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누군가 있었다
그 집은 소위 말하는 폐가로, 방치된지 몇 년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날은 누군가 있었다
그 집 마당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나 동물이 내는 소리와는 다른, 누군가 천천히 걷고 있는 듯한......
맞다, 그건 사람의 발걸음 소리였다
겁도 많으면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어느날 나는 그 집의 대문 사이를 들여다 보았다
손질되지 않은 마당은 태초의 밀림처럼 풀이 무성했다
그리고 한 소녀가 걷고 있었다
인근 경찰서에서 우범지대화 되는 것을 막으려고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
들어갈 입구라고는 없는 집인데
새하얀 교복을 입은 소녀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그 아이는 이미 날 보아버린 뒤였다
게다가 조금 망설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대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굵은 철사 등속의 것이 감겨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열렸다
"나도 들어가봐도 돼?"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잠겨있는데"
이번엔 내 시선을 피하며 말없이 조금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마당으로 한쪽 발을 들여놓으며 말했다
"함부로 드나들면 경찰서에서 잡아간다
여긴 관리구역이야 정말로 하루 두세번쯤은 순찰을 해
건성으로라도 오긴 온다니깐"
그 아이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순해 터진 표정이었다
"여자애가 혼자 드나들면 위험해"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어쩐지 다그치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상대가 말이 없어서 그랬다
그 아이는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고 이왕 말을 붙인 거 의리상 조금은 같이 있어주려고
나도 잠시 마당에서 폐가를 둘러보았다
직접 들어가보니 마당이든 건물이든 생각보다 더 심하게 썩은 집이었다
수돗가는 내려앉았고 현관은 조금 열려있었는데 거미줄 때문에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가만히만 있어도 곰팡내가 난다"
말을 이어보려 해도 그 아이는 고장난 강아지 인형처럼 그저 혼자 맴돌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잊은 것 처럼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학원도 가야겠어서 슬쩍 밖으로 나서는데 그 아이가 책가방을 열었다
뭘 하나 했더니, 나에게 우산을 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꽃무늬를
"아, 됐어"
나는 그냥 막 달렸다
그리고 이틑날 나는 그 아이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그 앤가 아닌가 했지만 '말 없는 애' 라고 듣고 보니 딱 그 아이였다
폐가에서 굵은 철사로 목을 매달았다는 소문이었는데
경찰 조사를 받는 둥 겁나는 일들이 생길까봐
어제 그 애와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는 입 밖에 절대 내지도 않았다
학원에 가보니 벌써 큰 이슈거리였다
옆 학교 학생인데, 그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따돌림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게
원체 자기 표현이 없는 아이이다보니 그 애쪽에서 먼저 누구에게나 거리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소한 마찰이 생겨도 그 녀석의 편은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애들은 시시콜콜 서로에게 호소하며 위로를 구해도
그 녀석은 늘 혼자였고
남과 무슨 일이 생겨도 그 아무 일 없는 듯한 얼굴이 또 다시 상대를 자극해버리는
악순환이었던 것 같다
친구와 나는 학원을 마치고 폐가 쪽으로 갔다
돌아서 가자니 멀고 하여튼 집에 가려면 그쪽을 지나야 했다
밤이라 깜깜한데 사건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폴리스라인이 멀리서도 보였다
"불쌍하다"
나는 친구에게 말을 붙였다
"뭐가"
"말도 없고 착한 애가 죽어서"
"말 없는 게 착한 거냐 그거 얼마나 사람 속 터지는데
죽은 건 불쌍해도 걔가 심성이 착했는지는 우리가 모르지
부모 가슴에 대못 박고 갔다... 착한 거냐?"
"그래 부모님은 그렇다 쳐도...... 걔 나쁜 애 아니다, 난 안다"
"너가 어떻게 아냐?"
"그냥 알 것 같다"
"그러니까 그걸 너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볼땐 걘 아니다 자살은 남겨진 사람들한테 죄 짓는 거다"
우리는 이런 식의 대화를 계속 하고 있었고 하여튼 난 안다고 또 그냥 그래버렸다
그런데 그 때
정면으로 보이는 폐가 지붕쯤에 뭔가 허연 기운이 뭉쳤다
연기인가? 잘못 봤나? 미간을 찡그리고 쳐다보는데
그 허연 것 사이로 얼추 사람 닮은 형상이 어른거리더니
......눈이 마주쳤다
분명 그 아이였다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엔 나에게 말도 하고 있었다
맑고 깔끔한 음성으로 이쪽을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 고마워......
뭔진 모르지만 고맙다는 말에 내가 뭘, 하고 쑥스러워하기엔
그러나 나는 산사람이었다
나무토막같이 뻣뻣해져서는 덜덜 떨리며 나도 모르게 욕부터 나왔다
"시발...... 나 또 눈 마주쳤다......"
"뭘?"
친구의 눈엔 안 보이고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시발 나도 몰라... 뛰어! 시발!"
"시발 미친 새끼"
달음질 치는 나를 친구가 낄낄대며 쫓아왔다
- 알아주어서 고마워...... 나 무책임하게 갔지만 한 사람에게라도
나쁜 아이 아니라는 말 들어서 기뻐......
그 애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귓가에서, 아주 가까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무서워서 내뱉자니 욕뿐이었다
"아 시발 알았어 알았어 왜 나한테 그래 시발!"
나는 이 상황을 떨치고 싶어 몸부림을 쳤고 친구는 미친놈 보듯 날 보며 계속 웃어댔다
- 안녕......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가! 가! 좋은 데로 가 빨리 가 잘 가!
시발 말 조카 잘해 살았을 때 그렇게 말 잘하고 같이 놀......"
더 말하다가는 정들어 버릴까봐 닥치고 뛰었다
출처: 네이버 미스터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