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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공포와환상 #1

|2012.06.20 01:08
조회 1,068 |추천 0

목차

 

1. 어둠속의 공포

2. 폐허속의 그들

3. 약속의 대가

4. 공포 마일리지

 

 

 

[공포 마일리지]

 

 

비행은 항상 겁이 났다.

일본 출장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매번 비행기를 탈 때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자동차보다 사고율이 적다고는 하나 일단 떨어지면 전원 사망이 비행기 사고인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탐승 시간까지 꽤 오래 남아있었기에 게이트 앞 대기석에 앉아있던 태식은 신문을 펴 들었다.

 

“음……”

 

태식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세어 나왔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비행기 사고를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뭐 그런 나라들은 비행기도 낙후되고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러겠지.”

 

신문을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태식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별다른 흥밋거리를 찾지 못한 태식은 손목시계를 흘끗 본 뒤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신문을 접고 면세점 옆의 작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는 그때의 미래라고 생각되는 현재가 돼야 알 수 있다. 태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자기 자신이 연간 비행기를 수십 번이나 타는 VIP 가 될지 몰랐다. 대학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일본어에 매료되어 전공인 심리학을 포기한 채 일본어에 매달렸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전공인 심리학과 일본어 사이에서 잠깐의 딜레마에 빠지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일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설득해 2년 동안 일본에서 유학생활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전공은 완전히 포기한 채 일본어를 필요로 하는 회사에 몸을 담았다.

 

처음엔 작은 번역회사에서 일을 했다. 일본어에 소질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태식 자신이 일본어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꽤 어려운 번역문서도 잘 처리했다. 그렇게 1년을 넘길 무렵 지인에게서 한 회사를 소개 받았다. 지진계의 핵심 부품을 연구하고 제작하는 회사였는데 자체 공장도 가지고 있고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는 꽤 큰 기업이었다. 태식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직을 결심했다. 이직 후 그는 영업부서의 일본 수출 영업파트에 배속이 됐다. 전공 탓은 아니었지만 태식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를 만나 본 일본인들은 태식을 잊지 못했다. 때문에 일본 회사와의 계약은 태식의 손을 거치면 거의 성사가 됐다. 설사 성사시키지 못한 계약이 있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카리스마가 덧대어져 큰 시너지를 얻었고 한국의 회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회사들은 태식에 대한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

 

 

태식은 커피숍에 앉아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자신이 탈 비행기의 출발 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일본 출장을 갈 때면 붙어있던 꼬리(선임상사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가 붙지 않았다. 워낙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혼자 일본의 회사들을 움직일 만한 역량이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도 태식을 배려하는 마음에 항상 두 좌석을 예약 해주곤 했다. 물론 비즈니스 석으로.

 

표 확인을 한 후 좌석을 찾아 앉았다. 항상 옆자리는 비어있었기 때문에 짐 가방만 올려놓은 채 서류가방은 옆 좌석에 두었다. 비록 두 시간여 비행이었지만 비즈니스 석은 언제나 편했다. 유럽이나 미국을 갈 때도 이렇게 비즈니스 석에서 갈 수 있다면 이만한 영광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늦은 오후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에 밖은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 도착하면 저녁이 되어 있을 터였다. 비행기의 엔진 음이 커지고 몸이 뒤로 살짝 밀리는가 싶더니 곧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살짝 요동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얼마나 잤을까? 20분? 30분? 눈만 뜬 채로 있었기에 고개는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밖은 어두웠다. 이렇게 어두울 시간이 아닌데. 그는 의아해 하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 이 비행기 안에 나만 있는 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왜 아무도 없지? 이번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앞줄에도 사람이 없었다. 창밖을 잠깐 응시한 후 몸을 일으켜 뒤를 쳐다봤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꿈? 사람이 꿈인지 생시인지 판단 할 수 있는 시간은 불행하게도 몇 초에 불과하다. 지금의 이 상황은 분명 꿈은 아니다. 그럼 테러? 그래 테러! 하지만 이렇게 조용한데? 테러라면 무장한 테러범 이라든지 특정 공항의 착륙을 요구하는 테러범의 요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조용했다. 하늘은 날고 있는 비행기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엔진 음만 들릴 뿐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태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에 섰다. 일단 비즈니스 석 통로를 한 바퀴 돌아볼 참이었다.. 출장 때마다 봐왔지만 비즈니스 석이 꽉 차는 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모든 사람이 자리를 비울 만큼 적지도 않았다. 혹시 이코노미 석으로? 그래. 무슨 일이 생겨 여기에 있을 수 없었을 거야. 그런데 나는 왜 깨우지 않았지? 스튜어디스가 잊었다? 아니면 나의 단잠을 깨우기 싫어서? 그게 진짜라면 그 스튜어디스는 정말 큰일 날 짓을 한 것이군.

 

이코노미 좌석의 통로 쪽으로 걸어간 그는 커튼 앞에 섰다. 그 상황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손으로 커튼을 젖히기 전 다음 풍경을 예상하는 주인공처럼 태식도 다음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놓은 채 커튼을 젖혔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라고 했던가? 커튼 뒤의 풍경은 태식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비즈니스 석과 마찬가지로 이코노미 석마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인가 착각이 들어 태식은 아무 좌석이나 뛰어들어 창밖을 살폈다. 하지만 분명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창문 밖을 보던 태식은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꿈도 아니고 테러도 아니고 지상에 착륙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아니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간 거지? 태식은 불안했다. 조종사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쩌면 집단 히스테리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였기에 이런 생각이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의 9.11 테러 사건 이후 조종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일단 그는 조종실을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코노미 석을 지나 비즈니스 석을 지나칠 무렵 비행기가 왼쪽으로 급격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태식은 몸의 균형을 잃고 좌석으로 넘어졌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는 태식의 자리였다. 태식은 자세를 고친 후 자리에 앉았다. 본능적으로 허리의 벨트를 잠갔다. 한참을 선회하던 비행기가 다시 안정된 자세를 취했다. 일단 조종사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비행기가 지상으로 내려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식은 놀라 창밖을 쳐다봤다. 밖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다시 비행기는 왼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태식은 창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저 멀리 여러 개의 작은 불빛이 보였다. 공항? 활주로? 그렇다면 지금 착륙을 시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의 시야에서 불빛은 사라지고 비행기는 다시 안정된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벨트착용 표시등에 불이 들어왔다.

 

 

큰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멈춰 섰다. 착륙을 한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활주로에 멈춰 선 후 비행기는 이내 조용해졌다. 엔진이 멈춘 것이었다. 그는 일단 진정 한 후 밖의 상황을 살폈다. 태식이 느끼기로는 밖은 공항 같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이 내려야 할 일본의 공항은 아닌 것 같았다. 군용기 사용을 목적으로 만든 작은 공항 같았다. 아무래도 비행기는 지금 어딘가에 불시착 한 것 같았다. 작은 창문을 통해 이리저리 밖을 살피던 태식은 저 멀리서 두 개의 불빛이 다가오는걸 느꼈다. 그리고는 곧 덜컹 소리와 함께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

 

태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자리를 박차고 열린 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까 비행기를 향해 오던 두 개의 불빛은 사다리차의 전조등 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땅에 발을 디디고 몇 발자국 더 걸어가자 그 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제탑은 없었다. 활주로도 굉장히 짧았다. 어떻게 이런 활주로에 착륙을 했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작은 비행기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비행기 격납고 같은 게 두 채 있었다. 그게 다였다. 평소 자신이 보아오던 공항의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태식은 자신을 부르는 낯선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보시게!”

 

태식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 돌아섰다.

 

챙이 큰 모자와 망토로 온 몸을 감싼 사람이 태식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구먼! 그래! 이게 바로 당신의 생각이구먼!”

 

그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그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태식에게 다가왔다. 그에게 가까워 오자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래되 보이는 챙이 큰 모자와 망토, 서부시대에 나올법한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부츠. 특이한 건 얼굴이었다. 얇은 금속 테를 두른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얼굴 위 부분을 다 가릴 만큼 컸다. 때문에 가뜩이나 모자에 가린 얼굴을 더욱 더 못 알아보게 만들었다.

 

“나도 이렇게 만들어 놓고.”

 

태식의 앞에 선 그는 자신의 모습을 한번 봐 달라는 시늉을 하는 사람처럼 손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렸다.

 

“뭘, 뭘 만들었단 말입니까!”

 

태식은 지금까지의 믿고 싶지 않은 상황들을 까맣게 잊은 채 그에게 물었다.

 

“뭘 만들다니! 이 공항! 그리고 나! 하하!”

 

그는 크게 한번 웃더니 망토 안쪽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흔히 보던 담배가 아닌 영화에서나 봐오던 시가였다.

 

“한대 필 텐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대부분 그렇지. 이런 상황에 빠지면 정신을 놓고 말지. 안 그래?”

 

그는 청바지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시가에 불을 붙였다. 몇 모금 뻐끔뻐끔 빨더니 후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에……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이 말이지. 우리 좀 걸을까?”

 

그는 태식과 어깨를 나란히 한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라진 승객, 이상한 곳의 착륙, 이상한 놈과의 만남. 굉장히 혼돈스럽겠지. 근데 말이야. 이 모든 걸 결국 당신이 만들어 냈다고 하면 믿을 텐가?”

 

그는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주지. 지금의 이 상황들은 당신이 직접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들이란 소리야.”

 

태식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남자를 쳐다봤다.

 

“아이고, 답답하네. 그러니까 당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공간이란 말이야. 극한의 공포에서 불러낸 공간. 인간들은 이런 곳을 지옥이라고 부르더군.”

 

태식은 깜짝 놀라 물었다.

 

“지옥이라뇨?”

 

그는 시가를 손가락에 끼운 채 어두운 하늘 저 편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지? 저기! 저기가 바로 인간들이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이야. 사실 죽음의 또 다른 공간일 뿐인데 인간들은 자꾸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죽음을 이야기 하려고 해. 세상에, 지옥이 어디 있어? 어디로 갈지 선택할 수도 없는 인간들이 지옥과 천국을 운운하다니 참 웃기지 말이야.”

 

그는 시가를 한 모금 더 빨았다. 태식은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붉은 빛의 오로라 같은 것이 하늘을 감싸고 있었다.

 

“미안한 얘기인데 말이야. 당신 덕분에 오늘 저 비행기는 나자빠져.”

 

그는 피식 웃으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나자빠지다뇨?”

 

태식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아 미안! 내가 좀 웃긴 표현을 썼네. 거 참 나를 왜 이렇게 만들어 내서 내 입을 아프게 만드나? 그러니까 당신 덕분에 저 비행기는 추락한다고.”

 

그는 남은 시가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제 덕분에 추락하다니요? 저 비행기가요?”

 

태식은 활주로 위에 착륙해 있는 비행기를 쳐다봤다.

 

“그렇지! 당신이 이렇게 쓸데없이 나 같은걸 만들어 내는 바람에 저 비행기는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저기 저 곳으로 가게 될 거야!”

 

그는 아까 손가락질 했던 붉은 빛의 하늘을 다시 한 번 가리켰다.

 

“어떻게 이런 일이……”

 

태식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선글라스 낀 얼굴을 쳐다봤다.

 

“왜? 안 믿겨져?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저 비행기는 곧 이륙을 할 테고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 갈 거야. 그리고는 추락하겠지. 당신의 그 쓸데없는 내면의 공포 때문에 말이야.”

 

그는 낄낄거리며 태식을 버려둔 채 혼자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나는! 비행기를 추락시킬 수 없어요! 그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떡하고요!”

 

태식은 앞서 가던 그의 앞길을 달려가 막아섰다.

 

“그건 어쩔 수 없어. 애초에 나 같은걸 만들어 낸 당신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라고. 이봐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즐기라고. 이 곳 생활도 나쁘지만은 않아. 당신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잡담이나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그는 다시 낄낄거리며 앞을 가로 막았던 태식을 살짝 밀치고 걷기 시작했다. 망연자실해 하며 자리에 서 있는 태식에게 그가 뒤돌아 선 후 소리쳤다.

 

“자신이 강하다고 느낀 거야? 물론 직장에서 승승장구 하며 부족한 게 하나 없는 사람 같더군. 그런데 말이야. 왜 그렇게 비행기를 많이 탔어? 당신이 한번씩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 공포가 점점 더 쌓여가더군. 아! 비행기를 자주 타니 마일리지 알겠구먼! 그래 마일리지. 당신 공포가 꼭 마일리지처럼 쌓여 가더라고. 아이구. 보는 내가 어찌나 더 답답하고 불쌍하던지. 난 사실 당신 앞에 정말 나오고 싶지 않았어. 저 수 많은 죄 없는 인간들까지 한꺼번에 데려가려니 사실 귀찮은 것도 있고……”

 

그는 입 꼬리를 들어 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아! 그렇다고 당신이 죄가 있다는 건 아니야. 아닌가? 죄가 있다고 해야 하나? 뭐 아무려면 어때. 중요한 건 지금 이 시점에 나를 불렀다는 것이고 나를 부른 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거거든.”

 

그는 킬킬거리며 활주로 끝에 선 후 바람에 살랑 이는 망토를 고쳐 둘러맸다.

 

“그러니깐 이제 받아들여. 당신이 뭘 알겠어. 그저 물 흘러가듯 인생을 살았을 뿐일 텐데. 걱정 마. 인간들 대부분은 내면의 공포에서 나 같은 놈을 꺼내기 힘들어. 당신이 나랑 코드가 잘 맞았을 뿐이야.”

 

그는 팔짱을 끼며 뒤돌아서서 말했다.

 

“에…… 시간이 다 되가네. 저 놈 움직인다!”

 

저 놈이라 부른 비행기에서 엔진 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태식은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꿈도 아니고 정신착란도 아니었다. 지극히 자기 자신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와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자기 자신의 공포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까? 이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 아니 잘못이라면 나랑 같은 비행기를 탄 게 잘못이겠지.

 

비행기에서는 점점 더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태식은 비행기로 뛰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비행기로 뛰었다. 망토의 남자가 뭐라 뭐라 소리를 질렀지만 들리지 않았다. 사다리차의 전조등에 불이 들어왔다. 곧 문에서 멀어질 참이었다. 태식은 마지막 한 걸음도 늦출 수 없었다. 사다리를 두 세 계단 뛰어 올라갔다. 겨우 비행기에 몸을 싣고 숨을 고르기 위해 헐떡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비행기는 속도를 붙여 활주로를 막 이륙 할 참이었다. 태식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망토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더 이상 그는 망토의 남자가 아니었다. 모자를 벗고 선글라스를 벗은 그는 바로 태식 자신이었다.

 

태식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서류가방에서 펜과 수첩을 꺼냈다. 수첩에 무언가를 쓴 그는 그 페이지를 찢어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조종실로 향했다. 조종실 문을 열려고 하자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열었지만 잠겨 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태식은 중얼거렸다.

 

“어차피 내가 만든 세계라면 조종실로 들어가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그는 손잡이를 잡은 채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한 뒤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태식은 다짜고짜 조종실로 들어갔다. 예상과는 다르게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누가 있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도 않을 터였다. 그는 기장 석에 앉았다. 그리고 조종간을 잡았다. 눈앞에 붉은 오로라의 기운을 지닌 하늘이 보였다. 비행기는 점점 더 빠르게 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저곳만은 안돼!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 나가야 해!”

 

하지만 태식은 비행기 조종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 없었다. 일단 그는 조종간에 손을 올렸다. 그는 조종간을 세게 밀었다. 순간 몸이 허공으로 뜨는 듯하더니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당황한 그는 다시 조종간을 당기고 비행기를 원래의 상태로 돌렸다. 그러는 사이 눈앞의 오로라는 더 커져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비행기는 더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순간 태식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강타했다.

 

"그래…… 나만 죽으면 되는 거야! 그래! 나만!"

 

그는 필사적으로 비행기를 오로라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애썼다.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비행기는 큰 원을 그리며 오로라 우측으로 비켜 갔다. 그는 좀 전에 착륙했던 공항 쪽으로 비행기를 돌렸다. 오로라에서 빨아들이려는 힘과 비행기가 앞으로 가려는 힘의 대립으로 인해 비행기는 크게 요동쳤다. 그의 시야에 공항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공항을 향해 내리꽂고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두 눈을 크게 뜬 채 비행기가 활주로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활주로 중간에 서 있는 태식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는 웃으며 비행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일본의 공항에 착륙했을 때 태식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발견 된 후였다. 스튜어디스들은 그가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외투 주머니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써진 메모 한 장이 발견되었다.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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