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당신이 날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랐어요
- 부끄러워 하지 않아
- 그럼 왜 나에 대해 당당히 이야길 못해요?
저 여자가 내 애인이라고 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요?
- 그런 얘길 동네방네 떠들어서 뭐해
우리 둘만 서로 믿고 의지하면 됐지
당신은 날 못 믿나?
- 단지 난...... 이제 지쳤어요......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다
나는 분명 사랑이었는데 그녀는 뭐가 문제였을까
아직 집안 곳곳엔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거실에서 두뼘이나 되는 머리카락을 주웠다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무슨 미친 생각이었는지
그녀의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잃고 싶지 않아서
식물의 줄기처럼 물컵에 꽂아놓고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서는 그것에게 인사부터 했다
- 바보야 난 널 사랑했어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느낌상 그런 것인지
머리카락이 아침보다 자라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두뼘 반은 됐고
다음날엔 세뼘이었다
나는 집안에서 그녀의 머리카락 몇 올을 더 수집해 길렀고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을 때 간단한 실험을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저 잘게 잘라 물에 던져놓으면
그 짤막한 것들이 한올한올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한달여가 지나자 그녀의 머리카락 전부라고 해도 될만큼
그것은 풍성해졌고
나는 없는 손재주이지만 그것을 가발처럼 엮었다
그리고 매일 애정을 담아 쓰다듬었더니
아래로 점차 살점 같은 것이 돋아
급기야 그것은 그녀의 얼굴이 되었다......
- 잘 있어 나 갔다올게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짧은 입맞춤을 하는 건
출근 직전의 의식이 되었다
그녀는 말을 하진 못했지만
예전보다 훨씬 상냥해진 내가 마음에 썩 드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제 잘린 목 같은 형태로만 남아버린 그녀가 짠해서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고 늘 입을 맞췄다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고
비록 둥근 덩어리일 뿐이었지만 꼭 안고 잤다
그러다가 욕심이 생겼다
그녀를 조금 더 길러내고 싶었다
상반신까지만이라도...... 어떻게 해낼 수 없을까?
며칠을 고민한 뒤 묘안을 하나 짜냈다
그녀는 식물처럼 자라났으니까
앞마당에 하룻밤이라도 그녀를 심어놓으면
적당한 수분과 영양을 얻어 그녀는 쑥쑥 자랄 것이다-
나는 신선한 채소를 수확하듯 이른 새벽에
그녀를 따서 들어오면 된다-
일주일쯤 이렇게 반복하면 상반신까지 복원가능하지 않을까?
잃어버렸던 그녀와의 부드러운 포옹을 되찾을 수 있다니
벌써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밤에, 침대가 아닌 마당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것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적을 설명하고,
며칠만 참아봐 달라,
앞마당이 좁은 화분보다 토양이 좋다,
밤이라 좀 무섭겠지만 이웃 눈에 띌 일이 없어 안전할 거다,
주절주절 양해를 구하자 곧 이해해 주었다
그러나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누군가 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그것도, 토막낸 머리를 땅에 묻고 있다는 이유로!
"헛걸음들 하셨네요 이건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입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숨은 쉬어야 하니 턱 아래로만 흙을 다져 두었는데
그녀는 다행히도 애써 마네킹인 척 하고 있었다
"그렇군... 자세히보니 마네킹이 맞네요
저희가 받은 신고는 댁이 여자친구의 머리를 잘라
땅에 묻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녀의 얼굴까지 기억하다니 귀찮은 놈
아무래도 가까운 이웃임이 분명했다
"아니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저 머리만 있는 마네킹이 제 애인이라니요"
상황을 모면하려고 나는 크게 웃었다
"아침에 내버리려고 밖에 던져둔 걸 신고하다니
누군지 참 고약하네요"
어딘가에서 엿듣고 있을지도 모를 가까운 이웃을 향해 허공으로 크게 외쳤다
경찰들은 철수했다
나는 집안에 잠잠히 있다가
창 밖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
번거로워도 퇴근길에 큰 화분과 좋은 비료를 사서
실내 사육을 하는 편이 나을 듯 했다
그런데......
그녀는 창백하게 죽어있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말 그대로 이건 시체였다... 특정 부위만 남아있는...
경찰이 이걸 봤다면 난 분명 살인죄를 뒤집어 썼으리라
건드리기조차 무서워 재빨리 흙으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마구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낮에 심었어야 했나?
좀 더 깊게... 입술 바로 아래까지 흙을 덮었어야 했나?
밤공기가 찼나?
경찰 자식들이 갑자기 와서 쇼크를 먹었나?
별별 추측을 다 하던 중 문득 기억속에서 눈물 젖은 목소리 하나가 올라왔다
- 내가 부끄러워요? 저 여자가 내 애인이라고
왜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을 못해요?
그리고 나의 잔인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 이 여자는 그저 마네킹이죠
.
.
.
아뿔싸......
어쩌면 나는 또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이었다
배려심 없는 나란 놈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한 여자를 문자 그대로 두 번 죽인 것이었다
출처: 네이버 미스터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