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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오랜만에 전화를 받았다

미스터리박... |2013.09.06 02:03
조회 959 |추천 9

오랜만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악기 동호회에서 만나 가끔 연락하고 식사를 함께하는 정도의 친분이 있던 사이였는데

 

작년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었다

 

"우리 한번 만나야지, 마지막에 갔던 파스타집 어때? 맛있다고 잘 먹었잖아"

 

반가워 저녁을 사겠다고 회사 근처에서 만나자 했더니

 

"아니에요... 그보다는, 저희 집으로 오시는 게 어때요?"

 

굳이 집에서 보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 공간에 드나들만큼 친밀한 사이는 아니어서 약간 주저했지만

 

몇 번이나 부탁하는 바람에 수락하고 말았다

 

"악기도 가져오세요"

 

전화를 끊으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며칠 뒤 나는 첼로를 가지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그녀는 조금 수척해져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춥죠, 빨리오세요."

 

거실의 자그마한 탁자로 그녀는 나를 안내했다

 

하얀 쌀밥에 반찬이 그득히 차려져 있었는데 밥그릇이 하나 뿐이었다

 

"너는 안 먹어?"

 

"저는 됐어요"

 

그녀가 생글생글 웃었다

 

몇 번 더 권했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그럼, 잘 먹겠다고 숟가락을 들 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사소한 위화감이었는데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대체, 그동안 뭐하고 지낸 거야? 연락도 없이..."

 

"그냥 좀 쉬고 있었어요."

 

반찬 하나를 내 앞으로 밀어주며 그녀가 말했다

 

"쉬어? 일은 그만둔 거야?"

 

"네......"

 

"왜? 너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 타입이었잖아

 

바쁠수록 힘이 나는 사람 아니었어?"

 

"......"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였는데, 짧은 한숨 비슷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너무 캐묻는 게 아닌가 내가 묵묵해지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많이 쉬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조금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어요

 

멀리서 바라보는 심정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세상에 남아있는 한 머물러 있는 건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때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우리 모임, 합주하는 데도 여러 번 가서 모두 보고 왔어요"

 

"하지만 아무도 널 만났다고 안 하던데?"

 

"오빠가 안 나온 거잖아요

 

오빠야말로 오케스트라 활동을 안 한지 1년이나 됐다구요"

 

"내가 그랬나?"

 

"그래요, 오빠야말로 너무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구요"

 

그녀는 막내 동생처럼 귀엽게 볼멘 소리를 했다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빠릿한 몸짓으로 일어나더니

 

바이올린을 가지고 왔다

 

마지막으로 물을 한 컵 들이켜, 나도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정말,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는 느리게 이중주를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습하던 곡들 중 서로 좋아하는 악장만 반복해서 켰다

 

즐거운 밤이었다

 

 

"다음엔 우리 회사 앞에서 보자 내가 정말 밥 사줄게"

 

집을 나서며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무서워서 못 나가요"

 

"응?"

 

"제가...... 무서워서 밖에 잘 나가질 못해요"

 

"뭐가......? 오케스트라 모임에도 나간다며?"

 

"아무튼......"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한쪽 팔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저만치 가다 돌아보자 그녀의 집엔 벌써 불이 꺼져 있었다

 

 

그 주의 마지막 날, 나는 악기 동호회 일원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 주 부터 다시 오케스트라 연습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며

 

'그녀' 덕에 잊고 있던 악기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수화기 저편의 반응은 서늘했다

 

 

- 너가 걔를 봤다고? 무슨 소리야? 아니, 믿을 수가 없네

 

걔를 너가 어떻게 봐? 너가 무당이냐? 이젠 볼 수가 없어 걔를......

 

너 작년에 걔 잘못된 거 몰라? 야 참, 이거 다시 말하려니 그런데......

 

걔가 집 앞에서 나쁜 일을 당했어

 

응, 조금 으슥하잖아

 

정신 나간 놈이 걜 어떻게 하려다가 잘 안 된 모양이야

 

때려죽였어... 옆에 공사장에 벽돌이 좀 있었다더라

 

넌 신문도 뉴스도 안 보냐?

 

하긴 너 그때 장기출장 가서 장례식에 못 왔지 연락도 못 받고

 

너가 너무 바쁜 거야 우린 연락을 했다

 

어딜 간다면 간다고 한국에 왔으면 왔다고 평소에 연락 좀 해라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귀신에게 홀렸나, 라고 하기에는

 

집 밖은 무서워요, 라고 말하던 그녀가 너무나 동생같았다

 

 

- 걔가 너네 오케스트라 연습하는 거 여러 번 봤대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수화기 저편에서 거품을 물었다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 녀석, 모두와 합주했는데 기다려봐도 내가 빠져서 첼로를 갖고 오라 한 걸까......

 

 

그녀의 명복을 빌며 그 날의 일을 곱씹어보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그날 그녀가 차려준 밥상은

 

제사상에서처럼 밥이 오른쪽에 국이 왼쪽에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나의 식사를 거드는 그녀의 손 아래로는 그림자가 지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상황에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는 암시였는데

 

과연 알아차린 게 좋았을까 모르고 나온 이게 더 좋았을까?

 

 

 

 

 

출처: 네이버 미스터리 박물관

        (http://blog.naver.com/angel_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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