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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태양은 어디에서 뜨는가.

김가긴 |2013.08.16 11:46
조회 127 |추천 0

제암리교회. (1)

 

  갑작스러운 밤이었다. 아직 모든 곳이 깜깜한데도, 손에 전등하나 든 것 없이 지태네 아버지는 다급히 우리 집 문을 두드리셨다. 어머니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 다급히 대문을 열어주셨다. 지태 아버지는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와서는 애타게 우리 아버지를 '형님, 형님' 하며 찾았다.

  "나 여깄네, 무슨 일 있는가?"
  "아휴 형님, 지금 큰일이 났어요. 당장 허씨네로 가야해요!"

  지태아버지는 늦봄, 꽃샘추위가 가득한 4월인데도 이상하게 땀을 잔뜩 흘리고 계셨다.

  "난데없이 허씨네는 왜!?"

  아버지가 다그치듯 물으셨다. 아무래도, 잠도 덜 깬 상태에서 가장 싫어하시는 허씨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성이나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항상 허씨아저씨를 매국노라며 욕하셨다. 제암리 사람들에게서 돈을 걷어서 일본사람들에게 바친다면서 말이다. 물론 아버지는 매번 돈을 걷으러 올 적마다, 싸움을 해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설명을 하려면 길어요, 형님."

  언제 떠오셨는지 어머니는 물이 든 그릇을 지태아버지께 건네셨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신 지태아버지는 말을 이으셨다.

  "형님. 일본 순사들이 우리를 제암리 교회에 모아놓고 죽이겠대요. 허씨네와 일본에 충성을 다하기로 한 집안들만 뺴고요."

  "친일회를 제외한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고? 그걸 어디서 들은거냐?"

  "밤중에 물 길러 가다가 허씨네랑 야노순사랑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셨다. 지태네 아버지는 뻘뻘 흘리는 땀을 옷소매로 계속 닦으며 꼭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발을 동동 구르셨다. '빨리요 형님...' 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안돼."

  아버지는 어두운 기색으로 무언가 결단을 내린 사람처럼 말씀하셨다.

  "형님!!"

  지태아버지는 다그치듯 아버지를 부르셨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난 나라를 팔아먹진 않을거다."

  "형님, 왜이렇게 본인생각밖에 못하십니까. 그럼 아이들과 형수님은요! 형님의 지금 선택으로 저 아이들과 형수님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형님!!"

  거의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지태아버지는 아버지께 말하셨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고개만 좌 우로 작게 흔드셨고, 지태아버지는 계속해서 무어라 아버지를 설득하고 계셨다.

  "아이들과 우리 집사람은 네가 좀 거두어 줘라... 미안한 부탁이지만, 부탁하마. 나만 뺴고 다 같이 허씨네로 가."

  아버지는 지태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리며 말씀하셨다.
  "아니요. 저도 가지 않을거에요. 아이들만 데려 가 주세요."

  어머니의 말에 지태아버지와 아버지는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지태아버지는 답답한듯 가슴을 내리치시며 곡이라도 하는 듯 '아이고. 아이고 두분다 대체 왜이러신대...' 하셨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셨다.

  "나 말리셔도 소용 없으셔요. 규종아버지, 제 고집 아시잖아요."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아름답게 웃으셨다.

  "아이들을 생각해."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같이 살아야죠."

  "난 말했잖아. 나라를 팔아먹을 수는 없다고."

  "나 또한 같아요. 나라를 팔아먹고, 내 목숨을 당신의 목숨과 맞바꿀수도 없어요. 그리고 뭣보다 당신없인 살 수 없어요. 난 당신과 함께할거에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눈물을 보이셨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말이다.

  이내 어머니는 온화한 미소를 보이시며 나와 누이를 지태아버지의 손에 맡겨 내쫒듯 밖으로 내모셨다. 대문을 나온 밖에는 지태와 지태어머니가 손을 꼭 잡고 계셨다.

  “우리 아이들,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말썽쟁이들이에요. 지태같이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태 다음으로는 생각해줘요.”

  “형님...”

  어머니의 말씀에 지태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셨다.

  “허씨네야 천벌받을 인간들이지만, 지태네는 아니잖아요. 아이들 구하려고 선택한거니까 잘 될거에요 전부.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모든 업을 지고 갈게요. 미안한 부탁해서 정말 미안해요. 지태어머니, 일단 다녀와요. 어차피 일은 내일 있을 일이잖아요. 당장 할 일만 해요 우리.”

  어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웃으며 가벼운 목례를 하시고는 집안으로 들어가셨다. 지태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씀에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우리둘의 손을 꼭 잡으셨다.

  “내가 꼭 너희를 잘 먹여살릴거야. 형님의 은헤를 갚기 위해서라도 난 꼭 그래야만해.”

  지태아버지는 중얼거리듯 말씀하시더니, 우리손을 꼭 잡은채로 허씨아저씨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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