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 세계에서 최초로 열린 이 거대한 행사에는 19세기 점차 발달하던 과학의 결정체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장차 1차 세계대전의 주역이 될 두 나라의 왕자와 공주가 만난 곳이기도 하였다.
독일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 독일 황제 중 최초로 대학을 나온 그는 당시 자유주의자들을 양성하던 본 대학의 학생이었다. 그는 학생다운 행동과 오만하지 않은 성품으로 당시 대학 선,후배, 동기들에게 인정을 받아 졸업식날 학생회에서 그를 위해 자발적으로 횃불행진을 열어주었다.
"아... 아름답다..."
박람회장에서 영국왕실의 인사를 받은 황태자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영국의 한 공주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녀의 이름은 빅토리아 애칭은 비키라고 불리는 활달하고 밝은 소녀였다.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큰딸로서 당시 10살이었다.
17살의 프리드리히는 그 소녀와 언젠가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당시 프리드리히는 대학에서 영국의 헌법과 사회,문화 등을 배웠고 독일이 점차 영국의 제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영국에서 머물러 있는 동안 그는 프로포즈를 할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리고 4년 뒤.....
프리드리히는 이번에야 말로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시 영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비키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잠시 망설였으나. 180이 넘는 훤칠한 키와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이 왕자를 보고 마침내 결혼을 허락하였다.(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남편인 알버트 공이 독일출신이었기에 이곳출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공주의 나이가 아직 14살에 불과해 결혼 대신 약혼을 하기로 하였다. 또한 두 정혼자는 만남을 가졌는데 약혼자를 다시 본 비키 또한 프리드리히의 매력적인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4년 뒤 25세의 프로이센 왕자와 18세의 공주는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그러나 당시 타임즈는 언제 생겨난지도 모르는 역사가 짧은 작은 왕국에 대영제국의 공주를 시집보내는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프리드리히 3세와 빅토리아 공주의 웨딩촬영( 당시 프리드리히는 공주를 데리고 베를린에서 성대하게 결혼을 하고 싶어했지만 영국언론의 비판과 빅토리아 여왕의 요구로 인해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것은 1850년대 양국의 국력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당시 비키공주는 영국의 의회정치에 흠뿍 빠져 있었고 영국의 사회, 문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프리드리히 황태자 또한 영국공주를 아내로 맞아 영국의 의회정치를 독일에 옮기고 싶은 욕구로 가득했다. 두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이 딱딱한 프로이센을 바른 의회정치 국가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며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프로이센에 도착한 뒤 두 부부를 환영하기 위한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그러나 파티에 참석한 많은 왕족과 귀족들은 이 두 황태자 부부가 영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키공주 또한 답답한 프로이센 왕궁에서의 시월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빅토리아 공주의 시어머니이자 독일제국의 초대황후인 아우구스타 그녀는 드센성격을 지녀
남편과 하루종일 말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아우구스타가 빌헬름을 비판하자 그가 말하기를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전해라" 라고 고함을 질렀다. 잠시 후 말을 전하러 갔던 시종이 황후가 "황제야 말로 웃기는 소리 말라고 전해" 라는 답변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보수주의자였던 그녀는 자유주의자 처럼 보이던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손자,손녀들을 대부분 직접 데려가 독일식으로 키웠다.(그 가운데 가장 아꼈던 이가 바로 독일을 말아먹은 빌헬름 2세다)
프리드리히는 아내의 영항을 받아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가졌다. 그는 아내와 마음이 잘 맞는 사이였는데 특히 독일에 자유와 진보를 보급하기 위해 의기투합 하였다. 부부는 밤세도록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의를 듣기도 하였다. 즉 그들은 사랑과 함께 동지애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독일 특히 프로이센 같은 경우는 전투민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군사위주의 통치국가였다. 특히 엄격한 법과 강력한 군대 그리고 딱딱한 융커(독일지주계급)국가였다.
황태자로서 나랏일에 참여하게 된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결정하고 이를 실시하려 했다. 특히 의회가 중심이 된 의회국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장 강대한 벽이 두개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인 빌헬름 1세와 그의 수상 비스마르크였다.
독일제국의 초대황제인 빌헬름 1세(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으며 강철체력을 가져 88세의 나이에도 독일 전군의 훈련을 직접 지휘 및 감독한 인물이었다. 그는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를 격파하고 베르사유 궁전에서 황제즉위식을 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작은국가라고 놀림을 받던 프로이센을 강력한 독일제국으로 탈바꿈 시킨 총 지휘자였다.)
비스마르크:( 철혈재상으로 유명한 그는 전형적인 융커계급의 딱딱한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단력이 매우 뛰어나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철저하게 성공시켰다. 그는 프리드리히를 나약하고 겁많은 왕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프리드리히를 엄격하게 교육해 강철같은 황제로 만들기를 원했다.)
프리드리히와 비스마르크는 자주 충돌했다. 두 사람은 서로 성격도 맞지 않았으며 일처리에 있어서도 서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특히 프리드리히는 철혈정책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감을 가졌다. 비록 프리드리히가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활약하기는 하였지만 그는 대체로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원했고 전쟁을 야만적인 것이라 여겼다.
비스마르크는 프리드리히가 이렇게 된 원인을 비키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녀가 황태자와 가까이 붙어 충동질하기 때문에 그가 나약하고 겁쟁이가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부터 독일의 언론들은 연일 비키의 스캔들을 확대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도 의혹을 사고 있었던 비키에게는 치명타가 되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비키에 대한 애정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그는 앞장서서 비스마르크에게 음모를 중단하라고 경고하기도 하였으며 직접 해명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두 부부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있었다.
비키는 프리드리히가 황제 자리에 올라 영국식 의회정치를 실현시켜 주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빌헬름 1세는 강철의 남자였다 70살이 지나도 80살이 넘어도 빌헬름은 아프지도 않은 건강한 모습으로 군대훈련을 지휘하고 전쟁계획을 검토하였다. 특히 죽기 3개월전에는 겨울 군사훈련도 직접 감독할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병마는 남편인 프리드리히에게 먼저왔다 1887년 그는 기침을 심하게 했다. 이에 대해 독일의사들은 후두암이라고 진단했으나 비키는 이를 믿지않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영국의 최고급 의사들을 보내줄것을 요청했다. 베를린에 도착한 영국의사들은 가벼운 감기증상이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비키는 이 말을 믿었고 독일의사들을 불신했다. 이에 독일 의사들이 크게 화를 내며 영국의사와 논쟁을 벌였다. 두 부류가 논쟁을 벌이는 동안 프리드리히는 제때 치료할 시기를 놓쳤고 점차 후두암이라는 최종진단을 받았다. 영국의사들도 끝내 자신들의 오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비키는 본의 아니게 남편을 위기로 몰아넣은 여자가 되고 말았다. 독일 왕실과 귀족, 국민들이 모두 그녀를 비난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는 빅토리아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그녀를 감싸주었다.
이탈리아의 휴양지에 잠시 머물며 따뜻한 기운을 받은 프리드리히는 잠시 건강을 되찿았다. 그때 강철남자였던 빌헬름 1세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가 프리드리히 3세로 즉위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당시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로 내,외에 악명을 쌓았던 내무장관 푸트카머를 해임시켰다. 그리고 영국식 정당의회로 가기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비키도 남편을 열심히 도왔다.
그러나 프리드리히의 건강은 일시적이었다. 치명적인 후두암 말기에 다다른 그는 비키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56세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두 부부의 이상도 끝장났다.
다음황제가 된 빌헬름 2세는 할머니의 독일식 교육과 자신의 과대망상적인 이상이 결합되어 노골적인 황제 독제체제를 꿈꾸었다.(그는 항상 독일이라는 배를 이끄는 함장이라 자처했다.) 그는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이라 하여 가까이 가지 않았다.
다시 홀로된 빅토리아는 손자,손녀들을 돌보며 노후를 보냈다. 그리고 1901년 자신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이 죽은 그해에 결국 숨을 거두었다.
독일제국의 2대 황후이자 빌헬름 2세의 어머니인 영국공주 빅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