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과 3살많은 선배인 첫사랑 남친과 2년 넘게 사귀는 동안, 제가 많이 좋아했기에 많이 이해해주고 맞춰줬어요. 사실 그리 잘난거 없는 남잔데.. 어느날 갑자기 어렸을적 돌아가신 아빠와 같은 목소리톤으로 제게 말을 건 순간 그사람만 보이고 생각나기 시작해서 졸업직전에 제가 오빠의 여친이 되고 싶다고 전화로 고백해서 바로 사귀게 되었어요.
과친구들이 다 의아해 했죠. 선배친구들 조차도 절 보면 정말 궁금한데 도대체 얘의 어디가 맘에 들어 사귀는거냐고 진지하게 물을정도로.. 그사람은 평범하다 못해 좀 촌스럽고 목소리만 큰 서울상경한 지방사람이었고, 저는 과에서 대쉬하던 선배 및 후배도 좀 있었거든요.
시작은 제가 고백해서 사귄거지만, 남자친구도 절 많이 좋아했어요. 고백을 제가 먼저 했을뿐 항상 제 주위에서 맴돌며 제게 자신을 어필했고 그래서 제가 남친이 아빠의 목소리와 정말 닮았구나 하고 느꼈던거거든요. 그 사람 사귀면서도 참 자기 중심적이었어요. 일주일에 한번 보는데 갑자기 만나기로 하기 직전에 전화해서 집에 형네 부부 놀러와서 안된다. 친구들 만나야 한다. 한번은 저도 화가나서 똑같이 핑계대고 약속 취소했더니 본인은 난리 치더라구요.
저한텐 자기 부모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예의를 차리길 바라면서 저희 엄마한텐 단한번도 제대로 인사도 안하고, 툭하면 왜 니네 엄마는 나를 한번도 초대하고 대접해 주지 않냐고 불평이었어요. 사실 엄마가 남친을 싫어했거든요. 별로 티는 안냈지만.. 학과 친구들과 똑같이 묻곤 했어요. 너 쟤 어디가 좋으냐고.. 하지만 엄마는 네가 좋다는데 어쩌겠냐며 그냥 두고 보시기만 했어요. 전 당연히 남친 기분나쁠까봐 엄마가 맘에 안들어한단 얘기는 안했죠.
추석때나 명절때면 초대도 안했는데 그냥 과일꾸러미 들고 불쑥 집에 통보하고 인사오곤 했어요. 엄마는 온다는데 거절하긴 그렇고 최대한 예의 갖춰 요리해서 챙겨줬지만, 전 그쪽 집에서 오라고 노래를 불러도 안갔어요. 결혼도 하기전에 미리 남친집 들락거려 좋을것도 없을것 같아서요. 그랬더니, 야. 우리엄마가 너 놀러올 생각도 안한다고 너 맘에 안든다시며 앞으로 두고 보쟤! 하더라구요. 걍 대꾸도 않고 듣고 흘렸어요.
남친 누나도 밖에서 만나보고 (무조건 전화로 누나바꿔서 당장 나오라고 통보해서) 부모님과 간단히 통화는 해봤는데.. 아무리 막내아들의 여친이라도 나이가 이십대 중반이고 성인인데 첨에 존대하지 않나요? 우리엄마는 항상 존대해줬는데.. 그집식구들은 형 빼곤 다 첫마디가 "야", "너" 로 나가더라구요.
헌데 첫정이 뭔지.. 사귀면서 저는 점점 이남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반대로 그남자는 절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게 보이고.. 항상 결혼하자고 조르고.. 대학졸업때까지 모태솔로로 지내다 처음 사귄 사람이라 웬지 놔지지가 않았네요. 서로 직장생활하면서 결혼얘기가 나올때쯤.. 집에 인사오라는 요청을 2년동안 뿌리치다가 더이상 핑계가 없어져서 인사 드리러 갈 마음의 준비를 다지고 있던중..
결정적으로 헤어짐을 결정하게 해준 사건이...
제 친한 전직장 동료가 사내 결혼을 하게 됐어요. 남친도 만나봐서 잘 아는 친구고, 전직장 행사때 온적이 있어서 웬만큼 얼굴들을 알아요.. 제가 주말에 그친구 결혼식 간다니깐 자기도 가겠다고 하면서.. "대충 입어도 되지?" 하길래, "맘대로 해" 했어요. 항상 자기 친구들 결혼식엔 정장으로 가길래.. 첨있는 제친구 결혼식인데 설마 정장은 아니더라도 깔끔하게 신경은 쓰겠지 했는데.. 헐~~!
낡은 남방/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나왔네요. 남방도 청바지도 깔끔하게 입었으면 그나마 다행.. 후질구레 다림질도 안한 남방 팔 접어입고, 청바지랑 운동화는 빤지 얼마나 오래 됬는지 의심갈정도..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오더라구요. 원래 패션 센스 없던 사람이었지만.. 걍 암말 안했어요. 제가 맘대로 입으라고 했으니깐 ㅠㅠ.
헌데 자기도 제 전직장 사람들 얼굴들 많이 알고, 1년만에 만나는거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고 나올수가 있었는지.. 더 화가 났던건, 옷차림이 그러면 자긴 좀 나서지 말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제친구 남친들은 어쩌다 옷 제대로 못챙겨 입고 결혼식 참석하면 친구들이 내 남친은 시간없어 정장 안하고 와서 인사못해 라고 결혼하는 친구들에게 양해 구하고 미리 나가 있던가 하던데..
이남자는 제가 신랑신부에게 인사하러 가니깐 당당하게 제옆에 붙어서 신랑신부에게 인사하고, 예전상사들에게 자기 소개하며 악수까지 하는데.. 그때 남친을 훝어보던 직장동료들과 신랑신부 눈길 마주치기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냥 그렇게 막입고 나타난것 까진 참겠는데 도저히 그행동은 못참겠더라구요. 사실 친한친구라 좀 더 오래 있어주고 싶었지만, 그런 차림으로 옆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니 걍 밥 급하게 먹고 나와서 한마디 했어요.
나 : 오빠 담주에 오빠친구 ** 결혼식 같이 가자고 했지?
"어 근데 왜?"
나 : 그때도 지금 입은거랑 똑같이 입고와. 알았지? 만약 그때 정장하면 나 가만 안있을거야!
"친구결혼식에 어떻게 그래? 그리고 네가 대충 입어도 된다고 했잖아?"
나 : 대충도 정도가 있지. 오빤 항상 나만 맞춰야 된다고 하고, 자신은 나를 위해 하나도 배려를 안하잖아. 그럼 오빤 정장입어. 내가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옆에 따라다니면서 인사할께.
그랬더니 네가 요즘 좋은 직장 이직하면서부터 자길 무시한다느니.. 기분나뻐서 너랑 더이상 같이 있기 싫다며 확 돌아가버리더라구요. 당연히 제가 예를 들어서 본인의 실수를 따지면 인정하고 날 이해해 주기 바랬는데 제 욕심이었네요.
그후 집에와서 많이 생각했어요. 그쪽 집에선 인사오라고 재촉했었고, 저도 더이상 피할거리가 없어서 인사드리고 서서히 결혼준비를 하려 했었거든요. 헌데 이런 사소한것들까지도 배려도 못받고, 전 저희 엄마가 싫어해도 상대 맘 다칠까 절대 말 전하지도 않았는데.. 남친은 자기들 끼리 사소한 얘기도 제 흉본거 다 저한테 전해요. 그리고 누나 만나서 누나가 삼겹살먹으러 가잘때 제가 한약 먹는다고 돼지고기는 안된다는거 남친이 알아서 누나에게 말했어요. 딴데 가자고.. 그랬더니 첨 만났던 누나왈 "야. 안죽어 그냥 먹어!" 남친은 찍소리 못하고 (큰누나 무서워 하거든요) 그냥 먹으러 가자 괜찮을거야. ㅠㅠ
첫정이라 떼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오랜 생각끝에 다툰지 2주만에 헤어지자고 통보했더니.. 저를 무슨 남자 데리고 놀다가 싫증나 차버린 여자 취급을 하고 또 직장 좋은데 옮기더니 눈높아져 자기가 눈에 안차서 차버리냐며.. 6개월간, 어떤날을 찾아와서 소리지르며 협박하고.. 또 어떤날은 오빠동생으로 지내자며 부드럽게 달래고.. 술먹고 전화해서 욕도 하고.. 그런거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어요. 그러면서 6개월지나선 서로 연락없이 완전히 끝이 났네요. 그사람도 마지막 전화에선 다신 연락안하겠다고 하고 그 말을 지켰어요.
사실 정이 뚝 떨어지거나 사랑이 완전히 식은게 아니라 자신이 없었어요. 결혼해서 그사람 가족/그사람 사고방식 다 이해하고 나만 희생할 자신.. 어쩌다 제가 오빠 가족들 언행이 부담스럽고 무섭다고 말하면.. 내가 있지 않냐. 나 사랑하면 너 그런거는 다 이겨낼수 있는거 아니냐 라고 말하고, 내편은 안되주고 맞춰주기만 바라니.. 거기다 자긴 제가 자기 부모님과 통화할때마다 얼마나 깍듯이 인사했나 재차 확인하며 어쩌다 우리엄마가 제가 없어서 전화받으시면 인사 안하고 "00 지금 없어요?"라며 지 할말만 딱 하고... 제가 울엄마한텐 왜 통하하면서 인사 안해? 했더니.. 왜 니 엄마가 뭐라고 하냐? 라고 되묻는 사고를 가진 사람. 울엄마한테 너무 미안해 지더라구요.
왜 그런 남자를 사랑했는지.. 사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좋은 추억이 없어요. 근데 왜 아버지랑 닮은 목소리의 남자에게 빠져 2년 넘게 맘 상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또 왜 내가 생각하는 바르고 착한 남자에게 사랑에 빠질수 없는지.. 어렵습니다.