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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로 보는 왕자&공주의 사랑이야기 -나폴레옹 2세와 조피 대공비-

콜로라도 |2013.07.23 15:28
조회 39,738 |추천 102

프랑스의 황제로 있다가 어느 외딴 섬에서 숨을 거둔 나폴레옹 1세 그에게는 아들이 몹시 필요했는데 결국 조세핀과 이혼까지 해 가면서 오스트리아의 공주와 재혼했다. 결국 그녀에게서 하나의 아들을 보게 되는데 그가 바로 나폴레옹 2세다

 

하지만 나폴레옹 2세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끝내 몰락해버렸고 그 자신은 어린시절 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오스트리의 황궁에 돌아왔지만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고 또 다른사랑을 찿아 떠났다. ( 그녀는 이탈리아 파르마 대공녀였으며 그곳에 자주 머물렀다) 다만 그의 외할아버지인 오스트리아 황제만이 그를 아끼며 관심을 가져주었다

  어린시절 나폴레옹 2세는 철저한 독일식 주입교육을 받았다.(당시 오스트리아 재상이었던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 2세에 대해 "아버지의 폭력적인 면모를 씻어내고 오스트리아의 왕자로서 재탄생 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표" 라고 하였다.) 나폴레옹 2세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고 물어봐서는 안되었다. 프랑스어나 글을 쓰기라도 하면 메테르니히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2세는 아버지의 활동을 알고 있었고 나름 동경하고 있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것은 오스트리아의 궁정생활이었다. 오스트리아나 독일귀족들은 나폴레옹 2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궁정에서 그는 한 운명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궁정의 무도회에서 아무도 그에게 춤을 추자고 하지 않았을 때 한 여인이 그에게 같이 춤을 추자고 권유하였다. 나폴레옹은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었고 궁정은 웅성웅성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바이에른의 공주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비인 조피였다.

 바이에른의 공주이자 오스트리의 대공비였던 조피(그녀는 훗날 무서운 시월드를 만들어낸다)

 

  조피는 바이에른의 군주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둘째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권모술수에 능해서 본래 일개 왕자에 불과했지만 나폴레옹에게 접근해 비텔스바흐 가문(바이에른 왕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는 자신의 큰딸을 나폴레옹의 양자인 외젠(조세핀의 아들)에게 시집보내 그 힘으로 바이에른을 세웠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몰락을 감지해내고 자신의 둘째딸을 오스트리아로 시집보내기로 밀약을 맺은 뒤 나폴레옹을 배반했다.(하지만 큰딸이 남편사수를 외치는 바람에 외젠은 도리어 공작이 되었다.)

 조피는 자기주장이 당당한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왜 이런결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사실 그녀의 남편이 될 프란츠 카를대공은 첫째가 아닌 둘째 왕자였고 그 자신도 그다지 유능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혼이 성립된 이유는 바로 후계자를 얻기 위해서였다. 사실 기존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는 (고....)라는 의학적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그가 후계자나 다름 없었다. 야심만만한 조피로서 그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녀는 여러차례 유산한 끝에 아들 프란츠 요제프를 낳았고 권력의 정점에 다다랐다. 시아버지의 신임이 두터워 그녀가 하는 말이면 대부분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한낱 프랑스의 찌꺼기라 평가되어온 나폴레옹을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나폴레옹에게 누나(6세 연상녀) 연인으로 불안정했던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조피는 거의 매일 나폴레옹과 어울리며 문화교류를 하거나 무도회에서 어울렸다. 그리고 나폴레옹을 여러번 오스트리아 귀족에게서 지켜주기도 하였다. 궁정에서는 둘이 서로 불륜의 관계일지도 모른다고 쑥덕했다. 그녀는 나폴레옹과의 만남에서 궁정의 답답함을 많이 완화시킨듯 하다.

 녀는 항상 당당했지만 젊은나이에 권력자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많은 견제와 질투를 받았다. 원치 않은 결혼을 했던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했던 나폴레옹에게서 동병상련과 같은 입장을 가졌을 것이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나폴레옹 1세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사실 그녀의 언니가 나폴레옹의 양자와 결혼했고 두 자매사이가 가까웠음을 감안하면 그럴듯한 주장일 것이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두 사람의 사이는 무척이나 가까웠다.

  183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랑스는 나폴레옹 1세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의 물결이 나타났다.( 그 때가 좋았지?) 7월 혁명 이후 나폴레옹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해지면서.. 점차 주변국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나폴레옹 2세도 젊은 청년장교로 명성을 쌓고 있었던 시기였다.

조피와 나폴레옹은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오스트리아 로서는 자칫 괜한 소문이라도 날까봐 전전긍긍했다. "대공비가 임신을 했습니다." 프란츠 요제프에 이어 두번째 자녀를 임신했다는 경사가 일어났다. 나폴레옹 2세는 진심으로 그녀를 축하해 주었고... 그녀도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 아이가 나폴레옹 2세의 아이일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만날 때 마다 쑥덕쑥덕 하였다.

 1832년 나폴레옹 2세는 갑자기 2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공식발표된 병명은 결핵이었으나 사람들은 소문을 감추기 위해 독살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졌다. 나폴레옹 2세가 앓고있을 때 그녀는 임신한 상태였지만 자주 찿아와 그를 간호하였다. 고통속에 신음하던 나폴레옹 2세를 바라보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보는 눈과 감시의 눈이 많아 크게 흐느낄 수는 없었다.

  나폴레옹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항상 굳은표정으로 궁정의 시월드를 주도한 그녀는 궁정을 차가운 얼음성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도 한 사람에게만은 다정했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는 바로 자신의 둘째 아들인 막시밀리안 대공이었다.

 (조피 대공비의 유일한 사랑을 받았던 막시밀리안을 두고 세간에서는 나폴레옹 2세의 아이라

수근되었다. 그는 훗날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이용당해 맥시코 황제가

되었으나 공화파에 의해 끝내 1867년 총살되었다.)

 

 

추천수102
반대수15
베플|2013.07.24 14:37
초상화를 본 순간 막시밀리안이 절대 프란츠 카를대공 아들이라는 걸 알수 있구만 무슨....나폴레옹 아들일리 없음 아빠랑 판박이임 ㅋㅋㅋㅋ
베플올리브|2013.07.24 01:47
초상화 보면 막시밀리언 과 아버지 카를 대공은 코부터 눈 얼굴형까지 전부다 똑 같이 닮았네요 꼭 붕어빵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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