고 가도 빨라야 3시간이야. 보통은 4시간이지.
난 장롱면허였지만 그것을 위해서 운전연수를 받았어.
그리고 뻔질나게 삼척을 다녔지. 설치할 장비가 5개였는데 이게 한 번에 다 설치하는게 아니고 띄엄띄엄 일정이 잡혀있었어.
게다가 싼 맛에 수입한 열상 카메라는 적혀있는 스펙에 한참 미달이라 프로그래머랑 사장님이 머리를 쥐어쌌지.
아무튼 캔트로닉스... 가만 안둔다. 쓰읍...
군부대에서 장비를 검수할 때는 실제로 작은 배를 띄워서 Km당 이동하면서 열상 카메라로 체크를 해.
게다가 거기에 납품하는 장비는 LRF라는 Laser Range Finder 즉,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장착한 모델이었어.
스펙상 20Km까지 측정이 가능한 장비인데 이건 최상의 조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18Km 까지는 확인해 봤어. 하지만 대상이 커다란 건물이여야 좀 가능하지.
조그만 배를 20Km 찍는건 스나이퍼도 불가능할거야.
하지만 군에선 말이 많지.
카메라 화질도 안 좋고 LRF도 잘 안된다고.
진짜 말이 많아서 삼척에서 몇 달 살았어.
한번가면 일주일씩 여관에서 지내다 오고 그랬지.
그때쯤이야.
주변에서도 이직을 권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늘 탐탁지 않아 하셨어.
친척 동생이 기아자동차였는지 어딘지 생산직을 아웃소싱으로 한 모양이었는데 돈도 많이 주고 일도 편하더라~ 하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시더라.
쩝, 나도 슬슬 이직을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내가 일하고 있는 부분의 시장이 매우 작아.
그냥 CCTV도 아닌 특수 카메라인데다가 군부대를 상대하고 있는 회사니 내가 이직할 만한 곳도 몇 군데 없지.
그래서 나는 프로그램이나 배워볼까? 했어. 그냥 가벼운 마음이었지.
마침 우리 회사의 동갑내기 프로그래머가 관두게 되었고 사장님은 내가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니 직장인 교육을 시켜주셨어.
하지만 주말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 내가 피곤하기도 하고 공부하는 맥도 끊기는 것 같아서.
그리고 실상 삼척에 가게된 후부터는 아예 공부는 꿈도 못 꿨지.
그래서 인터넷으로 어느정도 프로그램 학원에 알아보고 퇴사하기로 했지.
MFC 보다는 JAVA를 배우라기에 그럴까? 하고 퇴사하기로 했어. 가벼운 마음이었지.
아니 사실 마음이 복잡하긴 했어. 잘 다니는 직장을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간다는게 쉬운 결정은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대리로 직급이 올라가기 직전이었으니 더욱 그렇지.
근데 마침 인터넷에 기아자동차 생산직 공고가 뜨더라.
아마 7년 만에 처음일거라고 해.
난 일단 그곳에 서류 접수를 했지. 생산직 같이 단순하게 일하는 걸 좋아했거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전산 입력을 하고 3년 가까이 쓰지 않던 자소서를 썼어.
필요한 서류 중 고등학교 때의 출결이 있는데 확인해보니 난 병결 1 빼고는 개근이더라.
게다가 선생님들의 말씀을 입력하는 곳도 있었는데 내 고등학교 때 평판이 다 좋게 되어 있더라고.
성적은 고등, 대학 둘 다 입력을 했지.
그렇게 접수를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어.
솔직히 확률은 희박하니까.
프로그램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어.
그래서 사장님께 말씀을 드리니 다시 생각해보라면서 더 생각해보고 오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다른 차장님들 소집하시더라. 아마 나를 붙잡으라는 말씀을 하셨겠지.
사장님을 보고 나온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차장님이 나를 불러서 커피 전문점을 처음 가봤어.
커피를 마시며 말씀을 해주시더라.
JAVA 프로그램을 배우게 되면 거의 일의 노예가 되고 발전하기도 쉽지 않다고.
그러면서 사장님이 나를 기술지원부에서 아예 소프트웨어 쪽으로 발령을 내실 생각이었다고 하셨대.
거기서 차장님 밑에서 1년만 고생하면 지금까지 내가 회사에서 3년 가까이 있던 그 경력들도 모두 소프트웨어 경력으로 바뀌게 된다고 하시더라.
물론 사기 같은 건데 만약 나중에 이직할 때 먹힐거 같기는 하더라고.
그리고 내가 회사의 장비나 돌아가는 상황 같은 것들에 밝으니까 금방 익숙해 질 수 있다는 말도 하시더라.
그건 나도 인정을 하지.
나도 여러 가지 말씀을 드렸어.
항상 매뉴얼을 작성을 했는데 그 양이 결코 적은건 아냐.
게다가 그 매뉴얼을 제본의뢰를 한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컬러로 출력해서 일일이 파일에 철을 했지.
어느 날 12부가 넘는 양을 몇 시간 동안 혼자 하고 있자니 엄청 서럽더라.
그 전에도 여러번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양이 특히 많고 한참 이직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라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내가 27의 나이가 되어서 이런거나 하고 있어야 할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
그런 내용도 말씀 드렸고 또 사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은 기술지원부가 아니었다.
이런 말도 했지.
그건 처음듣는 것 같으시더라.
나보다 늦게 오신 분이었거든.
결국 생각을 잘 해보라고 하시면서 대화는 끝났어.
솔직히 마음이 흔들리더라.
밖에 나가서 새로 배우느니 익숙한 공간에서 일을 배우는 것이 훨씬 이득이니까.
그래서 마음이 좀 기울었어. 남는 쪽으로.
그 날 밤에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말씀하시더라.
내가 기아자동차에 서류를 넣은걸 알고 계셨어.
근데 그 경쟁자가 엄청나게 많은거야. 6만명 이상이었으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16만명이 서류를 넣었다더라.
어머니는 ‘이번에 안되도 실망하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시더라.
그걸 듣고 난 말했지.
‘난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서 회사에서 묻더군 남을 것이냐, 떠날 것이냐.
난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지.
왜냐하면 그 다음날이 기아자동차 생산직 서류 발표를 하는 날이었거든.
다음날 발표가 났다는 문자가 왔고, 인터넷을 확인하니 서류 합격이라더군.
난 그날, 기아자동차에 서류가 붙어서 관두겠다고 말씀드렸지.
사장님은 프로그램 공부 때문이라면 만류하겠지만 기아자동차라면 어쩔 수 없다고 하시며 알았다고 하셨어.
분명히 자신이 해주실 수 있는 것보다 기아자동차가 더 많이 해줄 수 있으니 그 차이는 어쩔 수 없다면서.
난 인사를 드리고 다른 분께도 이러이러해서 관두겠다고 했지.
몇 분은 말하시더라.
이제 서류 합격인데 왜 그만두냐고.
난 답했어.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회사를 갈 생각을 하고 있는게 너무 죄송하다고.
물론 첫 직장이고 너무 가족같이 지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사회인분들 보면 그냥 바보라고 할지도 몰라.
하지만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괘씸죄라고.
그렇게 나는 며칠 더 다니다가 마지막 날 회사에서 바쁜 분 2분을 제외한 전원(그래도 10명 가량정도)이 송별회를 해주셨어.
현금으로 50만원 가량 들어있는 봉투를 받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지.
술도 소주 2병 간신히 버티는데도 잔을 들고 일일이 돌아다니며 인사를 드렸어.
모두 잘되라고 덕담을 해주시더라. 젠장 못 잊을거야.
사장님에겐 제 2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지.
날 볼 때마다 늘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거든. 우리 아버지도 안 해주신 일이지.
사장님은 너 거기 떨어지면 꼭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해 주셨어. 하지만 어떻게 그러겠어?
그렇게 모두와 작별하고 난 면접을 준비했지.
서류를 모두 칼같이 준비하고 일주일 동안 면접을 준비했어.
대충 알아보니 무슨 시험을 본다네? HKAT였나?
난 그 문제집을 사서 열심히 풀었지. 간단한 문제들이었는데 시간제한이 심해서 어렵게 느껴졌어.
간단한 1분 소개를 준비하고 예상 질문을 생각하고 답변을 생각하기도 했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 면접날이 되었어.
대기업 면접은 처음이라 떨렸지.
대략 1주일 이상 면접을 보던데 나는 마지막 날 근처에 면접을 보게 되었지.
알고보니 성을 기준으로 순서를 정한 모양인데 내가 한씨라 뒤에서 보는거였어.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책상에 앉아서 인적성 검사를 했지.
그건 속일 수가 없는거라고 해서 나는 솔직하게 체크했어.
난 이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원한다면 나를 뽑아라.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시험을 보는데, 이게 뭐여.
내가 뻔질나게 공부한 HKAT는 안보고 간단한 상식 20문제만 보고 땡이네?
자동차 지식, 기아 자동차의 지식, 기본 상식, 기초 영어 모두 합해서 20문제.
보아하니 시험으로 사람을 걸러낼 생각은 별로 없어보였어.
이정도 기초도 준비안하고 온 사람은 아마 거의 없겠지 싶더라.
그 뒤에 5명이서 조를 짜고 우리 조는 집단면접을 들어갔어.
다른 조가 하는 동안 우리는 대기하고 있는데 A4 용지를 나눠주더라.
확인해 보니 단체면접 방법인데 그냥 면접이 아니고 우리 5명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찬성, 반대로 나뉘어 토론을 해야 하더라고. 면접관은 그걸 구경하고.
게다가 면접시간 40분.
다들 긴장해보였어.
결국 우리가 들어갈 시간이 되었고 내가 제일 앞인 고로 내가 조장이 되어 인사를 담당했지.
그리고 들어가니 주제를 나눠주더군.
주제는 공공장소에 CCTV 증설이 옳은가, 그른가? 였어.
시작하기 전에 면접관이 나를 보고 ‘한XX씨는 조장이니까 찬성과 반대팀의 분배를 잘 하세요.’ 하더군.
누가 하고 싶어서 했습니까~!?
아무튼 주제를 숙지하고 내가 말했어.
‘찬성파 손들어 주십시오.’
그러니 나를 포함한 4명이 손을 들더라. 5명 중 4명.
난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손을 내리면서 ‘그럼 저는 반대파가 되겠습니다.’ 하고 말했지.
빌어먹게도 조장이잖아. 그리고 이걸로 인해서 인상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지.
그런데 난 찬성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뀌었으니 반대 의견이 바로 안 떠오르잖아.
우리는 반원의 형태로 앉아 있었는데 내가 반원의 끝부분이었어.
나는 재빨리 나와 마주보는 사람에게(그 사람은 찬성파) 먼저 의견을 말씀해달라고 했지.
그렇게 순서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의견을 말했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떠오르는대로 반박하고 질문하고 하다보니 어느새 3명은 침묵하고 있더라.
찬성 2명, 반대 1명 침묵.
결국 나와 다른 한명이 대부분의 대화를 했어. 대충 서로 타협하는 선에서 끝내기로 의견 조율이 되고 있었지.
그걸 보던 면접관이 그만하면 되었다고 하면서 질문을 시작하더라.
질문은 별거 없었어.
전에 회사에서 하던일, 자신의 좌우명, 자신의 단점 등.
난 미리 준비한 대로 잘 대답했고 면접은 끝났지.
근데 마지막으로 면접관이 마지막까지 버티던 찬성측 사람에게 토론 중 누가 가장 잘 했다고 묻더라.
그 사람은 나를 지목했지. 속으로 아싸~! 했어. 사실 나도 놀랄 정도로 말이 유창하게 나왔으니까.
그 사람은 내가 망설임 없이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어.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면접을 마쳤지.
그렇게 5명은 계속 같이 다녔는데 다들 나를 부러워하더라. 말을 너무 잘한다고.
그 다음에는 체력 검사를 했는데 배근력이라는 것을 측정했어.
면접을 보기 전부터 수치가 130이 넘지 않으면 무조건 탈락이라느니 하는 무서운 소문이 들리던 측정이었지.
간단히 말하면 발판위에 올라가서 살짝 허리를 구부리고 손잡이를 잡고 당기는 측정이야.
무릎이 구부러지면 안되지.
허리와 등의 힘으로 당기는 측정인데 총 2번의 기회가 있고 1차에 성공하면 2차는 측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그걸 대비해서 헬스에서 허리 운동을 집중적으로 했지.
솔직히 난 몸이 좋은 편이 아니야.
팔씨름도 누굴 이겨본 기억이 희미하지.
하지만 전에 다닌 회사에서 무거운 물건은 엄청 들었거든. 나름 기대를 해봤지.
조장이랍시고 또 1등으로 시작하네.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이를 악물고 당겼지.
기적이 일어났지 1번에 통과.
130.5
워메~!
다른 4명 중 키 크고 훤칠한 사람만 140이상으로 통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실패했어.
그 중 한명은 손이 찢어질 정도로 당겼는데 100이 나오더라. 중요한건 포즈와 요령인 모양이야.
그 측정이 끝나자마자 혈압을 쟀고 나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재측정에 들어갔지.
그렇게 힘을 쓰고 혈압을 재는건 반칙 아냐? 아무튼 난 통과더라. 그게 중요하지.
개인면접은 별거 없었어.
큰 방에 혼자 앉아있고 면접과 둘이 질문을 하지.
다행히 전문 지식을 물어보진 않고 대답할 만한 것만 물어보더라.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서류까지 다 제출하고 나니 수고했다고 5만원을 주네?
과연 대기업은 달라.
면접이 끝나고 기분이 좋았지.
난 최선을 다했고 느껴지는 결과는 최상이었지. 다시 한다고 해도 더 잘한다고 할 수 없을 정도였어.
그렇게 좋은 기분으로 1주일 가량 백수생활을 했지.
발표가 금요일이고 출근이 월요일로 되어 있었어.
상당히 애매해서 여러 가지로 문의가 많았던 모양이야.
그래서였을까?
수요일 날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발표가 났다고 문자가 왔어.
확인을 하려면 인터넷에서 확인을 해야했지.
난 마음의 준비도 안 됀 상태에서 확인을 했고...
합격.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시더라.
대기업 생산직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들어가 보니 장난 아니더군.
나이 27에 연봉이 5000 가까이 되고 휴일도 많아.
일요일 날에 빨간 날이 겹쳐있으면 월요일 날 쉬더군.
게다가 복지도 끝내주지. 자녀 2명까지는 학비를 전액 부담해주니까.
나이 많으신 분들은 잘하면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가져가는 분도 있나봐.
주야 2교대라 힘들지만 난 야간 체질인지 안 졸리더라. 물론 초반이라 그럴 수도 있고.
날 처음 보시는 분 모두가 니가 이번에 그 엄청난 확률을 뚫고 온 녀석이냐고, 신이다, 로또다, 하고 말이 많으셔.
내년쯤 돼면 주야 2교대에서 주간 2교대로 바뀔 예정이라고 하니 연봉은 좀 줄겠지만 자유시간이 많아지고 야간 근무가 사라져서 더 좋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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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가 지금 내 인생의 이야기였습니다.
되돌아보니 살아오면서 제대로 쉰 기억이 없네요.
휴학도 안하고 칼 복학 하고 졸업 후 바로 직업전문학교에 갔다가 제일 먼저 취직하고.
그래도 역시 쉬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게 더 보람차고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27년 째 여자친구가 음슴!
중학교 때 그 여자애랑 사귈 시도라도 해볼걸...
엉엉~!
하아~ 혹시라도 이 심심한 글을 다 읽으신 여성분이 있다면 봐주세요.
카카오톡 : oo1221
생긴건 적어도 어디가서 못생겼다는 말은 들은 적 없는 남자사람입니다.
순하게 생겼네, 잘생겼네(예의상의 맨트) 정도 듣고 살았지요.
만나자고 안 할테니 심심하면 카카오 톡이나 주고받아요.
인생에 여자 성분이 너무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