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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로 보는 왕자&공주의 사랑이야기 -이반 4세&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

콜로라도 |2013.07.25 09:13
조회 16,983 |추천 52

유럽 가장 동쪽끝의 거대한 국가인 러시아.. 이 러시아는 이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황제에 의해 그 기틀이 잡혀나간다. 먼저 이반 3세는 길고 길었던 몽골의 러시아 지배를 무너뜨렸고 비잔틴 제국의 공주와 결혼해 모스크바를 제 3의 로마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영토는 아직 오늘날에 비하면 작은편이었다. 이번 이야기는 오늘날의 러시아를 이룰 수 있게 만든 첫번째 황제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불꽃같이 사랑했으나 그 이유로 자신의 왕국까지 망쳐버린 한 차르의 이야기이다.

 

 이반 4세(뇌제) 모스크바 대공국의 군주였으며 한 여자의 좋은 남편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죽은 후 그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불꽃처럼 사그러진다.

 

이반 4세는 앞서 이야기한 이반 3세의 손자이다. 어렷을 적 그는 지극히 외로운 소년이었으며 항상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아버지인 바실리 3세는 기존의 황후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그녀를 쫓아내고 새롭게 엘레나 라는 여성을 후처로 맞은 후 이반 4세를 낳았다. 하지만 이전 황후였던 솔로모니아는 세력이 큰 집안의 여성이었기 때문에 보야르(러시아의 소영주이자 귀족들)들은 이에 반발했다. 그 와중에 이반의 나이 3살에 아버지가 죽자 어린나이에 군주의 자리에 앉았지만 언제 쫓겨날 지 모르는 신세였다. 그나마 그의 곁을 지켜주었던 어머니는 그의 나이 8살에 보야르들에 의해 독살되었다.

이반 4세는 어린시절 보야르들의 무시와 간섭 기만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올바른 심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총명했던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체 10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그가 17세가 되던 그해 그는 자신의 신붓감을 고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웃나라의 공주와 결혼해 외국의 힘을 빌리려고 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보야르 들의 딸 중에서 한 여자를 고르기로 했다. 그는 이 결혼을 위해 성대한 무도회를 개최하였고 그 속에서 신부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이 여자다..." 이반의 눈에는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훤칠한 키에 하얀피부를 가졌다는 그녀는 이반 4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반 4세는 더 볼 것도 없이 그녀를 황후로 삼았다.

  그녀의 이름은 아나스탸사 로마노브나 당시 같은 보야르지만 현명하고 훌륭한 집안이라 평가된 로마노프 가문의 공주였다. 이반에게 이보다 더 좋은 혼처는 없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반은 이 아나스타샤 라는 이름보다 자하리나 혹은 유레바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더 좋아했다.

  유레바 황후는 이반에게 있어서 아주 훌륭한 아내였다. 이반은 어린시절을 불우하게 보내 조울증이 있었고 평소에는 꾹 참고 있다가 터지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다. 하지만 유레바는 그런 기미가 보이기 전에 다정한 미소로 이반을 다독여줬다. 항상 온화한 모습으로 침착하게 문제점을 설명해 주는 황후를 보면 이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한 한마리의 양이 되어 있었다. 그러고 나면 이반의 현명한 두뇌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나갔다. 1553년 이반이 크게 앓아누어 사경을 해매고 있었을 때도 유레바 황후는 지극정성으로 그를 간호했다.아무도 믿지 않았던 이반은 유레바 황후만큼은 자신의 곁에 가까이 두려했다.

이반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레바 황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드미트리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신하들에게 충성맹세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신하들이 아직 어리다는 구실로 드미트리에 대한 충성맹세를 거부했고 이반의 이복형을 제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드미트리가 죽음과 동시에 이반이 기적적으로 회복하자 차르의 의심병은 도지기 시작했다.

 

 "아니 됩니다. 신하들을 용서하세요..."

 

유레바 황후는 대규모 숙청을 하려는 이반을 눈물로 말렸다. 많은사람을 죽인다면 황제의 선량한 명성은 떨어질 것이라는 그녀의 설득에 이반도 마음을 고처먹었다. 그리고 음모의 주동자인 이복형을 모스크바에 연금하는 것으로 사태를 매듭지었다.

1550년대 이반 4세는 누구보다 뛰어난 황제였다. 당시 모스크바를 방문한 영국상인은 그를 이렇게 기록했다.

 

 "황제는 선조들보다 훨씬 더 용감하며 귀족과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허물없이 대한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그는 귀족과 백성 모두의 지지를 받고있다(중략)"

 

이반 4세는 유레바 황후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는 여섯명의 아이가 있었다 비록 네명이 일찍죽었지만 두 아들이 장성해 그의 후계구도도 완벽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반은 온힘을 나라발전에 투입시킬 수 있게 되어 카잔한국과 아스트라한 한국을 멸망시키고 시베리아 개척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서쪽과 남쪽으로 서서히 세력을 확대해 갔다.

  그러나 서방진출이 스웨덴, 폴란드에 의해 가로막히고 남부전선도 오스만투르크와&크림칸국의 연합에 의해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승승장구하던 이반도 이로인해 스트레스를 받게된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 1560년 유레바 황후가 갑자기 쓰러져버렸다. 이반은 모든 정무를 팽개치고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7년전 아내가 자신을 살렸듯이 그도 아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간호와 신께 대한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유레바는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이로써 이반 4세의 현명한 전반기도 끝장이 나고 말았다.

  자신을 말려주던 아내의 존재가 사라지자 이반의 속에 잠재되어있던 울분과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신하들에게 "너희들이 죽인 내 아내를 살려내라 라고 외쳤다". 그것도 모자라 보야르 들이 차기 황후로 바친 아름다운 처녀들과 잠자리를 가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이유, 다른남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이유 등 갖은구실을 다 붙여 죽였다.(유레바 황후가 죽은 후 이반은 7명의 황후를 맞이했으나 두번째 황후와 네번째 황후를 제외하고는 다 제명에 죽지 못했다. 그나마 두 황후도 이반이 죽이려들기 전에 병으로 죽었다.) 더 황당한건 그렇게 자신이 죽여놓고는 황후들의 죽음을 신하들의 잘못으로 덮어씌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반 4세의 광기는 더욱더 심해져갔고 조그만 사건이든 큰 사건이든 모두 사형으로 다스렸고 평소 고깝게 보고있던 노브고르트(모스크바 보다 더 오랜역사를 가진 곳이었다.)인들을 대규모로 학살했다. 그것도 모자라 말년에는 비밀경찰제도를 만들어 신하와 백성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해 조금만 혐의라도 나오면 모두 다 죽였다.

  이후 이반 4세는 항상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었으나 형벌을 내렸을 때는 친히 참석해 엄중한 말투로 죄를 물으니 신하들은 황제의 마음속을 몰라 항상 긴장상태였다. 때문에 이반 4세는 뇌제 혹은 그로즈니(공포)황제라고 불렸다.

  이렇게 폭군이 된 이반은 자기의 자녀들에게도 이성을 잃었다. 그는 임신중인 황태자비의 복장이 음란해 보인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다가 피하려는 그녀를 자신을 무시한다고 간주하여 왕의 지팡이로 배를 때렸다. 결국 황태자비는 유산을 하고만다. 이에 황태자는 분노하여 아버지에게 따지러 갔으나 이반은 아버지에게 반항한다는 이유로 사정없이 내리쳐 아들을 죽여버린다.

 아들을 죽인 후 통곡하는 이반 4세(제정 러시아 말기 화가인 알리야 레친이 그린 이 그림은 당시 화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반 4세를 제정 러시아의 폭군차르들로 머리에 피를 흘리던 황태자를 민중들로 비유한 것으로 암울한 현 시대에 대한 혁명을 바랬던 것이다. 화가의 이 메시지는 당시 지식인층 들에게는 그대로 전달될 수 있었으나 농민들을 비롯한 백성들에게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져 도리어 이반 4세의 이미지가 좋아졌다. 후대 스탈린은 이반 4세를 너무 좋아해 서방세계의 침략을 막아내고 올바른 전진을 방해한 아들을 가차없이 죽일 수 있는 현명한 군주로 그렸다.)

 

술이 깬 후 아들을 찿던 이반 4세는 아들의 시체를 보고 통곡을 하고 만다. 황태자는 그에게 있어 유레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가장 믿음직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순간의 광기를 이기지 못한 이반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를 스스로 지웠다.

 

  이후 이반 4세는 항상 멍한표정으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실의속에 죽어갔다. 황위는 유레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인 표도르가 계승했다. 하지만 표도르는 정신이상자 라는 평가를 들은 임금이었고 아버지의 정책을 대부분 포기하고 자신만의 망상정책을 실시해 모스크바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표도르가 죽자 모스크바 대공국 아니 차르의 가문인 류리크가문은 단절된다. 이후 30년간 외세의 침탈과 보야르들의 왕위다툼으로 모스크바의 이반의 영토는 페허가 된다. 이후 유레바 황후의 외조카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나라를 수습하고 황위에 올랐다. 그리고 300년의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가 시작되었다.

추천수52
반대수12
베플ㅎㅎ|2013.07.25 11:43
주제넘게 한마디더 붙이자면 글에 나오는 이반황제는 Ivan the Terrible 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황후가 만약에 이반황제보다 더 왜 살았더라면 러시아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는 이반 황제였을수도있었겠네요. 그리고 글 막바지에 나온 로마노프가 그 유명한 마지막 공주 아나스타샤가 속한 가문이죠. 니콜라이 로마노프에 대해서도 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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