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기사에 "어린이용 달력에 연쇄살인범이 실리다"등의 제목으로 작은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기사에 거론된 인물은 파릿프 하르만으로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연쇄살인마 가운데 하나이다(물론 기사자체는 낚시선으로 어린이용 달력이 아닌 하노버 관광책자에 실린 그림) 프릿츠 하르만에 대해 알아보자면... 1924년 5월 17일, 라이네 강에서 놀던 아이들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의 인골로 장난감도 없고, 겁도 없던 당시의 아이들에게 있어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자 흥미로운 발굴이었다. 발굴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경쟁적으로 강가에서 인골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 경찰들은 단순히 의대생의 장난으로 생각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봉지에 담겨진 수많은 인골을 보고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곧 강을 수색한 경찰은 수십구의 인골을 발견하게 되고 곧 독일 전역이 새로운 식인살인마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떄는 아직 게오르그 칼 글로스만의 공포가 사라지지 않은 떄였다(게오르그 칼 글로스만은 1912년 잡힌 식인살인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프릿츠 하르만이 체포되는데, 사실 그에 대해서 이전부터 '인육'을 판매하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경찰 역시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 왜 그동안 조용히 넘어가고 수십명의 피해자가 발생할 때까지 범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일까? 프리츠가 태어나면서부터 투병생활이 계속된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상당히 내성적으로 자라나게 되었는데, 연약한 모습이 보기 싫었던 아비저는 프릿츠를 사관학교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간질 발작을 일으켜 곧 퇴학하게 되고 이로 인해 스스로를 장애인응로 여기며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매우 나태한 인간이 되었는데, 역시 보다 못해 아버지가 그를 담배공장에도 보내보지만 결근하기 일수였다. 또한 당시 공원에 나가 어린 아이들에게 성적인 행위를 강요하여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다 결국 현실에서 도피하듯 군에 입대하였다. 의외로 군 생활은 그에게 잘 맞아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훗날 말했다. 하지만 군생활도 오래가지 못하여(신경쇠약등의 이유로) 사회로 다시 나오게 되고 깊은 실의에 빠진다. 그가 동성애에 빠져들게 된 것은 이무렵으로 암시장에서 알게 된 중년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후 동성애에 빠져들게 되었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범죄의 길로 걸어들어갔다. 1차대전 당시 그는 강도와 성폭행 등으로 감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감옥에서 나와서부터는 감옥 동료로부터 권유받은 고기밀매를 시작한다. 의외로 장사수단이 있던 그는 곧 자신만의 가게를 갖게 되었고 한편으로 경찰 정보원 노릇을 하며 알게 모르게 경찰의 비호를 받게 된다. 수완이 좋았던 그는 경찰들로부터는 든든한 정보원으로, 뒷골목 하류인생들에게는 뒤를 봐주는 실력자가 되어 갔다. 공공연하게 그를 하르만 현사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고
베플구루굴|2012.06.19 11:13
하지만 그는 알게 모르게 범행을 계속 저질러 갔는데, 그가 역근처에서 가출한 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른 최초의 희생자는 프릿츠 로테라는 소년으로 가출한 그를 하르만이 보호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였다. 내키지 않는 경찰들은 하르만의 집으로 가 확인을 하려했는데 이때 하르만은 다른 소년과 함께 친대에서 뒹굴고 있다가 잡히게 된다. 결국 경찰은 외설죄 등의 명목으로 그를 체포하였고, 실종된 프릿츠 로테는 역시 하르만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어딘가로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사실 그 때 이미 소년은 살해당하여 머리가 잘린 채 오븐 뒤에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