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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로 보는 왕자&공주의 사랑이야기 -막시밀리앙 1세& 마리 부르고뉴

콜로라도 |2013.07.23 16:23
조회 28,215 |추천 101

옛날 동화나 게임을 보면 항상 아름다운 공주가 악마에게 잡혀가자 정의의 기사가 그녀를 구출하러 돌격하는 이야기를 자주 보게된다. 이번 이야기 어쩌면 이 모든 동화의 원형이 된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15세기 당시 유럽에서는 가장 미녀공주이자 일등 신붓감으로 한 여성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 부르고뉴공이던 용담공(사자의 담력도 아니고 용의 담력이란다) 샤를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그녀가 다섯살이 되던 해 독일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한 남아가 백성들의 축복속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막시밀리안이라 지었다.

  마리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나 20살이 되었다. 아버지인 샤를은 자주 전쟁으로 밖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결혼이 조금 늦어진 듯 한것으로 보이지만 샤를 로서는 하나뿐이 딸이었기에 여러가지를 감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그녀가 그렇게 사랑하던 아버지 샤를은 스위스를 공격했다가 무서운 산남자들에게 대패한 후 호수에서 갑옷이 무거워 익사해버렸다. 그는 설마 자신이 죽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 그만 저승행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문제는 마리가 가진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유럽 제일의 미녀공주이기도 하였지만 더 중요한 것 그의 아버지가 남긴 땅인 부르고뉴와 그 보조영지인 네덜란드 벨기에가 농사도 잘되고 상업이 발달한 그야말로 알짜배기 땅이었다는 것이다.

 (주황색 땅이 바로 부르고뉴의 영지이다)

 

수많은 왕국에서 슈퍼공주 U를 할 기세였다. 수 많은 혼담을 받았지만 가신들이 보기에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바로 프랑스였다.  당시 프랑스는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중앙집권을 강화하면서 프랑스의 영지를 자기 이름으로 명의변경하고 있었다.(영국은 이 때 칼레빼고 다 털린 섬나라로....) 이 때 프랑스의 왕은 루이 11세였는데 그는 권모술수가 뛰어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당시 유럽 최고의 못난이 왕이자 교황으로 부터 "세계적인 거미"라고 불린 루이 11세

 별명은 반항아 루이 (아버지와 모략베틀을 벌여서 왕이 되었다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프랑스의 왕자 가운데 나이대가 맞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신랑 후보감으로 거론되던 도팽왕자의 나이는 겨우 7살 신부감인 마리는 20살이었다. 하지만 루이는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서는 이 모든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며 결혼을 강행시켰다. 부르고뉴의 가신들을 매수하여 마리로 부터 영지관리권을 빼았고 사실상 그녀를 연금상태로 만든것도 모자라 주위여론을 매수해 결혼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그녀는 이대로 프랑스의 왕자비가 되어 꼬마신랑과 함께 살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탑에 연금된 그녀는 고심한 끝에 프랑스의 최대적인 오스트리아를 선택하였다. 그 때 마침 나이대가 엇비슷한 왕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머리를 길러 그 속에 편지를 숨겨둔 후 심복시녀에게 그 머리카락을 자르게 해 오스트리아로 보냈다.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 못합니다 도와주세요" 당시 15세였던 막시밀리안은 즉각 군대를 조직하고 부르고뉴로 달려갔다. 그리고 반대파를 제압하고 그녀를 구출 한 후 결혼을 했다.

  정작 두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가 본 순간 첫눈에 반했으며 막시밀리안은 그녀를 안고 나왔다고 한다. 두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1남 2녀를 낳았다. (아들인 미남공 필립은 스페인의 공주 후아나에게 딸들은 헝가리와 이탈리아 북부의 한 공국에 시집보낸다. 그리고 그 영지들을 다 꿀꺽한다.)

  이것은 합스부르크왕가의 운명을 바꿔놓은 결혼이 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 있는 작은국가였던 그 가문은 이 영지를 발판으로 급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기던 두 사람의 행복은 마리가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 사냥터에 같이 갔다가 말에서 떨어진 후 말발굽에 밟혀 죽음으로써 깨어지고 만다. 이 어처구니 없는 죽음에 막시밀리안은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비록 수년 후 그는 재혼을 했지만 그는 그녀를 영원히 잊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후일 독일의 동화작가인 그림형제는 열심히 민담을 수집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다고 전한다.

 

추천수101
반대수12
베플응애|2013.07.23 21:35
마리와 막시밀리안 이야기 = 라푼젤
베플161녀|2013.07.23 20:29
정말 재미있네요ㅠㅠ 서양 왕국사에 관심 많은데 덕분에 많은 것을 알고 갑니다. 후아나를 힘들게 했던 필립 공이 저 둘의 아들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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