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다른 공주와 결혼 안할겁니다.. 절 이해해 주세요..."
"아니 죽은사람은 죽은사람이고 후계자를 얻는것이 너의 의무다 결혼해..."
1764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궁정에서는 오늘도 어머니와 아들의 결혼문제에 대한 입씨름이 벌어졌다. 남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태자 이자 오스트리아 왕세자인 요제프 2세였고 어머니는 전작에서 소개한 마리아 테레지아였다. 마리아는 자신의 장남인 요제프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속이 탈 지경이었다. 이미 병석에 누워있는 프란츠를 신경써도 모자랄 판에 아들이 속을 썩이고 있는 것이었다. 23살의 황태자는 왜 어머니의 말을 거역했을까.....
- 마리아 테레지아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요제프 2세는 아버지인 프란츠를 닮아 과학과 학문에 관심이 많았고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계몽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의학에도 밝았는데 막내누이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러 간 그는 당시 자식이 없었던 여동생의 말을 듣고 프랑스 왕인 루이 16세의 음경이 피부속에 파묻힌 것을 파악한 후 포경수술을 권유해 그 뒤에 마리는 세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여행 당시 프랑스 농민들의 비참함을 본 그는 누이에게 백성들을 돌아볼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도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에는 큰 활약을 못하지만 1780년부터 10년동안 농노해방령을 비롯한 농민보호책, 악덕지주에 대한 처벌, 수도원의 해산 및 재정비 등 급진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하지만 전 영토의 독일어 공용화를 실시해 가뜩이나 다민족 사회였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혼란에 빠진다.-
5년전 오스트리아의 황궁에 마리아가 그토록 바라던 큰며느리가 들어온다 그녀의 이름은 이사벨라 파르마였으며 정숙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요제프는 그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요제프는 국정이 마무리되면 그녀의 침실을 자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밤새는 줄도 모르고 왕비와 많은 지식을 공유하였다. 요제프는 그녀의 미모도 미모였지만 빼어난 지적능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요제프는 자신의 지식수준이 방대하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그와 말이 통하는 아내를 만난것은 그에게 있어 큰 기쁨이었다. 이사벨라는 당시 여자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음악과 철학, 법률, 수학에 능통했다고 한다. 요제프는 때로 형벌에 관해서도 아내에게 자문을 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완벽한 두 부부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사벨라가 아기 낳기를 극도로 두려워 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는 12살에 시집와 14살에 그녀를 낳은 후 몸이 자주 아팠다고 한다. 어린시절 고통받는 어머니를 보는 그녀는 죄책감과 함께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황실의 큰며느리가 된 이상 출산 그것도 아들을 낳아야 하는 것은 그녀의 의무였다. 결국 1762년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를 낳았지만 다음해 아이를 낳다가 천연두에 걸린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요제프는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하였다.
-요제프는 하나뿐인 딸을 지극히 사랑했고 보석처럼 아꼈다. 하지만 그 어린소녀도 결국 훗날 8살의 나이에 어머니와 같은 천연두로 숨을 거뒀다. 요제프는 절규하며 "오늘 이후로 난 누구의 아버지도 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요제프는 크게 실망하고 재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짧은시간이었지만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자신의 충성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왕실의 입장에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장남이자 황제인 그가 후계자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마리아 테레지아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인 요제프가 왜 진정 그런마음을 먹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내를 잃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가던 요제프에게 누이동생인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찿아온다.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오빠의 이러한 그리움은 장차 국가에 큰 위협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평생 묻어두려 했던 비밀을 꺼내게 된다.
"오라버니...."
마리아는 요제프에게 한장의 편지를 보여준다. 새언니가 시집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자기에게 준 것이라며.... 요제프는 그 편지를 보고 이를 악물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마리아 공주님께... 나는 시집온 순간 오직 당신만이 보였습니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나의 마음은 온통 당신에게....."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 이사벨라가 여동생인 마리아에게 보낸 연애고백 편지였다. 남성 불감증에 걸린 이사벨라는 시누이에게 연정을 느꼈던 것이다.
마리아는 이만하면 오빠가 이사벨라를 잊고 새장가를 들어 국정에 전념할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마리아의 이 계획은 성공한다. 요제프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장가를 들었고 의욕적으로 국정에 전념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가지 간과한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빠 요제프가 여성을 철저하게 불신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후로 요제프는 자신의 새부인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상대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젊은여자에게는 불결하다며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그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었던 여자는 오직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일 뿐이었다.
한 공주의 호의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마리아 공주의 이 선택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요제프의 두번째 황후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요제파 그녀는 살아생전 남편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체 쓸쓸히 죽었다. 더 슬프게도 요제프는 그녀의 죽음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그녀의 죽음소식을 들은 요제프의 단 한마디는 "바이에른은...." 이었다고 한다.
뒷이야기: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귀족들은 계몽주의에 대해 철저하게 불신의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런 상황에서 요제프의 개혁은 모두 올스톱 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모든것이 무너진 요제프는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1790년에 후계자 없이 사망했다.
그 뒤는 동생인 레오폴드 2세가 이었는데 그는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족이 탈출에 실패한 바렌느 사건 이후 철저하게 이들을 외면하고 심지어 "마리아가 숭고한 희생양이 되어 파리를 나에게 안겨준다면...." 이라고도 할 정도로 냉혹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리가 처형당했을 때 그는 복수를 구실로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만약 요제프 2세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이자 요제프의 동생인 레오폴드 2세 냉혹하고 계산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었지만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겐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손자들을 보유한 훌륭한 아들이었다. 그는 누이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