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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로 보는 왕자&공주의 사랑 -핸리 8세와 두 여인들...하편-

콜로라도 |2013.07.26 17:29
조회 12,501 |추천 37

이 무도회 저 무도회를 들락거리던 핸리 8세는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귀족의 무도회에 간 그는 아름다운 두 여성을 발견한다. 왕은 옆에 있던 신하에게 저 둘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신하는 그 둘이 매리와 앤이라는 두 자매이고 상인 출신으로 최근 귀족이 된 블린가문의 딸이라고 하였다. 블린가문은 비록 돈으로 작위를 산 하급귀족이었지만 두 자매의 어머니는 당대 권력자이자 최고 명문인 하워드 공작의 딸이자 서리 백작의 동생인 엘리자베스였다. 즉 모계 집안으로는 상당한 귀족가문이었다.

 

 매리 블린 : 앤의 언니이자 윌리엄 케리의 아내였다. 그녀는 결혼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무도회에 거의 매번 참석한 죽순이였다. 처음 핸리 8세의 눈에 띈것도 그녀였는데 그녀는 후일 핸리의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귀족과 심지어 프랑수아 2세와도 잠자리를 하였기 때문에 왕비가 되지 못했다. 핸리의 아들은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윌리엄 캐리가 키워야 했다.(안습...)

 

핸리는 매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육감적인 몸매를 가졌다는 그녀는 남편 몰래 핸리와 만남을 자주가졌다. 블린 가문으로서도 왕의 눈에 들어 고급귀족이 되기를 염원했기에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그녀는 정열적인 여인이었고 이것이 핸리를 때때로 힘들게 했다. 매번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그녀를 핸리 8세는 점차 부담스러워 했다. 특히 한창 몸이 불어나고 있던 핸리는 건강에도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핸리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매리에게  가정과 남편에게 충실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블린가문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비밀병기가 하나  더 있었다. 검은머리에 검은눈을 가졌다는 신비한 그녀 요염하면서도 청순했다는 몸가짐을 가진 여인 그녀는 바로 둘째 딸 앤이었다.

  블린가문은 앤의 화려한 데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앤을 화려하면서도 매혹적이게 치장했고 깜짝데뷔를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한 무도회장에 핸리가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들은 앤을 화려하게 데뷔시킨다.

  핸리는 앤을 본 순간 마치 순결한 천사가 다가온듯 했다. 요염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그녀를 본 핸리는 그녀를 얻기위해 다가왔다 하지만 앤은 계속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며 핸리의 애간장을 녹였다.

 앤 블린 : 검은머리 라는 보기드문 매리트를 기진 그녀는 언니와 다르게 청순과 요염을 무기로 핸리를 공략했다. 그녀는 핸리를 계속 어장관리 하며 간을 보는 등 핸리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핸리 8세와 두 자매의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 포스터 에릭 바나가 핸리 8세로 나온다.

 

핸리는 이제 재정신이 아닌 듯 했다.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온통 앤 블린 생각 뿐이었다. 점차 캐서린과는 거리를 멀리했고 어떻게 하면 앤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그리고 핸리는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에게 접근해 단도직입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이때 앤은 자신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는  자신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핸리는 고심끝에 아들을 못낳고 자기보다 네살이나 많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혼을 위해 자기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이유 바로 자신의 형수와의 근친관계를  들먹인다.

 

그는 공식적으로 국내와 국외에 걸쳐 이혼문제를 논의하게 하였다. 먼저 국내에서는 이혼에 큰 이견은 없었다. 자신감을 얻은 핸리는 당시 요크 대주교 였던 토마스 울지를 통해 교황에게 이혼을 허락해 줄 요구했다. 핸리는 당시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그 당시 일어난 종교개혁에도 크게 반발해 루터를 공개적으로 디스해  교황으로부터 교회의 수호자 라는 칭호를 받았을 정도였다. 이 때만 하더라도 그는  앞으로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토마스 울지 : 요크의 대주교이자 교황의 추기경이었던 그는 도축업자의 아들이었다는 설과 중급이상의 귀족이었다는 설이 양립해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하급주교로 있다가 당시 교회가 내는 세금을 철저하게 거둬 핸리 8세에게 납부하면서 신뢰를 쌓아갔고 이후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국외사정이 묘하게 꼬임으로서 핸리는 국내문제까지 문제가 생겼다. 당시 교황인 클레맨스 7세는 내심 이 이혼을 허락해 종교전쟁에 있어 영국의 지원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울지에게 처음에는 이혼을 허락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캐서린이 카를 5세의 이모였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카를은 자신의 이모가 이혼 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군대를 동원해 로마를 압박했다. 설상 가상으로 그무렵 프랑스와 합스부르크의 대립으로 로마가 양군에 연달아 박살이 남으로써 교황은 카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이 때 스위스 산 사나이들이 교황을 지켜주었고 이때부터 스위스 용병들이 교황청을 수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명성은 스위스 용병대가 최고급 용병대로 각광받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클레맨스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체 시간만 질질 끌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울지는 울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영국으로 돌아와 상황을 설명하고 이혼을 재고해줄것을 요청했다. 상황이 이러니 영국 국내의 여론도 이혼반대 여론이 커져갔다. 이때 앤은 울면서 핸리가 자신을 속였다고 말하며 수도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면서도 하루빨리 자신과 정식결혼을 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유혹하는등 핸리를 들었다 놨다 했다.

  핸리는 이제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가장 큰 반대세력인 울지부터 제거하기로 한다. 그는 이를 위해 울지의 비서였던 토머스 크롬웰에게 접근해 권력을 줌과 동시에 울지의 부당함을 성토한 후 마침내 그를 포섭했다. 이후 크롬웰이 제공한 울지의 비리를 적발한 후 처형했다. 울지는 마지막 유언으로 "정치를 할 동안 신을 섬겼다면 내가 이리 되지는 않았을 것을..." 남겼다.

 토마스 크롬웰 :전형적인 중급 법률가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고지식하면서도 정의실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 마음먹고 핸리 8세의 충복이 된다. 그러나 그 말년은 어이없는 사건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

 

핸리 8세는 이렇게 본보기를 보여 국내여론을 진압한 후 좀 더 가속도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끝내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핸리로서는 이혼을 포기하거나 카톨릭을 버려야 했다. 그는 카톨릭에 대한 믿음이 투철한 사람이었기에 오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앤 블린의 그 매력적인 모습을 생각해 보고 또 이참에 교회와 수도원을 정리해 거기에서 나오는 막대한 재정에 욕심이 나기도 하였다. 결국 핸리는 주사위를 던졌다. 그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한 크롬웰은 적극적으로 이혼여론을 조성해갔다. 형수와 결혼해 신의 미움을 받은 왕을 구해내자는 그의 연설을 듣고 백성들은 캐서린을 왕에게 피해를 끼치는 요녀라고 생각했다.

  한술 더 떠 핸리는 단순한 이혼이 아닌 혼인무효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총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캐서린은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혼을 한다면 딸인 매리의 왕위 계승권은 남을 수 있게 되지만 혼인무효가 되면 매리는 사생아가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필사적으로 이를 방해했고 그럴수록 앤의 호소와 이에 따른 핸리의 미움은 커져갔다.

 말년의 캐서린 그녀는 한 여자로서가 아닌 한 어머니로서 핸리에게 투쟁한다. 그러나 핸리를 진심으로 사랑한 그녀는 죽을 때 까지 핸리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고 매일 기다렸다고 한다. 또한 끝까지 자신을 잉글랜드의 왕후라고 불렀다.

 

결국 1534년 핸리는 교회재산을 몰수하고 자신이 영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수장령을 통과시킨다. 이를 위해 토마스 모어등 반대파를 처형하고 카톨릭교도들을 대거 추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혼인무효는 이룰 수 없었고 캐서린을 공작부인으로 강등시킨 후 시골마을로 쫓아내 버렸다. 그러나 딸인 매리의 왕위계승권은 최소한도는 지켜낼 수 있었다.

 

얼마 후 핸리와 앤 블린의 결혼식이 펼처젔다. 앤 블린은 소원한 왕비의 자리에 올랐고 핸리는 그토록 원했던 앤과 잠자리를 가졌다. 그 둘은 열렬히 사랑하고 많은 밤을 함께 보냈다. 앤도 여러차례 임신을 했다. 그러나 핸리가 얻은건 몇차레의 유산한 자식과 딸인 앨리자베스 뿐이었다.

  핸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아들을 앤이 낳아줄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또한 그 무렵 앤의 행동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핸리는 앤이 캐서린이 죽은 날 노란 상복(노란색은 스페인 왕가의 색깔이다)을 입고 마치 캐서린을 조롱하듯이 흥겨운 댄스를 췄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설상가상으로 며칠 후 그녀가 유산을 하게되자 그녀 또한 저주를 받은 것이라 확신했다.

  그 무렵 핸리는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가 눈에 띄었다. 조용하면서도 나긋나긋하게 행동하는 그녀를 보고 핸리는 마음에 들었다. 깨끗한 영혼을 가진 그녀라면 신도 자신을 용서해 아들을 보내줄 것이라 믿었다. 한번 칼을 휘둘러 봤던 핸리는 이제 거칠것이 없었다. 그는 크롬웰에게 명령해 앤의 비리를 조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앤은 자신의 오빠와 간통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감옥에 갇힌 앤은 연신 무죄를 주장했으나 왕인 핸리의 마음이 굳혀진 이상 이제는 혼인무효를 인정하는 것 외에는 그녀에게 남겨진 답은 없었다. 하지만 캐서린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한 딸의 어머니였기에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녀는 런던탑에서 도끼로 처형되었다. 그녀는 죽기전 마지막으로 핸리에게 "자신은 오늘 죽지만 당신의 잉글랜드는  딸에게 고마워 할 날이 올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후일 그녀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왕이 되는 일이 이뤄진다.

 

뒷이야기

핸리 8세는 그 이후에도 여러명의 여인을 왕후로 앉혔지만 오직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가 에드워드 6세를 낳아 핸리의 소원을 이뤄주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는 몸이 매우 약한 소년이었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고 제위 6년만에 세상을 떠난다.(그는 동화  왕자와 거지의 실제 모델이었다) 그리고 핸리 8세의 여러가지 일들을 맡아 해결해준 토머스 크롬웰은 왕의 신임을 얻기위해 독일여인인 앤 클립스를 핸리에게 천거한다. 이 때 크롬웰은 그녀가 매우 빼어난 미인이라고 하며 초상화를 보여줬는데 그 미모에 반한 핸리는 즉각 그녀를 영국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실제의 그녀 모습에 너무 실망한 핸리 8세는 토마스 크롬웰에게 군주기만죄를 명목으로 런던탑에서 처형시켰다.

 토머스 크롬웰이 천거한 독일미녀 앤 클립스 그러나 초상화와 실제모습이 너무달라 핸리의 분노

를 사게 만들었다. 결국 출세가도를 달리던 크롬웰은 핸리 8세에게 버려진다.

추천수37
반대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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