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그녀는 예상외로 고분고분하게 나의 차에 탔다. 조수석에서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YY고시원으로 출발했다.
여러번 순찰을 와봐서, CCTV가 있는 위치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CCTV가 없는 경로를 통하여 금방 고시원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도착한 곳이 YY고시원이자, 눈을 크게 뜨고 놀랬다. 그녀가 그러던지 말던지, 나는 차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서 뭔가 꺼림직 하여, 다시 차 문을 열고 그녀에게 말했다.
“도망치려면 도망쳐, 안 말려. 근데, 그 뒤는 니가 책임져라.”
“.......”
그녀는 분한지 나를 심하게 노려봤지만, 나는 씨익 웃어주고 다시 문을 닫았다.
이렇게 겁을 주고 나면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지금 좋든 싫든 탈옥범이다.
지금 밖에 돌아다니다간, 혐의가 없더라도 귀찮아질 문제였다. 나는 안심하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카운터를 보니, 어김없이 전선기가 앉아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나는 3분가량 그가 뭘하나 가만히 보고 있었다. 곧, 그가 먼저 나를 발견하였다.
“누구....어? 박 형사님 아니십니까?”
“네, 여기서 보게 되는군요.”
“무슨 일이시죠?”
“방 좀 알아보려고요. 근데, 뭘 쓰고 계시죠?”
“아... 이거요?”
전선기가 쓰고 있던 종이를 살포시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희의 혐의 없다는걸 좀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살인사건이 또 터졌다면서요?”
“아... 네.”
“읽어보시겠어요?”
그가 나에게 종이를 얼굴 앞까지 내밀었다.
나는 기분이 불쾌해져서 종이를 낚아채듯 잡고 다시 그의 책상위에 올렸다.
“경찰청 가서 제출하도록 하세요.”
“음... 네.”
나는 치솟는 짜증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혔다.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너무 빈틈이 없어서 혹시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나는 애써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버렸다.
그는 내가 종이를 읽어보지 않아서 아쉬운지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짓고, 펜을 내려놓았다.
난 분명 이성을 잠깐 잃긴 했지만, 다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사소한 버릇조차 놓치지 않았다.
“방 잡으러 오셨다구요? 그럼 이거 보시죠.”
“?”
그가 보여준건, 고시원의 배치도였다. 2층은 남성 층이고 3층은 여성 층 이었다.
그가 보여준건 남성 층의 도면이었다.
2층의 방은 총 12개.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로 방들이 지그재그로 늘어져 있었고, 복도의 끝에서 커브를 돌면, 화장실, 세면실 및 세탁실 마지막으로 샤워실이 차례로 있었다.
“이름이 안 써있는 곳이 빈 방이에요. 어디로 하시겠어요?”
빈 방은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앞의 방, 그 옆의 방과 중간쯤에 있는 방, 마지막으로 화장실 앞쪽에 있는 맨 끝방의 바로 옆방이었다.
나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가장 깊이 있는 끝에서 두 번째 방을 골랐다.
그는 도면에 체크를 하고 나의 이름을 적더니 열쇠뭉치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먼저 보시죠.”
“예.”
많이 해본 듯한 멘트를 거침없이 날렸다.
서주희가 잡힌건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정도로 능숙하다니, 너무나 완벽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의심이 갔다. 그는 앞장서서 방으로 향했고 나는 가는동안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CCTV는 올라가는 계단에만 달려있었고 복도엔 있지 않았다. 웬지 의심부터 가서, 그에게 물었다.
“보안이 좀 부족한거 아닌가요?”
“네?”
“CCTV가 복도엔 없네요?”
“아, 그건 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겁니다. 복도에서는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는 분이 많아서 설치가 불필요합니다.”
“네...”
역시나 빈틈이 없었다. 마치 이 고시원에서 오랫동안 주인노릇을 해온 말투였다.
나는 끝없이 의심을 품으며 그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는 특이하게 방문 손잡이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문을 열었다.
-틱
그가 손가락으로 경쾌하게 전등을 켜자 방 내부가 밝혀졌다.
침대에, 냉장고, 창문까지 달렸고 방도 은근히 넓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좋은 방이면 방값이 만만치 않을텐데... 난 이제 더 이상 월급도 받지 않을텐데...
“좋.. 좋군요.”
“감사합니다. 결정하신건가요?”
“한달에... 얼마죠...”
“35만원입니다. 전기, 난방비는 내실 필요없구요. 4층에 가보시면 취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죠.”
그가 살짝 미소를 띄며 말했다.
35만원이면 시설에 비해 나쁘지 않았지만 막상 돈 낼게 눈앞에 닥치자 등에서 식은땀에 흘렀다.
하지만 적금이 있으니 그걸 깨면 4달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여기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계좌는 제가 알려 드릴테니 거기로 입금하시면 되구요. 언제부터 들어오실 건가요?”
“오늘부터 할게요.”
“네. 그럼 열쇠 드리겠습니다.”
그는 다시 방 불을 끄고 나와 카운터로 내려왔다. 그를 감시하기로 한 이상, 이 외에 좋은 방법은 없었다.
방값이 아깝긴 하지만, 잊어버리고 그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키를 받고 다시 승용차로 돌아왔다.
서주희는 심통이 가득난 얼굴을 하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오든 말든 나에겐 눈길 한번 주질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이대로 널 놓아주면 어떡할래?”
“.......?”
“전선기에게 달려가서 품에 안길건가?”
“.......”
“난 지금 전선기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거든? 니가 그 새끼한테 무슨 소릴 들어서 범인이라고 자백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놈이 나중에 널 풀어줄거라 약속했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다.”
여기까지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바라봤다. 절대 믿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근데, 전선기는 니가 대신 감방가길 바랬나봐? 재산 다 꿀꺽하고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고시원 운영해서 돈 받아먹고 있어. 실제로... 니가 풀려났냐...? 니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모르지? 넌 검찰에서 조사된 후에 형사 재판받을 판이었어. 근데 니가 도망쳐 나와서 전선기놈 앞에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꿈쩍도 안하던 서주희의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두려움과 불신의 감정때문인지, 미묘하게 몸도 떨고 있었다. 난 그녀의 격한 반응을 보고 쐐기를 박았다.
“니가 지금 전선기놈 앞에 나타나면... 넌 죽는다...”
서주희의 떨림이 점점 심해졌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온몸의 진동 때문에 말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한참동안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초조해 하던 서주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녀의 단호한 눈빛은 어느새 두려운 눈빛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나마 진정이 되었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거짓말 하지말아요...”
그녀의 입에선 거짓말이라고 나오고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가 이미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듯 보였다.
그녀는 손으로 귀를 꽉 막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동공에 힘이 점차 풀려갔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나는 그녀의 손을 귀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려움이다. 무엇보다 공포가 느껴지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에대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진실이야. 너도 이미 스스로 알고 있어.”
“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잡은 손을 놓아주었지만, 그녀는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힘이 풀려서 손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스스로에게 많은 말을 걸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결론이 났는지 흐느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이제 어떡하죠.......?”
“2가지 길이 있지.”
“2가지...?”
“하나는 나를 도와서 전선기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
“... 또 하나는...?”
“방해하지 말고 닥치고 있는거야.”
“.......”
사실 두가지 모두 날 도와주는 일이다. 그녀의 행방불명 소식에 전선기는 무척 초조해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없어져 버린 서주희를 찾기 위해서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캐치해내면 된다.
하지만 그건 서주희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진다.
실제로, 서주희가 허무하게 죽어버린다면 전선기를 잡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아마 그녀의 선택은.......
“당신을... 돕겠어요....”
“뭐.......?”
이건 정말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는 당연히 아직 전선기를 사랑하는 서주희가 가만히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선기를 잡는 걸 돕는다니,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놀란 기색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시선을 YY고시원으로 돌리며 말했다.
“당신을 도우면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밝히겠어요...”
“킄...”
이 말을 듣고나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의 웃음에 서주희가 매섭게 쏘아봐서 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이미 터진 웃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몇차례 더 큭큭 거리다가 헛기침을 한번 시원하게 하고 표정관리를 했다.
그녀는 기분이 나쁜 듯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말리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너무 기분나빠 하지마. 난 기뻐서 그래... 니가 도와준다면 나로썬 훨씬 일이 편해질 수 있거든.”
“.......”
“자, 일단 받아.”
“이건.......”
나는 고시원의 열쇠와 내가 입고있던 외투, 그리고 차에 항상 놔두었던 모자를 서주희에게 던져주었다.
그녀는 엉겁결에 내가 건내준 물건을 받고 모르겠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그녀에게 말했다.
“넌 탈옥수니까, 그거라도 둘러서 위장을 해야지. 그리고 전선기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새벽에 그 복장을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도록 해. 그리고 쥐죽은 듯 가만히 있어. 숨소리도 내지마. 알겠어?”
“네.......”
전선기가 범인일거라는 생각과, 아닐거라는 생각이 복잡하게 뒤얽히는지, 서주희의 표정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나는 원래 내가 살던 집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나도 범법자가 되어버렸으니, 숨으려면 짐하고 돈이 필요하다.
계좌를 사용하면 추적당할게 뻔하니 미리미리 현금으로 찾아놔야 했다.
집에 가자마자 옷가지들을 마구잡이로 챙겼다. 누나가 실종된 후 혼자 살아서 그렇게 챙길건 없었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가서 현금을 있는대로 뽑아 가방에 아무렇게나 쳐 넣었다.
지켜보던 편의점 알바놈이 이상한 눈으로 날 바라봤지만, 지금은 신경쓸 바가 아니다.
나는 차로 돌아와서 막 시동을 걸었다.
-삐용~삐용~삐용.....
“아놔, 벌써?!”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건 예상보다 빠른 시간이었다.
오대수를 때려눕힌지 한 시간도 안됐는데 탄로났다는 건, 오대수 그놈이 스스로 깨어났다는 이야기밖에 되질 않는다.
나는 속을 욕을 해대며 속도를 냈다. 경찰차는 한대 두대가 아닌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신발, 다른놈 잡을땐 그렇게 느긋하더니.......!”
이제야 도둑놈들 잡을 때 그놈들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놈들을 잡으면 항상 하는 말이, 다른 애들 잡을땐 훨씬 늦게 반응하더니, 나 잡을 때만 이렇게 신속하게 출동하느냐고 오히려 따져댔다.
이번에 잡히면 나도 한마디 할테다.
사이렌 소리는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모두 들렸다.
이쯤되면 경찰은 이미 내 차를 타겟으로 잡고 몰이중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차를 돌려 넓은 도로로 나왔다. 보통 범인들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그거야말로 자살행위다.
좁은 골목에 끝엔 경찰차 2~3대가 길을 막고 있다. 하지만 8차선 도로쯤 되면 그게 쉽지 않다.
큰 도로로 나오니 뒤에서 4대쯤 경찰차가 시끄럽게 뒤쫓고 있었다.
“아... 신발 내가 무슨 연쇄살인범이나 되나? 뭐 이렇게 많이 와?!”
신경질 적으로 말을 뱉고 문득 옆을 보니 연쇄살인범 누명을 쓰고 있는 서주희가 보였다.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꼭 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지금은 액셀을 밟을 때다.
-웅.... 웅.........
안 그래도 오래된 차에 속도를 막 높여대니 자동차가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차선이고 신호고 다 무시하고 끝없이 속도를 높였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옆 골목에서 경찰차들이 툭툭 튀어 나왔지만 중앙선을 밟으며 질주하자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으익....!!”
얼마 못가서 앞에 경찰차들이 일렬로 쭈욱 늘어서서 길을 막고 있는게 보였다.
이 큰 길을 다 막을 줄이야, 내가 경찰들을 그동안 꽤 무시했다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돌파를 할지 생각을 했다.
“에라이!!!! 꽉잡아!!”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가장 틈이 큰 경찰차 사이로 차를 갔다 박았다.
멈출줄 알았던 경찰들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피했다.
-콰쾅.
범퍼가 날라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앞의 헤드라이트도 눈깔 하나가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5년 가까이 함께한 차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경찰차의 추격을 어느 정도 따돌렸다. 나는 불법 주정차량이 많은 유흥가로 들어섰다.
여기라면 추적하기가 상당히 껄끄러웠다. 형사를 하던 시절에도 유흥가로 튄 범인새끼들 검거하기가 제일 귀찮고 까다로웠다. 놓친 적도 분명 많았다.
“후유...”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스윽 닦아내는데, 나의 주행에 새하얗게 질린 서주희가 급하게 외쳤다.
“뒤...뒤에...!!”
“?”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자, 경찰차 한대가 바짝 쫓고 있었다. 희안하게 사이렌도 켜지 않고 따라왔다.
보통은 사이렌을 켜는데 저건 대체 뭐하는 짓인가? 내가 형사였다면 저새끼는 당장에 뺨을 후려갈길 놈이었다.
나는 욕을 갈길 틈도 없이 다시 속도를 높였다.
차에 부서진 부품이 질질 끌리는지 기분나쁜 소리가 끽끽 거리며 귀에 거슬렸다.
여기까지 경찰차가 따라오는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운전대가 닿는 곳으로 하릴없이 도망만쳤다.
그리고 좁은 골목길에서 그 끝은 멀지 않았다.
“쳇...”
막다른 길이다.
나는 차를 돌릴 공간도 없는 막다른 길이 나오자 체념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양 손을 머리위로 올렸다.
“어디 신발, 사이렌도 안울리고 범인 쫓아온 그 면상좀 보자.”
경찰차가 조용히 열리더니 경찰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짜증을 가득 짓고 있는 표정이었는데, 나타난 경찰놈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나도 피식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이성훈.”
“에라 이 빙신아.”
차라리 어설픈 놈이 날 거칠게 잡는 것보단 이편이 맘 편할지도 모르겠다.
경찰차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 이성훈이자, 마음은 편해졌다.
나는 허탈감에 피식 웃으며 그에게 양 손을 내밀었다.
“자, 채워라.”
“뭐라는 거야? 새끼가.”
“응...?”
“난 너 쫓아온 거지 잡으러 온 게 아냐.”
“무슨 소리야?”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는지, 말해봐. 납득이 가면 풀어주고 안가면 감방 가는거고.”
“훗...”
웃음이 나왔다. 경찰 주제에 저런말을 할 수 있다니, 부럽긴 부러웠다.
나는 평소에 경찰이란 직업에 자부심이 넘쳤다.
이번에 서주희를 탈취한 것도, 분명 내가 압송을 맡아서 빼돌리면 걸리는 것도 늦게 걸리고 보다 손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사직서를 내고 이런 행동을 한 건, 경찰로서 그럴 수 없었다.
그게 나에게 남은 최후의 정의였다.
하지만 이성훈 이놈은 순경주제에 사이렌도 끄고 범인과 이렇게 딜을 하고 있다니, 내가 우스워지는 꼴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잡힐수는 없었다. 다소 비굴해졌지만, 나는 입을 쉽게 열 수 있었다.
“전선기가 범인 같다는 말은 했지?”
“어.”
“경찰쪽은 그걸 받아들이고 검찰에 서류를 넘겼는데, 민창수놈이 증거를 조작해서 서주희를 범인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뭐...?”
내 말은 이제 시작이었지만 이성훈은 꽤 놀랐다. 나는 숨을 한번 가볍게 고르고 말을 이었다.
“전선기는 서주희의 재산을 가지려고 하는 것 같아. 철두철미한 놈이지. 심지어 검찰측에서 어떻게든 서주희를 범인으로 몰아갈 거라는 것까지 알고 있어. 그래서 차분히 서주희의 착한 애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
“확실한거야?”
“서주희가 연쇄살인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면. 게다가 친족을 죽인 파렴치한이라면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텐데, 그럼 그 재산은 다 어디로 갈까? 이혼 소송을 걸면 위자금으로 서주희의 재산을 다 먹고도 남아.”
“전선기가...!”
이성훈이 이빨을 으득으득 갈았다. 그 동안 친한건 아니었는데, 담배친구는 됐었다.
그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곤 물었다.
“증거는 있어?”
“다른 살인이 일어나고 서주희를 찾아가 자백을 번복하라는 말을 했겠지. 그럼 풀려날 수 있을거라고 하고... 그 점은 그녀도 인정했어. 근데, 한가지 의문이 있긴한데...”
“뭔데?”
“편의점 주인인 김수철 씨가 살해당한 시점에 전선기가 서주희 면회를 왔다는 점이지...”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지자, 성훈이는 가래침을 탁 뱉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던져줬다.
내가 엉겁결에 그걸 받아들곤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자 성훈이가 경찰차에 다시 오르며 말했다.
“니꺼 쓰면 추적당할게 뻔하니 내꺼 써라. 어차피 업무용과 개인용이 나눠져 있고, 그건 개인용 휴대폰이야. 도움이 필요하면 업무용으로 전화해. 전화번호는 거기 저장되어 있어. 그 외에 내가 전선기에 대해 조사한 자료도 어느 정도 거기에 들어있어. 한번 봐.”
“어... 그래...”
“그럼 간다.”
“잠깐!”
나는 경찰차의 문을 닫으려는 그를 멈춰 세웠다. 그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었다.
“니가 왜 그렇게 이 일에 신경 쓰는거야? 두 번째 살인까지만 해도 관심 없었잖아?”
“이번에 살해된 김수철...”
그가 잠시 주저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분명, 울고 있었다.
“내가 양아치짓 하고 백수신세로 골목을 돌아 다닐때... 이 길로 인도해준 아버지 같은 분이셔... 근데 나 때문에... 내가 보자는 말만 안했어도...”
“아.......”
성훈이는 그대로 차 문을 닫았다. 그리고 사이렌을 켜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수철이 살해된 비 오던 날, 그가 현장을 목격한 건 우연히 순찰을 하다가 그런 게 아니었다.
김수철과 만날 약속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가 비오던 날 왜 그렇게 힘이 없었는지 짐작이 갔다.
나는 알 수 없는 저릿저릿한 감정을 느끼며 차로 돌아왔다.
“내려야겠어.”
“네.......?”
“이런 차로 돌아다니다간 삽시간에 걸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가자.”
“.......”
아까 확실히 말을 해둔 게 다행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
옷들은 널널한 가방에 구겨넣었다. 여긴 VV대학 인근의 주점골목이었다.
대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거리이다. 슬슬 저녁이 되어서 네온 불빛이 현란하게 춤을 췄다.
“손님! 분위기 좋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꺼져 새끼야.”
“... 뭐?! 이새끼가...”
기분이 좋지 않은데 호객행위를 하는 놈이 오라고 하자 나도 모르게 심한 말이 나와버렸다.
내 말에 반응하던 녀석은 욕을 갈기며 나에게 다가왔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꺼지라고.”
내가 잘못했다는 건 분명 안다.
호객질을 하는것도 짜증나는데 이렇게 욕하면서 꺼지라고 하면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게다가 보통 이런 알바를 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성깔이 더럽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오래 상대했다간 귀찮은 일만 생길 것 같았다.
나는 비겁하긴 하지만 경찰 신분증을 보여줘서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나는 평소에 지갑을 넣어두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으잉...?”
없다. 지갑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고시원에 현금카드만 들고 놓고 와버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서주희를 힐끔보니, 지금 뭐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뭐 하려고 이 새끼야? 눈 안 깔아?”
부아가 치밀었지만 지금은 눈을 깔을 수밖에 없었다. 효과음으로 ‘깨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슬쩍 서주희를 보자 눈에 한심이라는 글자가 써있는 것 같았다.
동공이 글자로 변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 말이 별로 없던 서주희가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이 사람이 술을 좀 먹어서.......”
“허, 지금이 몇신데 벌써 꽐라돼서 돌아다녀? 이보쇼, 남친이면 관리 좀 잘하쇼.”
“죄송합니다.......”
서주희도 약간 열받은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열받은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남친이라고 해서 그런가? 어쨌든 상황을 모면했으니 서둘러서 이동을 했다.
그녀에게는 고맙다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화가 많이 난 것 같아서 관뒀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서주희가 짜증나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택시타면 되잖아요? 뭐하러 일일이 걸어가요?”
“참나, 바보같은 여자구만. 도로마다 검문이 쫙 깔렸을 텐데 택시타자고? 너 사실 감옥 가고싶은거 아냐?”
“으....... 나 무시하지 마요, 별것도 아닌게...”
“.......?”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그 동안 살아가면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왔다.
그 누구한테도 무시받은 적 없고 무시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다.
그래서 경력이 얼마 없더라도 경찰청의 사람들은 나를 존중해주고 믿어 주었다.
그건 고등학교건, 중학교건 간에 어떤 집단이 되었든 그래왔다.
근데 뜬금없이 이여자는 나보고 별것도 아닌놈이란다.
“뭐야, 뭔 근거로 별것도 아니래?”
“아까 보여준 찌질함이면 됐네요. 경찰 하면서도 왕따였죠? 말거는 사람도 없더만.”
“.......!!!”
입이 뜨아 하고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서주희가 말을 이렇게 잘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여자가 하는 말은 모두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이었다.
나는 열이 받아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삐용, 삐용, 삐용........
“이리와!!”
경찰차가 살려준줄 알아라.
나는 그녀를 잡아끌어 골목의 귀퉁이로 들어갔다.
이런 골목까지 경찰차가 돌아다니다니, 꽤 많은 인파가 동원됐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런 추적도 얼마 안간다. 내가 차를 한쪽에 버리고 왔으니, 그 차가 발견이 된다면 그대로 상황 종료다.
방금 지나간 경찰차의 방향도 분명 내가 차를 버린 곳이었다.
거기에서 현장 조사, 증거 확보, 보고서 올리기 까지 하고 나면 난 지구반대편까지 도망칠 수 있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거슬리던 사이렌 소리가 한쪽에서 크게 들렸다.
도망치려면 지금 뿐이다. 나는 걸음을 빨리해서 유흥가를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큰길로 돌아다닐 수 없는 판이라 골목을 이리저리 돌았다.
“.......”
얼마나 걸었을까? 거의 다 온 시점에서 한쪽 골목을 돌아 나오려는데, 서주희가 멈칫거렸다.
바빠 죽겠는데 서주희가 늑장을 피우자 짜증이 밀려왔다.
“뭐해? 빨리와, 우리 쫓기는 몸이야.”
“여긴.......”
“왜 그래?”
“누가 죽었던 곳.......”
골목을 흘끗 보니, 이곳은 첫 번째 피해자인 최성은이 죽은 곳이다.
나에겐 좋지않은 기억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했다.
최성은의 죽음과 동시에 나의 누나인 박지혜가 증발해 버렸고, 최성은의 동생인 한은이의 집도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나는 억지로 태연한척 말했다.
“얼른 가자고.”
“목격했었어요.”
“뭘...?”
“여기서 죽이는 장면을.”
“.......!”
최성은 사건의 목격자는 나오질 않았다.
플래카드도 걸고 현상금도 걸어봤지만, 끝끝내 목격자는 나오질 않았다.
아니, 한명 나왔었다. 서주희의 어머니였던 정금란 씨. 정금란 씨는 현상금을 노리고 거짓진술을 했었다.
조금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우리가 조금 겁을 주자 잘못봤다며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뒤에 그녀도 처참한 시신이 되어 발견 되었다. 그리고 내 앞에 그녀의 딸, 서주희가 있다.
“니가 목격자...라고...?”
“네.”
뭔가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상황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빨리 고시원으로 가서 서주희를 집어넣어야겠지만 이번엔 예외다.
무슨 말인지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말해줄 수... 있나...?”
“네...”
우린 가로등의 불빛을 피해서 조금 더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CCTV도 없고, 주변에 올 사람도 없는 괜찮은 공간이었다.
나는 아무말도 않고, 침착하게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서주희도 그 생각에 긴장이 되는지,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열었다.
“그 날도 비오던 날이었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이었죠. 비구름이 워낙 심해서 어둑어둑 했어요... 그런데 이쪽 골목 코너를 도는데... 이상한 그림자가 있더군요.”
“.......”
“우산이 한쪽에 널부러져 있고 여자의 몸이 쓰러져 있었어요... 그리고 후드쓴 남자가 그 여자의 머리에 무언가를 하고 있었죠.”
서주희는 아찔한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한게, 아직도 그 충격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숨도 편하게 쉬지 못하고 그녀의 입을 기다렸다. 스스로를 안정시킨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벽돌로 그녀의 머리를 다지고 있었어요.”
그녀의 음성이 떨렸다. 나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아는 기분이란 그렇게 흥분될지 몰랐다.
“그 살인자가 가고... 시신을 보고 아무말도 못했어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아르바이트를 가야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편의점에 갔었죠...”
“근데, 왜 신고를 안했어?”
“신고요?”
나의 말에 그녀가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지 다소 편안하게 말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죠.”
“정신차리고 신고할 수 있었을텐데?”
“예, 그건 선기오빠가 저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아.....!”
“왜?”
잘 말하고 있던 서주희가 갑자기 짧은 탄식을 질렀다. 나는 의아해져 그녀에게 재촉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가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한테 신고를 하지 말라고 했어요.”
“뭐...?”
“신고를 하면 목격자가 가장 먼저 용의자가 되어서 귀찮아지고, 재수 없으면 죄를 다 뒤집어 쓴다고 했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신발 새끼.”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정말 치밀한 새끼다. 물론 틀린 말은 없었다.
사건이 터지고 목격자가 나타나면, 가장먼저 발견한 목격자를 신문 아닌 신문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잡힌 범인도 실제로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목격자는 계속해서 조사를 받아야 하니 사실 귀찮은 점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어떤 사건은 하도 불러대니 목격자에게 미안했던 적이 많았다.
욕을 뱉어놓고 서주희를 보니 그녀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선기를 욕해서 그녀가 화난 것 같았다. 난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했다.
“미안해, 형사가 워낙 거친 직업이다 보니...”
“됐어요. 주의하세요.”
“그래서, 또 없어?”
“하나 더...”
그녀의 표정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나는 더욱 집중했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을때 일이에요.”
나는 속으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죽은 엄마를 다시 생각하는건 그녀로선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의 사정을 들어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속으로 걸리는게 많더라도, 확실히 들어놔야 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왔어요. 그 날도 비가 오고 있었군요... 집에 들어서서 돌아왔다는 인사를 했는데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이상해서 안방에 들어가보니... 엄마가... 엄마가...”
참고 참았던 그녀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번 눈물이 쏟아지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크게 소리 내지도 못하고 소리를 스스로 삼키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애써 마음에 찬바람을 불어넣었다.
“힘들면 그 이야긴 그만하고, 또 나중에 전선기가 뭐라고 했어?”
“흑... 네...”
“괜찮으니까 천천히 말해.”
“자백을... 하라고 했어요... 흑... 제가 범인이 아니더라도 정황상 범인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고... 괜히 누명쓰고 징역사느니... 자백하면 형이 줄어든다고 했어요... 게다가 공황상태라면... 흑... 형벌이 더 줄어든다고 했어요... 형기의 일부는 병원에서 지낼 수도 있고... 그러다가 증거가 안나오면... 자백을 번복하라고... 그럼 풀려난다고... 오빠가 풀어줄 수 있다고...”
“허.......”
서주희가 울먹이느라 발음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중요한 말은 알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다 듣고 충격에 빠졌다. 말도 안나오는 치밀함이다.
만약 민창수놈이 서주희를 계속 몰아갈 생각만 아니었다면,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웃긴 건 전선기가 범인이든 범인이 아니든 결국 서주희가 풀려나지 못할 걸 알았다는 점이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지금까지 많은 범인들이 직, 간접적으로 경찰을 농락하려는 일은 많았다. 투서나, 인터넷의 글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고도 손쉽게 경찰을 쥐었다 폈다 하는 새끼는 처음이었다.
결코 20대 중반의 백수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찰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전문적인 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연륜. 어떻게 공부를 피터지게 해도 얻을 수 없는 연륜이 필요했다.
나는 서주희가 진정할 때까지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폈다.
2대 가량을 다 펴도 그녀는 진정할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말했다.
“담배 필래?”
“흑... 네...?”
“자. 받아.”
나는 담뱃갑에 있는 남은 3개의 담배 중 1개피를 그녀에게 건냈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잡았다. 나도 지금 피고있는 담배를 버리고 새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강의를 하는 어투로 말했다.
“자, 잘 봐 담배에 그냥 불을 붙인다고 붙는게 아니야. 빨아들이면서 불을 붙여야 돼.”
-칙.. 화륵
나는 능숙하게 라이터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벌써 3대째라 머리가 핑 돌았지만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어느새 울음을 멈췄다.
하지만 너무 울어서 그런지 딸꾹질을 했다. 나는 어설프게 담배를 입에 문 그녀에게 불을 붙였다.
“콜록, 콜록...”
담배에 불이 붙긴 했지만 서주희는 바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기침을 할때마다 입과 코에서 연기나오는 모습이 참 웃기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콜록... 이거 너무 매워요... 이걸 어떻게...?”
“처음만 그래. 한번 빨아들여봐. 이렇게.”
나는 과시하듯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고 내 뱉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걸 잘 보더니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연기를 후 뱉어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봐, 누가 머금고 뱉으래? 숨쉬는 것처럼 빨아들이라고. 아깝게 뭐하는 짓이야?”
“그치만 그러면 너무 괴로워요.”
“익숙해지면 괜찮다니까. 다시 해봐.”
“흐읍...”
서주희가 눈을 꽉 감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괜찮은가 싶더니 다시 기침을 뱉었다.
“켁, 켁... 아...”
그녀는 머리가 띵한지 이마에 살짝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 약올리듯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으... 나도 약간은 띵하다.
다음 차례는 괜찮았다. 그녀도 금방 적응되는게 신기한지 짤막짤막하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내가 다 피고 담배를 버리자 그녀도 따라 버렸다. 나는 다시 짜증이 올라왔다.
“얼마나 폈다고 버려?”
“나중에 할래요. 지금은 이정도가 좋은데요.”
“아깝잖아.”
“그럼 주워서 피시든가요”
“.......”
벌써 3대나 피워댄 나는 더 필 생각이 없었다.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머리도 살짝 띵했다.
나는 손을 저으며 귀찮다는 듯 길을 재촉했다. 상태가 훨씬 나아진 그녀가 나를 타박하듯 말했다.
“경찰이 꽁초를 길에 버리면 어떡해요? 벌금 무셔야 겠네.”
“시끄러. 나 이제 경찰 아니야.”
“경찰이어야 지키나요? 참 양심없는 전직 경찰이시네.”
“.......시비 트고 싶으면 선빵 날려라.”
고시원 카운터엔 운이 좋게도 전선기가 없었다.
나는 즉시 서주희를 나처럼 분장을 시키고 내 방에 가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눈여겨본 가스 배관을 타고 내방에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들어오냐면, 빌어먹을 CCTV에 내가 두 번들어가게 찍히면 의심을 살 수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동안 전선기가 내방에 들어온다면, 그대로 게임 아웃이다.
원래는 서주희를 따로 두려했지만, 날 돕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일단은 같이 생활하기로 했다.
물론 같이 생활하는데 서주희가 거부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떤 관계가 되었든 남녀관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자기 입으로 날 돕겠다고 해버린 터라 노골적으로 거부하진 않았지만 내가 먼저 확답을 주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성훈이의 전화번호를 서주희에게 알려주고, 서주희가 성훈이에게 전화를 하면 그 즉시 경찰청에 내 위치가 알려지게 된다.
“저는 괜찮지만... 절 그렇게나 믿으세요...?”
“왜? 니가 불안하잖아?”
“제가 그냥 전화하면요...? 전 아직도 선기오빠를 사랑해요. 형사님을 그냥 팔아넘길 수도...”
“넌 남 걱정할 여유가 있나보네?”
“갑자기 무슨...”
“난 지금 이런 하찮은 일로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어. 그리고 날 팔아넘기려면 전선기한테 넘겼겠지. 잔다. 너 잘 때 불 꺼라.”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이 바로 잠자리에 누웠다.
침대는 서주희에게 주고 나는 바닥에서 잠을 잤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뒤집어보는 버릇이 있던 나는 과연 지금까지 살면서 오늘처럼 많은일을 겪었던 날이 있었는가 싶었다.
아침엔 성훈이와 전선기가 사는 아파트를 염탐했다.
그리고 민창수를 만나 죽빵을 날리고 경찰청으로 돌아와 사표를 제출했다.
나오자마자 바로 오대수한테 연락을 해서 서주희를 탈취했고, 이 곳 고시원으로 와서 방을 구한 뒤에 집에서 짐을 챙기고 편의점에서 돈을 찾았다.
재수없게도 경찰이 일찍 출발하여 한참을 쫓기다가 성훈이를 만났고 차를 버린 뒤에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가스 배관을 넘어 겨우 방에 들어왔다....
제길, 이 많은 일을 하루만에 해치우다니 역사에 남을만한 하루같았다.
-틱.
불끄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눈꺼풀을 헤치고 들어오던 형광등 불빛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무슨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정말 피곤했는지 일어난 나의 몸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나는 기지개를 크게 켜고 멀뚱멀뚱앉아 잠시 잠기운을 느꼈다. 문득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좋기도 했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침대를 올려다보니, 서주희도 피곤한지 깨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대충 씻고 와서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 배경에는 성훈이와 살해된 김수철이 산에서 활짝 웃고있는 모습이 있었다. 왠지 마음이 찡해졌다.
나는 감성에 젖을 시간도 없이 바로 성훈이에게 연락을 했다.
-뚜........뚜......... 어, 이제 일어났냐?
“어 방금.”
-사표 내자마자 사람이 나태해졌구만, 지금이 몇 신줄 알아?“
“몇 시? 여긴 시계가 없네.”
-핸드폰은 폼이냐? 지금 벌써 1시야.
“뭐?!”
창문을 열어보니 햇빛이 쨍쨍 비치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싸맸다.
출근시간은 항상 8시 30분인데 대체 얼마나 쓰러졌던 건지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더 어이없는 건 서주희가 아직도 자고 있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말했다.
“순찰 중이냐?”
-어, 전선기놈 위주로 순찰중이지. 아까 고시원 들어가드라. 근데 이제 넌 어쩔거냐?
“어쩌긴, 너랑 같이 다녀야지.”
-뭐, 순찰을?
“어.”
-미친 거 아냐? 너 수배된 건 아냐? 그런 놈이 경찰차를 경찰이랑 같이 타고 돌아다닌다고?
“등잔 밑이 어둡다. 걸리진 않아.”
-그렇긴 하지만...
“걸릴 것 같으면 니가 체포해서 압송 중이었다고 하면 되고.”
-니가 정 그렇게까지 한다면야...
“언제 올건데.”
-근처니까 지금 튀어나와라.......뚝.
성훈이는 내 대답을 듣기 전에 끊었다. 이미 나갈 준비는 다 했으니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어떻게 나갈까 잠시 생각 하다가, 내가 고시원에서 안나간 것처럼 보이면 전선기가 내방에 함부로 못들어올 거라 생각을 하고 창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2층 높이라 뛰어내려도 별 탈이 없을 것이다.
나는 나가기 전에 핸드폰으로 서주희에게 간단한 메모를 남겨뒀다.
혹시 무슨일 생기면 성훈이에게 전화하라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나는 종일 성훈이와 붙어 다닐테니, 핸드폰이 필요하진 않았다.
메모를 남긴 나는 거침없이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쿵
“으악.......”
쉽게 봤는데 발바닥에서 무릅까지의 충격이 장난이 아니다.
고함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들키지 않느라 속으로 끙끙 앓았다.
-빵, 빵!
“뭐해? 죽으려면 옥상에서 뛰어내려야지.”
“미친놈.”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경찰차에 올랐다. 성훈이가 킥킥 웃어댔다.
나는 무안함을 모면하려고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경찰청 분위기는 어때?”
“어쩌겠냐? 내가 이렇게 착실하게 순찰다니는거 보면 모르겠냐?”
“재밌어졌나보네.”
운전하느라 앞만보던 성훈이가 어이없단 표정으로 나를 슥 보곤 급하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 간만에 호쾌하게 웃었다.
성훈이는 내가 왜 웃는지도 모르고 계속 앞을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
“다음 목표부터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아?”
“기다려봐, 나도 지금 생각하고 있어.”
나는 뻔한 수로 지금까지 죽었던 사람들의 연관성을 생각해봤다.
최성은, 정금란, 김수철. 그리고 실종된 우리 누나, 박지혜.
처음엔 비 오는 날에 여성만 죽이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김수철이 껴버렸다.
그리고 특정인물이 관련된 사람들도 아니다.
전선기랑 관련된 사람이라고 쳐도, 최성은과 우리누나는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
“묻지마 살인인가?”
도대체 답이 나오질 않자 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성훈이도 흥미가 가는지, 차를 한켠에 세워놓고 같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깐 생각하던 성훈이가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서주희랑 관련된 거 아냐?”
“최성은이랑 우리누나를 서주희가 어떻게 알아?”
“그것도 그렇네...”
“일치하는 건 비오는 것 밖에 없어. 근데 비올때마다 하는 것도 아니야.”
“아이고 머리야.”
평소에 생각하는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성훈이가 이마를 치며 뒤로 넘어갔다.
나는 성훈이가 그러던지 말던지 계속 생각했다.
하기야, 순경만 하던 성훈이가 이런 일에 능숙할 수가 없었다.
나는 펜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그려봤지만 나 역시 곧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는 걸 관두자, 성훈이가 궁시렁거렸다.
“소설은 기가 막히게 상관관계가 있던데... 현실은 다르네...”
“그러게 말이다.......응?”
“왜?”
“우리도... 소설을 써볼까...?”
“뭔소리야 갑자기.”
“들어봐.”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전선기가 범인이라고 하고, 첫 번째 살인은 우발적이었어.”
“그랬겠지. 돌로 냅다 찍은걸 보면.”
“우리 누나가 그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대로 납치를 한거지.”
“음...”
“근데 정금란씨가 목격자로 나타나서 죽였고.”
“그럼 수철이 아저씨는?”
“서주희를 빼내기 위해서.”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뚝딱 지어내자,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성훈이도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무안해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너무 나에게 무안을 주는건 아닌가 싶어 한마디 하려는데 성훈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거야!!!”
“으악! 깜짝이야.”
“맞아! 그거!”
성훈이가 흥분하며 나의 어깨를 흔들어댔다.
나는 무슨 좋은 생각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성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른척 무안을 줄 수는 없어서 슬며서 물었다.
“뭔데?”
“봐, 정금란 씨가 목격자로 나온 다음에 죽었어.”
“그래.”
“보통 해결되지 않은 사건에 목격자가 나타나면 목격자를 보호해야 하잖아.”
“그러긴 한데, 그건 정금란 씨가 현상금 노리고 거짓 증언 한거야. 보호를 한 적은 없는데?”
내가 약간은 비꼬는 말투로 말하자, 성훈이는 혀를 차며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나는 순간 열이 욱 하고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담고 성훈이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여기서 괜히 싸워봤자 서로서로 피해다.
“목격자의 신분을 보호하려고 경찰들은 목격자한테 신신당부하잖아.”
“뭘?”
“자신이 목격자라고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근데?”
“여기까지 말해줘도 모르겠냐, 답답아.”
“아니, 이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