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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사랑

왕보리 |2012.07.11 09:19
조회 4,700 |추천 11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hero창정 님 >

 

** 지난번 이야기에 관심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중복이였나봐요 ㅠㅠ

 

   심심풀이 넌센스 퀴즈~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때는?

   <지난번 정답은 시험문제였습니다^^>

  

 

 

 

『기다려..내가 그 곳에서 꺼내줄게. 사랑하니까.』

 

 

 

 

 

[BK단편] 사랑

 

 

 

 


사랑하는 나의 당신에게.

 


당신에게 쓰는 이 편지가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부터 말이에요.

사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습니다.

평소 문 단속을 잘하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따라 왜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갔던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 아닐까 싶네요. 하핫

그 때를 생각하면 솔직히 아직도 약간 오싹하긴 해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굳어버렸었죠.

어두운 방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을 보고 말이에요.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저를 보고 당신이 속삭였었죠.


'넌 누구야?'


처음 듣는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 여자는 내 방에 들어와있는건가.

왜 이 여자는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걸까.

이 여자의 정체가 뭘까....

난 되물었었죠.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데 여기 들어와계신겁니까.'


하지만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당신은 그저 멍하니 나를 응시하고 있었죠.

가끔 당신은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전할 듯 이런 저런 몸짓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두운 주위때문인지,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내 머릿속 때문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죠.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문득 불을 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등의 스위치를 향해 몸을 돌렸죠.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내 손이 스위치에 닿는 그 순간 당신이 날 바라보던 그 안타까운 눈빛을..

불을 켜고서야 알게 되었죠.

내가 불을 켜는 순간 당신은 한 줌 먼지처럼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처음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낯선 이방인이 자신의 방에 떡하니 들어와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황이

달가운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아마 그때였던 것 같아요.

한없는 안도감 속에서 느껴지던 허전함을 인식한 게..


그 후로 매일매일 당신은 저에게 찾아왔죠.

푸르스름한 달빛과 영롱하게 빛나던 별빛을 등진 채 항상 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어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당신의 눈빛은...슬퍼보였어요.

그리고 그 슬픈 눈빛 속에서...당신과 닮은 나를 발견하게 되었죠.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한줄기 달빛만을 위로 삼은 채 조그마한 상자에 갇혀사는 당신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속에서 한줄기 희망만을 위로 삼은 채

조그마한 원룸에 갇혀사는 나...

당신도 그랬었죠?

그래서 매일 밤 나를 찾아왔던 거죠?

어두운 방 한켠에 쭈그려서 세상을 원망하던 나를 구하려고..

조그마한 상자에 갇힌 당신을 구해달라고, 내 손을 잡으려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어쩌면 그때부터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을 보면 내 모습이 보이고내 마음을 깨닫는 순간 당신의 마음이 보이는

'유대감'

내 생에 처음 느껴보는 그 유대감이란 게 그렇게 따듯한 것인 줄 몰랐어요.

그저 외모만으로, 내 겉모습만으로 날 흉보고 날 짓밟고 싶어하고, 날 경멸하던

'사회'라는 세상 속에서 날 이 조그마한 원룸에 가둬버린 사람들에게는 느낄수 없던 '유대감'

처음 느껴보는 눈빛..

나와 같은 눈빛을 한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날 보살펴준다는 느낌..

마약이란게 이런 느낌인걸까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당신을 사랑하면 안된다는 것을,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매일밤 내

방의 모든 불을 끄고 멍하니 시린 달빛만을 바라보며 당신을 기다렸어요.

언제나 찾아와주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만질수 없는 당신에게 손을 뻗으면서

난 당신을 기다렸어요.

그러던 어느날..

당신이 다시한번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죠.


'넌 누구야?'


참 웃겼어요.

분명 처음 당신이 나에게 건넨 말과 같은데..

토씨하나, 억양하나 다르지 않은데..

기뻤거든요.

당신도 날 알고 싶어하는구나.

당신도 날 바라보고 있었구나.

당신도 날..

사랑하고 있었구나.


난 입을 열었어요.

말해주고 싶었으니까요. 대답해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물어볼 생각이었어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라고...

하지만 묻지 못했었죠.

왜냐구요?

부끄러웠기때문이냐구요?


아니에요..

당신의 그 물음에..

그저 간단한 질문..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들어볼 법한 그 질문..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내가 누군지 말하면...

당신이 지금과 같은 눈빛으로 날 봐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날 알고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던 경멸의 눈빛처럼

지금 당신의 그 눈빛 역시 변해버릴 것 같은 '확신'

세상을 향해 찍소리도 내뱉지 못한 채 항상 당하기만 했던 나약한 내 자신에게는 없었던

'자신감'


슬펐어요.

아팠어요.

괴로웠어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당신의 그 따스한 눈빛때문에 잊고 있었던,

'나'라는 사람의 나약함이 다시금 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거든요.

'넌 누구야?'

당신의 이 질문은

나에게 있어선..판도라의 상자와 다름 없었어요.

상자를 열지 않기엔 에피메테우스의 호기심처럼, 프로메테우스의 불안감 처럼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너무나도 컸었고

상자를 열기엔 그 안에 도사리고 있을 모든 역겨운 감정들과

터질것 같은 두려움이 너무 컸었고

상자를 열어도 당신은 여전히 지금의 눈빛으로 날 바라봐줄거라는

희망만을 가지고 살기가 두려웠거든요..


그 후로 저는 바깥은 나가지도 않고,

세상과의 모든 소통을 철저히 닫은 채 거울 속의 나에게 되뇌었어요.


'넌 누구야?'

'넌 누구야?'

'넌 누구야?'

'넌 누구야?'


그렇게 되뇌었어요.

나란 사람의 존재를 잊어버릴때까지 그렇게..


그렇게 나에대해 점점 잊어가고

잊어가고

잊어가고

잊어가고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커져가고

커져가고

커져가고

커져가고


내 몸 속에 흐르는 피 한방울 까지

내 머릿 속에 맴도는 생각 하나까지

나를 움직이는 신경 하나까지

당신으로 채워가고

채워가고

채워가고


결국엔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내가 사는 세상이 당신이 사는 세상처럼 네모난 곳인지

당신이 사는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처럼 역겨운 아집으로 가득 차있는 곳인지

구별조차 되지않을 그 무렵에


당신은 또다시 나에게 물었죠.

'넌 누구야?'

그제서야 난 대답할 수 있었어요.

'난..당신이야.'


그래요.

난 당신이고

당신은 나고

 

당신이 살고 있는 네모 반듯한 그 곳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조그마한 틀일 뿐이었고

 

내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역겨운 이 곳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비친 이데아에 불과할 뿐이었고

 

우리가 살고있던 세상은

결국 하나의 통로로 이어져있을 뿐이었고

 

그렇기에 당신이 날 찾아온 거였죠.

 

'날 구해줘.'

알 수 있었어요.

 

'날 여기서 꺼내줘'

들을 수 있었어요.

 

'날 이 네모난 세상에서 꺼내줘!'


드디어 당신의 외침을 난 느낄 수 있었어요.


난 결심했어요.

당신을 구해내겠다고.

 

그저 네모난 세상 속에 갇혀서

매일매일 똑같은 무언가를 투영할수밖에 없는

답답한 그 상황에서 구해주겠다고.

 

그리고 지금..

그 순간이 다가왔어요.

 

솔직히 조금 두려워요...

하지만 겁내지는 않아요.

 

당신이 그 답답한 곳에서 나를 향해 보였던 그 눈빛들이..

나를 향해 보내줬던 그 모든 마음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아니까..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냈던 그 눈빛들이..

그 사람들에게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던 내 모든 마음들이..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이제 내가 열어줄게요.

당신이 나를 바라봐 준 만큼

내가 당신을 바라봐 줄게요.

 

다만 한가지만 약속해요.

 

지금까지 당신이 나를 향해 가졌던 그 마음이 설사 변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위해 쏟은 노력과 내 마음을

잊지않고 기억해주겠다고 말이에요.

 

당신의 눈빛 속에서 그저 당신을 비추는 무언가가 될 뿐이라도 좋아요.

 

당신의 모습을 비출 수만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하니까..

 

그럼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아요.

 

당신의 그 슬픈 눈빛을 가진 사람은

당신의 그 슬픈 눈빛을 기억할 사람은

나 혼자로도 족해요...

 

이제 당신을 가두고 있는 그 무언가에서 당신을 빼내 줄게요.

당신과 나를 단절하고 있던 그것을 열어 줄게요.

 

제발 행복해줘요.

사랑해요.

 

 


2010년 7월 21일

당신을 사랑했던

외톨이가.

 

 

 

#

 

 


"....뭐야 이거..?"

"아무래도..유서인 것 같은데..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에요."

"이 편지 속에서 나오는 '당신'은 조사해봤나?"

"네..하지만 도저히 잡히지가 않습니다. 저 남자의 통화내역부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들어봤지만.."

"거참 미칠 노릇이구만..."


형사로 보이는 남자는 이내 방의 정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살이야..자살인데...자살의 동기가 분명하지 않아..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살의 동기인 '당신'

의 존재가 불분명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형사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조그마한 접이식 의자가 엎어진 채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무언가 무거운 물체를 지탱했을 가느다란 새끼줄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넌 왜 자살한거냐...누구를 위해 자살한거냐고..."

형사는 허공에 매달린 채 흔들거리는 새끼줄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네모난 상자....조그마한 세상...그리고 자신의 세상을 투영하는 그 무언가..."


형사는 새끼줄을 다시한번 툭 건드렸다.


"세상을 비추는 또다른 무언가..."


형사는 새끼줄을 다시한번 툭 건드렸다.

그리고는 새끼줄에서 몸을 돌린 채 의자가 넘어진 반대편 벽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흔들리는 새끼줄이 있었고, 그 밑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세상을 비춘다..투영한다..네모난 세상...설마 이건가..."


형사는 자신을 응시하는 또다른 자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가운 촉감과 함께 딱딱한 무언가를 손으로 쓰다듬는 형사.


"설마...나르시시즘이라도 걸렸다는거냐..."


형사는 무언가를 지그시 누르고있던 손가락을 뗀 채로 뒤돌아섰다.

형사의 표정은 홀가분함과 어이없음이 교차하는 듯한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형사의 체온을 받아 하얗게 김이 서린 '거울'이 놓여있었다.


"어이, 김형사. 됐어. 대충 알 것같으니까 일단 사건현장 보존하고 서로 가자고."

"네..?"

"해결된 거 같다고. 알거같으니까 일단 시체 가져간 감식반 애들보고 감식결과 보고해

달라고해. 그리고 자살한 녀석의 정신과 치료 목록 대조해보고."

"네!......네? 저..감식반이라뇨..?"

"시체 가져간 애들 말이야. 우리 올 때 시체 없었잖아."

"어라..?그러고보니 그렇네요? 감식반이 다녀갔단 보고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녀석들 하는 게 뭐 그렇지. 한마디 해야겠어. 보고를 똑바로 해야지. 새끼들이

빠져가지고는..어쨌든 사건현장 보존하고 빨리 가자고. "

"'당신'이 누군지 찾으셨다는 거죠?"

"그래. 거울이었어."

"거울..이요?"


형사는 자신을 향해 반문하는 남자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거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래 거울. '네모난 세상' '세상을 투영하는 조그마한 곳' 뭐겠어? 거울 밖에 더있어?"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을 본 형사는 주먹을 들어서 한대 쥐어박으려는 듯이 뒤로 돌렸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는 손을 내린 채 그를 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어휴 이 무식한 자식아! 잘 봐봐. 저 의자가 놓였던 방향. 줄의 위치. 그리고 편지가

놓여있던 곳.모두 거울과 일직선 상이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그래. 자살한 자식이 미친놈이었던거지. 거울에 비친 자신을 확인하고는 사랑에 빠져

버린거야..말세다 말세..저런 히키코모리 자식이 있는 것도 소름끼치는데 자기를 사랑해서

자살이라니..."


형사는 허공에서 진자운동을 계속하고있는 새끼줄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기분나쁘다는 듯

훽 돌아서서 방을 나가버렸고,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곧 뒤따라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거울을 보고 자살을 하다니..자기 모습을 비춘다라...에이 모르겠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방을 휘익 둘러보고는 방문을 열고 사건현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방문이 닫힌 방은 이내 정적과 고요에 휩쌓였다.

김이 서린 거울은 여전히 방 안의 모습을 투영하려는 듯 달빛까지 머금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접이식 의자가 죽어버린 시체를 연상시키듯 누워있었고

그 위로는 누군가에게 인사하는 듯한 새끼줄만이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네모난 모양의 창문이 달빛을 받은 채로 방 안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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