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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로 보는 왕자&공주의 사랑 -핸리 8세와 두 여인들...상편-

콜로라도 |2013.07.26 09:57
조회 14,320 |추천 36

15세기 말 런던의 어느 궁전....

 

장미전쟁을 마무리 짓고 요크가의 공주와의 결혼과 동시에 왕위에 오른 헨리 7세는 마냥 골치아픈 나날이 이어졌다. 10여년 전 조카들을 런던탑에 유폐 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리처드 3세를 죽인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리처드 3세는 유럽 곳곳에 인맥들을 형성해 놓았기 때문에 유럽 각국은 어디서 찌꺼기 왕손(헨리 7세는 모계쪽으로 왕족이었으나 촌수는 꽤 멀었다.)이 정통 플렌테저넷가( 랭카스터 가문과 요크가문은 다 같은 플렌테저넷 가문 자손들이다.)의 왕인 리처드를 죽였다며 그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핸리는 이 고립을 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는 아들의 혼인으로 해결하려 했다.

  당시 막 통일된 스페인의 왕궁에 사신을 보낸 핸리 7세는 자신의 큰아들인 아더와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큰딸 카탈리나를 결혼시키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페르난도가 카탈리나의 나이가 겨우 세살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이사벨라가 적극 찬성해 결국 결혼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서의 나이가 여섯살이었기 때문에 10년 뒤에 결혼하기로 했다. 그 10년간 글을 배운 아서와 카탈리나는 서로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너무 보고싶어요 결혼할 그날만 기다립니다." 등 많은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헨리 7세의 장남이자 헨리8세의 형인 아더 왕세자.

카탈리나(캐서린)과 많은 연애편지를 주고 받은 로맨티스트였다.

 

10년 뒤 카탈리나는 카디스항을 출발해 런던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아더 왕세자님은 어떤 분이실까"

 

런던에 도착한 카탈리나는 결혼식 날 아더왕자를 보고 두근대는 마음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것이다.(아더는 키가  꽤 큰 미남형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

 

 "형수님 축하해요 우리 형이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카탈리나에게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건낸 한 소년...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며 그 소년을 안아주었다.

 

"네 고마워요 핸리 도련님....."

 

카탈리나는 그 뒤 런던의 궁정에 머물면서 차기왕비가 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름을 영국식인 캐서린으로 바꾸었으며 영국식 궁중예법을 배웠다. 아더도 그녀를 자주 찿아와 함께 어울렸다. 캐서린은 모든것을 다 가진듯했다. 그러나....

  아더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나날이 늘어났고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캐서린은 아더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으나 병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아더가 숨을 거뒀다. 캐서린은 통곡하며 마냥 눈물만 흘렸다 1년도 채 못된 행복한 결혼생활이 끝난 것이다. 이후 캐서린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스페인으로 돌아가면 다른 왕자와 다시 결혼할 것이다... 그러나 헨리7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캐서린을 붙잡고 싶었다. 어떻게 맺은 혼맥이었던가 이대로는 끝낼 수 없었다. 핸리 7세는 고심끝에 한가지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그의 둘째 아들인 핸리와 캐서린을 다시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왕이 마음을 먹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핸리는 스페인으로 사절을 보내 양해를 구했고 핸리에게 통보하듯이 결혼을 확정했다. 핸리는 이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또 다른 운명에 휩쓸리게 된다.

아라곤의 캐서린 두 형제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비운의 여인

 

핸리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드리고 그녀와 결혼을 했다. 두 부부의 금슬은 그럭저럭 좋았다.

 

이후 헨리 7세가 죽고 그가 왕위에 올라 헨리 8세로 즉위했다. 헨리 8세때 유럽정세는 영국에게 꽤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캐서린의 이종조카인 카를 5세가 즉위한 후 유럽의 상당부분이 핸리 8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헨리 7세가 그토록 바라던 결혼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카를과 적대적이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 만큼은 달라 그는 영국을 적극적으로 도발하기 시작했다.

  그시기 캐서린은 네번의 임신을 했다 비록 세번은 유산했고 공주인 메리를 낳았으나 헨리는 비교적 만족했다. 자주 임신을 한다는건 그만큼 아들을 낳을 확률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폐하 기뻐해 주십시오 왕비마마가 임신을 했습니다."

 

핸리는 캐서린의 임신소식을 기뻐하며 전장으로 향했다. 프랑스와 한판 붙어보려 했기 때문이다. 핸리가 전장으로 떠난지 수개월 후 런던에는 급보가 당도했다. 바로 스코틀랜드가 처들어왔다는 것이다.

 핸리 7세의 사위이자 핸리 8세의 매형인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4세

그는 항상 런던으로 수도를 옮기길 희망하던 야심남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4세는 영국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브리튼섬의 통일을 위해 남침을 감행했다. 그러나 캐서린이 적극적으로 군대를 동원하고 여자의 몸으로 갑옷을 입고 돌격해 오는 바람에 그는 대패하였고 결국 죽음을 당했다. 그의 시체는 스코틀렌드에 돌아가지 못하고 캐서린에 의해 잉글랜드 곳곳에 전시되다가 한 공동묘지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이 비극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녀를 저주했다.

  병사들의 환호를 받으며 승리를 즐기던 캐서린은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고 급히 런던으로 옮겨졌다. 핸리도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전쟁을 매듭짓고 런던으로 달려왔다.

 

 "어... 어찌 되었느냐 캐서린은 내 아이는....."

 

"놀라지 마십시오 왕비님은 무사하십니다만 왕자님은....."

 

핸리는 왕비가 무사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아... 아들이었다고 왕자였다고...."

 

핸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핸리가 엉뚱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형의 아내였던 형수님과 결혼했기 때문이야 내가 근친혼을 했기 때문이야.. 레위기에 이르기를 형의 아내의 다리를 탐하지 말라 그것은 곧 너의 다리니라... 라고 했었지 난 저주를 받은거야 신이시여... 나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핸리 8세는 자신이 아들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근친혼에 대한 신의 저주라고 믿었다. 핸리는 그녀가 점차 두렵고 무서워졌다.  이후 핸리는 무도회를 자주 열거나 다른 신하들의 무도회에 참석해 여러 여자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연회장에서 그는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젊은시절의 핸리 8세( 위)와 나이 든 후의 핸리 8세(아래)

그는 아들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였고 고기를 먹고 허리가 튼튼해 진다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헛소문에 빠져 고기덕후가 되어버렸다. 그러자 호리호리했던

그의 허리는 58인치의 덕후형 허리가 되어버린다.

 

하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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