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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을 걷다 Day9 로그르뇨 ~ 부르고스 (2012.01.03)

진형록 |2013.01.27 10:02
조회 138 |추천 0
혜정이 누나와 작별을 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어제 혜정이 누나와 태수형이 장봐온 냉동피자와 포도쥬스로 일단 아침끼니를 해결하기로 한다. 역시 대도시 알베르게는 부엌도 시설이 잘되있어서 좋다.

 

전자레인지에 피자를 돌리고 마침 부엌에 컵들도 있어서 포도쥬스를 따른다. 이제 막 뜨거워서 맛있는 냄새 솔솔풀기는 피자를 한입 물고 쥬스를 마시려고 하는데.What the...이건...알.코.올.맛.


 

혜정이누나와 태수형이 저 예쁜 디자인에 포도쥬스라고 속아서 사온건 쥬스가 아닌 와인이었다. 저 꽉에 쓰여있는 것처럼 스페인어로 Vino가 와인이란 뜻이다. 여행 1주일만에, 와인이란 단어를 배우게 된거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수형도 술을 안좋아하고 혜정이 누나도 술을 못해서 나도 술을 안마셨기에 이 와인 1L께서는 그대로 싱크대로 직행하셨다. 생긴것도 저렇게 생기고 가격역시 한국돈으로 1800원밖에 안하니, Vino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냥 쥬스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저 조그만 피자를 셋이 나눠먹고 알베르게 주인장한테도 한조각 드렸으니...하루에 7~8시간 걷는 사람들이 배가 찼을리가 없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로그르뇨는 초콜릿라떼와 츄러스가 유명하다고 그걸 꼭 먹고가야된다고 했다. 어차피 크리스티나와 바티와도 작별인사를 해야했기에, 다 함께 아침을 먹으로 츄러스 가게에 가기로 했다.


 

그런겁니다. 바로 뒤에 츄러스가게가 있음에도 지도를 들고 우리의 크리스티나는 저렇게 열심히 두리번 거리는 것입니다. 가게 간판부터가 츄러스를 걍 쵸코물에 빠뜨려 먹으라고 알려주고 있다. 흔히들 초콜릿라떼라고 하면 카페에서 파는 핫쵸코 정도를 생각하고 츄러스라하면 스키장이나 에버랜드에 가면 먹는 그 츄러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가게...초콜릿라떼의 진수를 보여준다.


 

코코아를 상상한다면, 상상을 멈춰라. 액체라고 하기 무안한 농도다. 마치 즉석에서 초콜릿을 끓여서 나온듯 하다. 그리고 저 설탕듬뿍 얹어 놓은 추려스들...저걸 초콜릿라떼에 찍어먹으면 '아 이게 단맛이구나'를 느낄 수 있다. 너무 달다보니 몇개 먹지도 않았는데 식욕이 확 떨어진다. 이제 나와 태수형을 제외한 나머지 세명은 출발하지 않으면 안될 시간이다. 그래도 첫날부터 7일간을 같이걸은 혜정이누나와 작별을 하게 되니 기분이 이상하다. 다행히 우리끼리 문자가 되니 매일매일 연락하기로 하고. 누나와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태수형과 나는 터미널로가서 가장 빠른 시간 버스를 타고 3일치 거리를 건너뛰어 있는 부르고스라는 또 다른 대도시로 가기로 했다. 아직 버스시간이 남았기에 아직까지도 고쳐놓지 못한 내 등산화 끈을 사러 근처 신발가게에 들어갔다.


 

등산화는 팔지만, 등산화 끈은 팔지 않는다는 어설픈 영어만 들은체...가게에서 나왔다. 태수형만 이곳에서 스패츠를 하나 사서 나왔다. 내가 나온 사진을 본 사람들이 다리 밑쪽에 차고있는 25cm짜리 주황색 물체에 대해 묻곤 한다. 그게 바로 스패츠다. 카미노 처럼 매일매일 길의 상태가 바뀌는 곳에서는 하루만 자칫 진흙길을 만나도 바지 밑이 흙으로 난리가 난다. 그렇다고 잘 마르지도 않는 바지를 매일 빨 수 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착용하는 것이 스패츠다. 진흙으로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스패츠를 착용하면 어떤길이든 마음껏 걸어주고 그로 인해 더러워진 스패츠만 털어내면 그만이다.


버스가 왔다. 걷는다면 3일을 하루 7~8시간을 걸었어야할 길을 버스로 2시간만에 왔다. 오는 길에 창밖을 보니, 저 길을 걸어왔다면 3일이 내내 따분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도착하고 보니 부르고스도 상당히 큰 도시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동안 7일동안 매일매일 고되게 걸은 우리자신에게 상을 주고자 오늘은 태수형과 함께 이 도시에서 푹 쉬기로 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스페인에서도 대도시의 상징은 성당이다. 


 

네면이 모두 개성넘지는 모습을 하고 있는 부르고스 성당이다. 기왕 성당 앞까지 온거 표를 끊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스테인글라스에서 빛이 들어오고 평소 일상처럼 성당안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미사를 보고 있다. 관광도시의 느낌이 난다.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모습도 보이고 여기저기 기념품가게들이 보인다. 태수형은 대도시에 갈때마다 보석가게에 들어간다. 여자친구에게 반지를 사갈꺼라고 했는데,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는 그런 빛나는 반지가 아닌 이 카미노 길 위에서만 살수있는 이곳을 상징하는 반지를 찾기 위해 보석가게가 보일때마다 들어가 본다.


 


부르고스의 시청이다. 시청앞에는 일종의 카니발처럼 아이들이 놀 만한 놀이기구들이 설치되어있다. 이 곳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8명 정도의 무리가 나랑 태수형을 보고는 인사를 하며 이리 와보렜다...분명 예쁘긴했으나...태수형도 나도 솔직히 무서웠다. 이 외딴 나라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아침에 츄러스를 먹은게 오늘 식사의 전부이니 배가 고플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도시니 어디 맛있는 식당이라도 가볼까 하다가, 이거 뭐 인터넷도 안되는데 대도시에서 식당찾기도 뭐해서 알베르게에 가장 가까운 식당중에 와이파이가 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정말 엄청난 소금과 후추다. 분명 조금만 넣어달라고 말했는데도 조금넣은게 이정도다. 보이는 것과 실제 맛은 너무나 다르다. 매일 태수형과 식사를 할때는 앞으로 더 걸어야할 남은 거리때문에 조급해하면서 빨리 먹곤 했는데, 오늘은 어차피 더 걸을 날도 아니니, 처음? 혹은 오래간만에 긴 대화시간을 가졌다. 나와 무언의 갈등을 많이 겪은 형이긴 해도 그래도 참 여행 첫날부터 태수형을 만난것도 인연이며 고마운 일이다. 


오랜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태수형이 저기좀 봐보란다. 그리곤 둘다 말없이 카메라를 꺼낸다.


 

사실 오늘 아예 하나도 걷지 않고 휴식을 취한데는 이유가 있다. 내일부터 향후 5일동안 '메세타'라는 구간이 펼쳐진다. 부르고스를 출할하는 순례자는 메세타에 관한 악명 높은 소문을 듣게 된다. 부르고스와 빨렌시아, 레온까지 장차 100km 정도 끝나지 않게 이어지는 메세타는 여름에는 사막과 같은 열기와 건조함을, 겨울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시베리아 동토의 차가움을 선사한다. 그래서 이 구간을 버스로 뛰어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세타는 순례가에게 진정한 순례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생각의 길, 치유의 길이다. 그래서 태수형과 나도 굳이 이 구간을 걷기 위해 부르고스까지 버스를 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메세타는 순례자의 육체적 에너지와 정신적 에너지를 끊임 없이 시험한다. 그런길을 내일부터 걸어야하니, 이정도의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부르고스 알베르게는 내가 이 길위에서 경험한 최고의 알베르게다. 이렇게 깨끗하고 잘되있는 알베르게는 앞으로도 만나지 못했다. 개인 콘센트와 등은 순례자에게는 정말 감사한 요소다. 이 좋은 알베르게에서 푹 자고, 내일부터 이제 지옥의 코스 '메세타'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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