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심한 구박과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자란 30대 여성입니다.
친엄마이면서도 저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대했던 이유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싶은데 제가 덜컥 들어서서 이혼을 방해한 점,
아버지와 판박이로 닮았다는 점,
첫째나 막내와 비교했을 때 항상 아버지가 저만 이뻐했다는 점...
이런 이유들이네요.
애초에 결혼부터 엄마가 원하지 않던 일이고, 거의 납치되다시피 했던 결혼,,,
결혼해 놓고는 잦은 바람과 주사, 가정폭력, 의처증 등..
엄마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증오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는 점 인정합니다.
지금에서야 인간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어릴 때의 상처들이 아직도 생생해서 잊지를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살림을 도와야 했던 것은 문제도 안 됩니다.
엄마도 일하느라 바쁘고, 언니도 가끔 돕긴 했지만 거의 제 몫이었고,
선머슴아같던 언니인지라 자라서도 대부분 제가 도맡아 했네요.
엄마가 장사를 할 때는 저의 주말과 방학은 모두 그 장사를 돕는 데 당연히 써야 했구요.
심지어 제가 취직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낮에는 일을 돕고 저녁에 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가장 처절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4~5살쯤인 것 같은데
모기에 물려서 너무 가려워서 긁다가 피부에 상처가 났는데, 따갑다고 울었어요.
저를 흘겨보던 엄마는 제 팔을 질질 끌고 가서 지하실에 가뒀습니다.
그 때부터는 어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울부짖었고, 몇 분 후에 물이 열리고는
찬물을 저에게 끼얹고 가는 엄마...
그 이후부터는 소리내어 울 수도 없었습니다.
쇼핑에서도 제 품목은 제외되었습니다.
영양제도 저만 빼고, 새 이불도 저만 빼고, 새 옷도 저만 빼고...
겁 먹은 제가 별다른 말을 안하니 아버지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주말에 만화영화 보고 싶다고 했다가 엄마에게 발로 짓밟힌 적도 있습니다.
언니와 동생이 보는 앞이었지만 말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긴머리의 언니는 엄마가 아침마다 머리 빗겨주고 했지만, 저는 항상 단발로 잘리었고
머리를 감는 거나 머리 빗는 거나 신경써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제 외모가
아주 추악하다고만 생각했었어요.
당연히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없었고, 몇몇의 친구들과만 지냈구요.
어릴 때 저는 항상 제가 못나서, 저 자체가 더러운 존재라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구석진 곳을 좋아했고, 항상 망상에 빠져 있었으며, 공부에는 집착이 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도 제 생각은 하루라도 빨리 집을 탈출하는 것이 꿈이었고,
그 이후의 생활을 동화처럼 망상하는 것이 제 일과였으니까요.
이유는 모르고 공부 잘한다고 아버지가 더 좋아해 주시기도 했죠.
하지만 아버지가 저를 예뻐할수록 엄마의 구박은 더해갔어요.
제가 그나마 사람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 성적이 두각을 드러낼 때였습니다.
상위권 대학으로 왜 진학할 생각을 안하느냐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에 자극을 받았던 듯합니다.
그 때는 뭔가 쓸모있어 보이니까 저러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저만을 위한 옷을 받아봤습니다. 거의 대부분 물려 입었는데 말이죠.
다 제각각 살 길을 찾아 독립했을 때, 아버지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고,
저도 큰 병이 생겨 집으로 들어가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엄마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분을 집에 들였습니다. 제가 있는데 말이죠.
평생 그랬다시피 언니나 동생에게는 비밀을 지켜야 했고, 집이 불편한 제가 겉도는 것을 그들에게는
제가 생활비도 많이 안 주고 맨날 엄마 혼자 둔다고 하소연해서
다 같이 모여서 저에게 비난을 퍼부은 적도 있습니다.
언니와 남동생은 결혼을 했지만, 그 결혼도 다 살다가 자기가 알아서 결혼한 거고
엄마는 거기에 보태준 것은 없구요.
항상 저 들으라고 하는 푸념이 너는 좀 그럴싸한데 시집가서 엄마 호강시켜 달라는 거였습니다.
저는 마음 편하게 해 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고 푼수처럼 그러마고 대답했죠.
그런 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저 자신을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랑받은 딸인것마냥 속이지 않아도 되는
저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 주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도 불행했던 과거가 있어 서로에게 더욱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아둔 돈도 별로 없어서 정말 적은 돈으로 결혼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에게 도와주는 것도 없이 이런저런 격식을 들이밀며 요구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상견례다, 한복맞춤이다 뭐다.. 그렇게 예뻐하던 자식들에게는 불쌍하다고 요구 한 번 안했으면서
저에게는 요구를 합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다, 격식이 그게 아니다 하고..
그런데 정작 부모로서 할 일에 대해서는 배째라 식이고,
예비시댁에서 저의 사정을 대충 알고 한껏 편하게 해 주시는데 오히려 엄마가 기세등등합니다.
둘 다 직장도 번듯하니, 중소기업쯤 되네~ 그러면 호강시켜 준다고 했었지? 이렇게 확인을 합니다.
어릴 적 엄마를 원망하는 소리를 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이해하라고만 합니다.
그 땐 어쩔 수 없었는데 어쩌란 말이냐고도 합니다.
남자친구를 불러다가 술을 먹이고는 하소연이랍시고,
지 아빠가 쟤를 너무 예뻐해서 질투했다는 소리도 합니다. 이게 엄마가 할 소리일까요.
대학교때 처음으로 술이라는 걸 먹어보고 취해서 엄마 앞에서 '나도 사랑받고 싶어요'라 하며
통곡했는데 이 소리를 동네 아줌마들 모인 자리에서 저도 있는 자리에서
비웃으며 놀리며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마음 속에 돌덩이를 하나 짊어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엄마를 머리로는 가엽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친정이라고 하면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를 못하네요.
익명을 빌어 처음으로 저의 불행한 어린 시절 넋두리를 해 봤습니다.
길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