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찾으시는..분들이 계셔서..한가해서 한편 더 올리고
갑니다. 즐감 하십쇼!!![]()
나중에 또봐용
- 섬에서 본 여자(실화)
저는 친가쪽이 전라남도 여수고 외가쪽이 강원도 평창이었습니다.
어렸을적에는 항시 명절날 시골로 이동할때마다 ' 난 친가가 바다고 외가가 산이니 바다와 산을
다갈수 있구나 ' 라면서 우스갯 소리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외가쪽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제가 어린나이에 두분다 돌아가셧기 때문에 강원도를 갈일이 거의 없었고, 아버지를 따라 명절이면 항상
가족은 친가인 전라남도 여수로 갔었습니다.
더군다나 저희는 전라남도 여수 시내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 ' 벌가 ' 라고 하는 선착장에서
운행시간에 맞춰 배를 타고 ' 적금도 ' 라고 하는 섬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명절에는 정말 엄청난 귀성길 행렬이 이어지기 때문에 차로 이동하는 저희는 완전 녹초가 다 되어서야
시골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어릴적 저는 시골에 도착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먹으며 따뜻한 안방에서 자는것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바닷내음과 뜨거운 퇴약볕 아래
시원한 소리와 같이 흐르는 바다를 볼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좋은게 있었다면 바다와 이어진 길모퉁이로 수 많은 배들이 줄을 지어 서있으면 그곳이 어느
놀이터 보다도 즐거운 놀이공간 이었습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굵은 밧줄을 밟고 넘어질랑 말랑 배에
올라서면 말할수 없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밤 낚시를 하러 나가신다고 한손에 낚시대와 다른 한손에 큰통들을 들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선착장 주변으로 가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재미잇어 보여 헐레벌떡 따라 나섰는데 정장 어른들은 밤바다는 위험하고 바람이 차다고 허락해주질 않으셨습니다.
그 말에 실망하여 뾰루퉁한 표정으로 버티고 서있자 아버지가 안쓰러웠는지 할머니의 형제이자 아버지에게는 삼촌인 가명 ' 창석 ' 삼촌 할아버지에게 ' 애가 심심해 하니 보트좀 태워줘요 삼촌 ' 하셨습니다.
전라도의 특성상 다들 맘이 따뜻하면서도 입은 거칠은 편이었기 때문에 삼촌 할아버지는 궁시렁 궁시렁
욕을 뱉으시면서도 제 손을 잡아 이끄시고는 보트에 태워주셨습니다.
저 혼자가는 것도 심심했기에 큰 마을에 있는 큰 아버지의 사촌동생들과도 같이 탔습니다.
배는 시끄러운 모터소리와 같이 밤 바다를 헤치면서 시원하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귀신을 본것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 시피 바닷물 이라고 하는 것은 ' 밀물 ' 과 ' 썰물 ' 이 있습니다.
이 밀물이라는 것은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섬쪽으로 물이 계속 차고 들어오는 것이고
썰물이라는 것은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갯벌이 드러날 정도로 바닷물이 쭉 빠지는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밀물 썰물은 시간대에 따라서 이루어 지는데 저희 섬 같은 경우는 오후 1시쯤 되면 물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졌다가 오후 6시 30분 7시 사이로 다시 물이 차오릅니다.
제가 보트를 타고 바다를 달리던 시각은 어른들이 밤 낚시를 하러 갈 시간이었으니 밤 10시가 다되었거나
혹은 넘었을 시간이었습니다. 다시말해 물은 이미 끝까지 차고 들어와서 갯벌은 커녕 바로 길모퉁이에서
발을 헛디뎌도 수심 깊은 바닷물에 빠질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트를 타고 달리면서 같은 시각 분명 검은 굴 앞 물위에 떠있는 이상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어린 제가 봤었을 때에도 뭔가 기이하고 음산했으며 말이 안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삼촌 할아버지와 사촌동생은 그 광경을 보진 못했는지 시끄러운 보트 소리에 젖어 바다를 달리기에 바빴습니다.
그 이후 너무나도 이상한 마음에 아버지에게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아버지는 ' 글쎄다 ' 라는 말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우연적으로 할머니와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저희 섬은 금이 나오는 섬이라고 하여 적금도 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일제치하 시대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일본군이 저희 섬을 금광으로 개발하여 거대한 굴을 파고 작업에
들어갔지만 막상 나오는 금이 턱없이 부족하여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철수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때에 일본군들에 의해 저희 섬 주민들도 고통을 많이 받았겠지요.
그제서야 그때 제가 그 검은 굴 앞에서 본것이 단순히 의미없는 영적존재가 아니라 물이 차올라서
오고 갈수도 없는 불행한 한국 여인의 혼령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도 친가의 할머니는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어김없이 추석이나 설에는 밀리는 차들 사이로 아버지와 제가 운전대를 번갈아 잡으면서 시골로
갑니다. 어릴적 기묘한 경험이자 섬뜩한 경험을 했던 섬이지만 아직도 그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 출처 핑크핑크 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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